[글로벌D리포트] 작황부진 등 쌀부족…가격도 올라
도자기로 만든 밥솥에서 하얀 쌀밥이 익어갑니다. 40종류의 햅쌀 가운데 손님이 고른 쌀로 지은 밥을 파는 식당입니다. 그런데 최근 쌀값이 오르고 있어 고민입니다. [시라카와/식당 관계자 : 매년 나오는 쌀이 1kg당 40~50엔에서 몇백 엔 정도 올랐습니다.] 쌀 가격이 오르는 건 수요에 맞춰 공급이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폭염과 태풍으로 작황이 좋지 않았고, 외국인 관광객 증가와 지진 우려로 인한 사전물량 확보 등이 원인이 됐습니다. 지난해 쌀 생산량은 32만 톤으로 최근 16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시민 : 어제는 슈퍼에 쌀이 많았는데 오늘은 없었습니다.] [시민 : 쌀을 팔지 않아서 부모님에게 받았습니다.] 수퍼마켓에 쌀이 들어오자 광고를 할 정도입니다 [햅쌀이 들어왔습니다. 치바현산 고시히카리 5kg이 들어왔습니다.] [시민: 2봉지 샀습니다. 주변에서 팔지 않아서 사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예 쌀 농장으로 직접 예약을 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오타/농장 관계자: 올해는 비교적 날씨가 좋아서 작황이 좋습니다. 대개 생산량의 3분의 1을 직접 팔거나 홈페이지에서 판매합니다.] 전문가들은 이번주 안에는 쌀수급이 해결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미와/일본종합연구소 연구원: 이번 주중에 쌀 수급문제는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조금 지나치게 구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30~50% 가량 오른 쌀 가격은 올해 출하되는 쌀이 많이 풀리는 오는 11월 초순까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취재 : 박상진, 영상편집 : 문현진, 제작 : 디지털뉴스편집부)
일본 후쿠시마 원전 핵연료 잔해 반출 재시도…첫 시도 실패 19일만
▲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일본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원자로에서 핵연료 잔해(데브리) 반출 작업에 착수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 원자로 핵연료 잔해 반출 작업은 지난달 22일 처음 시도했다가 관련 장비 배치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인해 중단한 이후 19일 만에 재개됐습니다. 당시 도쿄전력은 반출 준비 작업 도중 원자로 격납용기에 밀어 넣을 파이프 5개의 배열순서가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습니다. 준비 작업은 원청업체인 미쓰비시중공업이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일을 맡겨 진행했으며, 도쿄전력은 준비작업 현장에 자사 직원을 배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도쿄전력은 전날 고바야카와 도모아키 사장과 원전 폐기 부문 수장인 오노 아키라 부사장이 원격조사실에서 카메라 영상을 통해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원전 폐기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여겨지는 핵연료 잔해 반출이 이번에 성공하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 됩니다. 이 작업은 당초 2021년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장비 문제 등으로 이미 세 차례 연기돼 3년가량 늦춰졌습니다. 도쿄전력은 새로 개발한 최장 22m 길이의 신축형 파이프 끝에 부착한 손톱 형태 장치를 이용해 핵연료 잔해를 꺼내게 됩니다. 신축형 파이프가 핵연료 잔해에 도달하는 데 일주일가량, 반출 완료까지는 총 2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에 채취하는 핵연료 잔해는 3g 미만에 불과합니다. 많은 양의 핵연료 잔해를 반출하면 작업자가 피폭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쿄전력은 반출한 핵연료 잔해를 후쿠시마현 남쪽 이바라키현 소재 시설로 옮겨 성분과 경도 등을 분석한 뒤 이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반출 작업 계획을 수립할 방침입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는 880t가량의 핵연료 잔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잔해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온도가 높아진 핵연료가 녹아서 떨어지는 노심용융, 멜트다운 사고로 발생했습니다. 이 잔해를 꺼낼 공법은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아 이번에 소량 채취에 성공하더라도 언제 원전 폐기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는 2051년쯤 후쿠시마 원전을 폐기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핵연료 반출 작업이 지연되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일본 도쿄전력이 10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원자로에서 핵연료 잔해(데브리) 반출 작업에 착수했다고 교도통신이 보도했습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2호기 원자로 핵연료 잔해 반출 작업은 지난달 22일 처음 시도했다가 관련 장비 배치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확인해 중단한 이후 19일 만에 재개됐습니다. 당시 도쿄전력은 반출 준비 작업 도중 원자로 격납용기에 밀어 넣을 파이프 5개의 배열순서가 틀렸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했습니다. 준비 작업은 원청업체인 미쓰비시중공업이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일을 맡겨 진행했으며, 도쿄전력은 준비작업 현장에 자사 직원을 배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도쿄전력은 전날 고바야카와 도모아키 사장과 원전 폐기 부문 수장인 오노 아키라 부사장이 원격조사실에서 카메라 영상을 통해 준비 상황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사고 원전 폐기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여겨지는 핵연료 잔해 반출이 이번에 성공하면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 됩니다. 이 작업은 당초 2021년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장비 문제 등으로 이미 세 차례 연기돼 3년가량 늦춰졌습니다. 도쿄전력은 새로 개발한 최장 22m 길이의 신축형 파이프 끝에 부착한 손톱 형태 장치를 이용해 핵연료 잔해를 꺼내게 됩니다. 신축형 파이프가 핵연료 잔해에 도달하는 데 일주일가량, 반출 완료까지는 총 2주가량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번에 채취하는 핵연료 잔해는 3g 미만에 불과합니다. 많은 양의 핵연료 잔해를 반출하면 작업자가 피폭될 우려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쿄전력은 반출한 핵연료 잔해를 후쿠시마현 남쪽 이바라키현 소재 시설로 옮겨 성분과 경도 등을 분석한 뒤 이 결과를 토대로 본격적인 반출 작업 계획을 수립할 방침입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는 880t가량의 핵연료 잔해가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잔해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온도가 높아진 핵연료가 녹아서 떨어지는 노심용융(멜트다운) 사고로 발생했습니다. 이 잔해를 꺼낼 공법은 아직 완전히 정해지지 않아 이번에 소량 채취에 성공하더라도 언제 원전 폐기가 이뤄질지는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일본 정부는 2051년쯤 후쿠시마 원전을 폐기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핵연료 반출 작업이 지연되면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없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국군의 날 공휴일 해외 여행 급증…내수활성화 공염불?
정부의 국군의날 임시공휴일 지정 발표 이후 10월초 연휴에 해외로 떠나는 여행객들이 작년보다 증가했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6일 참좋은여행에 따르면 올해 10월1일부터 4일까지 해외로 출국하는 여행객 수는 1만121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7982명)과 비교해 27%가 늘었습니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중국이 225명에서 694명으로 208%가 늘어났고, 동남아 지역 여행객은 2279명에서 3878명으로 70% 증가했습니다. 장거리이면서 고가의 해외여행 지역인 유럽여행객도 1339명에서 31%가 늘어난 1751명이 이 기간을 이용해 여행을 즐길 예정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지진과 태풍 등으로 예약 취소사태를 맞았던 일본여행객도 같은 기간 2336명에서 2431명으로 4% 증가, 회복세에 접어들었습니다. 여행객은 늘었지만 여행 상품 가격은 올랐다. 올해 여행상품가의 총합인 판매금액은 지난해 108억원에서 올해 141억으로 31% 증가했습니다. 참좋은여행 관계자는 &'징검다리 연휴가 길게 이어져, 연차를 내고 최대 9일까지 쉬는 고객들이 많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습니다.
[단독] 100여 쪽에 담긴 '대학살'…일기에 쓴 '가해자 이름'
&<앵커&> 101년 전 1923년 9월 1일 일본에서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직후에 수천 명의 조선인이 학살됐습니다. 당시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일본군 병사의 일기를 TBC 박가영 기자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기자&> '다이소 12년 일기' 이 낡은 책자는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나라시노 기병연대 소속의 이등병, 구보노 스게지가 쓴 일기입니다. 1923년 7월부터 12월까지 100여 쪽의 기록은 무자비한 조선인 학살 현장을 생생히 담았습니다. [김문길/한일문화연구소 소장 : 병사가 직접 (작성한) 일기는 이게 처음입니다. 자경대에서 조선인들은 이렇게 죽였다 입으로 말하는 내용을 일기로서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건.] 관동대지진 다음날인 9월 2일, 일본 정부의 계엄령 선포 후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살포했다는 유언비어가 퍼졌다는 사실부터, 신요시하라 공원 500명을 비롯해 도쿄 일대에서 3천500명, 후나바시에서 조선인 1천200명이 희생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주목할 점은 학살 당시 현역 일본 군인이던 가해자 이름까지 쓰여있단 겁니다. 기록에 따르면 9월 20일, 고마츠천에서 일본군이 조선인 여성 200여 명을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스게지는 가해자를 이와 나미 소위와 모치츠키 상병이라고 특정했습니다. [김문길/부산외대 명예교수 : 조선인들, 중국인들 죽인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마라. 그래요. 절대로 하지 마라. 하니까 지금까지 어디에 몇 명이 죽고 어디에 묻혀 있는가를 알 수가 없는 거지요.] 스게지의 일기는 그동안 후손이 보관해 오다 관동대지진 기록을 추적하던 김문길 소장이 현지에서 입수해 TBC에 사본 전문을 처음 공개한 겁니다. 일기에 언급된 조선인 희생자만 5천여 명, 국내외 학계에서 추정하는 희생자는 6천여 명에 달합니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올해로 101년, 진상 규명은 아직 멀기만 하고 억울하게 숨진 수천 명 조선인의 원혼은 여전히 이역만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영상취재 : 고대승 TBC, 디자인 : 최성언 TBC) TBC 박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