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위대한 배우' 양조위의 화양연화
[SBS연예뉴스 | 부산=김지혜 기자] '화양연화'(花樣年華). 영화 제목으로도 익히 알려진 이 말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 차우(양조위) 첸(장만옥)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는 동시에 중국 반환 전 찬란했던 홍콩을 추억하는 영화기도 한 '화양연화'는 한국 씨네필에게도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왕가위(王家衛) 영화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다. 인물들의 감정은 절제하되 고속촬영과 강렬한 OST로 왕가위만의 형식미를 강조했다. 그 완성에는 양조위(梁朝偉)와 장만옥(張曼玉)이 있었다. 양조위는 이 작품으로 2000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화양연화'가 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받은 양조위는 자신의 배우 인생 40년을 망라해 대표작 6편을 직접 선정했고, 그중 '화양연화'도 포함됐다. 제2회 행사에서 왕가위 감독과 함께 작업한 '2046'이 개막작으로 초청돼 BIFF와 첫 인연을 맺었던 양조위는 제27회 영화제에서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을 수상했다. 네 번째 부산 방문에는 아내이자 동료인 배우 유가령도 함께 했다. 6일 오전 11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 KNN센터 KNN시어터에서 열린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기자회견에서는 양조위의 입으로 데뷔 40주년을 돌이켜보는 그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의 '화양연화'를 유추해볼 수 있었다. 양조위는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에 대해 상을 받게 돼 영광 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국제영화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던 제2회 영화제를 언급했다. 센텀 시절도 아니고 해운대 시절도 아닌 남포동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많이 와봤다. 그러나 보면 볼수록 달라진 점이 많아 신기하다. 처음 왔을 때는 좁은 길에 작은 무대를 세워 개막식을 했다. 어제처럼 성대한 개막식과는 달랐다. 예나 지금이나 부산 팬들의 열정에 놀란다. 특히 첫 방문 때가 기억이 나는데 좁은 길을 지나가다가 팬들이 너무나 열정적이어서 신발 벗겨진 기억도 있다 고 웃어보였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양조위의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을 기념해 양조위 대표작을 상영한 '양조위의 화양연화'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양조위는 자신의 대표작 중 '2046(리마스터링)', '동성서취', '무간도', '암화', '해피투게더(리마스터링)', '화양연화(리마스터링)'를 선택했다. 국내에서 큰 사랑을 받은 '천녀유혼3', '동사서독', '중경삼림'과 '색,계'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양조위는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사극, 느와르, 코미디, 드라마 등 여러 장르의 영화를 골라봤다. 또한 왕가위, 유진위 등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의 작품도 넣고 싶었다. 사실 더 찾고 싶은데 못 찾은 것도 있다. 대만에서 찍은 '비정성시'도 선보이고 싶긴 했다 고 언급했다. 양조위는 홍콩 최고의 배우이자, 아시아 최고의 배우,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배우다. 1980~1990년대에는 청춘 스타로 자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으며, 1990년대 중반부터 작가주의 거장과 잇따라 작업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시아 배우 최초로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화양연화')을 수상했고, 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 함께 작업한 '비정성시'(1989), 베트남 트란 안 홍 감독과 작업한 '씨클로'(1995), 대만 이안 감독과 작업한 '색, 계'(2007)로 총 세 차례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희극과 비극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가진 양조위는 무에서 유를 창조할 줄 아는 배우다. 대사 한 줄 없이 표정만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해내고, 슬픔과 고통도 관객들에게 전이시킬 수 있는 그의 감성은 장르를 넘나들며 발현됐다. 왕가위, 이안, 허우 샤오시엔 등 동시대에 활약한 거장과 함께 작업하며 아시아 영화의 르네상스를 견인했다. 그는 각기 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거장들의 단일한 페르소나였다. 170cm의 키에 왜소한 체격을 가진 그는 처음부터 눈에 띄는 배우는 아니었다. 양조위의 시작이 드라마라는 것도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1982년 연속극 '천룡팔부-허죽전기'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소림사 스님으로 짧게 출연했다. 이후 영화에 본격적으로 출연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로 '드라마'를 꼽기도 했다. 양조위는 현실 생활에서도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하고, 제가 안 해본 것도 많다. 사실 딱히 해보고 싶은 캐릭터라기보다 안 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 면서 저는 방송국 출신이다. 드라마로 데뷔했다. 최근 들어 드라마를 찍으면 어떨지 궁금했고, 드라마 배우로 데뷔한 시절부터 저를 좋아한 팬들이 많다. 팬들도 그런 저의 모습을 궁금할 것 같아서 드라마 도전하고 싶다 고 말했다. 배우 데뷔 40주년을 앞둔 지난해에는 의미있는 도전을 하기도 했다. 마블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이하 '샹치')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데뷔한 것. 그는 꼭 미국 진출이라기보다는 작품도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면서 인연이 나타난다면 대만, 한국, 미국 어디라도 갈 수 있다 고 말했다. 이어 배우라면 자신의 작품을 다양한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나. 미국 작품을 한다면 글로벌 관객들에게 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아 기회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라고 덧붙였다. 도전은 고통이 아닌 즐거움이라도 말하기도 했다. 그는 나의 연기 인생 중 전반 20년이 배우는 단계였다면, 후반 20년은 그 배움을 발휘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단계를 넘어 즐기며 연기할 수 있는 단계인 것 같아. 이제야 도전을 여유롭게 즐길 수 있게 돼 행복하다 고 웃어보였다. 최근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K콘텐츠의 성공에 대해서는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기뻐했다. 양조위는 요즘에 한국 연예계를 보면 기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며 한국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올드보이' 등을 봤고, 전도연과 송강호 배우의 영화를 즐겨봤다 고 말했다. 양조위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탕웨이는 박찬욱 감독과 영화 '헤어질 결심'을 작업했고, 장첸은 윤종빈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수리남'에 출연했다. 빈말처럼 오가던 중화권 배우들과 한국 영화인들과의 작업이 현실화되고 있는 단계이다. 양조위도 한국 콘텐츠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는 한국에 친한 제작자, 배우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언어는 큰 문제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만 있다면 언제든 출연할 수 있다. 얼마전에 '코다'라는 작품을 봤다. 그처럼 말할 필요가 없는 역할이라면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 긍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또한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은 한국 배우를 묻는 질문에 주저없이 송강호와 전도연을 꼽으며 두 배우의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대부분의 작품을 찾아보곤 했다. 언제 꼭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다 고 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양조위의 눈망울이 크고 눈꼬리가 처진 눈매가 발휘하는 힘은 상당하다. 함박웃음을 지을 땐 마냥 순박해 보이다가도 무표정일 땐 고독해 보이고 싸늘해보기도 한다. 고독과 우수, 회환의 눈빛이 영화적 마력으로 승화된 작품으로는 '중경삼림', '화양연화', '해피 투게더', '색,계', '무간도'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다. 그는 눈빛 연기의 비결로 '관찰과 준비'를 언급했다. 양조위는 저는 보통 캐릭터를 준비할 때 조사를 많이 한다. 참고서적을 읽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주변에 비슷한 캐릭터가 있는지 관찰하고 모방하기도 한다. 캐릭터를 준비할 때 보통 3개월의 시간을 들인다 라고 말했다. '타고 났다'는 말로 자신의 특별함을 설명하지 않았다. 배우에게 '시간'이란 곧 '캐릭터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인고의 과정임을 알 수 있었다. 많은 배우들이 연기로 정점을 찍은 후에 제작이나 연출에 관심 갖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양조위는 연기 한우물만 파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양조위는 연출에 관심이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여전히 연기가 좋다. 배우 생활을 즐기고 있고, 아직도 배우로서 할 일이 많다. 연출이나 제작에 대한 생각은 없다 고 단호하게 답했다. 실제로 부지런히 영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양조위는 곽부성과 함께 한 '웨어 더 윈드 블로우스'와 유덕화와 작업한 '금소지'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그는 감사하게도 코로나19 시대를 시기적으로 잘 피해가 영화 작업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고 웃어보였다. 지난해 '샹치' 개봉 당시 국내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양조위 열풍'이 불기도 했다. 중장년층 팬들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배우였다면, 젊은 관객들에겐 우아하고 품격있는 '배우의 발견'으로 이어진 현상이었다. 동시에 왕가위 대표작들이 국내에 재개봉되며 양조위의 가치는 더욱 올라갔다. 양조위도 새로운 팬들이 생긴 것에 대해 놀라워하며 나에게 젊은 팬이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특별전 상영작을 선정할 땐 젊은 팬층까지 고려하지는 못했다. 젊은 팬 분들께 편지를 받기도 했는데, 그중 한 분은 오히려 나의 최근 작품을 보고 좋아하기 시작해서 옛날 작품을 다시 찾아본다고 하더라. 팬데믹 등 여러 이유로 한국에 방문할 기회가 많이 없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국을 조금 더 많이 방문해 인사드리고 싶다 고 고마워했다. 초시간적 (Timeless)인 가치란 것이 있다. 시간과 세대를 불문하는 영원한 가치는 퇴색되지 않는다. 위대한 배우 양조위의 가치는 더 크고 깊어질 뿐이다. ebada@sbs.co.kr &<사진 = 백승철 기자, 유가령 SNS&>
SBS 연예뉴스
|
김지혜
|
2022.1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