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브수다] 인정받고자 항상 불안…이제 절 믿어보려고요 …정려원의 '졸업'
[SBS연예뉴스 | 강선애 기자] 배우는 누군가가 인정해 줘야 바깥으로 보일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불안했던 거 같아요. 확인을 받고 싶어 했죠. 그런데 이번 작품 '졸업'과 안판석 감독님을 만나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됐어요. 이제 그 불확신에서 졸업해 보려고요.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졸업'(극본 박경화, 연출 안판석)에서 여주인공 서혜진 역을 맡아 훌륭히 작품을 끝낸 배우 정려원. 지난 20여 년 간의 배우 생활동안 '내 이름은 김삼순', '샐러리맨 초한지', '마녀의 법정', '검사내전' 등 다양한 인기 작품에 출연해 왔던 그녀인데, 이번 '졸업'을 스스로 '인생 작품'이라 꼽는다. 필모그래피의 모든 작품들이 배우로서 정려원을 성장시킨 고맙고 소중한 존재들이지만, '졸업'에서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연기를 마치면 항상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남기 마련이었는데, 이번 '졸업'에서는 달랐다. '이 정도면 충분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 최선을 다했기에 수긍과 인정이 가능했다. 그래서 불안하지 않았다. 정려원이 배우로서 늘 품고 있던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졸업'을 연출한 안판석 감독 덕분이다. 안 감독은 배우들이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최소한의 촬영으로 최대의 결과물을 얻는다. 그런 안 감독의 믿음의 연출 스타일을 경험하며, 정려원도 자신의 연기를 믿을 수 있게 됐다. 정려원은 안 감독이 연출한다는 말에 '졸업'의 대본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 안 고를 수가 없었죠. 제가 일기를 쓰는데, 작년 3월쯤에 함께 작업하고 싶은 작가님, 감독님 이름들을 일기에 적었어요. 거기에 안판석 감독님의 이름도 있었죠. 그리고 5월 12일에 '졸업' 대본을 받았어요. 연출이 안판석 감독님이라고 해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안 감독님과 같이 작업했던 선배님들이, 추천을 많이 해주셨어요. 제가 안 감독님과 같이 작업하면 너무 좋아할 거 같고, 또 잘할 거 같다고요. 그러니 저도 궁금했고, 꼭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만나게 된 거예요. 운명인가 싶기도 했고, '내가 간절히 바라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이렇게 기회가 오는구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안판석 감독과 함께 한 '졸업'. 기대만큼 좋았다. 정려원은 촬영장에서 자신의 질문에 대한 안 감독의 '우문현답' 대답의 의미를, 나중에 방송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며 신기해했다. 전 질문공세를 잘하는 스타일인데, 안 감독님은 우문현답하시는 스타일이세요. 예를 들어 제가 A, B에 대해 물어보면, 감독님은 알파벳의 어원을 설명하는 분이세요. 감독님은 연기를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상관이 없다며, 오히려 배우의 자세에 대해 더 말씀해 주셨어요. '배우는 문학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처음에는, 제가 원하는 대답이 이게 아니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졸업' 방송을 보며, 또 끝나고 나서, 감독님이 저한테 해주셨던 말들이 그제야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이제야 감독님 말씀이 이해가 가니, 우리 다시 해요'라고. (웃음) '졸업'은 대치동의 스타 강사 서혜진(정려원 분)과 신입 강사로 나타난 발칙한 제자 이준호(위하준 분)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다. '밀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등을 만든 '멜로의 장인' 안판석 감독의 작품이라 기대가 컸던 '졸업'은 시청률 3%~6%를 기록하며 수치적으로 좋은 성적표를 얻지는 못했지만, 이 작품이 그려낸 대치동 학원가의 생생한 뒷이야기는 충분히 흥미를 끌어모을 만했다. 또 이를 표현한 배우들의 섬세한 연기, 안판석표 멜로 특유의 감성적인 연출이 어우러지며 '졸업'은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졸업' 초반에는 배경이 되는 대치동 학원가의 분위기와 학원 선생님들이 어떤 생활을 하는지, 또 이준호의 학원 입성기를 설명하는데 중점을 두는 만큼, 전반적으로 멜로의 감성이 잘 드러나진 않는다. 정려원은 처음에 '졸업'의 대본을 받고 4부까지 읽으며, 멜로인데 멜로 같지 않은 그 느낌이 좋았다고 한다. 처음에 대본을 받아 읽는데, 멜로가 안 나오더라고요. '멜로라고 들었는데, 멜로가 어딨지? 오피스 드라마인데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어요.(웃음) 근데 읽으면서 빠져들더라고요. 멜로라고 공식 루트를 따라가지 않는 그 지점이 좋았어요. 대사들도 너무 좋았고요. 안판석 감독의 작품은 보통의 드라마가 추구하는 것들을 비트는 재미가 있다. 대사의 맛을 살리기 위해 한 테이크로 길게 촬영한 장면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고, 배우의 얼굴을 찍는 대신 주변의 물건이나 배경만을 찍는 파격적인 구도로 그 순간의 분위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감독으로서 극 전체의 그림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그려져 있어야만 가능한 연출 방식이다. 감독님은 억지가 하나도 없어요. 안 감독님은 주인공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그 신의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극 중 혜진과 준호의 첫 베드신 이후, 학원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쳐 간단히 대화를 나누는 신이 있어요. 전 카메라가 앞에서 찍으며 인물들이 부끄러워하는 장면을 잡을 줄 알았는데, 감독님은 저희의 뒷모습만 촬영하시더라고요. 그땐 좀 의아했는데, 나중에 방송을 보고 적절했다고 생각했어요. 시청자한테 상상의 여지를 주는 거죠. 대부분의 경우, '이런 감정을 느껴라'는 식으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데, 안 감독님의 멜로는 틈이 있어요. 그걸 열어둬요. '한번 들어와서 봐, 어떤 느낌일 거 같아?'라고. 그런 게 새로웠어요. '졸업'의 명장면 중 하나는 6화 엔딩에 등장한, 혜진과 준호의 '난로 키스신'이다. 불이 꺼진 학원 교무실 안, 빨간 난로 불빛만이 비추는 묘한 분위기 속에서 준호가 혜진에게 마음을 고백한 후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장면이다. 정려원은 '졸업' 애청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일으킨 이 장면의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준호가 물에 빠져 젖은 상태라 난로를 가져왔고, 처음에는 조명도 다 켰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조명을 끄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난로 불이 너무 빨갛게 나와서, 사람들이 보고 놀랄 수도 있다, 너무 낯선 느낌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감독님이 '이 교무실에서 불이 꺼져있는 건 익숙한 장면이고, 빨간 불만 켜져 있는 건 익숙지 않은 장면이다', '멜로도 익숙하다고 생각한 곳에서 익숙하지 않게 찾아오는 거다', '시청자에게 학원에서 멜로 한다는 게 익숙하지 않으니, 이 신은 낯설어도 좋다'고 설명해 주시더라고요. 너무 빨갛게 나올까 봐 걱정했는데, 방송을 보고 감탄했어요. 그 신이 이 드라마가 말하는 '불 꺼진 학원가에서 시작되는 미드나잇 로맨스'의 완결판이라 생각했죠. 감독님한테 '역시는 역시네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어요. (웃음) 극 중 서혜진은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강생 인원수 탑을 찍는 최고의 스타 국어 강사다. 이에 정려원은 마이크를 들고 강의하는 방법부터 칠판에 판서하는 것까지 모두 자연스럽게 해내기 위해 연습했다. 어릴 적 호주로 이민을 가서 한국의 교육, 학원가 문화는 물론, 국어 과목에 대해서도 잘 몰랐던 그녀는 연기 외에 많은 것을 더 공부해야 했다. 국어는 제가 배워보지 못해 생소한 과목이에요. 그래서 더 긴장하긴 했어요. 주변에 고교 국어 교사 분이 있어서 물어보기도 했고, 극 중 혜진이 학생에게 설명하는 것들에 대해 배경지식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박완서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기도 했어요. 몰래 학원에 가서 뒤에 앉아 수업을 참관하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들이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저희 자문해 주신 강사님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그분이 강의하시는 스타일을 많이 따라 하려 했죠. 안판석 감독의 작품은 멜로라고 해서 남녀의 사랑 이야기만 조명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사회 풍자와 메시지가 묵직한 울림을 준다. '졸업' 역시 대치동 학원가를 배경으로, 공교육과 사교육에 몸담고 있는 직업군, 학부모와 학생의 관계성을 통해 입시만을 위한 지나친 교육열이 가져오는 부작용과 교육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했다. 저희 드라마가 교육 방식이나 그런 것에 대해 어느 정도 메시지를 던져준 거 같아요. 이를 통해 시청자 분들이 토론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이야기가 드라마로 끝나는게 아니라, 확장이 되는 거죠. 어떤 분들은 4부에 등장했던 이광수의 '무정'을 방송 이후에 읽어봤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확장이 된다는 느낌이 좋았어요. 참 좋은 현상 같아요. 극 중 혜진과 준호는 6살 연상연하인데, 실제로 정려원은 상대 역으로 호흡을 맞춘 위하준과 10살 차이가 난다. 두 사람은 나이 차와 상관없이 혜진과 준호의 감정선을 안정적으로 그려내며 사랑스러운 커플 케미를 완성했다. 위하준 배우가 연하이긴 하지만, 진중하고 과묵한 성격에 어른스러운 매력이 있는 친구예요. 그 친구가 멜로를 한 번도 안 했다는 것에 놀랐어요. 제가 빨리 친해지고 싶어 그 친구가 출연한 '최악의 악'을 보고 갔는데, 거기서 임세미 씨랑 연기하는데 눈빛이 너무 좋더라고요. 악역이나 캐릭터가 강한 걸 소화하는 걸 봤는데, 남배우를 볼 때랑 여배우를 볼 때랑 눈빛이 확 바뀌더라고요. 그런 눈을 갖고 있는데 왜 그동안 멜로를 안했냐고 했어요. 역시나, 같이 연기해 보니 잘하더라고요. 웰메이드 작품이라 평가받는 '졸업'이지만, 음주운전 장면 노출로 인해 한 차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4회에서 술을 마신 혜진이 이후 직접 차를 몰아 준호를 집에 데려다주는 장면이 등장한 것. 이에 '졸업' 측은 즉각 사과하며 VOD(다시보기)와 재방송에서 해당 장면을 삭제했다. 이 드라마의 주연으로서 정려원도 실수를 인정하고 질타를 겸허히 받아들였다. 해당 방송이 나간 직후에, 모두가 놓친 부분이라 생각했어요.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면 안 되죠. 꼼꼼히 확인하고 집중해야겠다, 다시 한 번 모두가 되새기게 됐어요. 정려원은 그동안 작품에서 변호사, 검사, 의사 등 전문직 캐릭터를 주로 맡아 왔다. 이번 '졸업'의 학원강사 서혜진까지, 대부분 유려한 말솜씨를 가진 직업들이다. 정려원은 그런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제가 마음속에 있는 걸 그때그때 얘기 못해서, 집에 가서나 잠들기 전에 발차기를 많이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게 좀 콤플렉스죠. 그래서 말을 유려하게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이 있어요. 제가 하지 못하는 것들을 너무 쉽게 하니까요. 그런 캐릭터를 연기하며 처음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게, '샐러리맨 초한지'의 백여치 역이었어요. 초반엔 엄청 헤맸는데, 해내고 나니 쾌감이 있더라고요. 말로 계속 분출하는 캐릭터를 하면, 제가 좋아하지 않는 저의 부분들이 커버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전문직 여성 캐릭터들을 좋아했던 거 같아요. 저랑 다른 점이 많아서요. 제가 일기를 쓰며 생각을 정리하는데, 그렇게 일기를 쓰면서 저와 캐릭터와의 간극이 좁혀진다고 생각해요. 서혜진도, 제가 그렇게 나이스하고 나긋나긋하게 말을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저와의 간극이 많이 줄여졌다고 생각해요. 극 중 혜진과 준호는 사랑의 힘으로 서로를 성장시키며 진정한 의미의 '졸업'을 보여준다. 현실적인 부딪침에 대립하고 상처도 받지만, 혜진은 준호로 인해 얽매여 있던 학원에서 벗어나 잊고 있던 자신의 꿈과 자아를 되찾는다. 정려원은 이번 작품이 자신이 품고 있던 불안으로부터 졸업하게 해 준 것 같다며, '인생작'이라 말했다. 배우는 누군가가 인정해 줘야 바깥으로 보일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불안했던 거 같아요. 확인을 받고 싶어 했죠. 그런데 안판석 감독님이 그런 스타일이 아니잖아요. 현장에서 감독님이 별말씀이 없으시니 '내가 이거 잘한 거겠지?'하며 넘어가곤 했어요. 그게 쌓이다 보니 '아, 내가 잘했겠구나. 안 그랬으면 감독님이 다시 찍자고 하셨겠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 스스로를 믿어보자, 그 불확신에서 좀 졸업해 보자,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촬영 현장에서는 저 스스로 '이 정도면 충분해' 했던 거 같아요. 원래 다른 촬영장에서는 '내가 조금 더 잘해낼 수 있었는데' 하는 후회가 항상 있었거든요. 그런데 '졸업'에서는, 마지막 촬영이 되니 그런 게 눈 녹듯이 다 사라지더라고요. 최선을 다했으니까요. 그래서 이 작품이 '인생작'인가 싶어요. 스스로 '인생작'이라 꼽는 '졸업'을 만나 정려원은 촬영장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방영 당시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순위에서도 난생처음 1위에 올랐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으니, 배우로서 만족도가 최고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려원은 '다음'이 걱정이다. 제가 너무 이 '졸업' 현장에서 복에 겨웠던 게 아닌가 싶어요. '다음 현장이 힘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서도 잘 해낼 거 같긴 하지만, 배우가 인생작을 매번 만나진 못하니까요. 빠른 시일 안에, 또 제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사진제공=블리츠웨이스튜디오, tvN] 강선애 기자 sakang@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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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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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