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마지막 주 개봉영화
지난 25일 열린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작품, 감독, 각색상등 주요 부문을 휩쓸어 왕좌에 올랐습니다. 각 부문들을 보면 받을 만한 작품과 배우들이 받았다는 중평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엉뚱한 수상결과도 없었고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야기지요.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국내에서도 후보작들이 대거 개봉됐기에 지난주 목요일에 8뉴스 아이템을 올렸지만 다른 시급하고 중요한 뉴스들에 밀려 빠졌고 시상식 전날인 24일 일요일에 다시 올렸지만 역시 빠졌습니다. 같은 아이템이 두 번 연속 빠지니 어깨에 힘이 빠지고 별로 신명도 나지 않아 당초 약속드렸던 [어톤먼트]를 쓰지 못했네요. 오싹한 전율을 주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2차 대전시기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고전적 스타일로 그린 [어톤먼트], 재기 발랄한 대사가 돋보이는 [주노]등 높은 작품성을 확보한 작품들이니 챙겨보셔도 후회 안 하실것 같네요. 이번 주에는 10여편의 국내외 영화가 선보이는데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을 놓쳤습니다. 본 사람들 말로는 초기 홍상수로 돌아간 것 같은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평이니 주말에라도 챙겨 봐야할 것 같습니다. 4개월 3주 그리고 2일(감독:크리스티안 문주, 청소년 관람불가) 루마니아의 악명높은 차우세스쿠 독재가 막을 내리기 2년 전인 1987년 기술학교 기숙사에 사는 가비나는 원치 않는 임신을 했는데 당시 루마니아는 법으로 낙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룸메이트 오틸리아의 도움을 받아 불법 낙태 시술을 하는 의사를 섭외하고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하느라 분주합니다. 계획경제의 비효율성으로 물자는 모자라고 감시와 통제의 눈초리에 억압당하는 당시 루마니아 사회의 무거운 공기를 잘 포착하고 있습니다. 호텔에 투숙할때도 신분증을 맡겨야하고담배를 포함한 부족한 물자를 암시장에서 조달하는 젊은이들, 그 속에서 불법낙태를 시도하는 두 젊은 여자의 이틀동안의 행적을 끈끈하게 묘사합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일종의 사회성 짙은 예술영화로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낙태로 죽은 태아를 가져다 버리는 친구 오틸리아의 행적을 롱테이크로 쫓는 후반 장면의 긴박감이 압권인 루마니아 영화입니다. (영화 핵심 내용이라 자세하게 말씀 드릴 수는 없지만 남자건 여자건 좋은 친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일깨워주더군요.) 바보(감독:김정권, 주연:차태현, 하지원, 박희순, 12세 관람가) 천만명의 네티즌들이 봤다는 강풀의 동명 인기만화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토스트를 만들어파는 승룡(차태현)은 착한 바보입니다. 오빠가 바보라는 사실을 심하게 부끄러워하는 여동생 지인이 있고, 어릴적부터 친구로 요상한 카페를 지키는 건달 상수(박희순)가 있습니다. 그 앞에 10년만에 외국생활을 접고 들어온 지호(하지원)가 있었으니 그녀는 피아노 공부 도중 손가락이 말을 안 듣는 좌절을 맛보고 있는 상태입니다. 차태현의 친근한 바보 연기가 자연스럽고 하지원의 매력도 여전히 빛을 발합니다. 한번도 거짓말을 한적이 없는 착한 바보인 승룡이 하나뿐인 동생을 지키기 위해 딱 한번 거짓말을 하는 장면에서 콧등이 시큰해지는 따뜻하고 착한 기운이 넘쳐나지만 어딘가 모르게 허전한 구석이 있습니다. 너무 원작을 고스란히 옮겨다 놓는 바람에 영화적인 재창조라는 요소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만화에서 효과적으로 쓰였던 독백이나 대사가 배우의 목소리로 들릴때 그 효과는 반감되고 '이건 아닌데'하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더군요. 아무리 훌륭한 원작을 소재로 하더라도 영화적 재창조를 위한 해체나 구성의 변화, 생략과 추가를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어릴적에는 동네에 미친놈, 미친년으로 일컬어지는 바보가 꼭 한두명씩은 있었는데 요즘은 다 어디 간걸까요. 그 시절에는 가난했어도 그런 사람들을 받아줄 넉넉함이 있었지만 지금은 배제와 격리의 논리가 지배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유야 많겠죠. 당사자 가족들은 '창피하다'고 하고 주민들은 '동네 집값 떨어진다'고 하니까...) 쿵푸덩크(감독:주연평, 주연;주걸륜, 채탁연, 증지위 15세 관람가) 무술학교에서 자라난 소년 팡시지에(주걸륜)가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매니저(증지위)에게 발탁돼 대학 농구부에 입단하고 소년은 타고난 무술감각을 이용해 두각을 나타냅니다. 그냥 그렇게 성장하면 좋겠지만 나쁜 세력들이 승부조작에 관여하고 악랄한 반칙을 일삼는 상대팀이 나타납니다. 주걸륜의 매력이 돋보이는 영화로 깊이나 새로움은 별로 없지만 매끄러운 만듦새를 지녀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생 층(또는 그에 걸맞는 정신연령을 가진 성인층까지)이 보기에 딱이다 싶은 스포츠 액션 영화인데 조금 잔인한 폭력장면 때문에 15세 등급을 받았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람보4:라스트 블러드(감독 주연:실베스터 스탤론, 청소년 관람불가) 냉전시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지역을 주름잡던 람보 형님께서 20년만에 돌아왔습니다. 스테로이드 과다 복용 부작용으로 보이는, 아직은 빵빵해 보이지만 어딘가 바람이 좀 빠진 것 같은 몸매를 갖고 태국 산골짜기에서 뱀도 잡고 화살로 물고기도 잡아가며 숨어살던 람보가 이번에는 미얀마 군부 독재와 한판 대결을 펼치는데요. 선교단체소속 남자가 미얀마로 들어가는 뱃길 좀 안내해 달라는 부탁에 콧방귀도 끼지 않더니 미모의 여자 단원이 부탁하자 선뜻 나서는 것부터 시작해 영화는 비장한 장면이나 대사에서 콧방귀가 절로 나오는 만든 자와 보는 자 사이의 심각한 어긋남의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갑니다. 20년 전보다 월등하게 발전한 새로운 특수효과 기술을 유감없이 사용하며 손과 발이 잘려나가는 장면 등 잔인함의 강도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쎄졌지만 변화한 세계에 발맞추지 못하는 영화정신은 화석처럼 굳어있습니다. 뻘건 살점이 덕지덕지 붙은 기관총을 붙잡고 절규하며 난사하는 람보 아저씨가 처량하게 보일뿐 이전에 그나마 보여줬던 순진한 열혈남아들에게 선사하는 마초적인 환상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록키 발보아]로 그나마 초심이 뭔지를 보여줬던 스탤론 아저씨, 람보에 이어 [클리프 행어]까지 속편으로 만든다는 소식이 외신을 타고 전해지더군요.(그동안 받은 어마어마한 출연료는 다 어쩌셨는지, 돈이 아쉬워서 그런 거라면 노욕이 지나친 것 같습니다. 재테크에 실패하셨다면 대한민국 장관 후보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게 더 나을 것 같습니다. &'람보 형님! 비행기 타고 함 놀러 오세요.&') 워(감독:필립권, 주연: 이연걸, 제이슨 스타뎀) 액션 스타 이연걸과 떠오르는 서양권 액션 영웅?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타뎀은 FBI 요원이고 이연걸은 냉혹하고 빈틈없는 킬러인데 홍콩출신 폭력조직 삼합회와 야쿠자가 얽힌 범죄음모를 둘러싸고 배신과 살육이 이어지고 가장 친한 동료를 이연걸에게 잃은 스타뎀은 분노의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모습으로 뛰어듭니다. 우리 관객들이야 그렇다치고 서양 관객들에게는 그놈이 그놈같은 삼합회와 야쿠자가 액션장면에서 구별이 잘 안될 것 같은 걱정이 앞섭니다. 꽤나 묵직해보이는 반전이 막판에 드러나지만 설득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고 그렇다고 새로운 액션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액션영웅의 카리스마도 못 느낀채 잔인함의 수위만 잔뜩 높은 액션 영화입니다. 이밖에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 미국 대통령 저격사건을 소재로 한 액션 스릴러 [밴티지 포인트]와 이기적인 예술영화 감독과 지루하고 난해한 예술영화라면 참지 못하는 관객이 만나 벌이는 소동을 그린 코미디 [터질거야], 한 여자의 복수극인 [리벤지45]등이 개봉됩니다. 저는 다음달 초반으로 예정된 이사 준비를 하느라 바쁜 주말이 될 것 같네요. 평일을 버틸 배터리에 충전 만땅 채우는 즐거운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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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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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