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박대성 화백 현대인들은 붓 더 많이 쥐어야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을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SBS에 있습니다. ■ 방송 :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월~금 (14:00~16:00) ■ 진행 : 주영진 앵커 ■ 대담 : 박대성 화백 -------------------------------------------- [주요 발언] 전시 중 '작품 훼손' 사건 화제…아이가 작품 위 올라가 훼손 작품, 신라시대 김생 비문 모필한 20m 대작 작품 훼손 문제 삼지 않고 계속 전시…그 자체도 하나의 역사 나이 들수록 '화(畵)' 보다는 '서(書)'에 비중 두게 돼 한·중·일 동양 3국, 붓으로 보이지 않는 경쟁 해 어릴 적 가난으로 못 배워…경주박물관 무료 강의 14년째 ▷ 주영진/앵커: 얼마 전에 시청자 여러분 혹시 이 뉴스 보셨습니까? 정말 어떤 유명한 화가. 우리 한국화의 거장으로 평가받는 분이 그린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 위에 아이들이 올라가서 장난을 치다가 그림을 망쳤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화가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괜찮아요, 그런 게 아이들이죠.' 정말 궁금해서 이분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서 어렵게 모셨습니다. 한국화의 거장 소산 박대성 화백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박대성 /화백: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평소 작업하시는 데는 어디십니까? 어디입니까? ▶ 박대성 /화백: 경주에서 합니다. ▷ 주영진/앵커: 경상도 경주? ▶ 박대성 /화백: 네. ▷ 주영진/앵커: 경주에서 지금 오신 겁니까? ▶ 박대성 /화백: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조금 전에 영상에도 나왔고 저도 말씀드렸는데 아이들이 올라가서 뛰어놀다가 그림을 망쳤다. 혹시 그 그림, 그 작품이 어떤 작품입니까? ▶ 박대성 /화백: 그게 서예 작품인데 김생 1,300주년 기념전에 냈던 작품입니다. ▷ 주영진/앵커: 아, 김생. ▶ 박대성 /화백: 네, 신라의 서예가. ▷ 주영진/앵커: 신라 최고의 명필이라고. ▶ 박대성 /화백: 맞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 작품을 저 아이들이 저게 영상에 잡혔군요. 저게 작품이 벽에 전시가 되지 않고 바닥에 이렇게 놓여 있네요. ▶ 박대성 /화백: 워낙 길어서 진열을 이렇게 늘어뜨려서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 아이들이 저 작품을 보고 올라가서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장난하고. 아이고. 저 작품 위를 막 그냥 가네요? 저거 어떤 전시된 곳의 어떤 관계자들이 저런 주의사항 이런 걸 혹시 안 적어놨나요? 어떻게 아이들이 저럴 수가 있었을까요? ▶ 박대성 /화백: 그래도 애들이니까 그럴 수 있죠. ▷ 주영진/앵커: 아니, 어쨌든 간에 20m나 되는 작품이라고 지금 말씀하셨는데 대단히 긴 작품인데 아이고, 아이들이 뛰어놀아서 저렇게 작품이 망가졌는데. 정말 전시한 곳에서도 상당히 놀랐을 거고 이걸 어떻게 하지? 이 작품을 혹시 원하시는 분도 있고 무엇보다도 직접 저 작품을 만드신 우리 화백님의 의견도 궁금한데 화내시면 어떻게 하지 이런 걱정을 했을 텐데 처음에 연락받고 '괜찮다, 괜찮다.' 말씀하시는데 놀라지는 않으셨어요? ▶ 박대성 /화백: 처음에는 좀 놀랐습니다. 놀랐지만 그래도 애가 그랬다니까 그건 뭐 놀랄 일도 있지만 그게 아니더라. 아기들이니까. 그건 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잖아요. ▷ 주영진/앵커: 그러니까 작품이 망가졌다, 일부 훼손이 됐다는 것도 전시를 담당한 측에서 아이들이 다 돌아간 다음에 뒤늦게 알게 된 거겠네요? ▶ 박대성 /화백: 그렇죠. ▷ 주영진/앵커: 처음에는 몰랐고? ▶ 박대성 /화백: 요새는 CCTV가 있으니까 그렇게 발견됐고. ▷ 주영진/앵커: 그러면 그다음에 '괜찮다, 뭐 그런 게 아이들이지'하고 그다음에는 그러면 그 전시를 담당했던 측에서 추가로 이 작품을 어떻게 복구를 좀 해야 되는데 이런 논의는 없었습니까? ▶ 박대성 /화백: 그런 논의가 있었는데 그것도 하나의 과정에서 역사라고 보면 또 회자가 될 수 있고 해서 그대로 두기로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대로 아이들이 훼손한 그대로? ▶ 박대성 /화백: 네, 네. 큰 뭐 그건 아니니까. ▷ 주영진/앵커: 지금 자막에 아이들 선처해달라 이렇게 요청하셨다는 게 혹시 저 전시를 담당했던 주최 측에서 어쨌든 이건 아이들이 저렇게 장난하다 망쳤으니 이 부분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겠습니다. 혹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건가요? ▶ 박대성 /화백: 이제 보험사하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보험사하고. ▶ 박대성 /화백: 네, 네. 그런데 제가 이제 그거는 없던 걸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 주영진/앵커: 혹시 아이의 부모님이나 이런 분들로부터 나중에 연락 오거나 그런 건 없습니까? ▶ 박대성 /화백: 다른 연락이 왔습니다. 왔습니다만 편하게 생각하자 그랬죠. ▷ 주영진/앵커: 연락이 왔는데 직접 받으신 건 아니고요? ▶ 박대성 /화백: 아니고요. ▷ 주영진/앵커: 부모님들이 죄송하다고 연락을. ▶ 박대성 /화백: 안 그래도 미안한데 뭘 받고 할 게 있겠습니까. ▷ 주영진/앵커: 이런 일이 처음 입니까? ▶ 박대성 /화백: 처음입니다, 저도 처음이죠. ▷ 주영진/앵커: 작품이 이렇게 훼손된 게. 얼마 전에 한 외국 화가의 작품도 전시가 되다가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도 아마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뉴스 보셨죠? ▶ 박대성 /화백: 저는 듣기만 들었습니다. 들었는데 참. ▷ 주영진/앵커: 그러면 작품이 훼손됐는데 '괜찮다, 아이들이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작품이라고 하는 것은 작가에게는 한 순간 후다닥 그려낸 게 아닐 것 아니에요. 만들어낸 게 아닐 거 아니에요. ▶ 박대성 /화백: 그래도 그게 우리가 생각하면 세상에는 그렇게 마음대로 그렇게 성질대로 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더욱이 아기들이니까 그 장래가 만리인데 그걸로 인해서 만에 하나라도 어떤 피해가 간다면 좋지 않죠. ▷ 주영진/앵커: 저 작품은 어느 정도 준비를 한 작품입니까? ▶ 박대성 /화백: 저게 이제 보통 질문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는데 한 70년 준비한 겁니다. 말하자면 저게 나오기까지가 70년이 걸렸다 이런 얘기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줄곧 연습을 하고 공부를 해야 저런 작품을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 주영진/앵커: 제가 기사를 보니까 화백님께서는 이 한국화. 한국화라고 하는 것은 서, 글씨와 화, 그림이 사실상 하나다. 이런 어떤 소신을 갖고 계신다. 이런 기사를 제가 봤는데. ▶ 박대성 /화백: 제가 소신이기 전에 원래 서화는 둘이 아닙니다. 동어, 같습니다. ▷ 주영진/앵커: 저희도 한국사, 미술 시간에 그렇게 배우기는 했던 것 같아요. ▶ 박대성 /화백: 맞습니다. 그게 요즘에 와서 이제 자꾸 뭘 이렇게 서구식으로 구분하다 보니까. ▷ 주영진/앵커: 그림과 글씨를. ▶ 박대성 /화백: 그걸 구분하다 보니까 과를 두 개를 했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고 봅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화백님께서는 평생을 이 한국화 하시면서 그림과 글씨를 거의 똑같은 비중으로 생각하고 작품을 해 오신 겁니까? ▶ 박대성 /화백: 그럼요. 지금 와서는 오히려 서예에 더 비중을 둔다. ▷ 주영진/앵커: 오히려? ▶ 박대성 /화백: 네, 네. ▷ 주영진/앵커: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 박대성 /화백: 더 이렇게 무르익어간다 할까? 경험이 많을수록 아, 서 중심으로 된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 주영진/앵커: 왜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까요? ▶ 박대성 /화백: 이제 우리가 서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특히 요즘 현대 복잡한 이런 발달한 사회일수록 서를 놓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서라고 하는 것은 저게 발달 과정을 보면 서가 없을 때는 우리는 원시시대를 살았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렇죠. ▶ 박대성 /화백: 그리고 구석기, 신석기를 다 지내야 되는데 서가 우리가 인간에게 서를 발전시키고부터 오늘 문명사회가 오늘 된 겁니다, 이게. 엄청난 서라고 하는 것은 그냥 소리, 글씨가 아니고 인간에게는 가장 핵심이 돼야 될 정신적 그런 유산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분야입니다. ▷ 주영진/앵커: 지금 혹시 선생님께 그림, 글씨를 배우고 싶습니다라면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을 것도 같은데 가르치는 활동도 하십니까? ▶ 박대성 /화백: 많이 왔습니다. 제가 한 14년 정도 경주박물관에서 무료 강의를 한 게 한 14년 됩니다. ▷ 주영진/앵커: 무료로. ▶ 박대성 /화백: 그게 아무 자격 그런 것도 없이 하고 싶은 분만 모셨습니다. ▷ 주영진/앵커: 개인적으로 가르치시는 분들도 다 무료로 하십니까? ▶ 박대성 /화백: 그럼요. 다, 다 그렇게 가르치는데. ▷ 주영진/앵커: 수업료 이런 거 안 받으세요? ▶ 박대성 /화백: 네, 그걸 안 하고. 왜 그러냐 하면 저는 좀 어렵게 공부를 해서 과거에 수업료에도 내가 걸림돌이 있었어요. 만에 하나가 그런 걸 또 생각할 수도 있고 그래서 여러 가지로 내가 이 세상에 와서 다음은 이거라도 하고 가고 싶다는 그런 간단한 생각을 했습니다만 그게 14년이 되다 보니까 상당한 역사가 돼서 좋은 제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 주영진/앵커: 그러면 화백님과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분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화백님께 그림을 배운 분 중에 오늘 화백님이 나오신다고 하니까 화백님에 대해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팀에서 전화통화를 해 봤습니다. 어떤 분인지 궁금하시죠? ▷ 주영진/앵커: 배우 유준상 씨도 선생님께 난을 그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찾아갔는데 오히려 인생을 배웠다. 그림을 가르치시면서 한국화, 서와 화를 가르치면서 자연스럽게 어떤 인생에 대한 아까 점점 더 나이가 들수록 글씨에 대한 애착이 가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다 이렇게 통하는 모양이죠? ▶ 박대성 /화백: 왜 그러냐 하면 이제 글씨고 그림이고 간에 우리가 첫째, 사람이 되어야 되잖아요. 그 후에 이제 그런 기구한 전례의 문화를 우리가 맞아서 해야 되는데 이제 이렇게 이야기하면 조금 철학적인 이야기 같지만 글씨라는 게 보면 붓, 붓이라는 걸 우리가 굉장히 중요시해야 됩니다. 우리가 중국, 일본, 한국이라 하는 동양 삼국이 저 붓을 가지고 계속 지금까지 우리가 경쟁 아닌 참 서로의 보이지 않는 그런 경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하고 있는데 이제 중국에서는 저게 글씨를 어떻게 한마디로 말하면 자금성이라 하는 오래된 지역에 그 속에 고궁박물관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게 아마. 제가 요새 건망증이 좀 심해서. 왕이 두 누각을 지었어요. 누각을 똑같은 누각을 크게 지어서 한쪽에는 삼희당이라고 기쁜 맛을 세 가지 기쁨을 보는 왕이 앉아서 누워서 보는 삼희당이 있고 한쪽에는 묵은당이라고 하는 먹을 중심으로 하는. 삼희당은 황제가 거기서 서와 보물을 구경하는 곳이고 그리고 묵은당은 그 큰 누각에 당나라 먹똥가리 이만 한 거를 겹겹이 비단에 싸서 이렇게 봉정을 해놨습니다. 올려놨는데 그때 그 뜻을 뭐라고 하냐 하면 동양 정신의 태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그 동양 정신의 태동이 오늘날 어떻게 그 정신이 이어져 오냐 하면 바로 이제 그게 오늘날 글씨입니다. 이제 그게 상형문자에서 시작해서 오체로 발전해서 그게 이제 역사 모든 게 기록 되면서 오늘날의 신문명을 이루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오늘날 필기구체가 굉장히 이렇게 발달했지만 그 필기구체하고 이 붓하고는 성격이나 지향하는 점이 많이 다릅니다. 많이 달라서 오늘 이런 시점에서 제 나름대로 연구를 해 보면 이 현대야말로 우리의 현대인들이 붓을 잡아야 된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이 붓이라고 하는 것은 천병만마를 일으킵니다. 서양 필기구체는 이제 말하자면 딱딱하고 우리가 호수를 정해서 굵고 가늘고를 정해서 하죠. ▷ 주영진/앵커: 그렇죠, 정해져 있죠. ▶ 박대성 /화백: 우리 필은 들면 가늘어지고 더 들면 더 가늘어지고 누르면 더 굵어지고 자유자재. 그리고 서양 필기구는 마음 놓고 이렇게 좌우 사방을 쓸 수 없습니다, 강해서. ▷ 주영진/앵커: 그렇죠. ▶ 박대성 /화백: 그러나 이거는 좌우 사방 할 것 없이. 그러나 그게 뭐냐 하면 보통 우리가 물질이 아니다. 벌써 이미 정신적 태동이다. 붓 자체도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IT 모든 전 분야가 장사를 하시는 분이라든지 모든 분야가 우리가 붓을 좀 쥐어봤으면 그런. 제가 해 보니 너무 좋아서.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 박대성 /화백: 그런 말씀을 드립니다. ▷ 주영진/앵커: 오늘 저는 가까이에서 화백님의 그 말씀을 들으면서 제가 큰 가르침을 받는 느낌이 들었는데 말이죠. ▶ 박대성 /화백: 감사합니다. ▷ 주영진/앵커: 화백님 오늘 나오시면서 저희와 함께 듣고 싶은 음악이 있다고 해서 저희가 준비를 좀 해 봤습니다. 잠깐 한번 같이 들어보시겠습니까? 우리 국악 좋아하시는 분들은 많이 들어보셨겠습니다만 '대금산조'가 나오고 있는데. ▶ 박대성 /화백: 좋아합니다. ▷ 주영진/앵커: 작품 활동하시면서 이렇게 음악도 좀 듣고 하십니까? ▶ 박대성 /화백: 좋아합니다. ▷ 주영진/앵커: 화백님 작품이 얼마 전에 또 삼성가에서 국내에 기부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던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 거기에 우리 화백님 작품도 있다는 기사를 제가 본 기억이 나는 것 같아요. ▶ 박대성 /화백: 생전에 제 작품을 좀 구입하셨습니다. 제가 거기에 전속 화가도 좀 했었고요. ▷ 주영진/앵커: 그러셨어요? 어떤 작품이 혹시 거기에 들어가 있는지 준비가 되어 있을 것도 같은데 말이죠. 어떤 작품이 혹시 이건희. ▶ 박대성 /화백: 그건 점 수가 상당할 것으로 보입니다. ▷ 주영진/앵커: 상당히 많은. 저 작품이. ▶ 박대성 /화백: 저게 이제 제주 일출봉입니다. ▷ 주영진/앵커: 성산 일출봉. ▶ 박대성 /화백: 성산 일출봉. 저게 아주 많이 걸렸습니다. ▷ 주영진/앵커: 일출봉. 우리 화백님 나오셨는데 말이죠. 아까 이제 현대인들이 붓을 많이 잡았으면 좋겠다는 이 말씀을 해 주셨고요. 우리가 흔히 교과서에서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인왕제색도 있지 않습니까? ▶ 박대성 /화백: 그렇습니다. ▷ 주영진/앵커: 그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작품도 한번 직접 보셨습니까, 혹시? ▶ 박대성 /화백: 봤습니다. 유명한 작품 아닙니까? ▷ 주영진/앵커: 그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 박대성 /화백: 그때 큰 충격이었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겸재 선생님은 최고의 화가시지만 그러나 인왕제색도하고 세한도는 굉장히 상반되는 그런 작품이니까. ▷ 주영진/앵커: 추사 김정희 선생님도. ▶ 박대성 /화백: 둘 다 충격이었습니다. ▷ 주영진/앵커: 알겠습니다. 우리 화백님도 이미 많은 작품을 남기셨겠습니다만 또 후대에, 후세에 많은 분들이 우리 화백님의 작품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훌륭한 한국화가가 계셨구나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더욱 많은 작품을 남겨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대성 /화백: 열심히 하겠습니다. ▷ 주영진/앵커: 오늘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 박대성 /화백: 고맙습니다. ▷ 주영진/앵커: 박대성 화백님의 인터뷰를 끝으로 오늘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자세한 내용은 동영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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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