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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차에 방치해 숨진 아들…실수? 살인?

[월드리포트] 차에 방치해 숨진 아들…실수? 살인?
미국 조지아 주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32살의 저스틴 로스 해리스는 평소처럼 아침 일찍 직장으로 향했습니다. 차 뒷좌석에는 두 살배기 아들이 보조좌석에 안전벨트를 맨 채 타고 있었습니다. 직장에 도착하기 전에 탁아소 (Daycare Center)에 맡기려고 함께 출발한 겁니다. 그런데 7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끔찍한 비극이 일어납니다.

직장에서 일하던 해리스는 평소처럼 오후 4시쯤 퇴근합니다. 집에 돌아오던 길에 불현듯 아들을 탁아소에 맡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뿔싸! 내 아들!” 해리스는 급히 인근 쇼핑몰 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그리고 뒷좌석을 돌아봤는데 아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 겁니다. 섭씨 30도에 가까운 찜통 더위 속에서 무려 7시간이나 차 안에 갇혀 있던 아들은 그만 숨지고 만 겁니다. 해리스는 아들을 꺼내 인공호흡을 하면서 대성통곡합니다. 여기까지가 CNN을 통해서 나온 최초 보도로 경찰의 발표와 목격자 증언을 토대로 한 스토리의 전말입니다.

당시 이 기사를 접한 직후 저는 어쩌면 미국에서 가끔씩 일어나는 사건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고 국내에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언론사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맞벌이 부부가 많은 미국에서는 드물지만 가끔씩 이와 비슷한 기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날 하루 종일 머리 속에서 계속 떠오른 의문은 “아무리 아빠가 정신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7시간이나 어떻게 아들을 차에 두고 잊을 수 있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오후에 다시 기사들을 검색해봤습니다. 지역 언론에서 나온 짧은 보도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빠의 실수를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높다는 얘기, 그리고 일단 경찰에 체포된 아빠 해리스를 풀어달라는 청원에 1만 1천명이나 서명했다는 얘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내가 너무 과민한 걸까? 하기야 어떤 일에 몰입하다 보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한 가지 또 다른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왜 아빠 해리스는 경찰에 체포된 걸까? 과실치사라도 일단 조사를 위해서 체포한 걸까?” 그날 오후 찜찜한 궁금증을 남긴 채 퇴근했습니다.

해리스와 아들_외신

바로 다음날, 저는 다시 관련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경찰의 조사 내용이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언론에서 해리스를 살인 및 2급 아동 학대 죄를 적용해 구금 중이라는 것 말고는 경찰이 어떤 증거를 토대로 그런 혐의를 적용했는지에 대한 기사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CNN에서 방송하는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리스가 직장에 출근하기 직전에 패스트푸드점에서 아침을 먹었다는 겁니다. “아침을 먹었다면 아들이 차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 탁아소에 들러야 한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해도 아침을 먹고 나오면서 차에 타는 순간 아들을 봤다면 다시 떠오르지 않았을까?” 저는 다시 기사를 검색해봤습니다.  관련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해리스가 낮에도 한 차례 차에 들러 차 문을 열어봤었다는 내용입니다. 왜 열었는지는 구체적으로 보도되지 않았지만 여기서 앞서 가진 의문 즉, ‘또 한번 아들이 차에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는 얘긴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을 더욱 강하게 갖게 했습니다.

사건 발생 이후 사나흘쯤 지난 시점에서 CNN을 비롯한 언론들이 이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가졌던 동일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후속 취재들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 금요일 CNN에 속보 자막(Breaking News)이 떴습니다. 아빠 해리스가 동물을 차 안에 뒀을 때 얼마 만에 죽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고 동영상을 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이날 저는 다른 아이템을 보도하기 위해 편집까지 마친 상황이었는데, 본사 국제부에 전화를 걸어 이 사건을 보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부장의 허가가 내려졌고 급히 기사를 만들어 송출했습니다. 다만, 경찰이 살인 혐의를 적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기사를 쓰기로 했습니다. 제가 반론을 구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기에 해리스가 재판정에서 무죄를 주장하는 내용도 그래서 넣습니다. 아직 명확히 증명된 것은 없으니까요.

기사 보기 ☞ 2살 아들 차에 방치해 사망…'실수냐 살인이냐'

이 보도가 나간 뒤 이 방송내용을 인터넷으로 클릭해서 본 국내 네티즌이 지금까지 21만명이 넘습니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일 겁니다. 하지만, 그 기사를 쓰면서, 그리고 보도를 하고 난 뒤에도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경찰은 아빠 해리스에게 살인 혐의를 두고 있고, 관련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는 있다고 해도 어쩌면 고의적인 살인이 아닌 단순 실수일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있는 LA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은 가야 할 곳에서 일어난 일이고, 제가 직접 취재한 게 아니라 외신의 취재를 종합해서 판단해야 하는 일인 만큼 더욱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일 해리스가 실수로 그랬다면, 아들을 잃은 아빠에게 더 큰 슬픔을 주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현지 언론들의 취재도 더욱 촘촘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어제 (현지시간 7월 3일) 해리스에 대한 법정 청문회(Hearing)가 열렸습니다. CNN을 비롯해 현지 언론들이 이를 생중계했습니다. 그만큼 큰 이슈가 되어 있었던 겁니다. 청문회를 보면 경찰이나 검찰이 해리스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한 구체적인 증거나 정황이 드러날 것으로 기대하고 들여다 봤습니다. 뜻밖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해리스가 아들을 차에 두고 사무실에서 여섯 명의 여성과 ‘섹스 텍스팅’ 그러니까 음란한 문자나 사진을 주고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여섯 명의 여성 가운데는 17살 미성년 소녀도 있어 혐의 하나가 더 추가됐습니다. 그리고 해리스와 부인이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는 (이는 경찰이 해리스가 아들 부양을 부담스러워했을 정황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반면에 해리스가 평소 아빠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모범적이었다는 친구들의 증언도 나왔습니다. 여전히 실수인지 살인인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가능한 상황입니다. 다만, 해리스가 쇼핑몰에 차를 세우고 난 뒤 크게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울부짖으면서도 911에 신고하지 않았던 사실도 공개됐습니다. 부인, 그러니까 숨진 아들의 엄마와 공모 가능성까지 제기됐습니다. 결국 법원은 해리스의 보석 신청을 불허했습니다. 미국에서 보석 신청이 불허되는 경우는 법원이 경찰의 수사 내용에 대해 상당히 신뢰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 해리스가 여섯 명의 여성과 음란 문자를 주고 받았다는 것은 아들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어 보입니다. 물론 그런 행위에 정신이 팔려 아들의 안위를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그것이 아들을 살해했다는 증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히려, 해리스와 그 부인이 아들이 숨지기 며칠 전, 찜통 차 안에서 동물이 몇 시간이나 버틸 수 있는가를 검색한 것은 어느 정도 정황상의 증거는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아빠의 어처구니없는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실수였는지, 아니면 고의적인 살인이었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다만 이 사건의 결론이 어떤 것이 되건 간에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 있습니다. 만일 고의적인 살인이었다면 아들을 치밀한 방법을 동원해 숨지게 하면서 태연하게 다른 여성들과 음란 문자를 주고 받았다면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파렴치한 범죄입니다. 앞으로 이와 비슷하게 완전 범죄를 꿈꾸는 음험한 생각들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혹한 법의 심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해리스의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면,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아이를 가진 부모로서 또 한번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사례가 될 겁니다.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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