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택시기사 없는 이유…'기사 규제법' 어디까지? ['절제'의 미학, '착한' 규제 리포트]
시장경제에서 규제는 참 말이 많은 화두입니다. 공정, 안전 등을 위한 장치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습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무엇을 더 우선시 해야 할지에 대한 저마다의 의견도 다양합니다. 규제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며 만들어지지만 시행한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정작 규제를 만드는 주체인 정부 내에 &'규제개혁위원회&'를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희는 규제를 통해 발생한 &'결과적인 상황&'을 거꾸로 되짚어 보며, 의도했던 목적과 &'기대했던 가치&'를 가늠해 보고자 합니다. 규제가 의도했던 결과로 이어지는 &'좋은&' 규제도 있습니다. 이 또한 어떤 것인지? 찾아 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의 시작과 접근은 이미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한 고민을 진행해 온 전문가들의 모임 &'(사)좋은규제시민포럼&'과 함께 합니다. 공동기획 : (사)좋은규제시민포럼 서울의 한낮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에도 반바지와 민소매 옷을 입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택시 기사들입니다. 하루 평균 12시간을 꼬박 앉아 운전하다보면 통풍이 잘 되는 운동복이라도 입고 싶지만 이마저도 금지돼 있습니다. &'용모를 항상 단정히 하라&'는 서울시 규정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섭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도 물게 됩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전권을 갖고 있는 택시 기사들에 대한 규제. 물론 시민들을 위한 미풍양속 차원이라는 취지는 좋지만, 과연 그 선이 적정한 가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칠부바지도 안 돼&' [여객자동차운송사업 개선명령 및 준수사항 공고. (자료=서울시청)] 서울시가 서울 택시 기사들에게 적용하고 있는 &'여객자동차운송사업 개선명령 및 준수사항&'에는 &'복장지정&' 항목이 포함돼 있습니다. 특히 &'금지복장&'을 세세하게 지정했는데 ▲쫄티나 소매 없는 셔츠, 미풍양속을 저해하는 문구 등으로 디자인된 상의 ▲반바지나 칠부바지, 운동복, 찢어진 형태로 디자인된 바지 등 하의 ▲낡은 모양 또는 혐오스럽게 디자인된 모자 ▲발등과 발뒤꿈치를 조이지 않은 슬리퍼 등의 신발 등이 명시돼 있습니다. 김종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장은 &'특정 복장 착용을 금지하는 것으로 서비스 개선 효과가 생길지는 의문&'이라며 &'택시기사 평균 나이가 67세로 고령화 돼 있고 근무 여건 자체가 열악해 서비스 질을 높이려면 복장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근본적인 문제들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인권위 철회 권고에도…용인시도 &'복장 규제&' 서울시는 위의 복장 규제를 도입하기 전에 지난 2017년 법인택시 기사에 아예 &'유니폼&' 착용 의무화를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법인택시 기사들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출했고, 그 결과 인권위는 서울시에 규정을 철회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당시 서울시는 &'택시 운수종사자들의 신뢰감 회복과 택시 업계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예산을 편성해 진행한 사업으로 과도한 규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지만, 인권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개한 익명결정문. (자료=국가인권위원회)] 2019년 인권위는 &'법인택시 기사 복장규제 과태료 부과는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택시 이미지 개선은 주로 택시 승차 거부, 난폭 운전, 요금 문제가 핵심이므로 법인택시 기사들에게 지정복장 의무화만으로 이미지 개선이라는 정책 목적의 유의미한 실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불량한 복장을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도 가능한데, 지정된 복장을 입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유니폼 착용 의무는 폐지했지만, 앞서 본 복장 규제는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특정 복장을 입지 않았을 때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 대신, 복장에 대한 규정은 유지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인권위가 언급한 &'불량한 복장을 규제하는 네거티브 방식의 규제&'를 적용했다는 의미입니다. 경기도 용인시도 1년 전부터 서울시와 동일한 기준과 처분규정을 도입했습니다. 용인시 관계자는 &'반바지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택시를 운행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는 시민들의 민원이 있었다&'며 &'정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입고 다니는 게 맞지 않냐는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사업개선명령을 시행하게 됐고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일정 제한은 공감…재량권 남용은 우려 택시 기사 복장 규제와 관련해 시민들은 &'너무 편한 복장은 좀 무섭다&', &'기본은 지켜야 한다&'는 반응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규정을 사업개선명령으로까지 적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사업개선명령은 여객운수사업법에 명시돼 있듯 &'서비스 개선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지자체장 권한으로 내리는 조치인데, 택시기사의 복장도 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경우 한양대 교통물류학과 교수는 &'이 규제에 대한 지적이 꽤 오래 이어지고 있다&'며 &'지자체 입장에선 민원을 방어하는 차원에서 사업개선명령으로 일괄적으로 조치를 내리는 것인데, 자칫 지자체장의 재량권이 남용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사업개선명령 도입 당시엔 기사들의 승차 거부나 운행 중 휴대전화 사용, 음주운전 등이 적지 않았던 시기로 이를 규제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며 &'이런 성격의 사업개선명령에 복장 규정까지 넣는 것은 의미와 수준이 다르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시대에는 지자체가 직접적으로 규제하기보다 택시운송조합 등을 통해서 간접적이고 자율적인 방법으로 복장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두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제23조. (자료=국가법령정보센터)] 복장 규정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전국 지자체장들은 운송사업자와 기사들에 대해 &'사업개선명령&'이라는 이름으로 ▲사업계획의 변경 ▲노선의 연장 및 단축 또는 변경 ▲운임 또는 요금의 조정 ▲운송약관의 변경 ▲자동차 또는 운송시설의 개선 ▲운임 또는 요금 징수 방식의 개선 ▲공동운수협정의 체결 ▲자동차 손해배상을 위한 보험 또는 공제에의 가입 ▲안전운송의 확보와 서비스 향상을 위해 필요한 조치 ▲벽지노선이나 수익성이 없는 노선의 운행 등의 조치를 적용합니다. 위반 시 과징금이나 과태료, 운행정지 처분도 내릴 수 있습니다. 여행짐 들고 낑낑?…&'잠깐 승하차도 안 돼&' [광주송정역 택시 승하차 금지구역 안내도. (자료=광주시청)] 광주광역시는 광주시 내 유일한 KTX 역인 &'광주송정역&'의 택시 승하차 전면 금지 조치로 시끄럽습니다. 광주시는 광주송정역 앞쪽 양 차로 각 150m 구간에서 택시 주정차는 물론, 승객이 잠깐 타고 내리는 것도 금지하기로 했습니다. 이를 어기면 해당 택시 기사가 과징금 최대 360만원, 사업정지 60일 처분을 받습니다. 광주시 관계자는 &'택시들의 무분별한 정차로 그 일대 교통 정체 문제가 심각했고, 시민들과 여행객 안전 문제에 대한 우려도 있어 이같은 사업개선명령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당초 지난달 시행 예정이었던 이 조치는 다음 달 29일로 연기됐습니다. 사전 의견 수렴이나 충분한 홍보도 없이 시행을 결정하면서, 기사들 뿐 아니라 이용객들의 불만 여론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전국민주택시노조 광주지역본부 관계자는 &'현장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한데 택시업계나 실제 이용하는 승객, 시민들과의 소통이 부족했던 점이 가장 아쉽다&'며 &'택시기사들 뿐만 아니라 택시를 타고 광주송정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의 불편도 커지는 조치&'라고 말했습니다. SNS를 통한 시민들의 반응 역시 &'저 멀리 유턴해서 세워주면 시간도 요금도 더 든다&'거나 &'택시 승하차보다 일반 차량 정차 문제가 더 많다&'며 &'주먹구구식 행정&' 등이라며 비판적입니다. 광주시 관계자는 &'택시업계 등과 추가로 논의한 끝에 시행일을 유예하기로 했다&'며 &'승하차 전면 금지를 위한 공사 등 작업을 마무리해 안정적으로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전에 공감대 얻어야&' 사업개선명령 제도는 운송 서비스 개선을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지자체장 권한인 만큼 즉각적인 효력을 내는 효과도 있습니다. 다만 오남용 논란을 방지하려면 사전에 공감대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상 사업개선명령을 할 수 있는 사유, 상황에 대해서만 명시돼 있고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등의 내용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며 &'지자체장이 법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나 간담회 등 사전 의견 청취나 전문기관 연구용역 없이도 일방적인 조치가 가능하다는 얘기입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비스 개선과 소비자들의 편의를 위한 제도인 만큼 사전적인 절차 의무가 없다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며 &'타당성을 조사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고, 간담회라든가 주민공청회를 열어 실제 요구에 대한 조사 의무화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관련기사 ▼ 낡은 조각상 도심 곳곳에…철거는 &'한세월&' [&'절제&'의 미학, &'착한&' 규제 리포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74/0000454812?sid=101 미국선 안경도 온라인서 파는데…렌즈도 안 된다, 왜? [&'절제&'의 미학, &'착한&' 규제 리포트]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374/0000453429?sid=101
SBS Biz
|
오정인
|
2025.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