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니모가 15년 간 쌓은 노력, BTS가 단숨에 이뤘다”
■ 전후석 (조셉 후 전) 감독 인터뷰 Q. 이번에 한국을 방문하게 된 특별한 계기는? A. 쿠바를 방문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지난해 11월 21일 한국에서 개봉해 방문했다. Q.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들 반응은? A. 개봉한 같은 날 &'겨울왕국2&'가 시작했고, 독립 다큐멘터리 성격상 극장에서 많은 분이 보지 않았다. 집계상 1만5천명이 관람한 것으로 나타났다. (1월 4일 기준) 하지만 보신 분들의 댓글 리뷰를 본 이후 생각 외로 &'디아스포라&'에 공감한 분들이 많다. 의미있는 리뷰는 디아스포라를 통해서 오히려 한국인의 정체성을 자문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뿌듯했다. * 디아스포라 (Diaspora) :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 Q. 영화를 주로 보는 분들의 연령층은? A. 경기도교육청, 서울 성북구 진로지원센터 등과 뜻이 맞아서 중고등학생들이 영화를 볼 수 있게 지원해주셨다. 이를 통해 학생들과 직접 대화도 했고, 교장 선생님들이 영화 관람을 학생들에게 권장해주셨다. 방학 이전에 관심을 가진 교장 선생님들이 대관하거나 학교 내에서 상영하게 해주셨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영화를 단체 관람한 중고등학생들 중고생이 보기에는 쉽지 않을 수 있는 주제이지만 관심이 있는 친구들은 유심히 보았다. 영화 연령대가 30대에 어울리지만, 관람하는 사람들은 많아질 것으로 보이며, 중장년층은 영화를 관람하면서 감정적으로 동요를 보이고, 한인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는 것 같다. Q. 전쟁을 겪은 세대가 공감할 것으로 보인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텐데.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다가 갑자기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A. 직접적인 계기는 2015년 12월 말 쿠바 배낭여행을 가서 택시를 탄 일이다. 운전기사가 우연히 한인 3세였고, 할아버지가 애니깽 농장에서 일했다는 사실과 우연성에 놀랐다. 전혀 몰랐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놀라서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된 것은 맞다. 내 인생을 되짚어보면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에서 초·중·고등학교 1학년까지 그리고 외국인학교를 1년 다녔다. 다시 미국에 왔던 18세에 정체성 고민에 빠졌다. 한반도 밖에서 한인 &'Korean&'으로 살아가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고 씨름했다. 같은 또래 미국에서 자라난 교포들에게서는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자신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은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사진설명 : 중국 연변에서 만난 조선족 친구들과 함께한 전후석 감독 개인적으로 알게 된 중국 연변 조선족 친구들도 이중 삼중 정체성에 씨름하고 있었다. 독일, 브라질, 남아공, 요르단을 배낭여행 하면서 한인 후손들을 만나는데 그들도 똑같았다. 그들도 2중, 3중,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고 확실한 정체성과 숙명을 찾지 못했다는 것을 봤다. 이처럼 한반도를 떠난 한인 후손들이 &'코리안 디아스포라(Korean Diaspora)&'에 항상 고민하는 것을 알게 됐다. 이런 가운데 쿠바에서 알게된 &'헤로니모 임&'을 통해서 이분이 해결책을 쥐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 사진설명 : 쿠바 혁명에 전념하던 헤로니모 임 인생 전반기와 쿠바 한인 정체성을 찾기 위해 노력한 헤로니모 임 인생 후반기 모습 ◇ &'헤로니모 임&'은 쿠바에서 발견한 &'코리안 디아스포라&' Q. 결국 쿠바에서 태어난 &'헤로니모 임&' 일대기를 다룬 것인데 한인 정체성에 대한 답을 찾았나? A. &'헤로니모 임&'은 인생 전반기 100% 쿠바인이었고, 인생 후반기 100% 한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사진설명 : 고향 &'마탄사스&'시에서 야구선수로도 활약한 헤로니모 임 한국방문이 계기는 되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아니라고 본다. 무엇보다 아버지 임천택 씨의 가르침이 컸다고 본다. 아버지는 노예 같은 삶 속에서도 품삯을 모아 독립운동에 도움을 줬고, 세계사적으로 헤로니모가 믿었던 쿠바혁명, 사회적 혁명이 80년대 이후 무너졌다. 헤로니모는 혁명을 통해 인민이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믿었던 이상주의자였다. 그러나 자신들이 싸웠던 미국뿐 아니라 남한을 보면서 현실과의 괴리감이 컸다고 본다. 그 간격을 메우려는 의미가 필요한 데 이를 정체성 복원에서 찾았다고 본다. 사진설명 :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헤로니모 임 아버지 임천택 씨와 후원 사실을 명시한 김구 선생 백범일지 Q. 이처럼 정체성에 대한 답을 본인도 찾았나? A. 그의 정체성 찾기는 결국은 &'인본주의적 세계관&'이 바탕이 된 것 같다. 헤로니모가 쿠바인이었고, 한인이었다는 것은 한인이 더 낫다는 뜻이라기 보다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한 인종, 문화, 국가를 초월하는 어떤 인본주의적 사상을 갖게 된 사람으로 거듭남을 의미한다고 본다. 모든 한인이 한반도 밖에서 정체성 여정을 하면 건강한 정체성 찾기의 이상적인 도착지점은 &'글로벌 시티즌십&'이라고 본다. 즉 인본주의다. 저도 그것을 지향하고 있다. 그래서 나아가서 &'한인 디아스포라&'가 중요하다면 전 세계에서 새로운 한국인이 되려고 찾아온 다른 나라의 디아스포라도 중요하다. 그래서 이민, 다문화가정, 난민이 중요하다고 본다. 한국에 온 이민 등을 대상으로 인본주의를 추구하면 우리도 그들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헤로니모도 그것을 추구했다고 본다. 사진설명 : 대한독립선언 18주년 기념대회(1937년)에 모인 쿠바 한인들 Q. &'헤로니모&' 영화를 통해 전달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 전하려는 메시지는? A. 영화를 만들면서 생각한 메시지는 한국 안에 사는 분들에게 그리고 한국 밖에서 사는 한인들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 2가지로 나뉜다. 크게 중점을 두고 싶고 한국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는 &'디아스포라&'라는 존재와 그들의 미래를 생각하는 계기를 던져주고 싶고, 한반도 밖에서 사는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당신은 충분히 현지인이면서 동시에 한인이 될 수 있고, 한반도의 주인의식을 가져도 된다는 거였다. 유대인은 어디서 태어나든지 &'정당성&' 있는 유대인인 것에 비해, 우리는 한반도 밖에 있으면 한인으로서 정당성이 덜하다고 생각하고, 한반도에서 심리적으로 받아주지도 않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 그 틀을 건드리고 싶었다. 용어를 정의해보면 &'한국인&'은 국적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고, &'한인&'은 민족성 측면에서 보면 공감할 수 있다. 사진설명 : 쿠바 애니깡 농장에서 일했던 한인 Q. 현재 태어난 곳이 한반도 내외와는 상관없이 &'한인&'으로 모두 공감할 수 있다는 건가? A. 하나의 예를 들면 최근 유대인의 5천년 역사를 공부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대인은 5천년간 나라가 없어도 모두 다른 지역에서 살고있다는 이야기였다. 스페인, 독일, 미국, 이디오피아 유대인으로 다양하면서도 누가 정당성 있는 유대인이라고 차별을 두지 않는 관점에 놀랐다. 우리가 8백만명이 되는 디아스포라 (재외동포)를 지리적 측면에 한정하지 않고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한인&'이라고 생각한다면, 한민족 개념이 얼마나 커질 수 있겠냐고 생각하게 됐다. 사진설명 : 쿠바 한인 후손 Q. 영화 외적인 측면을 물어본다면 영화를 제작하던 사람이 아닌데. 스태프를 모으고 펀딩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떻게 시작할 수 있었나? A. 펀드레이징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았고, 킥스타터를 통해 6만5천 달러를 모금했다. Q. 영화제작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A. 대부분 해외 한인들의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국내 지원은 적었다. 2016년 4월 펀드레이징을 시작해서 2019년 5월 편집하기까지 3년 정도 걸렸다. Q. 예산에 맞춰서 영화에서 촬영하려던 내용은 대부분 담았는가? A. 다른 독립영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는 모르지만 이 영화는 임기응변으로 진행했다. 나에게 페이는 지급하지 않았고 최대한 절약하면서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창작력과 절박함으로 작업을 했다. 내용 면에서 CG가 더 들어갔으면 했다. 애니메이터가 부족해서 지도 만드는 부분들을 칼라코렉터가 모두 해결했다. 전문적 영역에서 자금을 아끼려고 자막과 번역의 많은 부분을 직접 쓰고 지인들에게 속기 등을 부탁드렸다. 그래픽에 쓸 돈이 부족하여 최대한 자금이 들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편집도 편집자와 제가 프리미어 편집기로 영화를 마무리했다. Q. 영화 제작 과정에서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나? A. 사실 극장 넘기기 전날까지 자신이 편집해서 DCP를 넘겼다. 극장에서 방영하는데 스페셜리스트가 영화 리뷰를 수정하는 과정이 부족한 점은 아쉬웠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영화 상영관 앞에서 전후석 감독 Q. 배급사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A. 배급사는 &'커넥트픽처스&'였다. 서서평, 교회 오빠, 폴란드로 간 아이들 귀향 등 기독교 콘텐츠를 다루는 상영관인데 소니픽처스에 계셨던 이규창 씨를 통해 소개받았다. 이규창 씨가 소니픽처스 근무 인연을 통해 커넥트픽처스 남기웅 대표님을 소개해주셨다. 2019년 3월 국내 대형 배급사들에서는 상업성 측면에서 상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들었다. 이 가운데 &'뉴&' 산하 &'콘텐츠 판다&'는 결국 부가판권 배급에 도움을 줘 감사하게 생각한다. 용산 CGV에서는 재외동포재단 후원으로 VIP 시사회를 했고, 관객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영화 시사회 Q. 영화 첫 장면에서 만난 쿠바 한인 3세와 공감하기도 했지만, 비슷한 나이대 쿠바 한인 3세와는 다르게 생각했던 점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 촬영과정에서 이들과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나? A. 쿠바에서는 벌써 한인 6세까지 나왔다. 한인 1, 2세는 거의 다 돌아가셨다. 각 세대마다 갖고 있는 정체성을 관찰했는데, 한인 1, 2세대는 대한제국 시대에 넘어온 세대여서 고향에 대한 향수가 강한데, 쿠바혁명 이후 한인 3, 4세대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한 민족이나 문화가 부각되지 않고 쿠바인으로서의 정체성만 강요받았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아들 넬슨 임, 딸 파트리시아 임, 손자 넬슨 임 쥬니어 그래서 헤로니모 아들딸 3, 4세는 한국어를 못 하지만 아버지 영향으로 정은 넘친다. 헤로니모 딸의 차를 타게 된 것은 우연이었는데, 그녀는 나를 따뜻하게 배려해주었다. 다음 세대 3세대 사라졌던 한인 정체성이 BTS 등 한류 컨텐츠를 거쳐서 재발견됐다. 한글을 자발적으로 배우고, 엑소, 이민호 등 K-Culture를 즐기고, 한국 관련 상품을 구매하고, 암시장에서 비디오 USB를 구입하면서 한국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사진설명: 태극기와 이민호 포스터를 받은 쿠바 한인 쿠바 한인들이 이주일에 한 번 홀을 대관해 K-POP 경연대회를 벌이는데, 쿠바 현지인들은 반응도 뜨거웠을 뿐만 아니라 대단한 관심을 보였다. 헤로니모가 여생을 바쳐서 15년간 노력한 한인 정체성이 BTS 때문에 하루만에 저절로 됐다는 이야기를 한다. 세월이 지나서 한국의 지위와 K-콘텐츠를 통해서 후손들의 관심이 수면 위로 떴다. 자기도 모르는 쿠바인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한인 디아스포라&'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한인 4세부터는 모든 한인들이 100% 혼혈 쿠바인인데, 한인 후손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한인 6세대여서 피가 11.5%밖에 안되는데 그들은 한인이라고 여긴다. ◇ 헤로니모와 BTS Q. K-Pop 등이 쿠바에서 실제로 대단하다고 실감하게 된 사례가 있다면? A. 2015년 쿠바에 갔을 때 쿠바 국영방송에서 &'꽃보다 남자&', &'상속자&' 드라마를 방영했는데 출연 배우 이민호가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피델 카스트로 다음으로 유명한 사람이 이민호라고 할 정도였다. 그레이스 수버비(Grace Subervi)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미국인이 크루였는데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2016년 7월 K-CON에서 이민호와 인터뷰했는데 이민호와 그레이스 수버비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고 쿠바 현지인들이 많이 놀라워했고, 크게 호응해줬다. 사진설명 : 영화제작에 참여한 그레이스 수버비 Q. 최근 1~2년 BTS에 대한 쿠바인들의 관심은 어느 정도였나? A. BTS, GOT7, 엑소의 노래가 들리는 곳이 있는데, 쿠바 하바나 한인 팬클럽에서 2주일에 한 번씩 모인다. 바인이 더 많이 참여했고, 디스코텍에서는 술을 안 마시지만 3시간씩 BTS 등 K-POP을 들으며 춤을 추며 놀았다. 거기서 정말 쿠바인들이 한국문화에 &'입덕&' 한다는 것을 느꼈다. 한인 후손은 없는데 쿠바인들이 열광하니까, 한인 피가 섞인 &'한인 디아스포라&'가 스스로 &'한국인&'이라고 자긍심을 느낀다. 헤로니모 손녀가 공개한 것인데 대학교 컬리지 메이트가 자신이 한인 후손이라고 하니까, 헤로니모 손녀에게 &'언니&'라고 말하는 경우도 생겼는데 기분 나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설명 : 태극기를 들고 흔드는 쿠바 한인 후손 어린이 Q. 이를 계기로 우리는 몰랐던 쿠바 한인이나 한국 제품, 문화와의 접점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 기업들이 비즈니스 측면에서 어떤 실마리를 발견했는가? A. 한국 기업들이 한류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충분히 있다. 쿠바에서 가장 좋은 휴대전화가 삼성 갤럭시고 자동차는 현대기아차인데, 쿠바에서 어렵지만 한국 제품을 살 수 있다. 물론 대단히 비싸다. 쿠바에서는 한국 제품을 수입하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 제품 수입은 금지되고 있다. 한국과는 오히려 미수교국가여서 교역 상대는 아니지만, 한류에 대한 전반적인 이미지가 높다. 따라서 순순히 정체성을 찾아주는 것에서만 역사의식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경제적인 관념, 혹은 강대국으로부터 받을 잠재적 혜택이 정체성 회복에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 K-Culture가 한국 제품 구매로 이어진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둘째 동생 세실리오 임과 인터뷰하는 전후석 감독과 제작진 Q. &'글로벌시티즌&'으로 돌아가서 한인 3, 4세 등 후손들이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가는 좋은 종착점은 무엇일까? A. 각 나라마다 특수성에 따라 역할이 다를 것이다. 쿠바는 이례적인 상황이다. 쿠바 한인회는 100% 현지화되어 있고, 한국을 알아가려는 과정에 제한과 제약이 있다. 남한과 미수교 상태에서 쿠바인들은 이동에 제한이 있지만 교역은 상징성이 있다. 쿠바는 우리가 몰랐고, 덜 한국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 미수교 국가이지만 헤로니모 임 같은 사람이 존재하면서 한인 정체성을 유지한다고 본다. 역설적이지만 오히려 &'한국과 가장 먼 사람&'들을 통해 대한민국 본국의 사람들이 &'한인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디아스포라의 희망설&'에 개인적으로 전제조건이 있다. 디아스포라는 완전히 현지화되고, 그럼에도 한국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하고, 이념이나 정치보다는 객관적으로 한반도 이슈를 주시할 수 있어야 하고, 민족주의가 아닌 인본주의적 사상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동생 마르타 임, 프리미티보 임과 함께한 제작진 Q. 4단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A. 1단계 &'한국인 정체성&', 한국인으로 알아가는 부분이 필요하고, 2단계 &'현지인 정체성&' Korean American 등 각 국가에서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3단계 &'디아스포라 의식&', &'한인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러시아 고려인, 연변 조선족 등 다른 지역으로 대이동 한 한인 정체성을 고심해야 한다. 유대인은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해 민족주의적 배타성을 포함하는데 우리는 이를 지양해야 한다. 4단계 &'글로벌 시티즌십&' 정체성을 가져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온 &'헤로니모&'들 동남아 아프리카 노동자, 이주민, 어려운 지역에서 떠나온 난민 등 그들까지 품어주고, 새로운 한인으로 품어주고 환대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임 부인 크리스티나 장과 그녀의 동생들 아르만도, 에드와도 장 Q. 한국에서 살게 되면 그들도 &'한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인가? A. 시대적으로 남북통일을 논의하는데 남한 조선족, 이주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70년간 분리된 2천500만 명의 북한 주민을 받아들이려면 포용 정신이 필요하다. 단순히 민족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본주의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 우리 생활에서 연습이 필요하고 &'디아스포라&'가 간극을 메우는 것이라고 본다. 영화를 도와준 분 가운데 영화배우 정우성 씨가 있다. 정우성 씨에게 페이스북으로 프로젝트 동참을 요청했다. 개인적으로 난민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우리 국민이 난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각에서 이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동질감을 느낄 수 없고 연결고리가 없는데, 저는 &'디아스포라&'에서 해결책을 찾았다. 사진설명 : 헤로니모 임 ◇ 우리도 100년 전에는 모두가 난민이었다 Q. 한국인도 36년 일본강점기를 비롯해 100년 전 나라없는 난민으로서 설움을 겪었지 않나. A. 인구대비 이스라엘을 제외하고 한인이 바깥에서 가장 많이 사는 민족 중에 하나다. 한인은 전 세계에서 800만 명의 디아스포라로 존재한다. 아르메니아, 쿠바, 대한민국을 포함해 세계 5대 디아스포라 국가에 속한다. 전 세계 이주민이 가장 많은 국가 가운데 하나가 한국이다. 이제 한인이 디아스포라라는 것을 깨닫고,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한인 디아스포라를 받아들일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더불어 새로운 한인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들어온 다른 나라의 디아스포라 역시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겠다. 역사적으로 단일문화권에서는 혁신성이 야기되기 상대적으로 힘들었다. 여러 문화가 충돌하고 화합하는 과정에서 혁신적 문화와 사상, 움직임이 나타났다. 우리가 통일이라는 시대적, 세대적, 세계사적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런 혁신성이 동반되어야 하고, 그러려면 점점 다문화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 단일문화와 획일적 정체성을 고집하던 시대는 갔다. &'디아스포라&'가 그 출발점을 제시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야말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삶을 영위하며 혁신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대담 일시 및 장소 : 2020년 1월 4일 필름포럼 사진 및 자료 제공 : 영화 &'헤로니모&' 전후석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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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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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