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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꼬치엔 칭다오" 아니라고?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는 따로 있다 [스프]

[술로 만나는 중국·중국인 ⑨] 신장·카슈가르 편 (글 : 모종혁 중국문화평론가·재중 중국 전문 기고가)

모종혁 중국본색 쥐메에 참석하기 위해 이드 카흐 모스크로 모여드는 위구르족
기온이 오르면서 시원한 목넘김이 매력인 맥주 생각이 간절한 분들 많을 것 같아 오늘은 중국 맥주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중국에서 가장 서쪽 끝, 실크로드의 중요 도시인 신장(新疆) 위구르족자치구 카슈가르(喀什)에서 시작해 보자. 이 오아시스 도시 한복판에 자리 잡은 이드 카흐(艾提尕爾) 모스크는 매주 금요일마다 수많은 위구르족이 운집한다.

남자는 한결같이 전통모자인 바담 도바를 쓰고 간다. 여자는 물, 음식, 과일 등을 들고 간다. 이들이 이드 카흐를 찾는 이유는 금요일 합동예배 '쥐메'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위구르족은 독실한 수니파 무슬림이다. 이슬람 세계에서 휴일은 일요일이 아닌 금요일이다. 무슬림에게 있어 가장 신성한 날이기도 하다.

이드 카흐 모스크 입구에서 쥐메를 참석하는 위구르족
이드 카흐는 1442년에 지어진 신장위구르족자치구 최대의 모스크다. 모스크가 수용할 수 있는 인원 수는 최대 2만 명에 달한다. 이슬람교는 신도의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모두 평등하게 대한다.

따라서 쥐메에서는 모스크를 먼저 찾은 무슬림이 예배당에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뒤늦게 온 신도를 배척하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위구르족은 모스크 주변에 양탄자를 깔아놓고 쥐메에 참석한다. 오후 3시가 되면 모스크의 스피커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

쥐메가 끝나기 앞서 이드 카흐 모스크 앞에 서있는 위구르족 여성
이슬람교 성직자인 이맘이 외치는 기도 소리다. 아랍어로 진행되는 예배는 스피커를 통해 이드 카흐 광장을 넘어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간다. 이슬람 교의상 여성들은 모스크나 주변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하지만 위구르족 여성은 나름의 방식으로 쥐메에 참석한다. 그들은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남성의 입가에 물, 음식, 과일 등을 댄다.

그러면 남성은 입에서 성스러운 기운을 불어주어 간접적으로 알라의 은혜를 나눠준다. 다만 이런 풍경은 2009년 7월 우루무치(烏魯木齊) 유혈사태 이후에는 볼 수 없게 되었다.

밀가루 반죽을 화덕에 구운 낭(饢)을 사고파는 위구르족
나는 1997년 카슈가르를 여행으로 처음 찾았다. 그 뒤 네 번 더 취재가서 30일 가까이 머물렀다. 다른 이슬람 국가에서 쥐메는 낮 12시에 거행된다. 그러나 카슈가르에서는 '하나의 중국(統一中國)' 원칙 때문에 오후 3시에 열린다. 카슈가르는 파키스탄·키르키스스탄과 인접해서, 베이징(北京)과 3시간의 시차가 난다.

중국은 두만강에 있는 투먼(圖們)부터 카슈가르까지 4시간 차이가 나는 시간대를 하나의 베이징시간(北京時間)으로 묶었다. 따라서 여름철 카슈가르에서는 오전 8시가 되어서야 해가 뜬다.

카드미셰해르 앞에서 결혼 기념사진을 찍는 위구르족 신혼부부
비록 중국이 시간대를 하나로 묶어버렸지만, 위구르족은 현지 사정에 맞게 생활한다. 실제로 카슈가르의 일상 업무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된다.

카슈가르의 독자성은 먼저 바자르(Bazaar)에서 볼 수 있다. 바자르는 튀르크어로 '시장'이란 뜻이다. 헌데 위구르족에게 바자르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다. 이웃과 소통하는 교류의 장이자, 한 주의 피로를 씻는 쉼터다.

바자르가 열리면 위구르족은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간다. 카슈가르에서 바자르는 2000여 년의 역사를 지녔다.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3곳으로 나뉘어 열렸다.

우락 바자르에서 구매하기 전 양의 상태를 점검하는 위구르족 노인
첫째는 중시야(中西亞) 바자르다. 중시야는 2004년 카슈가르시정부가 1억 위안을 투자해서 설립한 현대식 상설시장이다. 면적 19.9㎥에 600여 개의 상점이 입주해 있다. 평소에는 현지 주민들과 관광객들, 중앙아시아에서 온 상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둘째는 역센베 바자르다. 역센베는 위구르어로 일요일로, 일요일마다 열리는 바자르를 일컫는다. 중시야가 개설되기 전에는 도심 바자르가 역센베였다. 하지만 상설시장이 설치되면서 노천시장으로 바뀌었다. 그마저도 지금은 과일을 제외한 물품 거래가 금지됐다.

우락 바자르 한편에서 맛있는 양고기탕을 파는 상인
셋째는 우락 바자르다. '우락'은 위구르어로 가금(家禽)을 가리킨다. 카슈가르 외곽에서 일요일마다 열리는 가축 바자르로, 위구르족의 주식인 소와 양을 위주로 거래한다. 우락은 시정부의 통제와 간섭이 적어 카슈가르 일대의 위구르족이 몰려와 다양한 물품을 사고판다. 그렇기에 가축뿐만 아니라 갓 수확한 과일과 여러 생활용품을 거래한다. 노천식당과 쉼터도 열려 옛 카슈가르 바자르의 정취를 잘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카슈가르가 '바자르의 도시'가 된 데는 열악한 자연환경 속에 갇힌 변경이었기 때문이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본 카드미셰해르. 현재 이런 장면은 못 찍는다.
카슈가르는 위로는 톈산(天山) 산맥, 아래로는 쿤룬(崑崙) 산맥, 동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서로는 파미르 고원에 둘러싸여 있다. 그로 인해 사방 각지에서 쳐들어오는 외부 세력에게 끊임없는 시달림을 당했다. 실제 카슈가르를 점령했던 민족은 유럽계, 중국계, 티베트계, 튀르크계, 키르키스계 등 아주 다양했다.

그러나 카슈가르는 이런 약점을 역이용해서 실크로드 교역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튀르크계인 위구르족이 주인이 된 것은 6세기부터다. 카슈가르는 튀르크어로 '옥(玉)이 모이는 곳', 상업 교류지라는 뜻이다.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는 카드미셰해르의 골목길
카슈가르의 또 다른 독자성은 위구르족의 전통촌락인 카드미셰해르(老城)에 있다. 카드미셰해르는 이드 카흐 모스크 주변으로 펼쳐진 주민 촌락이다. 공산주의 정권 수립 전 카드미셰해르는 크게 여섯 구역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쿠드자 비쉬(高臺民居)만 남아있다. 쿠드자 비쉬조차 중국 당국의 '전통가옥 개조·정돈 사업' 정책에 따라 철거되고 있다.

당국은 "오래되어 상하수도 건설이 어렵고 가옥은 지진에 취약하다"면서 전통가옥을 철거하고, 위구르족을 현대식 아파트로 이주시켜 주민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쿠드자 비쉬의 집 안 공방에서 전통토기를 만드는 장인
그러나 카드미셰해르 속 전통가옥은 위구르족에게 있어 단순한 주택이 아니다. 위구르족은 집에서는 전통음식과 전통공예품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해 왔다. 골목길에서 장작을 태워 음식을 만들어 바자르로 가져갔다. 그렇기에 카드미셰해르는 모스크, 바자르와 함께 위구르족의 생활상을 잘 보여주는 곳이었다.

뿐만 아니라 카드미셰해르는 위구르족의 역사와 도시 계획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전통가옥은 길게는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녔다. 보리 짚과 흙을 덧쌓아 지어졌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위구르족의 전통악기인 탄부르(彈撥爾)를 연주하는 악기 제조 장인
이슬람교와 무슬림에 대한 선입견 및 편견과 달리, 카슈가르의 위구르족은 이방인에게 관용적이다. 자신의 종교와 문화를 침범하지 않는 한 다른 나라, 다른 지방에서 온 상대방을 존중한다. 이는 수많은 민족과 나라에게 침략당했던 역사적 체험에서 터득한 나름의 생존법이다. 또한 예부터 실크로드의 핵심 교역도시로 다양한 상인들과 교류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내가 위구르족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맥주를 따로 사와 마셔도 개의치 않았다. 나를 초대한 위구르족 친구 가족은 우쑤(烏蘇) 맥주를 준비했다.

신장 맥주로 중국 내에서 유명한 우쑤맥주 ⓒ우쑤맥주 SNS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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