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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질 낮은 군주의 존재는 재앙과도 같다" [중국본색]

[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⑤] 자질 변변찮아도 왕이 왕인 이유는… (글: 양선희 소설가)

한비자
#1
제나라가 노나라를 치고 발이 셋 달린 보물솥 '참정'을 요구했다. 노에서는 위조된 솥을 가지고 갔다. 이 솥을 보고 제나라 사람이 '가짜'라고 말하자 노나라 사람은 '진짜'라고 우겼다. 제나라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노나라의 현명한 학자인 악정자춘을 오게 하여 그분의 의견을 들어보겠다."
노나라 군주가 악정자춘에게 부탁하자 그가 물었다.
"왜 진짜를 보내주지 않습니까?"
군주가 말했다.
"나는 그것을 아낀다."
그러자 자춘도 말했다.
"저 역시 저의 신용을 아낍니다."
 
#2
제나라 재상 안영이 노나라를 방문했을 때, 애공이 물었다.
"세 사람이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 저는 노나라 사람들 전체와 함께 하는데도 노나라는 어지러움을 면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에 안영이 말했다.
"이른바 세 사람이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는 말은 한 사람이 실수해도 두 사람이 맞으면 세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여럿의 몫을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사람이 가면 길을 잃지 않는다고 한 것이지요. 지금 노나라는 신하들 수천수백이지만 계손(노나라의 막강한 대부) 씨의 사적인 이익에 맞는 말 한마디로 통일돼 있으니 사람 수는 많아도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들 하는 말이 한 사람 말인데 이를 어찌 세 사람이나 된다고 하겠습니까?"

노나라는 공자(孔子)를 배출한 중국 고대의 유서 깊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춘추시대 문헌에 등장하는 바로는 정세가 혼란스럽기 그지없고, 군주들은 어리석습니다.

공자 이후 유가의 8대 문파 중 하나를 이끈 악정자춘 시대의 군주 역시 기가 막힙니다. 전쟁에 패배하고 승전국에서 요구한 대가를 가짜로 보내고, 가져간 신하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듭니다. 논란이 되자 이번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당대의 학자에게 거짓으로 눙쳐달라고 사주하는 '지질함의 끝'을 보여줍니다.

노나라 애공은 나라 안 혼란스러움의 원인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죠. 동시대에 불세출의 정치인 공자를 배출한 데다, 공자가 노나라 정치에 참여하기도 했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왕의 자질과 안목이 낮다 보니 천하의 정치천재 공자도 제 발로 떠날 수밖에 없었죠.

자질이 낮은 군주의 존재는 백성들에겐 재앙과 같습니다. 나라 안에 공자가 100명 있어도 결국 흥망성쇠의 키는 군주가 쥐고 있으니까요. 이 시대도 그럴진대, 군주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던 옛날엔 더 그랬겠죠.

한비자가 혼란의 궁극에 달했던 전국시대 말기에 '법가'를 주창하며 핏대를 세운 것도, 바로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런 변변찮은 왕의 나라를 그나마 안정되게 유지하도록 왕을 교육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쨌든 이런 변변찮은 왕들이 나라를 망칠 수 있는 중차대한 자리에 있는 근원적 이유는 세(勢)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법가'를 이해하려면 우선 세 가지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법(法), 술(術), 세입니다. 이 셋은 최고 권력자를 지탱 혹은 지지하는 삼발이 혹은 삼각편대 같은 것이죠. 여기선 '세'에 관해 얘기하죠. 한비자는 세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3
한 자밖에 안 되는 나무라도 높은 산 정상에 세우면 천 길 깊은 골짜기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는데, 그건 키가 커서가 아니라 높은 곳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4
공자는 천하의 성인이다. 행실을 닦고 도를 밝혀 온 천하의 백성들이 그가 말하는 인을 좋아하고, 의를 찬미하였다.
노나라 애공은 질적으로 매우 떨어지는 하질의 군주다. 그런데 그가 군주가 되고, 도리어 공자는 그 신하가 되었다. 공자도 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군주라는 자리의 위세에 굴복한 것이다. 의로 따진다면 공자가 애공에게 복종할 수 없으나, 세에 의존하면 애공도 공자를 신하로 삼을 수 있다.

세는 말 그대로 높은 자리입니다. 한비자는 "걸이 천자가 되어 세상에 행패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세가 중했기 때문이고, 요임금이 필부였다면 세 집안도 바로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세는 불초한 자가 가지면 세상을 크게 어지럽힐 수 있고, 현명한 사람이 가지면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지요. 또 아무리 현명한 사람이라도 세가 없으면 어지러움을 바로 잡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죠. '세'가 있어서, 즉 높아서 왕이라는 말입니다. 자리가 높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어수선하게 나라를 망쳐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수도 있지만, 성공하면 안정된 나라를 꾸릴 수도 있습니다.

한비자는 세를 얻은 군주가 성공하려면 네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천시(天時), 인심(人心), 기능(技能-능력과 재주), 세위(勢位-실질적 정치 권력)입니다. 바로 이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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