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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네 모녀 살해 후 암매장한 야구스타 이호성…꺼진 휴대폰 신호 미스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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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일 방송된 '선아의 SOS-네 모녀 실종사건'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그룹 우주소녀 설아, 배우 정은표, 천정명이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사라진 네 모녀

누구든 인생 마지막에 남기는 사진 '영정사진'. 이건 누군가의 빈소에 놓인 영정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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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 수건으로 가려놓은 영정사진. 꽃을 올려주는 이도, 향을 피워주는 이도 없어. 심지어 빈소에 망자의 이름도 공란이야. 대체 어떤 사람의 장례식이길래, 이렇게 이름도 사진도 없이 장례를 치러야 했을까? 놀랍게도 이 사람은, 한때 대중의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유명인이야. 누군지 궁금하지? 지금부터 그 충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할게.

때는 2008년 초 서울 마포. 올해 22살이 된 선아는 뮤지컬학과 학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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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자매 중 첫째인 선아는 과에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모범생이었어. 그렇게 노래하고 연기하는 언니가 멋져 보였는지, 한 살 어린 둘째 진아도 뮤지컬 배우로 진로를 정하고 언니랑 같은 과에 가려고 준비 중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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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와 진아 자매. 사이좋아 보이지? 선아는 바쁜 대학 생활 중에도 동생의 입시 준비를 물심앙면으로 도왔어. 절친 중에 그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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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연기하고 노래하는 걸 보게 됐는데 너무 멋있어서. '저 언니 되게 멋있다'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동생들 진짜 살뜰히 살피고. 저희한테도 막 자랑하듯이. 진짜 끈끈했어요. 언니가 동생들 너무 예뻐하는 게 느껴져서. 저희도 보면 되게 예쁘고 그랬었어요."
-김재은, 선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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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네 가족사진이야. 안타깝게도 작년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지금은 네 모녀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어. 엄마도 작은 식당을 운영하며 가장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세 자매도 각자의 꿈을 위해 뭐든지 열심히야. 지치고 힘들어도, 네 모녀가 모이면 항상 웃을 수가 있었어.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2월의 셋째 주 월요일. 몹시 쌀쌀한 날이었어. 방학이었지만 선아는 학교에서 뮤지컬 연습을 했어. 이번 공연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거든. 늦은 밤 막차 시간이 다 되어서야 학교를 나서는데, 같은 과에서 가장 친한 재은이가 어차피 내일도 연습이니 근처 친구 자취방에서 자고 오자고 제안했어. 하지만 선아는 집에 가야 한다며 용인에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어.

그런데 다음날, 선아가 학교에 안 와. 연락도 안되고 감감무소식이야. 다음 날도 그다음 날에도. 동기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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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픈가? 처음에는 다들 어? 이럴 사람이 아닌데. 언니 없이 그냥 연습하고. 근데 그날 지나고 그다음 날이 돼도 어떤 연락도 없이, 그다음 날도 연습을 안 나오니까. 걱정이 되다가 나중에는 좀 화가 나더라고요. 왜? 무슨 일이 있으면 있다 얘기를 해주면 되지. 아니 언니가 이럴 사람이 아닌데 왜 그러지? 무슨 일이지 도대체?"
-김재은, 선아 친구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선아의 외삼촌이야. 선아뿐만 아니라 네 모녀가 다 연락이 안 됐거든. 그것도 벌써 일주일째. 외삼촌은 답답한 마음에 선아 엄마 가게도 찾아갔어. 가게 직원들은 선아 엄마가 "어디 며칠 다녀온다"며 "좋은 일이다" 이런 말을 했대. 그리고 선아 엄마는 주방장에게 문자도 보내왔어.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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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여행 잘 다니고 있어. 주말에 잘 좀 부탁해…"

근데 여행을 갔어도, 연락은 돼야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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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부터 통화 시도했는데 딸 둘은 휴대전화가 꺼져있고, 애들 엄마는 신호음은 가는데 안 받고. 25일에는 엄마 휴대전화까지 꺼져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더 불안하잖아요."
-선아 외삼촌

외삼촌은 경찰들과 함께 선아네 집으로 찾아갔어. 현관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집 안은 아무 일 없다는 듯 말끔해. 거실도, 주방도, 깨끗하게 정리돼 있어. 방들도 별다른 흔적이 없어.

"바닥은 깨끗하니까. 설거지통 보니까 설거지도 깨끗이 돼 있고. 여행 간 것 같은 집 안 정리 분위기다..."
-선아 외삼촌

외삼촌은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해. 애들도 방학 중이라 여행 가서 좀 오래 있다 오는가 보다 했어. 근데, 더 이상 기다릴 수만은 없는 날이 왔어.

▲ 한 남자와 세 개의 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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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를 비롯해 네 모녀의 행적은 2월 18일에 멈췄어. 엄마 가게의 주방장이 문자를 받은 건 2월 20일이야. 24일부터 외삼촌은 가족 모두가 연락두절인 걸 알아차렸고, 26일 지구대 경찰들과 집을 찾아갔어.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 3월 3일이 됐어. 3월이면, 학교가 개학을 하잖아? 첫 등교를 해야 하는데, 이때까지 나타나지 않는 건 말이 안 돼.

외삼촌은 다시 경찰을 찾았어. 곧장 관할 경찰서로 달려갔어. 그리고 여동생과 조카들이 보름째 연락이 안 된다고 찾아달라고 했어. 사건은 바로 강력팀에 배당됐어. 단순 실종 이상의 강력사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본 거야.

경찰은 시곗바늘을 사건의 맨 처음으로 돌렸어. 여행을 갔다면 그 출발은 집이었을 테니, 다시 집부터 차근차근 따라가 보기로 한 거야.

전에 외삼촌이 경찰들과 집에 갔을 때, 집이 깨끗하게 정리되고 특이할 만한 점이 없었지. 이번엔 강력 사건 전담팀에 과학수사대까지 총출동했어. 거실, 주방, 욕실, 세 자매의 방까지. 아주 작고 미세한 흔적 하나하나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폈어. 마지막으로 엄마가 쓰던 안방을 유심히 살펴보는데, 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 침대에 매트리스만 덜렁 놓여있던 거야. 이불도 커버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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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매트리스에 뭔가 거뭇한 자국이 군데군데 보여. 자세히 보니까, 군청색 잉크야. 형사의 눈엔 실수가 아니라 일부러 묻힌 거 같아. 그래서 바로 잉크가 묻은 곳에 특수약품처리를 해봤어. 그러자, 혈액 반응이 검출됐어. 누군가 피를 흘렸고, 누군가는 그 피를 잉크로 감추려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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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흔은 육안으로 식별하기가 어려울 정도의 아주 소량입니다. 만약에 흉기를 사용해서 범죄를 했다고 하더라도 뒷정리를 하더라도 그 정도도 완벽히 하기 참 힘든 거라고 판단되고.. "
-이문수, 마포경찰서 형사과장

강력범죄를 단정하기엔 아직 일러. 이제 이 집에 누가 드나들었는지를 확인해야 해. 선아네 집 현관엔 CCTV가 없어. 대신 1층 공용 엘리베이터엔 CCTV가 달려있어. 그날의 CCTV엔 뭐가 담겨 있을까. 그리고 네 모녀는 언제 어디로 사라진 걸까.

실종 당일인 2월 18일, 엄마의 모습이 CCTV에서 확인 됐어. 그날 막내는 집에 내내 있던 걸로 보여. 둘째 진아도 오후에 나갔다가 학원을 마치고 귀가하는 모습이 찍혔어. 근데 첫째 선아는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 같은 과 재은이랑 헤어지고 용인에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탄 선아가 귀가하는 모습이 없어.

그리고 당연히 있어야 할 장면 또한 없었어. 선아를 제외한 세 모녀가 아파트를 나가는 모습이 없어. 엄마와 두 동생은 아파트 안에서, 선아는 집 밖에서 사라진 거야. 그때, 형사들이 의심스러운 정황을 포착해. 형사들 눈에 띈 장면은 바로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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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15분경. 모자를 푹 눌러쓴 한 남자가 대형 가방을 실은 카트를 끌고 나가. 그런데 잠시 후, 똑같은 가방 하나를 더 날라. 여기서 끝이 아니야. 연이어 한 번 더, 무려 세 번을 반복한 거야. 그다음엔 이불을 한가득 나르고, 마지막으로 핸드백으로 보이는 작은 가방 여러 개를 들고 사라져.

이 남자, 너무 의심스럽지? 저 가방엔 뭐가 있었을까? 이건 아파트 공용현관 CCTV야. 이 남자가 선아네서 나왔는지, 다른 집에서 나왔는지 확인할 순 없어. 또 마침 이 날은 분리수거하는 날이었거든. 괜한 사람을 의심할 수도 있잖아. 그럼 확인을 해봐야지. 화질이 좋지 않고 어두운 데다가 모자까지 써서 누군지 알 수가 없어. 그럼 이제 뭘 알아봐야 할까? 네 모녀의 주변 인물을 알아봐야지.

▲ 호랑이 군단 4번 타자 이호성

형사들은 먼저 엄마의 가게로 향해 직원들을 탐문했어. 엄마와 가까이 지낸 남자가 있는지 묻자, 한 남자의 이름이 나왔어. 직원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이름만 대면 아는 사람인데요. 형사님들도 아실 걸요? 이름이…"

그 남자의 이름을 들은 형사들은 다시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어. 당시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을 모를 수가 없거든. 바로, 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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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이호성. 야구 좋아하는 40대 이상은 대부분 알 거야. 현재 KIA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타이거즈 선수였어. 한국시리즈 우승을 아홉 번이나 한 어마어마한 팀이야. 그중 네 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주역, 호랑이 군단의 4번 타자 이호성이야.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 해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간판스타야. 해태타이거즈의 마지막 주장 이호성. 어려서부터 엘리트 코스만 밟았어. 야구명문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대학시절엔 국가대표로 활약했어. 프로에 입단하고는 펄펄 날아.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20-20클럽(한 시즌에 홈런 20개, 도루 20개 동시 달성)을 외야수 최초로 달성한 선수야. 그렇게 10여 년의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내고, 2001년 프로야구선수협회장 활동을 끝으로 은퇴했어.

그 후 몇 년이 지난 2007년. 서울에서 선아 엄마를 만난 거야. 네 모녀가 사라진 그즈음은 둘이 만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였어.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곧 재혼할 거라는 얘기가 나왔어. 네 모녀가 사는 집을 알아보러 다닐 때도, 둘은 함께였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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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일에 탐문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호성이란 이름을 주방장한테 처음 들은 거야.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사귀는 사이다. 친해지게 된 거는, 그냥 손님으로 알고 있다가 친해지게 된 거는 2007년 초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선아네 가족

이호성은 조사 대상 1순위야. 형사들은 CCTV 속 남자가 이호성인지부터 확인했어. 그래서 이호성 사진을 들고 네 모녀의 아파트로 가서, 혹시 있을지 모를 그날의 목격자를 찾아 나섰어. 하지만 이미 2주 넘게 흐른 상황이라, 목격자를 찾기가 쉽지 않아. 그렇게 수소문을 해나갔고, 마침내 목격자를 찾았어.

"큰 가방 나르는 사람 본 적 있는데요. 키가 크고 체구가 좀 있으셨던 거 같아요."

형사는 사진을 내밀었어. 그러자 목격자는 사진 속 남자의 얼굴이 자신이 본 사람이 맞는 거 같다고 말했어. 형사들은 또 다른 증언도 확보했어. 이호성이 선아 엄마의 승용차 옆에서 큰 가방을 들고 있는 걸 봤다는 거야.

그날 오후 7시경 아파트로 들어섰다가 약 2시간 후 큰 가방 세 개를 갖고 나온 남자. 이호성일 가능성이 아주 커. 하지만 형사들은 이호성을 용의자로 지목하지 못했어. 왜?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이라고 정확히 말할 수가 없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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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특정을 하려고 하는데, 그 죄명을 우리가 다룰 수가 없는 거예요. 이 모 씨가 이걸 죽였다 하면 살인으로다가 해외 출국금지 가능한데, 어떤 죽였다고 단정할 만한 뭐가 없단 말입니다. 그래서 그걸 갖다가 자꾸 보강수사하고 맞추고 하려고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이 사람들이 살아있을 가능성은 있다고 봐집니다. 어떻게든 살았으면 좋겠죠."
-이문수, 마포경찰서 형사과장

만에 하나, 가방 속에 세 모녀가 있었다고 해도, 기절 상태이거나 부상 상태일 수도 있다는 가정을 최우선에 두고 수사를 해야 한다는 거지. 그럼 이제 이호성을 찾아야 해. 그리고 하나 더. 집에 들어오지 않았던 한 사람 선아. 선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선아의 마지막 행적은, 친구들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 거야. 당시 선아와 함께 버스를 탔던 친한 동기가 있어. 그날 선아 옆자리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서울로 향했어. 그런데 선아 휴대폰으로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고 통화를 하더래. 선아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선아는 이렇게 대답했대.

"사실 우리 엄마가 만나는 분이 있는데, 다 같이 그분 고향에 내려가봐야 할 거 같아."

선아가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이야기를 해서, 그 기억이 선명하대. 선아의 통화 상대, 누구였을까? 통신 기록을 조회해 보니 엄마였어. 그런데 이 전화를 받은 시각이 밤 11시경이야. 이미 세 개의 가방이 CCTV에 찍힌 이후야. 그럼 이건, 뭘 말하는 걸까? 엄마가 어딘가에 살아 있었다? 아니면, 선아의 통화 상대가 엄마가 아니다? 그런데 당시 선아와 함께 있었던 동기는 결정적인 증언을 했어.

"선아가 존댓말을 쓰면서 살짝 어려워하는 느낌이었어요."

선아는 평소 엄마한테 존댓말을 쓰지 않았어. 그럼 상대방이 엄마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것도 확실하진 않아. 선아가 탄 버스는 밤 12시쯤 종로에 도착했어. 밝은 모습으로 버스에서 내린 선아는 바로 엄마 번호로 전화를 걸어. 그게 밤 12시 5분. 그 통화를 끝으로 선아의 휴대폰 전원이 꺼진 걸로 나와. 종로 어디에선가.

아파트에서 사라진 엄마와 둘째와 셋째. 그리고 종로에서 사라진 첫째 선아. 이들의 행방을 알기 위해선 이호성을 추적해야 해.

▲ 야구스타의 몰락

형사들은 이호성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자마자 바로 충격에 빠져. 이미 그는 수배 중이었어. 무려 7건의 사기 혐의로. 심지어 사기, 횡령의 전과도 있었어. 신용불량자라 자기 명의의 휴대폰, 통장이 하나도 없는 상태야. 한때 한국 야구계를 주름잡던 야구스타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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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은 서른넷의 나이에 은퇴한 후 바로 사업을 시작해. 자신의 연고지인 광주에 웨딩사업을 크게 벌였어. 사업은 대박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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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식장이 잘 됐어요. 잘 되고 있을 때 목포에다가 또 예식장을 하나… 그래서 두 개를 하니까 잘 돼서 빚은 다 갚고 이제 돈을 벌었죠. 어느 정도."
-김상식(가명), 이호성의 선배

광주에서 이호성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 '호성웨딩홀'이라고 이름을 거니, 그 자체로 최고의 홍보야. 주말도 평일도 웨딩홀 예약이 꽉 찼대. 매년 10억 원씩 벌었다는 얘기도 있어. 몇 년 사이 3호점까지 낼 정도로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했어. 그의 지인들은 말해. 거기서 만족했다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사업에 자신감이 붙었던 이호성은 더 규모 있는 사업에 뛰어들어. 전남 순천에 스크린 경마장 건립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이 돈을 거는 장외 발급소 사업권을 따낸 거야. 이호성의 추진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어. 지하 1층, 지상 6층짜리 건물을 짓기 시작해. 100억 원가량의 투자금은 대부분 은행이나 지인들에게서 끌어모았어.

그런데, 사행성 시설 건립을 우려한 시민단체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며, 시민들의 눈치를 보던 농림부는 사업을 백지화했어.

"부도 안 날 사람이 없죠. 결과적으로. 이자에 이자에 사채에 사채에 하다 보니까 그 돈이 눈덩이 같이 불어나서 270억이나 돼버렸어요."
-김상식(가명), 이호성 선배

아마도 그때였던 것 같아. 이호성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건. 이번엔 부동산 투자 유치에 발을 담그더니, 공문서를 위조해 투자자들의 돈을 횡령하다 걸렸어. 결국 2005년 2월, 37억 원 횡령, 공문서 위조로 투자금 5억 원 가로챈 혐의로 구속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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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은 사람은 사업을 해선 안 되는데. 멋모르고 남을 신뢰하면서 했던 내가 피해자죠."
-이호성, 2005년 구속 당시

이호성은 이 사건으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그 후로 아내와 이혼하고 서울에서 도피 생활을 해왔던 거야. 그때 우연히 선아 엄마를 만나게 된 거지. 경찰은 선아 엄마가 이호성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정황들을 포착했어. 이호성과 네 모녀의 흔적을 쫓던 경찰은 네 모녀가 사라진 날, 감쪽같이 사라진 게 더 있다는 걸 알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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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아 엄마는 실종되던 그날 오전, 다섯 곳의 은행을 돌며 돈을 인출했어. 총 1억 7천만 원을. 이 돈은 네 모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전세 계약 잔금이야. 그런데 잔금을 치르기로 한 날은 이틀 뒤인 2월 20일이야. 왜 돈을 미리 찾은 걸까? 그리고 은행에서 나온 선아 엄마는 누군가가 운전하는 자신의 차에 올라타. 운전석에는 누가 있었을까? 이날 찾은 돈은 네 모녀와 함께 사라졌어.

수사 4일 만에 이호성의 출국금지 조치가 떨어져. 형사들은 이 돈이 적어도 둘 중 하나의 역할을 했다고 본 거야. 사건의 '발단', 아니면 '목적'. 조금씩 네 모녀 실종에 얽힌 비밀들이 드러나고 있어.

▲ 선아의 SOS

2008년 3월 3일, 실종신고가 강력사건으로 전환된 날부터 형사들은 집안 감식, 주변 탐문, CCTV분석, 휴대폰 추적 등 백방으로 네 모녀와 이호성의 흔적을 추적했어. 하지만 어디로 숨었는지 털끝 하나 못 찾겠어. 그러다가 묘한 단서 하나가 발견돼. 종로에서 꺼졌던 선아의 휴대폰 신호가 몇 시간 후, 다른 곳에서 잠깐 잡혔다가 사라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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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은 다 꺼졌어요. 다 꺼졌는데, 한 대는 희한하게 위치를 알려주고 있단 말이에요. 그게 첫째 딸, 큰딸 거라는 거죠."
-이문수, 마포경찰서 형사과장

사라진 실종자의 휴대폰이 다시 켜지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야. 그래서 형사들도 희한하다고 할 정도였어. 어쩌면 이건, 선아의 SOS가 아니었을까.

그 선아의 휴대폰이 알려준 곳은, 전남 화순이야. 이제부터 수사의 무대는 화순으로 옮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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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서에 수사팀장 한 사람이 우리 경찰서 강력팀에 찾아와 가지고 네 모녀 실종 사건을 수사를 하고 있는데 화순 탄광 있잖아요. 그쪽에 그 기지국에서 큰딸 핸드폰이 켜졌다가 꺼졌다 그거예요. 차량 판독기 가지고 옥과 IC에서 화순 쪽으로 오는 걸 전부 다 이렇게 뒤져보니까. 그날 4시 10분인가에 이호성이 그 SM5 흰색을 몰고 화순 관내로 들어온 것이 최초로 포착이 된 거죠. 그날 12시 십몇분인가 나가는 게 찍혔어요. 그러면 4시부터 12시까지니까 8시간이 머물렀다는 것이 있잖아요."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이호성이 화순에 머문 8시간 어디를 갔는지, 최대한의 인원을 동원해 이호성의 흔적을 쫓았어. 하지만 이미 실종된 지 20일 가까이 지나 버렸잖아. 꼬리가 잘 밟히지 않아. 속절없이 시간은 가고, 형사들도 점점 초조해져. 그러다 김 형사의 귀에 이호성의 과거 행적에 대한 이상한 얘기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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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할 때 자금을 담당했던 한 사람이 조 모 조폭 행동대장인가. 그 사람도 실종 돼가지고 지금 못 찾고 있다고 그래."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3년 전에도 이호성은 누군가의 실종사건에 연루됐던 거야. 사라진 남자는 광주 무등산파 행동대장 조 씨야. 대외적으론 이호성과 동업하는 관계로 알려져 있었어. 그런 조 씨가 이호성을 만나러 간다 하고 증발한 거야.

"근데 그 가족들은 분명히 그랬다는 거예요. '이호성을 만나러 간다'고 분명히 얘기했대. 그러고는 지금까지 그 사람은 시신을 못 찾고 있잖아요."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당시 형사들은 가장 먼저 이호성부터 조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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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만나기로 했던 것까지는 이호성도 인정하죠. 통화 기록이 남아 있으니까. 특별한 뭐도 없이 이렇게 헤어졌다고 하는데. (몸싸움했다면) 실종자의 방어흔이 이호성이한테 있지 않겠냐, 팬티만 입혀서 이렇게 했는데 방어흔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실종 사건과의) 개연성은 전혀 배제는 못했지만, 그래도 사건을 종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체가 나오지 않았지."
-강칠원, 담당 형사

다른 증거가 없으니 경찰은 실종으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거야. 이번에도 실종된 네 모녀를 찾지 못하면 이호성은 빠져나갈 구멍이 생기는 거야. 아무리 의심이 가도 죄를 묻기 힘들어져. 결국 담당 형사들은 공개수사를 하기로 결단을 내렸어. 시민들의 적극적인 제보를 얻기 위해, 이호성을 네 모녀 실종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하고 전국 수배를 내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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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호성의 죽음

그런데 그때, 화순경찰서에 결정적인 정보가 입수돼.

"이게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뭐냐 하면은 '이호성이 아버지 묘가 화순 동면에 있다' 이 첩보가 가장 우리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가서 찾으니까 이호성 아버지 묘가 있는 거예요."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이전까지는 이호성과 화순의 연결고리를 못 찾았거든. 화순에 친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벌인 적도 없었어. 그런데 알고 보니 화순에 아버지의 묘가 있던 거야. 형사들은 바로 그곳으로 향했어. 수백 개의 봉분이 있는 넓디넓은 묘지야. 여기 어딘가에 이호성과 네 모녀의 흔적이 있을 수도 있어. 그럼 사건의 실마리를 찾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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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뒤지면서 좀 둘러봤어요. 쭉 둘러보는데, '저쪽 공원 묘 소각장에 괭이랑 삽이 한번 쓰다 버린 게 4개가 있습니다' 그래. 관계자한테 전화를 한 거예요. '혹시 여기 공구가 이렇게 있는데 최근에 작업한 거 있습니까?' 하니 없다는 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묘지 관리소에서 사용되지 않는 공구다.."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이 공구들, 어디에 쓰인 걸까. 김 형사는 최악의 상황을 직감하고, 곧바로 기동대 2개 중대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어. 공원묘지를 샅샅이 살펴보기로 한 거야. 그런데 슬슬 날이 어두워지고 기온도 급격히 떨어져. 더 이상의 수색엔 무리가 있어. 일행은 배도 채울 겸 근처 식당으로 향했어. 실종자들이 살아있기만을 바라는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단 생각에 목이 콱 막혀. 그래도 첫째 딸 선아는 살아있지 않을까, 애써 위로하며 한술 뜨려고 하는데, 그 때야. TV에서 나오는 뉴스 속보를 보고 깜짝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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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됐던 네 모녀의 용의자 이호성 씨는 한강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좁혀오는 수사망에 심리적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뉴스 보도 내용

네 모녀 실종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였던 이호성이 죽은 채로 발견된 거야.

"방송에 이호성이 한강에 투신했다고 뜬 거예요. 9시 뉴스 속보로. 아이고 이거 큰일 났구나. 정말 허망스러운 거죠. 그 피해자들의 억울함은 어떻게 규명을 할 거냔 말이에요."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형사들은 이 죽음이 두 가지를 나타낸다고 생각했어. 하나는 99.9% 이호성이 범인이라는 것. 또 하나는 이제 실종된 네 모녀를 찾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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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서 이호성이 발견됐을 때는 그때는 정말 다들, 언니가 정말 돌아올 수 없겠구나. 그때 처음 다들.. 선아 언니, 진아, 해아, 아줌마. 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걸까…"
-김재은, 선아 친구

▲ 우리를 찾아줘

이제 피해자들을 찾을 방법은 수색뿐이야.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짜던 그때, 누군가 경찰서로 찾아와. 화순에서 일용직으로 일한다는 유 씨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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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소장님한테 받은 메모된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니까 나무 있는데 저기서 백색 승용차에서 문이 열리면서 사람이 나오더라고요. 가서 땅을 조금 팔 건데 제가 연장을 안 가져왔습니다. 필요한 연장을 사서 출발합시다. 그러더라고요."
-제보자 유 씨

인부들은 당연히 이호성의 차로 이동할 줄 알았는데, 차에 짐이 많으니 인부들 차로 따라오라고 했다는 거야. 인부들은 땅을 팔 장비들을 구입한 후 이호성의 차를 따라갔어. 도착한 곳은, 바로 이호성 아버지의 묘가 있는 공원묘지였어. 묘지 앞쪽 길가 한 곳을 파달래. 묘지 앞에 표지석 좀 세울라고 하니 땅을 파달라는 거야.

이호성이 필요하다고 말한 구덩이의 크기는 깊이 1.5미터, 길이 2미터, 폭 1미터 정도야. 이호성은 인부들에게 표지석 세우러 금방 온다고 했으니 서둘러 작업을 마치자고 했어. 인부들이 "야구선수 이호성이 아니냐"고 묻자, "닮았다는 말 많이 듣는다"고 둘러댔어.

인부들은 2시간 만에 작업을 끝냈고, 이호성은 그 자리에서 일당 7만 원씩 줬어. 그 자리에서 헤어졌고, 그 일을 잊고 있었는데, 그러다 뉴스 속보를 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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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에 검정색 가방 끌고 가는 모습, 그리고 흰색 승용차. 그걸 본 순간 나는 이제 섬뜩했죠. 혹시라는 생각을 했어요. 갑자기 그냥 몸이 쫙 가라앉는 그런 기분 있잖아요. 나한테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니까 죽겠더라고요 진짜로."
-제보자 유 씨

용기를 내서 제보를 해준 유 씨의 이야기는 결정적이었어. 형사들은 지원인력을 총동원해서 유 씨와 함께 그 묘지로 가. 그런데 현장에 도착하자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어. 이미 작업한 지 20일이 지난 데다가 늦은 밤이라, 제보자가 정확히 어딜 팠는지 찾지 못하는 거야. 어렴풋이 가리킨 곳 인근을 경찰들이 샅샅이 수색하기 시작했어.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러다 뭔가를 발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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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랑 쪽을 쭉 수색하다 보니까, 그 장례식 끝나면 조화 같은 거 버리잖아요. 산에다가. 그 버려진 더미 속에 보니까 은박지 같은 게 하나 보이더라고요. 돗자리 돌돌 말린 것이. 그거를 이렇게 빼가지고 보니까 피가 있어. 아이고 이쪽 어디겠다, 파는데 이제 파다가 직원들이 '돌이 계속 나옵니다. 여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어본 거야 인부한테. '당신들 그 팔 때 거기에서 바위 같은 거 나왔어요?' 하니까 '큰 바위 이런 게 나오고 그다음에 호박만 한 거 그 바위 몇 개 끄집어냈습니다' 그렇게 얘기를 해. 탐침봉 가지고 오라고 해서 찔러보니까 끝에 뭔가 물컹한 것이 하나 이렇게 느낌이 있는 거야."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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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여럿이 작은 돌들을 걷어내고 그 아래를 파기 시작했어. 두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엄청난 크기의 바위가 하나 나와. 인부가 얘기했던 그 바위 같아. 두세 명이 같이 그 바윗덩어리를 들어내자, 땅속 깊숙한 곳에 커다란 검은색 가방이 보여. 언뜻 보기에도 CCTV 속 그 가방이야. 참담한 마음으로 가방을 들어 올리는데, 하나, 둘, 셋… CCTV에 보였던 세 개의 가방이 구덩이 밖에 놓였어. 그리고… 하나가 더 나와. 마지막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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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을 철석같이 믿었을 선아 엄마, 뮤지컬 배우를 꿈꿨던 스물두 살 선아, 간절히 입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스물한 살 진아,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제 고작 열 다섯 살인 해아까지. 네 사람의 마지막 모습이 비닐에 고스란히 싸여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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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도 저희가 다 같이 있었어요. 같이 그걸 보고 그냥 울었어요 다. 안 믿기는데, 선아 언니가 왜 저기에 저렇게 있지? 할 수 있는 게 목 놓아서 우는 거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희망이 아예 없어진 거니까."
-김재은, 선아 친구

당시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다는 김 형사는, 시신을 수습하며 범인의 잔혹성에 분노가 치밀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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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서 묻었으면 거기다 또 바위를 80kg짜리를 왜 그 위에다가 바위를 눌러놨냐는 말이에요. 평생 못 찾을 뻔했잖아요. 김 모 여인하고 둘째 딸하고 셋째 딸은 완벽하게 자기 집에서 죽여서 김장 비닐로 똘똘 말아서 완벽하게 했는데 큰딸은 어설프게 해서 왔더라고요. 얼마나 맞았는지 얼굴이 퉁퉁 부어있는데 머리에 구멍이 나있더라고요. 게다가 눈이 덜 감겼어요. 너무나 끔찍하고 지금도 생각해 보니까 그때 당시에는 좀 약간, 세 딸들에 대해서 가슴 아프더라고요."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2008년 2월 18일 밤, 이호성은 무방비 상태의 세 모녀를 차례대로 목 졸라 살해했어. 은퇴했지만 현역 때 '괴력의 사나이'라 불렸던 이호성이야. 여자 세 명을 제압하는 건 어렵지 않았겠지. 시신들을 가방에 넣은 뒤, 선아 엄마의 휴대폰으로 선아에게 전화를 해서 종로 어딘가로 유인했어. 그리곤 잔인한 방법으로 선아를 살해했어. 단 하루에 네 번의 살인을 연쇄적으로 저지른 거지. 누군가는 이 범행의 잔혹성을 봤을 때 우발적인 게 아니냐는 추정을 하기도 했어. 근데 정말 우발적이었을까?

먼저 범행에 쓰인 가방과 손수레. 사전에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는지 문의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것으로 밝혀졌어. 은행업무 처리, 시신 매장까지 철저하게 계획했어. 종업원에게 온 문자 메시지 기억나지? 그거 누가 보낸 거겠어. 이호성이야. 네 모녀를 매장한 다음날, 선아 엄마 휴대폰으로 보낸 거야. 이호성은 믿었던 거야. 이 네 모녀를 완벽하게 실종 상태로 만들었다고. 사실 계획대로 될 뻔했지. 만약에 선아의 휴대폰이 잠시 켜져서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리고 땅을 팠던 유 씨가 제보하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지.

▲ 살인자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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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모녀의 장례식은 조문객들로 북적였어. 특히 젊고 어린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어. 선아, 진아, 해아의 친구들이야. 어린 나이에 친구 장례식에 온 아이들은 충격과 슬픔에 소리 내어 울고 또 울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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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하러) 들어가는 모습 보면서… 언니한테 아직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언니 저렇게 가면 안 되는데. 난 어떻게 살지… 그 생각밖에… 너무 아까운 사람인데… 지금도 매년 2월 그때쯤 되면 그 생각 밖에 없어요. 그날 보내지 말걸…"
-김재은, 선아 친구

그럼 이호성은 대체 왜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걸까? 이호성은 네 모녀를 매장한 후 가장 먼저 광주에서 지인을 만났어. 그리고 현금 5천만 원을 건네. 친형한테 입금해 달라 부탁한 거야. 아마 선아 엄마가 은행에서 찾은 그 돈이겠지. 경찰은 이 사건을 이호성이 금전적인 문제 때문에 네 모녀를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어. 그런데 단순히 돈 때문이었다면, 세 딸들까지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돈도 돈이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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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돈 5천만 원 1억 가지고 그것만 가지고 살인을 했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호성이라고 하는 진짜 대스타인데, 그 대스타가 무너져버리는 거잖아요. 보통 그 정도의 이름값이 있는 사람들은 소위 명성이 있고 자기 자신의 자존감이 크잖아요. 근데 자존감이 무너진 거를 자극을 많이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럴 경우 가장 잔혹한 범죄가 나옵니다. 연인이든 가족이든 간에. 왜냐, 지금까지 참아왔던 분노라고 할까. 이게 몇 사람한테 폭발해 버리죠. 지우고 싶었을 수도 있죠. 자신의 자취를."
-배상훈, 프로파일러

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으니, 범행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게 됐어. 더 화가 나는 건, 이호성한테 직접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거야. 기가 막히는 건 이게 다 가 아니야.

"이호성 씨는 철저한 이중생활을 해왔습니다. 이 씨는 일산에 사는 차 모씨와도 내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경찰은 이 씨가 지난 12월부터 차 씨의 집에서 기거했으며, 깊은 연인 관계라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김 씨를 살해한 후, 가로챈 돈 1억 7천만 원 가운 데 4천만 원을 차 씨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차 씨는 이 씨가 자살 직전까지 함께 지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당시 뉴스 내용 中

이호성에게는 또 다른 내연녀가 있었어. 범행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호성은 내연녀 차 씨와 함께였던 거야. 경찰이 조사했지만, 내연녀에게 별다른 혐의점은 없었어. 이호성이 이렇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줄 전혀 모르고 있었대. 이호성은 한강에 투신하기 이틀 전, 친형에게도 유서를 남겼어. 하지만 유서 속에 범행에 관련한 어떤 말도 남기지 않았어. 마치, 네 모녀의 죽음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그저 자기 아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 뿐이야. 네 모녀에 대해 최소한의 미안함, 죄책감이 있었다면, 적어도 죽기 전에 피해자들의 위치라도 알려줘야지.

"사실 자기가 그렇게 했으면, '우리 아버지 묘 있는데 어디 이렇게 묻어놨으니 발굴해서 장례 치러줘라'. '내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먼저 간다', 이 정도는 언급했어야 되지 않나 이 말이야."
-김용승, 당시 수사팀장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던 프로야구 스타였지만, 마지막 이호성의 곁엔 아무도 없었어. 아까 처음에 보여준 영정사진 기억나? 이호성의 마지막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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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여 누가 알아보기라도 할까, 장례식장엔 고인의 이름도 공란이었고, 영정사진도 흰 수건으로 가려져 있었어. 이름도 사진도 없는 장례식이 된 거지. 장례식엔 국화 한 송이 보이지 않았어. 꽃처럼 예쁜 아이들을 무참히 살해한 범인에게, 누가 어떻게 꽃을 놓아줄 수 있겠어.

재은 씨를 비롯한 동기들은 선아를 보내고 약속을 했대. 우리가 사랑했던 선아의 모습을 하나씩 닮아보자고. 한 친구는 선아처럼 긍정적으로 살겠다, 다른 친구는 선아처럼 잘 웃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리고 재은 씨는 선아처럼 약속을 잘 지키며 살겠다고 다짐했어.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다짐을 새기며 살고 있대.

근데 꺼졌던 선아 휴대폰, 갑자기 신호가 잡혔잖아? 덕분에 화순이란 장소를 특정했고. 형사들도 미스터리하다고 했대. 그래서 이번에 '꼬꼬무' 제작진이 여러 통신사에 문의해 봤어. 꺼진 휴대폰에서 신호가 잡히는 게 가능한지. 그런데, 절대 그럴 수 없대.

근데 가끔 그런 일 있잖아? 논리로는 설명이 안 되는 그런 일들. 켜졌던 휴대폰은 선아의 마지막 외침이 아니었을까.

이 사건은 가해자도 피해자도 생존하지 않다 보니, 온갖 추론들이 지금까지도 난무해. "그 사람이 얼마나 호인인데, 절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드러난 정황과 단서마저 부정하는 건, 네 모녀의 유족들과 지인들에게 큰 상처가 될 수밖에 없어. 우리가 알고 있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야구선수 이호성. 그는 네 모녀를 끔찍하게 살해한 범죄자야. 아니 어쩌면, 다섯 명일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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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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