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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바이든, 왜 굳이 시진핑을 독재자라 불렀나

[월드리포트] 바이든, 왜 굳이 시진핑을 독재자라 불렀나
1년 만에 성사된 미중 정상회담으로 악화일로로 치닫던 미중 관계가 잠시 냉각기를 갖게 됐습니다. '관계 진전'이라는 표현이 다소 과하게 느끼질 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군사 소통 복원 등 일부 가시적 성과도 있었습니다. 물론 군사면 군사, 경제면 경제, 모든 면에서 마찰을 빚어온 두 대국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관계 정상화의 길에 들어섰다고 보는 건 무리입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이스라엘 사태로 전 세계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중 양국 지도자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남중국해와 타이완 문제를 놓고 양국의 군용기와 함정이 아슬아슬한 대치를 이어왔던 만큼 이번 만남이 적어도 당장의 군사적 충돌은 없을 거란 메시지를 주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워싱턴 정가의 한 전문가는 두 정상이 서로 악수한 게 바로 성과라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은 미국에게 작지 않은 선물을 안겼습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절실했던 합성 마약 펜타닐의 원료 유통 규제 합의 같은 구체적 결과물이 아니더라도 중국과의 긴장 수위를 낮춘 것 자체가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에서 사실상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해 온 미국에게 군사적, 재정적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만약 중국이 타이완 근처 남중국해에서 무력시위를 계속 강화해 나갔다면 실제 군사적 충돌 여부에 관계없이 미국이 져야 할 부담은 배가 됐을 것입니다.

바이든 "시진핑은 독재자…공산국가를 운영하는 사람"

조 바이든 (사진=AP, 연합뉴스)

이렇게 나쁘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돌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라고 언급하면서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그것도 시 주석과 웃으며 마주 앉은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터진 일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성과를 알리는 단독 기자회견 후 돌아서서 나가려다 쏟아지는 질문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그 와중에 CNN 기자가 "시 주석과 회담 이후에도 여전히 독재자로 보느냐"고 물었고 바이든 대통령은 "알다시피 그는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이어 "그는 우리와는 전적으로 다른 형태의 정부에 기초한 공산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며, 그런 측면에서 그는 독재자"라고 덧붙였습니다. 현장에서 해당 발언을 들은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순간 얼굴을 움찔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사전에 조율된 발언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물론 중국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매우 잘못되고 무책임한 정치적 농간"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은 왜, 굳이 중국이 반발할 걸 뻔히 알면서도 이런 발언을 한 걸까요? 사실 미국 대통령들이 백악관 출입기자단의 질문을 받는다 해도 매번 답을 하는 건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게 보통입니다. 그런데도 답을 한 건 의도가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엇일까요?

사실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독재자라고 언급한 건 기자의 질문에 나오듯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을 살펴보면 발언 의도도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6월 자신의 정치 자금 모금 행사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중국 정찰 풍선 사태를 설명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시진핑을 독재자로 칭했습니다. 다시 말해 바이든의 '시진핑 독재자' 발언은 지지층과의 대화에서 나온 메시지였던 겁니다.

자신의 지지자, 미국 유권자들에게 시진핑은 공산주의-전체주의 국가의 지도자이자 독재자라고 이야기한 것이, 또 중국을 향해 할 말은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걸로 보입니다. 이번에도 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를 생각해 그 질문에 답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바이든의 선택은 달랐습니다. 중국 달래기보다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유권자들에게 민주주의 진영의 강한 리더 이미지를 심어주는 쪽을 택한 걸로 보입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뒷수습은 블링컨 국무장관의 몫이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시 주석을 독재자라고 부른 건 개인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체제에 기반하고 있다는 걸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 다른 두 체제라는 것은 누구에게도 비밀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이든 대통령은 항상 솔직하게 얘기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공들여온 그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쉬쉬하는 중국…미국이 아니었다면?

바이든 미 대통령, 시진핑 중국 주석 정상회담

중국이 반발하기는 했지만 지난 6월 때처럼 공세를 높이기보다는 쉬쉬 하는 모습입니다. 침체된 중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미국의 첨단 분야 대중 금융 투자 규제와 수출 통제 같은 규제 조치 완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불쾌하지만 어떻게든 수위를 조절하려는 걸로 해석됐습니다. 아직까지 미국이 규제 조치를 풀어줄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지만 기왕 시 주석까지 나서 아쉬운 소리를 한 마당에 말 한마디로 그간 공들인 걸 깨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에서 시 주석을 '독재자'로 표현했다면 중국이 어떤 식으로 반응했을까요?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에서 지도자에 대해 비판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강대국 미국이니 그냥 넘어가 주는 걸까요? 그건 알 수 없지만 중국의 오랜 전통을 보면 쉽게 잊고 넘어가지는 않을 걸로 보입니다.

중국은 자국이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사사건건 이를 문제 삼는 걸로 유명합니다. 이를 중국 특유의 '복수 문화'에서 찾는 시각도 있습니다. 빈번한 외교적 마찰이 중국의 이미지에도 좋지 않을 텐데 굳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런 오랜 문화적 배경 때문이란 겁니다. 근거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을 죽인 초나라 평왕에게 복수하기 위해 적국인 오나라로 망명했다 나중에 초나라를 멸망시키는 일화를 들어 설명하기도 합니다. 오나라와 월나라의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도 그런 부류입니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미중 간 국력 차입니다. 아직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기에는 갈 길이 멀어 보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10년 후 50년 후 100년 후 국제 정세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는 중국의 뿌리 깊은 문화가 살아 있는 한 미국도 이번 일을 쉽게 넘겨선 곤란하지 않을까요?

(사진=AP, 연합뉴스,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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