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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욕하고 때리고 불법 감금까지…충격적인 병원 문제를 고발하자 보복당한 간호사

[복면제보] 내부 고발 후 부당 대우를 일삼던 병원을 복면 제보합니다 (글 : 배윤주 작가)

스프 복면제보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설립된 대한민국 최초의 정신병원인 청량리 정신병원, 시인 천상병과 화가 이중섭도 입원했던 병원이죠. 그런데 73년 동안 운영되던 이 병원은 경영난을 이유로 201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곳에서 간호사로 근무했던 저도 그 마지막 길에 함께 서 있었습니다. 폐업하던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절반의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 길거리로 다시 보내졌습니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였지만 정신과 병동에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있던 저에겐 아픈 손가락과도 같은 경험입니다. 청량리 정신병원은 건물은 노후했지만, 의료 질은 최고였다고 의료진과 직원들 모두 자부했었죠.

저는 15년 차 정신과 간호사입니다. 정신과는 환자들과의 대화도 힘들고 환자 통제도 힘들어 많은 의료진이 힘들어 한다고 소문이 나 있는 분야인데요. 저는 환자들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 적성에 잘 맞았습니다. 정신과 의학회도 꾸준히 참여하며 공부하고, 중독전문 간호사로서 경력을 쌓아왔습니다.

청량리 병원 폐업 이후 일자리를 찾던 중 다른 병원들보다 급여도 높고, 기숙사도 제공해주겠다는 한 정신병원의 공고를 보게 됐죠. 대우도 좋고, 정신과 분야 경력이 높은 간호사가 꼭 필요하다는 말에 출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15년 차 베테랑 간호사도 충격적이었던 그 병원

새로 들어간 병원에서 마주한 병원 직원과 의료진의 행동은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환자를 대하는 의료진의 태도가 상상을 초월했어요.

"저게 오늘 지X이 났네. 저 인간이 오늘 왜 이렇게 설치지? 죽지도 않고"

환자에게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가 하면, 보호사들이 환자를 때리는 것도 봤습니다. 그전에 일했던 어느 정신병원에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누구도 환자에게 욕설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거든요. 하도 이상해 수간호사에게 왜 이러냐고 물었더니, 모른 척하라는 대답만 돌아왔습니다.

"우리 병원은 전국에서 어중이떠중이 다 긁어모으는 곳이야. 이렇게 하지 않으면 관리가 안 돼요. 선생님이 빨리 적응하세요"

마치 이 병원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촌스럽게 구는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져 더 이상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병원마다 나름의 사정과 특성이 있는데, 제가 미처 이 병원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사흘은 의사가 없는 병원

이 병원엔 또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의사 얼굴을 보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었어요. 당시 의사가 4명이었는데 모두 일주일에 한 번씩만 요일을 나눠 회진을 하러 왔습니다. 결국, 일주일에 3일은 환자를 돌볼 의사가 부재했던 거죠. 그 병원이 돌볼 환자가 적은 병원이었냐고요? 절대 아닙니다. 병동에 입원해 있는 환자가 약 300명 정도 될 정도로 규모 있는 병원이었어요. 또 인근 지역에서 유일하게 24시간 응급입원이 가능한 병원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은 자정 넘어 응급환자가 들어왔습니다. 당시 병원장이 당직 의사였기 때문에 저는 원장 선생님을 찾았지만 선생님은 병원 어디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다른 간호사에게 '원장님이 혹시 1층에 계시냐' 물었는데 당연하다는 말투로 집에 있다고 했습니다. 응급입원을 할 때는 보통 의사가 환자를 대면하고 입원을 지시해야 하는데, 이 병원은 그동안 당직 의사 없이 환자를 받아왔다고 하더군요.

"원장(의사)님께서 오더 넣는 프로그램에 원장님 아이디로 들어간 후, 선생님(간호사)께서 오더 넣고 보호사 시켜서 안정실에 환자 들여놓고 수액 달면 됩니다"

너무 황당한 소리에 바로 원장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원장님한테 환자가 들어왔다고 보고 했더니 늘 하던 절차대로 하라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더라고요. 그 절차라는 것이 간호사의 대리 처방이었습니다.
 

직원들만 알고 있는 '비밀 안정실'

문제가 많은 병원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했습니다. 정신병원에서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는 환자를 격리하는 안정실이란 공간이 있습니다. 필요할 때는 의사 지시에 따라 환자를 강박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설치 가능 개수도 환자 수에 따라 철저히 제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안정실마다 CCTV도 반드시 설치되어 있어야 합니다. 또한 격리 및 강박까지의 과정도 굉장히 까다롭죠. 그런데 이곳에는 허가받지 않은, 직원들만 아는 비밀 안정실이 또 있었습니다.

"저 인간 오늘 꼴 보기 싫은데 안정실에 집어 X넣어. 내 눈에 안 보이게"

직원들 마음에 들지 않은 환자들은 이 '비밀 안정실'에 격리되기 일쑤였습니다. 허가받지 않은 안정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비밀 안정실뿐만 아니라 일반 안정실에서도 의사 지시 없이 환자를 격리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했죠. 심지어 보호사들이 안정실을 무기로 환자에게 경고를 주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오늘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조심해라"
 

수상한 병원의 공모자들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요? 이 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다르게 운영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행정부장인 남편과 수간호사였던 부인, 부부 중심으로 운영됐습니다. 원래라면 의사인 원장이 직원들을 고용해야 하는데 반대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환자 유치와 관리, 전반적인 병원의 모든 일이 그들 부부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간호조무사들은 간호사인 부인의 말을 잘 듣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들로 고용했고, 일반 직원들은 행정부장인 남편의 동창 부인, 조기축구회로 알게 된 사람 등 지인들로 고용했습니다. 이들의 연대는 끈끈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룰에 반기라도 들면 내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성년자 무단 격리 사건의 발생

그러던 중 제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병원에 성폭행을 당해 입원한 15살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성폭행 후유증으로 자주 복통을 호소하던 환자였는데, 그날도 배가 아프다며 간호사실을 찾아왔습니다.

그 환자가 적절한 진료를 받고 복통을 가라앉힐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을까요? 그 여자아이는 간호실에 찾아오자마자 곧바로 안정실에 격리됐습니다. 꼴 보기 싫다는 이유에서였죠.

배가 아프다고 온 어린 환자는 타인에게 해를 끼칠 만큼 폭력적이지도 않았고, 자해의 위험이 있는 환자도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안정실 격리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지시도 없었습니다.

이 모습을 목격한 그날로 저는 인권위에 진정서를 넣고, 경찰에 해당 간호사를 신고했습니다.
 

내부 고발 후 돌변한 직원들의 태도

그날 이후, 저를 향한 괴롭힘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경찰에 신고하고 이틀 뒤 저는 갑작스럽게 외래간호사로 발령 조치되었습니다. 그 병원은 개원 이후 한 번도 외래에 간호사가 있었던 적이 없었죠. 외래로 출근했더니, 빈 의자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책상도, 컴퓨터도 없이 덩그러니 놓인 빈 의자 하나. 앞으로 이 의자에 앉아서 일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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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제가 어떤 일을 했냐고요?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들의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는 일을 했습니다. 하루에 적으면 8명, 많으면 20명가량의 환자를 보는 게 전부였죠. 이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업무였습니다. 부당 전보라고 생각해 항의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루에 30분가량 단순 업무가 끝나고 나면, 나머지 시간 동안은 오롯이 저를 향한 조롱의 눈빛과 손가락질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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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제 편이 있었을까요? 행정부장의 지시로 제가 속해 있는 채팅방은 하나둘씩 없어졌습니다.

업무에서 배제된 것은 물론 아무도 저와 말을 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막상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해보니 마음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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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달아 열린 의문의 징계위원회

외래로 발령 난 지 20일도 채 안 되어 갑자기 징계위원회가 열렸고 3개월 정직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제가 텅빈 1층에 홀로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었던 게 근무 태만이라고 하더군요. 소송 끝에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 전보 인정 및 복직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복직하자마자 바로 2차 징계위원회가 열렸습니다. 이번엔 제가 원무과 여직원을 성희롱했다는 터무니없는 사유를 내세웠습니다. 이번엔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부당 정직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두 차례의 판정을 받는 사이 제 계약 종료 일자가 다가왔죠. 그렇게 저는 계약 종료를 끝으로 그 병원을 퇴사했습니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3년 지나고도 재취업 어려워

그 병원을 끝으로 저는 지금까지도 정신과에 취업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병원을 그만두기 전 행정부장으로부터 한 차례 협박도 받았었죠.

"전국 어느 병원에도 취직 못 하게 해주겠다"

이후 서울, 경기 지역의 많은 정신병원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그 어느 곳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어요. 취업길이 막히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정신의학회에 참석했다 알고 지내던 의사를 만나서부터였습니다.

"선생님 유명해졌던데요? 스페셜 리스트에 올랐던데~ 선생님 취업시켜주지 말라고 하던데"

알고 보니 병원 원무과장들 사이에 '병원을 상대로 소송한 간호사'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애써 다잡던 마음이 또 한 번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동안 정신과에서 사명감과 자부심을 갖고 기쁘게 일해왔던 저로서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 순간이었습니다.

가끔 스스로 그런 질문을 합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까 하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한 일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더라도 저는 어김없이 경찰에 신고했을 겁니다. 이 병원과 싸움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3년, 저는 아직까지 잃은 게 더 많습니다. 그래도 제가 포기하지 않고 싸우는 이유는 제가 옳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의료인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어렵고 힘든 싸움이지만, 우리가 언제 어떻게 갈지 모르는 곳이 바로 '병원'이니까요. 어떤 병원이든 안심하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을 더 안전한 공간으로 바꾸는 데 제 선택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오늘의 복면제보는 내부 고발 후 부당한 괴롭힘을 당한 정신과 간호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병원 직원들의 갑질 행태를 오지은 변호사와 함께 하나하나 짚어가며 법적인 문제가 없는지 살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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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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