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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찐리뷰] "월계수로 일장기 가린 손기정 부러웠다"…올림픽 메달에도 고개 숙인 선수들

꼬꼬무 찐리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속 '그날'의 이야기를, '장트리오' 장현성-장성규-장도연이 들려주는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본방송을 놓친 분들을 위해, 혹은 방송을 봤지만 다시 그 내용을 곱씹고 싶은 분들을 위해 SBS연예뉴스가 한 방에 정리해 드립니다.

이번에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날'의 이야기는, 지난 13일 방송된 '총성과 함성-보스턴 상륙작전' 편입니다. 이야기 친구로는 조정식 아나운서, 방송인 조나단, 배우 이미도가 출연했습니다.(리뷰는 '꼬꼬무'의 특성에 맞게, 반말 모드로 진행됩니다.)

▲ '육상천재 신입' 손기정, '후반의 사나이 남형' 남승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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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32년 4월, 일본의 도쿄. 한 여관 앞에 8명의 청년들이 서있어. 거리에는 일장기를 든 사람들로 가득한데, 이 청년들의 표정은 비장해. 청년들은 결연하게 인파 속으로 들어갔고, 각자 맡은 위치에 자리를 잡았어. 한 청년이 품에서 기다란 무언가를 꺼냈고, 곧바로 총성이 울려 퍼졌어. 이 총소리에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하고, 그 뒤를 수십 명의 일본인들이 막 쫓아가. 청년이 손에 쥐고 있던 그 기다란 물건, 바로 바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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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이어달리기 현장이야. 근데 보통 계주가 아니야.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학교 대항전. 인기가 엄청나서 이 대회가 열리는 날에는 도쿄 시내가 마비돼.

아까 그 여관 앞에 있던 8명의 청년들도, 여기에 출전한 거야. 유일하게 조선인들로 이뤄진 팀, 양정고등보통학교 육상부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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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의 에이스는 바로 이 선수야. '남형'이라고 불리는 2학년 학생이야. 실력에 노련미까지 갖춘 양정의 대표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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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는 6명의 주자가 10km씩 달리는 경기야. 초반에 선두를 잡는 게 굉장히 중요해. 남형은 첫 주자를 맡았어. 그런데 다른 선수가 막 치고 나가는데, 남형은 스피드가 안 나. 남형의 별명은 '후반의 사나이'. 힘을 아껴놨다가 막판 스퍼트를 올리는 거야. 결과는? 남형이 1등으로 들어왔어. 2등보다 200m나 앞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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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양정의 다섯 번째 주자가 나섰어. 바로 이 선수. 여유 있는 남형의 표정에 비해 약간 긴장해 보이지? 입학한 지 보름 밖에 안 된 완전 신입이야. 심지어 대회 경험은 이날이 3번째야.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 드디어 이 신입한테 바통이 넘어왔어. 그런데 그때, 갑자기 큰 화물차들이 줄지어 나타나. 일본 학교의 응원단들이 따라붙은 거야. 일본의 큰 응원 목소리에 신입은 더 긴장되는 상황이야. 그런데 일본인들 응원 사이로 화살처럼 목소리 하나가 딱 꽂혀. "힘내라! 조선인은 강하다!"라고 외치는 소리야. 일본에 사는 조선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응원하러 달려왔어. 그 소리에 신입은 죽을힘을 다해 달렸어. 그리고 1등으로 들어왔어.

사실 이 신입은, 양정의 비밀병기였어. 타고난 육상천재야. 항상 선두에서 레이스를 이끄는 스타일이었대.

응원 나왔던 조선인들은 "양정이 이겼다! 조선이 이겼다!"며 목이 쉴 정도로 외쳤어. 일제강점기에 도쿄 한복판에서, 조선이 일본을 이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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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육상천재 신입, 오른쪽이 후반의 사나이 남형이야. 한 사람은 순천의 부잣집 장남이야. 할아버지가 고을 원님이었대. 재산과 땅이 어마어마했대. 양정에도 달리기 영재로 특별 스카우트 됐어. 반대로 다른 한 사람은, 신의주의 잡화집 막내아들이야. 집이 너무 가난해서 참외장사, 각설탕장사를 하면서 학비를 벌었어. 양정에도 깡다구 하나로 겨우 들어왔어. 누가 재벌집 장남이고, 누가 잡화집 막내아들일까?

재벌집 장남이 남형, 가난한 잡화집 막내아들이 신입이야. 남형의 이름은 남승룡이야. 그리고 신입의 이름은 손기정. 그래 맞아. 일제강점기에 일본 대표로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 나가 금메달을 따고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지 못했다는 그 마라토너 손기정. 하지만 우리가 아는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해.

▲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한 두 사람

손기정과 남승룡, 두 사람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들을 소개할게.

한 번은 양정 육상부가 여자 농구 경기에 응원을 갔어. 일본 학교인 '경성'과 조선 학교 '숙명'의 대결이었어. 손기정 선수는 목청껏 조선 여학생들을 응원했어. 그때 일본인 관계자가 조선 응원이 너무 시끄럽다고 경기를 중단시켰어. 화가 난 손기정 선수는 관계자와 대판 싸우고, 일주일간 정학 조치를 받았어. 손기정 선수의 성격이 얼마나 불 같았는지 느껴지는 일화야.

남승룡 선수는 반대야. 방학이 돼서 고향 순천으로 내려간 남승룡 선수는 서울에서 순천까지 걸어갔어. 37시간 34분 걸려서, 무박 2일 동안 쉬지 않고 갔대. 그리고 그냥 훈련할 겸 걸어가 본 거라고 말했어. 얼마나 우직한 성격이었는지 느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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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반대인 두 사람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어. 바로 나이야. 학년은 다른데 동갑이야. 손기정 선수가 가정형편 때문에 학교에 늦게 들어갔거든. 둘의 사이는 좋았대. 신입 손기정 선수가 남형을 깍듯이 선배로 모셨거든. 근데, 두 사람의 관계가 살짝 미묘해져. 두 사람이 함께 출전했던 대회 기록을 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어.

1932년 전조선중등학교육상대회, 1등 남승룡, 2등 손기정
1933년 경영마라톤대회 1등 손기정, 3등 남승룡
1933년 조선신궁경기대회 1등 손기정, 2등 남승룡

신입 손기정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아. 그전까지 조선의 육상기대주는 남승룡뿐이었는데, 또 다른 태양이 떠오른 거야.

그로부터 4년 뒤, 1936년. 두 사람이 같은 기차역에 서 있어. 어딜 가는 건지, 기차표를 보면 알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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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독일 베를린.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서야. 비록 식민지 국민이지만 두 사람은 정정당당하게 올림픽 마라톤 출전권을 따냈어. 총 3명의 출전선수를 뽑는 일본 대표팀 선발전에서 남승룡이 1등, 손기정이 2등을 한 거야.

근데 선수촌에 도착하니 왠지 모를 오싹함이 느껴져. 사람은 3명인데, 유니폼도 운동화도 다 4개씩이야. 알고 보니 한 사람이 더 있었어. 선발전에서 4등을 한 일본 선수를 데려온 거야. 일본 측은 "이것은 일본의 국책이니, 조선인 두 사람 중 한 명은 빠져라"고 말했어. 1등 남승룡, 2등 손기정 중 한 명을 빼고, 선발전에서 4등을 한 일본인을 넣겠다는 거야. 일본인이 메달을 딸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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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룡, 손기정 선수는 고민에 빠져. 올림픽은 엄청난 기회잖아. 그걸 포기한다는 건 쉽지 않지.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빠지겠다고 했어. 일본 입장에서는 1, 2등을 다 빼고 올림픽을 치른다는 것도 큰 부담이지. 일본 코치는 한숨을 푹 쉬어. 그리고 최종 선발전을 갖겠다고 했어. 이때가 불과 개막식 2주 전이야. 결국 올림픽 역사상 전무후무한 마라톤 현지 선발전이 시작됐어.

조선인 2명, 일본인 2명, 총 4명 중에서 3명의 최종 출전 선수를 뽑는 거야. 코스는 무려 30km. 여독이 안 풀렸는지 선수들이 기진맥진해. 그때 한 선수가 길에 툭 쓰러져. 일본인 선수 2명 중 한 명이 기권을 한 거야. 결과는? 1등 손기정, 2등 남승룡이었어. 그런데 남승룡 선수가 결승 지점에 도착하자마자, 잔뜩 화가 난 얼굴로 3등을 한 일본인 선수에게 다가가서 따귀를 때렸어. 알고 보니 그 일본 선수가 지름길로 달리는 꼼수를 부린 거야. 그래도 결과는 꼴찌였어. 이렇게 선의의 경쟁자였던 두 사람은 올림픽 출전권을 지켜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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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림픽 금메달, 동메달리스트

1936년 8월 9일. 드디어 올림픽의 꽃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날이야. 메인 스타디움은 12만 명의 사람들로 꽉 찼어. 이 사람들이 딱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어. 지난 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인 아르헨티나의 자바라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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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자바라를 다시 이기게 하라"고 명령할 정도로, 그의 우승에 대한 관심은 대단했어. 그래서 자바라는 1년 전부터 베를린에 와서 훈련했고, 장비도 최고급, 가죽으로 된 질 좋은 운동화를 신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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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우리 선수들은 이런 천으로 만든 운동화를 신었어. 일본식 버선에 얇은 고무로 바닥을 덧댔어. 충격 흡수도, 발 보호도 안돼.

마라톤 경기 전에 가장 중요한 건 컨디션 관리야. 자바라는 현지 의사에 대통령 비서실까지 총출동해서 컨디션 관리를 도왔어. 우리 선수들은? 알아서 셀프로 컨디션 관리를 해야 해. 손기정 선수는 경기 전에 물구나무를 서서 자신의 몸상태를 직접 체크했어. 물구나무가 똑바로 잘 세워지면 컨디션이 좋은 거야. 다행히 이날 손기정 선수의 컨디션은 좋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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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남승룡 선수는 살짝 불안해. 남승룡 선수는 대회 전에 항상 고구마와 인절미로 영양보충을 해줘야 하는 징크스가 있었어. 그런데 여기는 베를린이야. 인절미를 어디서 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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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오후 3시, 선수들 모두 출발 지점에 섰어. 출발 신호가 떨어지고 56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달려 나갔어. 주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순간, 갑자기 환호성이 들려. 한 선수가 마치 단거리 선수처럼 폭풍질주를 하는 거야. 강력한 우승후보, 자바라였어. 자바라는 속전속결 작전이었어. 초반부터 다른 선수들과 거리를 벌려 끝내 버리겠다는 거야. 이 모습을 본 손기정, 남승룡 선수는 어떻게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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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의 사나이 남승룡 선수는 중하위권에서 차분히 페이스를 유지했어. 손기정 선수는 완전 당황했어. 본인이 선두그룹에서 경기를 이끄는 스타일인데, 자바라가 너무 빨라. 손기정은 이를 악 물고 속도를 높였어. 그런데 그때, 옆에서 누군가 "슬로우! 슬로우!"라고 외치며 속도를 늦추라고 말려. 영국 선수 하퍼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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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왜 손기정 선수한테 천천히 가라고 했는지, 견제였는지 걱정이었는지, 그 이유는 정확히 몰라. 하지만 손기정 선수가 무리하게 달리고 있다는 건 확실해. 얼마 후, 한 선수가 넘어졌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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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마라톤 코스로부터 1932년 마라톤 우승자인 후안 카를로스 자바라 선수가 탈진 상태로 대회에서 실격했다는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자바라는 거의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됐고, 도로에 기절해 경기를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미국 방송 中

자바라 선수가 오버페이스로 고꾸라진 순간, 한 선수가 빠르게 치고 나갔어. 손기정이야. 그리고 "슬로우!"를 외치던 하퍼도 바로 뒤까지 따라왔어. 저 멀리 주경기장이 보여. 결승선까지 1km도 안 남았어. 거리는 점점 줄고, 드디어 결승선에 도달했어. 주경기장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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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손기정 선수였어.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려와 마지막 100m를 12초에 주파한 손기정. 자기 자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땄어. 손기정의 기록은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신기록이야. 그때까지 누구도 2시간 30분의 벽을 깬 사람이 없었어. 심지어 동양인 최초 우승이야.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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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남승룡 선수는 어떻게 됐을까? 남 선수는 56명의 선수 중 49번째로 주경기장을 빠져나갔어. 근데 달리는 표정이 영 안 좋아. 고구마랑 인절미 대신, 급히 주먹밥을 먹은 게 탈이 난 거야. 무사히 완주만 해도 다행이야. 그런데, 우리 남형은 후반의 사나이야. 30km 지점에서 단 1km만에 상위권에 진입해서, 이 1km 사이에 17명을 앞질렀어. 33위에서 단번에 16위로 올라왔어. 이제 마지막 10km. 인간이 한계에 다다른다는 '마의 구간'이야. 남승룡 선수는 여기서 또 10명 넘게 제쳐. 순식간에 선두권으로 올라서.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 스퍼트를 올려. 남승룡 선수는 몇 등으로 들어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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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선수가 2등 은메달을 차지했고, 3등이 남승룡이었어. 동메달이야. 2등 하퍼 선수와 기록 차이는 단 19초. 동양인이 1등, 3등을 했다는 사실에 세상이 놀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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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한 미국 선수가 손기정 선수에게 다가와. 미국의 존 켈리 선수야. 다짜고짜 운동화를 벗어 달래. 우승 비결이 그 천으로 된 운동화라고 생각했던 거야. 손기정 선수는 '옛다 가져라'는 생각으로 흔쾌히 벗어줬어. 그땐 아무도 몰랐지. 이 운동화가 훗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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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를 들지 못한 '코리안' 선수들

경기가 끝나고 시상식. 축하받고 기뻐해야 하는 그 자리. 그런데 이 시상식은 달랐어. 일장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은 두 선수가 고개를 숙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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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선수는 1912년 일본에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 태어났어. 그래서 태극기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 애국가도 들어본 적도 없어. 국기도 애국가도 없이, 일장기가 걸린 시상대에 선 심정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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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나간 국제 대회에서 나라 없는 설움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 뛰기는 내가 뛰어서 이겼는데, 국기와 국가는 다른 게 나오니…남형하고 나하고 약속한 것도 아닌데 고개를 숙였어. 영국 선수만 고개를 들고 있었지."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생전 인터뷰 中

동메달을 딴 남승룡 선수는 이때 손기정 선수가 너무 부러웠대. 꽃으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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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다.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렸기 때문에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때 바지가 헐렁헐렁 했대요. 그래서 그 바지를 올려서 일장기를 가릴까, 막 치켜 올렸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만."
-남청웅, 남승룡 선수의 조카

여기까진 우리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지? 근데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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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베를린에서 찍은 일본 대표팀의 훈련 사진이야. 눈에 띄는 점 없어? 손기정 선수는 혼자 검은 체육복을 입고 있지. 손기정 선수는 경기 전날까지 일본 대표팀의 유니폼을 단 한 번도 입지 않았대. 외국인들이 일본인이라고 생각할까 봐. 이뿐만이 아니야.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서 했던 사인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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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이란 이름이 한글로, 또 'KOREAN'이라고 쓰여 있어. 1936년이면 일제강점기야. 한글을 못 쓰게 막았던 때야. 만약 일본 대표팀 선수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글을 쓴다? 감옥에 갈 수도 있는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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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과 남승룡은 기자들에게 자신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인임을 이해시키려 했다."
-리처드 만델, 미국 작가
"누구에게나 'Me Korean, not Japanese'라고 답했다."
-존 켈리, 미국 선수

이렇게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강조했던 두 사람. 최악의 경우, 스위스로 망명할 각오까지 했었대. 이 두 선수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의 모든 순간들이 '투쟁'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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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번 할아버지한테 여쭤봤어요. 그 행적은 일본 사람들이 불쾌하게 생각했었을 텐데 만약에 할아버지 우승 못하셨으면 어떻게 되셨을 뻔 했어요? 라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정말 그 1초의 그 시간도 없이 말씀하시는 게, '그러면 한국에 돌아가서 감옥 갔겠지'"
-이준승, 손기정 선수의 손자

1936년 10월, 손기정 선수가 귀국했어. 올림픽 영웅의 귀환이야. 지금 같으면 카퍼레이드라도 해야 하지. 그런데 귀국한 손기정 선수는 이런 모습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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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범죄자를 연행하 듯, 일본인들이 손기정 선수를 급히 데려갔어. 환영 인파도 다 막았어. 올림픽 영웅의 조촐한 귀환. 이때부터 일본 경찰은 손기정 선수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해. 누굴 만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그를 만난 사람들은 일본 경찰서에 불려 가 조사까지 받았어.

베를린 올림픽 이후, 손기정 선수는 결심했어.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겠다고. 식민지 백성인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어. 그렇게 마라토너 손기정이란 이름은, 조선에서 사라져. 마라톤 그만둔 손기정 선수는 은행에 취직했어. 평생 운동만 했는데, 특유의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고객을 끌어 모아 실적이 좋았대. 그런데 어느 날 손기정 선수가 갑자기 사표를 내. 1945년, 꿈에 그리던 해방이 된 거야. 해방되자마자 손기정 선수한테 새로운 계획이 생겼거든.

▲ 국민 영웅의 계획

손기정 선수는 조선팔도를 뒤져 누군가를 찾아.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그러던 어느 날, 손기정 선수의 눈이 똥그래졌어. 바로 이 사람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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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서윤복, 나이는 24세 대학생이야. 160cm에 55kg. 마라톤 하기에 완벽한 몸매야. 손기정 선수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 도전할 마라톤 선수를 찾으려고 사표를 낸 거야. 서윤복은 체격만 완벽한 게 아니라 굉장히 성실해. 낮에는 무역회사 심부름꾼, 밤에는 야학에 다녔어. 연습할 시간이 따로 없어서, 매일 전차를 따라 15km를 달렸대. 나중엔 전차 기사님이랑 친해져서, 가방은 전차에 실어 보냈을 정도래. 손기정 선수는 서윤복을 포함해 올림픽에 출전할 유망주를 10명이 넘게 발견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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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합숙소는 손기정 선수의 집이야. 손기정 선수가 직접 모금해서 훈련비를 마련하고, 본인 집에서 선수들을 먹이고 재웠어. 혼자서 힘들지 않았을까? 이쯤 되면 또 궁금한 사람 없어? 맞아, 남승룡 선수. 집안이 부유했던 남형. 남승룡 선수는 해방 후에 용산 철도국의 마라톤부 감독이 됐어. 후배 양성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바늘 가는데 실이 빠질 수 없지. 손기정 선수 옆에 선 이 사람, 바로 남승룡 선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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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과 남승룡이 지도하는 조선 최고의 마라톤 일타교습소. 어떤 훈련을 했을까? 일단 아침에 일어나면 산을 뛰었어. 안암동부터 혜화동, 안국동까지 산길을 달렸어. 하체근육 훈련을 위해. 아무리 힘들어도 허투루 뛸 수 없었대. 좌 손기정, 우 남승룡. 두 스승이 항상 같이 뛰었거든. 훈련만큼 식단도 신경을 많이 썼어. 특히 자주 먹었던 음식은 통닭, 그리고 새우젓이야. 단백질이랑 염분을 보충하려고. 가끔 간식이 먹고 싶을 땐, 엿을 줬대. 당분 섭취를 위해서.

그러던 어느 날, 엽서가 도착해. 베를린에서 만났던, 손기정에게 운동화를 받아간 미국의 존 켈리 선수의 엽서였어. 존 켈리가 진짜 그 운동화를 신고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 나갔는데 1등을 했다는 거야. 손기정 선수는 눈이 휘둥그레졌어. 때까지 손기정 선수는 국제 마라톤 대회가 올림픽뿐인 줄 알았거든. 근데 하나가 더 있었던 거야. 바로 보스턴 마라톤 대회. 이 소식을 들은 손기정 선수의 반응은? "당장 짐 싸. 보스턴으로 간다"

이때가 1947년이야. 해방은 됐지만 아직 정식 정부가 없어. 정부가 없는데 여권을 어떻게 받아? 손기정은 날마다 미군정청을 찾아갔어. 미군들을 붙잡고 사정사정을 한 끝에, 여권 대신 여행증명서를 발급받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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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들고 손기정 선수는 양복점으로 달려갔어. 광복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 나가는 국가대표잖아. 그냥 갈 수 없었어. 그렇게 손기정 감독, 남승룡 코치, 그리고 서윤복 선수는 양복을 쫙 차려입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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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는 하와이에서 환승해야 했어. 하와이 공항에 내렸는데 갑자기 공항 직원들이 막아. 이 사람들 뭘 잘못한 걸까? 그 이유는 알 수가 없어. 세 사람 다 영어를 전혀 모르거든. 세 명 다 짐을 끌어안고 버텼어. 절대 뺏기면 안 되는 게 들어있었거든. 바로 한국 음식 3종 세트, 쌀, 고추장, 김치였어. 이걸 두고 하와이 공항 한복판에서 보따리 쟁탈전이 벌어져. 답답했던 공항 직원들이, 혹시 한국말 할 수 있는 사람 있냐고 안내방송까지 했어. 1940년대 하와이에 한국 사람이 있었을까? 그때 기적처럼 누군가 뛰어와. 백발의 노신사로, 하와이에 사는 민 목사라는 분이 방송을 듣고 달려오신 거야. 이 세 사람이 붙잡인 이유는, 음식 보따리 때문이 아니었어. 미군정청에서 여행증명서를 받았는데, 하와이에서 증명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 거야. 그 말을 못 알아들어 실랑이가 벌어진 거지.

민 목사는 영어도 모르면서 미국에 왜 가느냐 물었어. 마라톤 국가대표라는 대답에, 민 목사는 세 사람을 빤히 쳐다봐. 이름만 국가대표지 꼴이 말이 아니었거든. 민 목사는 고맙게 자기네 집으로 가자고 제안했어. 그런데 또 사고가 벌어져. 다음날 아침, 서윤복 선수와 남승룡 코치가 훈련한다고 나갔는데, 점심까지 안 돌아오는 거야. 손기정 감독이 찾으러 나갔어. 그런데 손 감독도 감감무소식이야. 놀란 민 목사는 실종 신고를 했어. 하와이에 또 한국인 수색령이 떨어졌어. 세 사람은 밤늦게 경찰차를 타고 나타났어. 알고 보니, 길이 죄다 비슷하게 생겨서 길을 잃었대. 결국 민 목사의 도움으로, 세 사람은 무사히 하와이에서 보스턴에 도착했어.

짐을 풀자마자 이들은 대회 코스부터 확인했어. 마라톤은 페이스 조절 때문에 코스를 잘 파악하는 게 중요해. 근데 이 셋은 영어를 몰라서, 안내판이나 이정표를 읽을 수 없어. 그래서 미리 확인하러 온 거야. 손기정 감독은 보스턴 교민 대표를 찾아가 보스턴에 있는 한국인들을 모아달라고 부탁했어. 손기정 감독의 작전은, '인간 이정표'를 세우자는 거였어. 10km 지점에 박 씨, 20km 지점에 김 씨, 이런 식으로 교민들을 보면서 현재 몇 km 지점인지 가늠하는 거야. 교민들은, 조선의 일인데 당연히 돕겠다고 했어. 미국에 일자리를 찾아온 기러기 아빠부터 유학생까지, 다 한마음으로 도와주겠다고 나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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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어. 서윤복 선수만 잘 뛰어주면 돼. 그날 밤, 서윤복 선수가 남승룡 코치를 찾아왔어. 한참 머뭇거리더니 어렵게 말을 꺼냈어.

"내일 경기, 같이 뛰어 주시면 안 됩니까?"

사실 서윤복 선수는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밖에 안 됐어. 풀코스를 뛰어본 경험이 세 번뿐이야. 당시 유럽 선수들의 기록이 2시간 25분대라면, 서윤복 선수의 기록은 2시간 39분 30초. 기록이 좀 차이가 나. 그래서 남승룡 코치한테 페이스 메이커를 부탁한 거야. 그런데 남 코치의 나이는 36세야. 은퇴할 나이가 한참 지났어. 게다가 스승이 제자의 페이스메이커를 한다? 쉽지 않은 결정이지. 하지만 남 코치는 "자네가 기권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함께 뛰어주겠네"라고 약속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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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그 서윤복 선수를 위한 페이스 메이커로 뛰었지만, 한국 태극기를 한 번 붙여보고 싶어서 그래서 큰아버님이 뛰었다고 해요. 일장기만 붙이고 뛰었는데 한국 태극기를 한 번 붙여서 뛰어보고 싶은 그 심정이 오죽했겠어요. 말할 수 없지."
-남청웅, 남승룡 선수의 조카

그렇게 감독 손기정, 페이스 메이커 남승룡, 선수 서윤복까지. 전설의 엔트리가 완성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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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패천하,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대회 당일, 경기장에 선수들이 하나둘씩 모여. 유럽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 피타넨, 보스턴대회 전년도 우승자 키리아키데스 등 쟁쟁한 선수들이 참가했어. 관중도 20만 명이 넘어. 뜨거운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야. 우리 대표팀의 목표는, 10위권 내 진입이었어. 메달은 바라지도 않아. 상위권에 들어서 해방된 조국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게 목표야. 드디어 남승룡 선수와 서윤복 선수가 출발선에 섰어. 가슴에는 태극기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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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화와 같은 환호 속, 출발 신호에 156명의 선수들이 달려 나갔어. 뒤쪽에서 출발한 서윤복은 페이스 메이커인 남승룡을 따라 서서히 스피드를 올려. 어느새 20km 지점, 중위권까지 따라붙었어. 그때 남승룡 코치가 신호를 줘. "윤복아 이대로만 가면 돼. 씩씩하게 싸워다오"

서윤복 선수는 혼자서 선두그룹을 향해 달려 나가. 그런데 바로 그때, 서윤복 선수의 눈이 휘둥그레졌어. 다른 선수들이 달리다 말고 길가에 여성들과 뽀뽀를 하는 거야. 일명 '키스존' 구간이야. 보스턴 대학생들이 응원차 선수들을 뽀뽀해주는 거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문화야. 서윤복 선수는 흔들림 없이 앞만 보고 뛰었어. 조선 최고의 바른생활 사나이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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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8km 지점이야. 이제 그의 앞에는 유럽 챔피언, 피타넨 선수만 남았어. 그때, 아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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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km 지점 가니까 정말 손기정 선생이 계시거든. 손기정 선생이 나오면서 '야 좋은 위치에 섰다', '그대로만 그냥 끌고 가면 돼' '조국을 위해서 달리는 거야. 그러니까 힘껏 달려야 한다' 손기정 선생이 달릴 때는 조국이 없었구나. 나의 조국 대한민국 코리아. 질 수가 없다. 거기서부터 다른 선수들 떼어놓고서 달아나는데, 그래서 내가 거기서부터 용케 선두를 섰단 말이야."
-서윤복, 보스턴 마라톤 대회 출전 선수

서윤복 선수는 스승님의 응원에 마침내 선두에 섰어. 그런데 갑자기, 코스에 개가 뛰어들었어. 박수를 치던 관중이 개 목줄을 놓친 거야. 그 개가 서윤복 선수에게 달려온 거야. 서윤복 선수는 개를 쫓으려고 다리를 휘젓다가 그대로 넘어지고 말아. 무릎이며 팔꿈치에는 피가 흐르고, 눈앞에 피타넨 선수는 점점 멀어져. 다른 선수들도 서윤복 선수를 앞질러 나가. 서윤복 선수는 다시 안간힘을 다해 뛰었어. 그때 눈앞에 '상심의 언덕'이 나타나. 2km나 되는 긴 오르막길인데, 가장 많은 기권자가 나오는 난코스야. 서윤복 선수는 이때가 기회라 생각했어. 서윤복 선수는 상심의 언덕 위에서 빠르게 선수들을 제쳐. 그리고 앞에 피타넨 선수가 보여. 결승점도 코 앞이야. 그전에 승부를 내야 해.

"자 오늘의 우승자가 보이고 있습니다. 누구죠? 피타넨 선수인가요? 아닙니다! 한국의 서윤복 선수입니다! 대이변입니다! 서윤복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1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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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윤복 선수가 1등으로 결승점을 통과했어. 기록은 2시간 25분 39초. 본인 최고 기록을 무려 14분이나 단축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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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이 아니야. 이날 또 한 명의 동양인이 엄청난 기록을 세웠어. 페이스 메이커로 뛴 남승룡 코치야. 156명 가운데 12등을 했어. 36세 마라토너의 기염이야. 그토록 바라던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고된 훈련을 묵묵히 견뎌낸 모범생 서윤복. 제자를 위해 기꺼이 뛰어준 페이스 메이커 남승룡. 기발한 작전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감독 손기정까지. 세 사람이 함께 만든, 해방된 조국의 첫 승리야.

이들의 귀국 풍경은 어땠을까. 이번엔 카퍼레이드가 있었어. 1947년 서울에서의 자랑스러운 환영 행사. 세 사람은 기쁨을 만끽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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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보면, 나라가 진동했다고 봐야 되겠어요. 지금의 올림픽 선수단 금메달 100개하고도 비교가 안 돼요. 그 당시는. 그때가 제가 6학년 때였는데, 그때는 전교 휴교, 휴교 상태에서 학생들 다 동원했으니까."
-양재성, 서윤복 선수의 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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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은 금의환향한 서윤복 선수에게 '족패천하'라는 글을 선물했대. 발로 세계를 제패했다는 의미야.

▲ 백발의 손기정, 대한민국의 성화 봉송 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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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약 40년 뒤. 손기정 선수는 77세의 백발의 할아버지가 됐어. 그런데 손기정 선수는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매일 달리기 연습을 했어. 그날 밤 손기정 선수의 발목이 퉁퉁 부었어. 1주일 전 운동하다가 발목을 삐었는데, 기어코 또 뛰다가 다친 거야. 그가 이렇게 무리를 하며 달리기를 연습한 이유가 있어.

88년 서울올림픽. 손기정 선수가 성화 봉송 주자로 개막식에서 뛰게 됐거든. 이날을 위해 지난 1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훈련했대. 근데 개막식 직전에 발목을 다쳤어. 과연 뛸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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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손기정 선수가 등장했어. 그는 다리가 아픈 티를 전혀 내지 않고 멋지게 성화 봉송 임무를 완수했어. 가볍게 뛰는 그의 발걸음에서 신나고 기쁜 마음이 전해졌어. 1936년, 일본 대표팀으로 뛰었던 손기정이 1988년, 대한민국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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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서는 내가 살아있을 때 남의 나라 국기로 우승했던 내가 50여 년 후에 우리 서울에서 올림픽을 한다는 그것은 참, 성화 드는 그것이 베를린 올림픽의 우승 이상의 영광스러운 것이어서. 나는 너무도 기뻐서 그 기쁜 걸 표현한 거죠."
-손기정

그럼, 손기정 선수와 남승룡 선수는 보스턴 마라톤 이후 어떻게 지냈을까? 노년의 두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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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룡 선수는 이후로도 쭉, 한국 마라톤을 위해 지도자로서의 삶을 살았어. 하지만 마지막까지 그를 따라다닌 수식어는 '비운의 2인자', '대접받지 못한 3등' 같은 거였어. 베를린 올림픽 때는 금메달 손기정 선수에 가려진 동메달이었고, 보스턴 마라톤 때는 서윤복의 가장 큰 조력자였지만 스포트라이트는 서윤복 선수가 받게 됐지. 하지만 그런 수식어로 그를 평가할 수는 없어. 남승룡 선수는 절대 잊히면 안 될 존재야.

2001년 남승룡 선수가 세상을 떠났고, 그 이듬해 손기정 선수도 타계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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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 나올 때마다 자기 동생같이 생각하니까 '기정이가' 이런 식으로 얘기하죠. (아버지가) 이야기할 때 보면, 참 친동생같이 그렇게 잘하시는 것 같았어요."
-남건옥, 남승룡 선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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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승룡 할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연락하고 할아버지 집에 오시진 않았다고 그러더라고요. 편하게 잠자고 있는데도 그냥 오셔 가지고. 주무시고 있으면 아침에 확인하고 뭐 했었다고 할 정도로. 서로 격의 없었던 관계였다고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이준승, 손기정 선수의 손자

인생은 마라톤이라 하지. 마라톤도 인생도, 길고 긴 자기와의 싸움이야. 하지만 마라토너들은 혼자 달리지 않아. 작전을 상의할 감독과 코치가 있고, 한계에 부딪힐 때마다 힘을 주는 관중들이 있어. 때로는 페이스 메이커라는 동행자가 함께 뛰기도 해.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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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야기를 들은 '오늘' 당신의 생각은?

(SBS연예뉴스 강선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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