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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압수수색 사전심문, 탁상공론인가

[취재파일] 압수수색 사전심문, 탁상공론인가
일반인들의 관심은 덜 하지만 최근 몇 달 법조계를 뜨겁게 달구는 이슈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 도입에 대한 논의입니다. 압수수색 사전심문이란 구속영장 심사처럼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심사할 때도 수사기관 등 관련자들을 불러 대면 심리를 하도록 규칙을 바꾸겠다는 구상입니다. 지금은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면 판사가 수사기관에서 낸 서류만 보고 발부 여부를 결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예전에는 구속영장 심사 때도 서류만 보고 판단했습니다. 지금처럼 제도가 바뀐 건 1997년부터입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이러한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규칙 개정규칙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그러자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가 도입되면 수사 실무에 큰 변화가 초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과 공수처 모두 반대의견을 냈지만 특히 검찰의 반발이 컸습니다. 입법예고 소식이 처음 알려진 건 한 언론보도를 통해서였는데, 형사사법시스템의 큰 변화를 가져올 이런 중요한 일을 어떻게 사전 논의도 없이, 그것도 언론에 흘리듯 이슈화했냐는 겁니다. 반발이 거세지자 대법원도 의견 수렴에 나섰습니다. 지난 1일로 예정됐던 개정안 시행도 미뤘습니다. 바로 그 의견을 듣기 위한 학술대회가 그제(2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습니다.
 

4시간 난상토론…<타짜> 고니의 대사가 생각났다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 방안

취재기자의 입장에서 지켜본 학술대회는 한마디로 '냉전(冷戰)'을 방불케 했습니다. 학술대회라는 형식 탓인지 여야 국회의원들이 벌이는 거친 논쟁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끝장토론도 없었지만 시종일관 차분함을 가장한 뜨거운 토론과 날카로운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압수수색 사전심문에 반대하는 검찰 측이 주로 공격수 역할을, 찬성하는 법원과 일부 학계 인사들이 수비수 역할을 맡았는데 검찰 측 방청객이 법원 측에 질문할 때는 다소 감정이 섞인 듯한 날 선 표현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타짜>의 주인공 고니가 되뇌던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라는 대사가 생각났습니다.

찬반 양쪽의 주장을 요약하면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기본권 침해가 우려되니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반박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기사에선 학술대회 주제 가운데 압수수색 사전 심문을 둘러싼 쟁점을 몇 가지 간략히 소개하고 기자의 관전평을 담아보겠습니다.

1) "압수수색 너무 많아" vs "형식적 수치...잘못된 주장"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최근 압수수색이 너무 많아지고 있고, 이에 따른 기본권 침해 우려가 커진다는 논리를 내세웁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조기영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법원행정처 사법연감을 토대로 2011년 108,992건이던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가 2022년에는 396,671건으로 약 11년 사이 363%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영장 발부율도 크게 늘어 2011년 87.3%이던 발부율이 2022년에는 91.1%, 일부기각도 발부로 포함하는 경우에는 무려 99.1%에 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이 지나치게 쉽게 발부되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조 교수는 이러다 보니 "법원이 '영장 자판기'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검찰 측 토론자로 나선 한문혁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 부장검사는 '통계의 허점'을 지적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 건수가 증가하고 발부율이 높아진 건 중고거래 사기, 보이스피싱 같은 '온라인 범죄'가 많아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이런 범죄는 현실상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달리 가해자의 인적사항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계좌나 통신자료 압수수색을 통해 가입자정보 등 신원을 특정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영장 청구 건수도 자연스레 늘었다는 겁니다. 실제 한 부장검사는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에서 2023년 4월 한 달 동안 청구한 압수수색영장 573건 가운데 피의자 특정을 위한 가입자 정보 확인용 압수수색 영장이 80.1%인 459건에 달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예전만큼 다른 기관에서 쉽게 개인정보를 확인해주지 않고 영장을 요구하다 보니 영장청구도 많아졌다고 덧붙였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라는 주장입니다. 한 부장검사는 영장이 지나치게 쉽게 발부된다는 주장은 "실질을 보지 않고 형식적인 수치만을 기초로 한 잘못된 주장"이라고 반박했습니다.

2) "검색어 특정? 사실상 불가능" vs "무분별한 압수수색 막자는 것"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를 압수수색할 때 '검색어'나 '검색대상기간'을 영장집행계획서에 기재하도록 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 대해서도 공방이 오갔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수사기관에서 가장 난색을 표해왔고 언론도 문제를 제기했던 쟁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성범죄 사건의 경우 범죄자들이 동영상이나 사진 파일명을 '야동', '성관계 영상', 이런 식으로 저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마약 사건의 경우 SNS에서 '대마', '필로폰' 같은 단어 대신 '떨', '얼음' 같은 은어로 쓰는 데 어떻게 일일이 검색어를 특정할 수 있냐는 주장입니다.

검찰 측 토론자로 나선 한문혁 부장검사도 비슷한 예를 제시했습니다. 실제 성범죄 사건에서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파일명을 PPT로 띄웠는데 파일명 대부분이 전송에 쓰인 메신저 어플명이 포함된 LINE_MOVIE_123456.mp4, kakaotalk_1644533454.mp4와 같은 식으로 돼있었다는 겁니다. 한 부장검사는 이런 현실에서 사전심문을 한다고 해도 검색어 특정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실효성이 없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법원 측은 "과도한 우려"라고 일축했습니다. 법원 측 토론자로 나선 장재원 대구지법 김천지원 부장판사는 실무 과정에선 성범죄 사건이나 마약 사건 같은 범죄에선 범죄 특성을 고려해 검색어를 일일이 제한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다만 범죄관련성이 없는 무분별한 압수수색을 막겠다는 취지라는 겁니다. 장 부장판사는 "예를 들어 친구와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애인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의 경우 범죄관련성이 있는지 수사기관 담당자에 물어보고 없으면 뺄 수 있는 것이고, 기업 사건의 경우 범죄 발생시점이 5년 전이라고 하면 그 이후 입사한 법무 담당자의 대화내역은 따져보고 제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3) "수사 지연, 밀행성 침해" vs "가능성 낮아…기본권 보호 중요"

수사기관 측에서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으로 수사가 지연되고 수사 밀행성이 침해된다는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압수수색의 경우 피의자가 증거인멸을 하기 전에 기습적으로 집행하는 게 중요한데, 사전심문을 하게 되면 그만큼 절차가 지연되고 또 그 과정에서 수사 보안이 새어나갈 우려도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지적을 우려해 법원이 사전심문 대상을 수사기관 관계자와 수사기관이 대동하는 자로 좁힌 데 대해서도 비판이 나왔습니다. 수사기관이 대동하는 자는 '제보자'가 될 가능성이 큰데, 제보자는 통상 피의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수사 과정에서 획득한 기밀을 이용해 피의자와 '거래'를 시도하는 사례도 실제 종종 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법원 측은 실제 운영 과정에서 위와 같은 우려를 대부분 잠재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수사 지연 문제는 현재 구속영장 심사처럼 압수수색 영장이 청구되는 대로 가까운 시일에 기일을 잡고 심문 당일 영장 발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면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거라는 겁니다. 장재원 부장판사는 "이러한 정도의 지연이라면 피의자의 기본권이 과도하게 침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충분히 통제되고 있어" vs "통제 부족하다는 데 공감대"

검찰 (사진=연합뉴스)

학술대회에서는 다른 논의도 많이 오갔습니다만 대체로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학술대회에서도 일부 다뤄졌지만 장외에서 특히 불붙은 건 실효성 논란입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지금도 영장전담판사가 압수수색영장을 심사할 때 의문이 있으면 검사나 사법경찰관에게 전화를 걸거나 필요하면 판사실로 부르기도 하고, 성실히 답변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심문하는 것이라면 지금도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는데 굳이 왜 새로운 절차를 만들겠다고 하느냐는 겁니다.

이에 대해 한 판사는 "지금도 물어볼 순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증거관계에 따라 영장 발부 필요성을 설명하는 경우보다는 수사 필요성만을 강조하며 "일단 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겁니다. 다른 판사 출신 변호사는 따로 검사나 경찰에게 물어보는 건 비공식적 절차이다 보니 상식적이지 않은 답변이 올 때도 종종 있다고 말했습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겠지만, 영장 청구서에 부족함이 있는데도 "검사장님이 관심 갖는 사건이니 영장을 내달라"는 경우도 있었다는 겁니다.

판사들이라고 모두 압수수색 사전심문 도입에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자가 취재한 일부 판사나 판사 출신 변호사들은 사전심문제도 도입의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면서도 압수수색 영장 발부에 "통제가 필요하다"는 데는 법원 내부에 대체로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습니다. 휴대전화 등 전자기기 압수수색으로 획득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너무 넓어지고 통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고, 수사기관이 너무 쉽게 영장을 청구하는 경향도 분명히 있다는 겁니다. 법원에서 영장전담판사를 맡았던 판사 출신 변호사는 "사전심문제도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압수수색을 당하는 입장에선 엄청난 큰일인데 수사기관에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압수수색을 청구하는 경우도 있다. 범죄 혐의가 7~80% 있는 사람들에게 나머지 2~30% 확신을 갖기 위해 영장을 청구하고 또 발부해야 하는데 너무 쉽게 청구하고 법원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론 대 실무' 대결 보는 듯…간극 좁혀야

'압수·수색영장 실무의 현황과 개선방안' 학술대회 (사진=연합뉴스)

양쪽의 주장을 병렬식으로 소개했습니다만 실제 학술대회를 보며 든 느낌은 '이론'과 '실무'의 대결을 보는 것 같았다는 겁니다.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 도입에 찬성하는 법원 측과 학계 인사들이 이론을 중심으로 찬성 논리를 전개했다면 반대편 입장에 선 검찰과 변협 측은 실제 현장에서 겪었던 실무를 위주로 반대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청구와 발부가 급증했다는 통계의 허점과 제보자가 사전 심문에 참여했을 경우의 위험성 등을 지적한 검찰 측 논리에는 반대쪽 패널들이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본권 보호라는 가치에 반대할 사람은 아마 없겠습니다만, 현장의 고충과 실무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쪽이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소구력이 더 높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에서는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가 결국 도입될 거라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대법원에서 형사소송규칙을 바꾸겠다고 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수사기관으로선 마땅치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정치적 성격을 띈 사건에 대한 수사 여파로 압수수색에 대한 일반 시민의 의식이 커졌고, 특히 휴대전화, PC 등 전자기기에 대한 의존성이 커지면서 전자기기 압수수색에 대한 두려움과 우려가 사회적으로 커진 것도 사실입니다. 정식 여론조사는 아니지만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 도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반응이 대체로 긍정적인 것도 검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에는 뼈아픈 대목입니다. 한 법조인은 "과거 구속영장 심사제도 도입 때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국 잘 정착되지 않았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이뤄진 논의에서 보듯 현행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에 대한 구상은 실효성과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 압수수색은 수사의 가장 중요한 수사의 출발점입니다. 압수수색으로 얼마나 증거를 확보하느냐에 따라 수사의 성패가 갈리기도 합니다. 기본권 보호와 적법절차의 준수로 인한 법익도 중요하지만 압수수색 사전심문제도 도입이 수사기관의 실체적 진실 발견과 범죄 대응 역량을 떨어뜨릴 거라는 우려도 분명 존재합니다. 학술대회에 참석한 박경호 변호사는 "n번방 사건 같은 경우, 수사 지연으로 증거가 인멸되어 피의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 피해자의 인권은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건 결국 그 간극을 얼마나 좁히느냐일 겁니다. 이론과 실무의 조화를 통해 최선 혹은 차선의 결과를 추구하는 건 아름다운 말이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그리 녹록지 않은 일입니다. 필연적으로 수반될 부작용과 시행착오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법조계만의 이야기로 보이지만,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 도입은 결국 일반 시민들에게 영향을 주게 될 이슈입니다. 그럴 일은 되도록 없어야겠지만, 누구든 수사를 받을 수 있고 압수수색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더욱 서두를 일은 아닙니다. 압수수색 사전심문 제도가 탁상공론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는 일방통행이 아닌 더 많은 논의와 실험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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