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스프] 영조대왕 도포와 나란히 전시된 RM이 입었던 답호

[커튼콜+] 런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 전시회 (글 : 황정원 작가)

1961년, 런던의 빅토리아 앤 알버트 박물관 (이하 V&A)은 2주에 걸친 <한국 국보전>을 통해 유럽 최초로 한국의 문화를 소개했다. 그리고 2022년 9월, 같은 장소에서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 전시회가 시작됐다.

900제곱미터의 공간에서 장장 9개월간 지속되는 전시의 규모는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반영한다. '국보'와 같이 공인된 예술품이 아니라 일상에서 매일 접하는 '대중문화'로 전시 대상이 옮겨졌다는 점 또한 흥미롭다.

기대와 호기심을 품고 전시장을 들어서자마자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 귀를 찌른다. 커다란 벽면 전체를 채운 <강남 스타일> 영상과 말춤 자세를 한 싸이 마네킹이 시야를 사로잡는다. 반복되는 '오빤 강남 스타일' 속에 기획의도를 읽는다. 급부상한 한류를 다방면에서 조망하고, K-드라마 및 영화, K-팝과 팬덤, 그리고 K-뷰티와 패션을 통해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 전시회장 입구 Ⓒ Victoria and Albert Museum
본격적인 전시에 앞서 V&A는 한일 합병부터 2006년까지 한국의 근현대사를 숨 가쁘게 살핀다. 이는 뒤이어 소개될 대중문화를 적절한 문맥에 자리매기기 위한 준비과정과 같다.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시발점이 된 <겨울연가>의 파급력을 이해하려면 먼저 일제강점기라는 뼈아픈 과거를 알아야 한다.

6.25 전쟁과 분단의 의미를 숙지해야 <공동경비구역 JSA> 마지막 스틸컷에 함축된 남북한 군인들의 아슬아슬한 우정과 비극에 한층 더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전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2018년, JSA에서 손을 맞잡고 38선을 넘는 보도사진을 영화 스틸컷과 함께 배치해 영화를 넘어, 현재 한국 사회까지 관람객의 인식을 확장시킨다.

이렇듯 전시는 한류의 중심이 되었던 작품을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뿐 아니라 이어진 한국 사회의 단면까지 조명한다. 강풀의 <순정만화>, 조광진의 <이태원 클라쓰> 등을 통해 한국이 발명한 포맷, 웹툰을 소개하는 동시에 원작이 드라마, 영화화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소개할 때는 반야심경을 새기며 마음을 다스리는 영화 속 주인공의 스틸컷과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행위를 규탄하는 기자 회견장의 사진을 나란히 놓아 영화와 현실의 괴리를 꼬집었다.

<기생충>의 반지하 방 화장실 세트를 소개하며 2022년 폭우로 인한 침수피해에 대해 서울시가 내놓은 '반지하 없애기' 대책을 연결 짓기도 했다.

서로 다른 시대와 장르끼리 짝 지워진 전시품들은 독립적으로 접할 때와는 또 다른 복합적인 층위를 드러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쌍문동 다섯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는 장면은 <오륜행실도> 중 8대가 화목하게 어울려 살았다는 장윤의 이야기와 묶여 전통적 가치가 어떻게 여전히, 그러나 새로운 모습으로 한국 사회 속에 존재하는지 보여 준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진취적인 두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 <아가씨>와 동시대,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권 운동에 앞장섰던 한국 최초의 여성 유화가 나혜석의 1928년 누드화, <나부>를 나란히 소개하기도 한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과 오륜행실도 중 장윤의 이야기 영화 <아가씨>의 스토리보드와 나혜석의 <나부>
예상을 뛰어넘는 대담한 연결은 전시 전체를 관통하며 관람객의 호기심을 돋운다. K팝 섹션에서 지드래곤의 무대의상과 권오상 작가의 조각, <무제의 지드래곤, 이름이 비워진 자리>를 통해 아이돌의 양면을 묻고, K-패션에서는 BTS의 리더 RM이 <땡>에서 입은 답호(도포 위에 입는 겉옷)를 영조 대왕의 도포, 그리고 김홍도의 <무동(舞童)>과 나란히 놓았다. 200여 년의 시간을 거스르는 절묘한 어우러짐에 긴 한삼 자락을 흩날리며 춤추는 무동의 웃는 얼굴이 RM의 그것과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방탄소년단 RM의 답호, 영조대왕의 도포, 김홍도의 <무동舞童> 김홍도의 <무동舞童>
대담하고 활기찬 큐레이션에도 불구하고 아쉬움 또한 남았다. 웹툰, 드라마, 영화, K 팝과 팬덤, K 뷰티에서 패션에 이르는 방대한 분야를 현황뿐 아니라 맥락까지 다루려니 촘촘한 배치가 도리어 감상을 방해하거나 압축된 구성이 설득력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전시 품목 선정과 디스플레이 방식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지점들이 있었다. PC방을 재현해 싸이월드를 소개하는 방식은 평면적이었고, 한쪽 벽에 줄지어 꽂힌 BTS, 블랙핑크 등의 응원봉, 천정에 걸린 배너, 늘어놓은 쌀 화환들은 K 팝 팬들의 독특한 팬문화와 북적이는 현장의 활기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했다.

PC방 문화 속 스타 크래프트와 싸이월드 ‘K 팝과 팬덤’ 전시장 Ⓒ Victoria and Albert Museum K 팝 팬들이 벌이는 사회활동의 일환, 쌀 드리미 화환
무엇보다 사운드 스케이프(sound scape, 소리로 만들어진 풍경)은 이 전시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었다. 입구에서 시작된 '오빤 강남 스타일'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지나 드라마, 영화 섹션까지 넘어와 반복 재생되는 여러 영상들과 뒤섞였다. 같은 문제는 오늘날 한류의 중심에 서 있는 K팝 섹션에서 가장 두드러졌다.

스프 배너
이 콘텐츠의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하단 버튼 클릭! | 스브스프리미엄 바로가기 버튼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