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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멘터리] 보금자리 잃은 길냥이들은 어디로…'고양이들의 아파트'

이주형 기자의 씨네멘터리 #19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습니다. 특별히 관심이 없습니다. 어쩌다 잘 생긴 고양이를 보면 “멋지군”하고 감탄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길에서 종종 마주치는 인간친화적이지 않은 길고양이의 경우 솔직히 번거로운 존재로 여긴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물론 가끔씩 고양이의 쿨한 성정을 부러워할 때도 있지만요...    
 2001년 배두나·이요원 주연의 극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로 화려하게 데뷔했던 정재은 감독이 다큐멘터리 영화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내놓았습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는 개봉 20년 만인 지난해 10월 재개봉했을 정도로 사람들 기억 속에 자리잡은 영화지만, 사실 고양이 얘기는 아닙니다. (고양이가 나오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진짜 고양이 얘기입니다. 고양이에게 무관심했던 터라 오히려 보고 싶어졌습니다.

집고양이 같은 길고양이들  
 ‘고양이들의 아파트’는 서울 강동구에 있는 둔촌주공아파트입니다. 거의 6천 세대에 육박해 한때 아시아 최대 아파트 단지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현재 재건축 중인 이 아파트는 2017년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해 2020년 철거가 마무리됐습니다. 정재은 감독은 주민들이 이주를 시작할 무렵부터 약 2년 반의 세월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주인공은 둔촌주공아파트에 살던 집고양이 같은 길고양이 250마리입니다. ‘집고양이 같은 길고양이’라고 한 이유는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살던 곳에서 계속 살려고 하는 ‘영역동물’이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이 길냥이들이 둔촌주공아파트에서 어떻게 살아왔고 주민 이주와 건물 철거가 시작되면서는 어떻게 되었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재건축에서 비롯된 이사는 사람에게도 큰 일이지만, 길냥이들에게는 갈 곳잃은 난민이 되고 밥줄이 끊길, 생사가 달린 큰 일입니다.  

  지난 3월 23일은 ‘세계 강아지의 날’이었습니다. 2006년 동물학자인 콜린 페이지가 제안해 만들어진 이 날은 유기견을 보호하고 입양을 권장하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유기’견’만의 일은 아니겠지요. 서울에만 길고양이가 9만여 마리에 이릅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본 뒤 세계 강아지의 날을 하루 앞두고 둔촌주공아파트 재건축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올림픽공원을 지나 좌회전해 접어든 양재대로, 가도 가도 오른쪽의 아파트 공사장 가림막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재건축 중인 콘크리트 구조물은 어느덧 가림막 너머로 삐죽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는데, 단지가 얼마나 넓은지 가림막과 가림막 사이에도 왕복 4차선쯤 돼보이는 도로가 있고, 그 길로 공사차량들이 드나들고 있었습니다. 그 가림막이 완전히 끝나는 곳, 단지내 도로보다도 폭이 좁은 2차선 외곽도로변에 있는 둔촌성당에서 만날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들은 둔촌주공에서 살기를 원했다
“고양이들의 아파트”의 주연급이라고 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트 작가 김포도 씨입니다. 둔촌주공아파트 길고양이가 250마리 안팎이라는 것을 파악한 이가 바로 김씨입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둔촌동에 살고 있는 김씨는 2017년 경부터 한마리 한마리 눈에 띄는대로 사진을 찍어 일일이 노트에 정리했습니다. 피터 드러커의 말마따나 측정되지 않는 것은 관리되지 않는 법이죠. 김씨도 참여한 둔촌주공아파트 캣맘들의 모임인 ‘둔촌냥이’의 목표는 결국 사람만큼 안전한 고양이들의 이주였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들은 계속 ‘둔촌주공’에서 살기를 원했다는 게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다들 고양이가 안전한 곳으로 옮겨가도록 밥주는 장소를 이동하며 애를 썼는데 뜻대로 안돼서 많이 힘들었어요. 정착을 잘 못하더라고요. 다시 아파트 안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그러면 또 가서 구조하고. 사람 뜻대로 안되는거죠.”
 하지만 건물이 철거되자 고양이들도 더이상은 살 수 없다고 판단하는 눈치였습니다. ‘둔촌냥이’ 모임은 250여 마리 중 사람을 잘 따르는 10%는 입양시키고, 30% 정도는 가깝거나 먼 지역으로 이주시켰습니다. 길고양이들이 알아서 자연스럽게 다른 동네로 나간 경우는 3% 밖에 안됩니다. 김포도 씨는 얼추 50-60% 정도의 길고양이들 행방은 파악되는데 나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도 거기까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고양이를 어떡해?’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죠.

  최근 길고양이 학대 사건이 잇따르고 범인을 붙잡아 처벌해달라는 국민청원도 올라오면서 길냥이는 사회적 이슈가 됐습니다. 김포도씨는 이날 한 캣맘과 함께 길고양이 밥을 주고 다녔는데, 길냥이들의 밥을 놓아둔 장소가 알려지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습니다. 해코지가 두려워서라고 했습니다. 김포도 씨도 길고양이에 대한 여러 시선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길에서 길고양이 활동을 하면서 괜한 오해를 받는듯한 느낌도 들어요. 길고양이 개체수만 늘이는게 아니냐 하는… 처음에는 길고양이 밥주는 게 좋은 일 한다는 이미지가 컸지만 어느 시점부터는 길고양이가 너무 많다고 느끼는 시민들도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는 길고양이는 꾸준히, 조금씩 줄고 있습니다. 배진선 서울시 수의공중보건팀장은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길고양이 개체수가 줄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서울시의 목표는 현재 49% 수준인 길고양이 중성화율을 70% 수준까지 끌어올려 1제곱킬로미터당 길고양이수를 100마리까지 줄이는 겁니다. 그래야 길고양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관리할만한 수준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거죠. 중성화 사업에도 아랑곳없이 현재 서울시 유기 고양이는 연간 2천5백 마리 정도됩니다. 그중 50% 이상이 유기로 오인한 새끼 고양이라고는 하지만 이를 빼도 해마다 1천 마리 이상을 사람이 내다버리고 있는 겁니다. 핑계야 다양하겠죠. 

북한산에서 만난 길고양이 ⓒstorydna
    지난해 가을 북한산에 오르다 어느 능선 봉우리에서 고양이들을 만났습니다. 털도 비교적 깔끔하고 용모단정해서 처음에는 누가 데리고 왔나 생각했지만 그게 아니었습니다. 영역 동물 고양이는 거기서 등산객들이 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정주하고 있던 거였습니다. 고독한 탁발승처럼 말이죠. 그 고양이는 어쩌다 뒷배경으로 송추 오봉산(五峰山)이 보일 정도로 꽤 높은 그곳까지 올라와서 살고 있던 걸까요. 재개발, 재건축 등으로 터전을 잃고 거기까지 쫓겨온 걸까요.

   둔촌주공아파트 길냥이들을 취재하고 캣맘들로부터 속사정을 듣고 나니 거리에서 마주치는 길냥이들이 조금은 달리 보였습니다. 불쌍히 여길 것도 없고 특별히 귀히 여길 것도 없다. 있는 그대로 생명을 생명으로 받아들이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에서 동물행동권 카라 전진경 대표는 주민들과 모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고양이는 내가 아니면 살 수 없어, 라고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아요. 고양이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고양이 입장에서 만화 그린 게 있어요. 거기 사람이 어떻게 표현돼 있는지 아세요? 캔따개예요. 내가 고양이를 보살피는 것도 희생한다고 얘기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행복하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우리는 아파트단지에 녹음이 우거지면 좋아하고 새소리가 들리면 반가워합니다. 하지만 그곳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야할 때는 당면한 문제들에 치어 미처 함께 살던 다른 생명체들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죠. 김포도씨는 말합니다. “사람만 이주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같이 살았던 것들이 사라져야 된다는 걸 경험하면서 비인간 동물들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고심하고 도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배진선 서울시 팀장은 길고양이도 개처럼 반려동물로 사는 게 정상적인 형태라고 하면서도 “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 볼 때 길고양이도 서울 도심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 인정해야 한다. 시민과 공존하면서 생명으로 존중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살기도 힘든 세상인데…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고양이를 부탁해”를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첫 개봉 때도 화제를 모았던 영화고, 제목도 인기를 끌어 이후로 많은 패러디 제목이 나오기도 했었죠. 각기 다른 환경에 처한 여고 졸업생들의 팍팍한 세상살이를 그린 영화입니다. 20년 만에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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