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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백신 예약 대란, 국민들이 화나는 진짜 이유

[취재파일] 백신 예약 대란, 국민들이 화나는 진짜 이유
50대 백신 접종 사전 예약이 시작되면서 질병관리청 예약 시스템은 큰 허점을 드러냈습니다. 연령을 쪼개 예약 시기를 분산시켰지만 별 효과는 없었습니다. 53~54세 대상자는 150만여 명이었지만 접속 초기 일시 수요는 1천만 건에 달했습니다. 한 사람 예약을 위해 여러 명이, 여러 기기를 이용해 시도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대상자보다 접속 수요 건수가 많은 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질병청은 매번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실제 서버 증설도 하고, 네이버 클라우드에 일부 업무를 이관하기도 하면서 대안을 찾았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땜질식 처방을 하기 급급했습니다. 우회 접속이 문제가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고, 튕김이 발생하면 방지책을 안내하는 식입니다. 선제적인 대응은 없었습니다. 

대통령이 관련 참모들을 질책하고 관계 부처 협업을 지시한 어제(21일), 질병청은 '국민들께 깊은 사과 드린다'는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다만 여기에도 대책은 없었고 "여유롭게 접속해달라"는 요청만 있었습니다. 
 

'기다리면 할 수 있다'는 상식 통하지 않았다

예약 대란 관련해 많은 제보자들과 통화를 했습니다. 말씀을 들으며 깨닫게 된 건, 그저 '오랜 기다림' 때문에 국민들이 허탈하고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인천에 살고 있는 50살 김 모 씨는 지난 20일 저녁 8시에 PC와 태블릿 두대를 켜놓고 예약을 시도했습니다. 보육교사인 아내가 백신 예약을 할 때 옆에서 고생하는 것을 지켜봤기 때문에 이미 녹록치 않겠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예약 접속 장애

하지만 새벽 3시반까지 예약을 못 했습니다. 수만명의 앞선 대기자를 기다린 후 내 차례가 되면 다시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는, 튕김 현상이 반복됐기 때문입니다. 재접속하면 대기자는 훨씬 더 늘어나 있었습니다. 원인 모를 상황에서도 계속 재접속을 시도하는 중 김 씨를 더 화나게 한 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예약이 안돼서 밤을 새고 있는데, 어떤 사람들은 우회 접속 같은 거 해서 예약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건 일종의 새치기잖아요. 일반 시민들은 잠도 못자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데 튕겨서 계속 밀려나는 거고요. 시간을 들여서 기다렸으면 당연히 예약이 돼야잖아요. 기다리면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통하니까 화가 나죠."

하지만 질병청은 "사람이 몰리지 않을 시간에 여유롭게 접속해달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순서를 기다리면 예약이 가능하고, 우회 접속은 통하지 않는 시스템 구축이 본질인데 말입니다.  

또, 예약 시작 직후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기도 합니다. 특히 50대는 상반기 접종 대상자였던 고령층에 비해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의 비중이 훨씬 높습니다. 일과 시간을 피해야 하고, 일터와 가까운 의료기관을 찾아야 하는 유사한 수요가 많다는 뜻입니다. 

실제 통화한 제보자 중에서는 튕김 현상으로 예약이 되지 않아 다음 날 오전 예약을 했더니, 원했던 날짜보다 일주일 뒤에나 예약이 가능했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수요를 무시한 채 '여유롭게 해달라' '백신은 충분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방역당국의 요청은 국민들 마음에 와닿기 어렵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오늘(22일) 오후 브리핑에서 서버 내 메모리를 늘려 접속 대기 시간을 줄이고 과부하를 방지하도록 개선했고, 다음 달부터 시작될 18-49세 사전예약에 대비해 행안부, 과기정통부 등과 협업해 시스템의 지속 보완을 진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행히 어제 저녁 8시부터 진행된 50대 전체 사전예약은 접속자 수요가 상대적으로 줄고, 서버 내 메모리 증설 등이 이뤄지며 상대적으로 원활했습니다. 

어머니의 예약을 대신 해주셨다는 한 20대 아들은 '예약이 늦어져 백신이 없으면 어떡하냐'는 어머니의 걱정에 이렇게 답했다고 했습니다. 
 
"백신 충분히 들어오니까 접종 할 수 있을 거예요. 걱정마세요."

대다수의 국민들은 정부의 발표를 신뢰하고, 이런 마음으로 백신 예약을 위한 오랜 기다림도 참아내고 있습니다. 정부의 허술한 시스템과 안이한 대응은 이런 신뢰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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