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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여론에 무릎 꿇은 아베 총리…'검찰 정년 연장' 왜?

'해시태그' 혁명, 가을에도 재현될까?

[취재파일] 여론에 무릎 꿇은 아베 총리…'검찰 정년 연장' 왜?
일본 정부가 검찰 간부의 정년을 '내각의 판단'으로 연장할 수 있는 '검찰청법 개정안'의 이번 국회 회기 내 통과를 단념했습니다. 어제(18일) 아베 총리는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민의 이해 없이 (이 일을) 진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비판에 대해 제대로 대응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포기하겠다는 뜻을 확실히 했습니다. 아베 총리는 불과 사흘 전인 15일까지만 해도 "(검찰청법 개정안이라는) 정책의 내용, 팩트가 아닌 일시적인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사실은 그렇지 않았구나'하며 이해를 하실 것으로 본다"며 개정안 처리에 의욕을 보였습니다. 일본 정치의 우경화와 야당의 부실 체력으로 선거마다 '승승장구'해 막강한 자민·공명당 보수 연합을 구축한 결과,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었던 아베 정권이 특정 법안 하나의 국회(중의원) 소위원회 통과를 도중에 '포기'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발언 중인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① '검찰청법 개정안'이 뭐기에?

일본 정부가 지난 3월 13일 국회에 제출한 법안입니다. 일반 공무원의 정년을 65세까지 연장하는 '국가공무원법 개정안'과 한 세트로 제출됐는데, 고령화로 인한 정년 연장이 불가피한 일본에서 국가공무원 전체에 대한 정년 연장에는 특별한 이견이 없는 상황입니다. 고령의 공무원은 대체로 '간부'인 경우가 많으므로 이른바 '역직(役職) 정년'이라는 걸 두고 있는데, 이게 일반 공무원과 검찰이 다르다는 게 일차적인 문제입니다.

우선 일반 공무원의 경우 60세가 넘으면 65세인 정년까지는 관리감독직, 즉 간부에서는 물러나 근무하게 되지만 장관 등 임명관자가 특례로 인정하면 해당 직위에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관, 즉 검사의 경우는 이 '역직정년'이 일단 63세까지로 3년이 더 붙었습니다. 즉 '간부'에서 물러나는 시기가 일반 공무원처럼 60세가 아니라 63세로 설정된 겁니다(검사총장은 65세). 여기에 추가되는 특례조항을 보면 차장검사(한국의 대검 차장), 검사장(한국의 고검장)은 내각이, 검사정(한국의 검사장)은 법무상이 인정하면 최대 3년 동안 간부의 자리에서 정년까지 근무할 수 있게 됩니다.

② '정년 연장'이 왜 문제?

입헌민주당 등 야당은 '검찰청법 개정안'의 특례 조항에 대해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치인을 수사하고, 총리도 체포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검찰의 최고위 간부들의 임기 정년을 내각-사실상 총리겠죠-이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은 검찰의 수사권 행사에 정치 논리가 개입될 가능성을 다분히 높인다는 이유입니다. 정권이 '마음에 드는' 검찰 간부의 임기를 엿가락처럼 길게 늘려서 사실상 검찰을 '순치'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검찰 정년 연장과 '특례 조항'을 둘러싼 아베 정권의 수상한 움직임은 갑자기 나타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난 1월 22일에 법무성이 인사원(우리나라의 인사혁신처에 해당)에 이미 추진중인 국가공무원법의 정년 연장조항이 검사에게도 적용 가능한지 해석을 의뢰했고 인사원은 '이견 없다'는 답변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답변에 근거해 1월 31일에 내각이 구로카와 히로무 도쿄고검장의 정년을 6개월 연장하기로 결정합니다. 구로카와 고검장은 원래대로라면 2월에 63세가 되어 일반 검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고검장 자리를 6개월 더 지킬 수 있도록 한 겁니다. 구로카와 고검장의 자리를 일단 보전해 놓고 '검찰청법 개정안'을 통해 이 조치를 사후에 정당화한 뒤, 차후에도 같은 경우에 검찰 고위직의 정년을 정권이 자의적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꼼수'를 부렸다는 게 야당 주장의 핵심입니다. 야당은 '검찰청법 개정안'에서 앞에서 말씀드린 '특례 조항'을 삭제하라며 정부와 여당을 압박했습니다.

③ 구로카와 히로무 검사장이 누군데?

이쯤에서 아베 정권이 이렇게 큰 잡음을 감내하고 계속 간부 자리에 두고자 하는 구로카와 도쿄 고검장이 대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집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1957년 생으로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헤 1983년에 검사가 됐습니다. 특이한 이력은 일반 검사를 15년만 한 뒤 1998년부터 법무성으로 이동해 근무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지금까지 37년간의 공직 생활 가운데 무려 절반이 넘는 19년을 정치가와 접촉이 많은 법무성에서 근무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법무성에서는 이른바 '출세 코스'라고 하는 형사국 과장, 비서과장을 역임했고, 그 가운데 7년 동안은 특히 정치가 출신인 장관(법무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관방장과 사무차관으로 근무했습니다. 2차 아베 내각과도 시기가 겹치는데, 이 시기에 테러 방지 대책이라며 아베 정권이 들고 나온 '공모죄 법안'이 야당의 저항 속에 강행 통과됐고,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 악화 우려에도 불구하고 '출입국관리법 개정안'도 통과됐습니다. 이 두 가지 법안은 일본의 우경화를 상징하는 아베 정권의 대표적인 '간판 정책'들로 꼽힙니다.

또 2차 아베 내각 시기에는 오부치 유코 전 경제산업상, 아마리 아키라 전 경제재생상 등 정치가들의 '정치자금 문제'도 불거졌습니다. 검찰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핵심 인물(즉, 정치가 본인)은 모두 불기소됐습니다. 또 한국에서도 유명한 '모리토모 학원'의 국유지 헐값 매각 사건에서도 공문서에 손을 댄 재무성 간부들이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뒤에 구로카와 검사장(당시 법무성 사무차관)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있습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지난해 1월에 도쿄 고검장에 취임하면서 기자회견에서 "검사의 혼을 잃은 적은 없다"고 말했지만, 아베 정권의 장기 집권에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입니다.
일본의 연출가 미야모토 아몬이 검찰청법 개정에 항의하는 뜻을 밝힌 트윗 (사진=미야모토 아몬 트위터 캡처, 연합뉴스)
④ '해시태그'의 혁명

어제 아베 총리가 검찰청법 개정안의 이번 국회 회기 내 통과를 포기한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이해가 없었다'는 취지의 말을 한 점이 주목됩니다. 이번에는 정치가들이 흔히 입에 올리는 추상적 단어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실체가 분명한' 국민이 있었습니다. 지난 8일에 검찰청법 개정안의 국회 심의(중의원 내각운영위원회)가 시작됐는데, 그 직후 일본인들이 많이 사용하는 SNS인 트위터에서 '#검찰청법개정안에항의합니다'라는 해시태그가 봇물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정치적 의사 표명에 유명 가수와 배우 등 문화예술인들도 동참해 주말이었던 9일과 10일 이틀 동안 무려 500만 건에 가까운 트위터에서의 '성명'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주 아베 총리가 국회에서 "자의적인 검찰 인사는 없다"고 강변하며 대화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면서 해시태그 운동은 잦아들기는 커녕 더욱 확산됐습니다. 아사히(朝日) 신문이 1주일 뒤인 16, 17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검찰청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의견이 전체의 64%로 절반을 훌쩍 뛰어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검찰 인사에 정치 개입은 없을 것'이라는 아베 총리의 발언에 '불신'을 표한 의견도 68%였고, 함께 조사한 내각 지지율은 무려 아사히 신문의 지난번 조사보다 8%P나 떨어진 33%로 나왔습니다. 정치권이 아니라 SNS에서 시작된 분위기 반전이었습니다.

분위기를 읽었는지 전직 검찰 간부들도 반대 의견서를 법무성에 내는 한편,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잇따라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지리멸렬하다는 눈총을 받았던 야당의 목소리에도 오랜만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국회에 '불려 나온' 모리 마사코 법무상이 정년 연장의 '기준'에 관련한 질문을 받고는 "그걸 (당장) 제시하기는 곤란하다"고 답변해 기름을 끼얹기도 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집 근처에서 진행 중인 검찰청 법률 개정에 대한 시위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⑤ 상황 종료? 일단 '휴전'

어제 기자회견에서 말 그대로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인 아베 총리는 정치적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습니다. 아무리 집권 여당이라도 모두 마음대로 할 수는 없다는 '사례'가, 그것도 코로나 대응 부실로 대내외적으로 곱지 못한 시선을 받는 이때 터진 셈입니다. 자민당 내에서도 총리에 대한 '불만'이 공공연하게 터져 나옵니다. '자의적 인사'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정부가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자민당 총재이기도 한 아베 총리의 당내 '구심력'이 떨어질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연정 파트너인 공명당에게도 일정 정도 '신뢰'를 잃었습니다. 당분간은 수습 단계로 들어간 코로나 대응에 집중하며 숨을 고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검찰청법 개정안'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국회(6월 17일 회기 종료)에서의 통과를 포기했을 뿐, 가을 국회에서 다시 법안 심의를 요청할 방침입니다. 아베 정권은 검찰청법 개정안이 시행되는 시기가 내후년인 2022년 4월로 예정돼 있어서, 통과되더라도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 연장은 소급 시행되지 않는다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문제는 '구로카와 검사장의 정년이 언제까지 연장되는가'가 아니라, '정권이 검찰에 자의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급이 올라간' 상황입니다. 이 시점에서 일단 '휴전'이 됐지만, 가을 국회에서 언제든 다시 전선이 움직이기 시작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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