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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추억을 소환하다 - 한탄강 얼음 트레킹 ①

[라이프] 추억을 소환하다 - 한탄강 얼음 트레킹 ①
▲ 철원 직탕폭포의 모습

(** 봄이 완연한 3월의 어느 날에 얼음 트레킹 소식이라니...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하면서도 굳이 변명이라도 하자면, 봄이라서, 그래서 지난 계절을 추억하는 신선함도 있지 않을까... 하는 억지(?) 외에는 달리 보탤 말도 없음을 고백한다. 다만 시의성을 잃어버려 정보가 아닌 회고가 되어버렸음은 아쉽고 또 아쉬운 일이다.)
한탄강 얼음트레킹 2
직탕폭포는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길은 직탕폭포(直湯瀑布)에서 시작된다.

직탕폭포는 여느 폭포가 그러하듯 허공을 가르며 낙하하는 수직의 물줄기 세례가 아닌, 가로로 50~60m에 이르는 너른 폭을 따라 피아노의 건반이 그러하듯 다양한 물줄기와 소리를 담고 있는 폭포다. 그래서 일명 한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라 불리기도 한다.

높이가 3m 남짓에 불과한지라 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이곳이 계곡과 폭포의 중간쯤이지 않을까 싶은데, 얼음이 뒤덮인 폭포는 나름 폭포다운 위용을 자랑한다. 게다가 사진이라는 문명을 통해 부분만을 들여다보면 나이아가라 폭포를 닮아도 너무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27만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현무암 돌다리
폭포 위로는 돌다리가 놓여 강의 이편과 저편을 이어놓고 있다. 그렇게 강 위에 드러누워 돌이라는 점점(點點)은 수십, 수백의 점이 연결되어 마침내 줄이 되고, 다리가 되어 행인을 건네느라 여념이 없다. 이렇게 점점이 누워있는 돌들의 정체는 현무암. 이곳이 오래전(27만 년 전) 화산지대였음을 알려주는 증거들이기도 하다.

이곳의 현무암들은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오리산이 10여 차례 화산 폭발하면서 분출된 용암이 100여 km를 흘러 이곳에까지 다다른 흔적이라고 한다. 이때 용암은 이곳을 지나 연천의 임진강 하류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포천향토문화백과)
한탄강 얼음트레킹 5
태봉교 아래에서 얼음 트레킹은 시작된다.
멀리 태봉교가 보인다. 여기가 한탄강 얼음 트레킹의 시작점이다.

한탄강은 강원도 평강의 발원지부터 연천의 임진강 하류까지 남북한을 합쳐 약 140㎞에 이르는 강이다. 그중 이곳 철원을 포함해 포천, 연천 등 남한 지역을 지나는 길이는 약 80㎞에 이른다. 그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한탄강은 우리 민족이 겪고 있는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분단의 산증인이면서, 그 분단이 가져온 전쟁의 참화를 온몸으로 겪고, 또 지켜본 산 증인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한탄강을 한(恨)이 서려 있는 강이라는 의미의 한탄(恨歎)강으로 알고들 있지만, 그건 아니란다. 한탄강(漢灘江)은 한강의 '한'이 그렇듯 크다는 의미의 우리말이고, '탄(灘)'은 여울이라는 뜻이니, 풀이하자면 '큰 여울'이라는 이름의 강이라는 설명이다. 실제 대동여지도에는 대탄강이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하니, 큰 여울이라는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한탄강이 위치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이나, 한탄강이 겪어낸 역사적 상황들이 한탄(漢灘)을 한탄(恨歎)으로 여기게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곳 한탄강은 많은 역사적 애환들이 숨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탄강은 많은 역사적 애환들이 숨어 있는 곳이다.
901년 궁예(弓裔:?~918)가 세운 태봉(泰封)이라는 나라의 도읍지가 이곳 철원이다. 궁예는 송도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후 신라를 크게 위협하는 등 한때 후삼국 중 최고의 위세를 떨쳤었다. 궁예의 나라는 현재 남한 지역의 2/3에 이를 정도로 크게 번성했지만, 궁예에게 이곳은 결국, 살 자리이면서 또 죽을 자리였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여정의 마지막 장소인 고석정(孤石亭)은 의적으로 유명한 임꺽정(林巨正, ?~1562)이 관군에 쫓기면서 숨어 지냈던 곳으로 유명하다. 3년여 걸친 그의 의적 활동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아픔과 절망을 대신하여 싸워주던 영웅적 행위였으나, 기득권 세력의 입장에서는 섬멸해야 할 도적일 뿐이었으니, 그의 운명 역시 비극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던 치열한 격전장이었던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젊은 영혼들이 스러져 갔을 것인가.
현대에 들어서는 이곳 철원 지역은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다. 특히 이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머지않은 곳에 백마고지가 있는 등 '철의 삼각지대'라 불리던 치열한 격전장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이름 없는 젊은 영혼들이 이곳에서 스러져 갔을 것인가.

그리고 이곳 철원 지역은 한국전쟁 전에는 북한 땅이었다. 전쟁 이후 휴전선이 38선 이북으로 그어짐에 따라 수복된 땅이 경기도 연천, 강원도 양양,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 등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곳의 주민들은 일제 때는 '신민'이었다가, 해방 후에는 북한의 '인민'이 되었고, 미 군정 시절에는 '주민'으로, 전쟁 후에는 남한의 '국민'이 되는 정체성 혼란도 심각했다고 한다.

그러니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아는 많은 사람들이 한탄강의 이름을 '원통해하며 탄식한다'는 의미인 '한탄(恨歎)'이라고 짐작한대도 하등 이상할 게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탄강 얼음트레킹 8
강 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멀리 강이 보이고, 강 위로는 많은 사람들이 강을 땅인 양 걷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얼음 트레킹이 시작되나 보다.

멀리서 보이는 강 위로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얼음 위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문득 어린 시절 겨울이면 추위도 잊은 채 하루 종일 강에서 썰매를 타고, 얼음낚시를 하며 놀았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딱히 놀이 문화라 할 만한 것도 없던 시절이라 겨울날에는 그저 얼음 위에서 구르고 뒹구는 것 말고는 달리 할만한 것도 없었었다.

서둘러 아이젠을 등산화에 끼우고 들어선 얼음으로 뒤덮인 강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동심의 놀이터였다. 금방이라도 얼음을 지치고 앞으로 달려 나가고픈 마음 가득이다. 아이젠이라는 도구가 있으니 얼음 위라고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발을 내딛으면 될 일이다.

그 옛날 신발에 새끼줄을 둘둘 감으면, 그것이 아이젠 대용이었는데... 문명의 발전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추억마저도 오래된 무엇인 양 고풍스럽게 만든다. 산골에서 나고 자란 탓에 나이에 비해 경험치는 그 이상임을 새삼 깨닫는다.
한탄강 화산지형의 백미인 송대소 주상절리 아래로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강 위를 걷는 경험은 색다르다. 그것이 비록 얼음으로 뒤덮인 강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언 강 위에서 노는 게 일상이었는데도, 어른이 되어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르다. 나이를 먹어도 그 나이는 몸에 해당되는 것이지, 마음은 아니었나 보다.

산 넘고 물 위를 걸어, 이윽고 도착한 송대소.

한탄강 화산지형의 백미인 송대소 주상절리 아래로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사람들은 끝없이 밀려오고 또 밀려간다. 강 위를 걷는다는 색다른 체험은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한탄강 얼음트레킹 10
고드름이 마치 큰 맹수의 사나운 이빨마냥 날카롭고 또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주상절리(柱狀節理)는 화산활동 후 분출한 뜨거운 용암은 공기 중에서 빠르게 냉각되면서 부피가 감소하는 수축작용이 일어나는데, 이 과정에서 수직으로 쪼개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이때 쪼개지면서 대체로 5~6각형의 기둥 형태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주상절리다. 주상절리는 특히 온도가 높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이 빠르게 냉각될 때 잘 발달한다고 한다.

송대소의 주상절리는 27만 년 전 화산폭발로 쏟아져 나온 현무암 용암이 하천을 따라 흐르다가 굳었고, 이 현무암을 오랜 세월 동안 하천이 다시 깎아내면서 협곡 모양의 절벽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절벽의 높이가 30여 m에 이르는지라, 절벽 아래에 서면 까마득하고, 혹여 바위 조각이 떨어지지는 않을지 괜스레 오금이 저리기도 한다.

더 큰 두려움은 그 절벽 가득 매달려있는 엄청난 규모의 고드름들이다. 얼음 트레킹 축제를 위해 일부러 물을 뿌려 만들어 놓은 고드름이지만, 그 기세는 예사롭지가 않다. 마치 큰 맹수의 사나운 이빨마냥 날카롭고 또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다.
갈라진 틈새에도 불구하고 얼음은 두께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두꺼웠다.
그러다가 깨닫는 얼음 위 사람들의 규모.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설마 얼음은... 무사하겠지? 얼핏 본 얼음은 군데군데 금 간 흔적이 있는지라, 괜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눈으로 대충 둘러봐도 두께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두꺼운지라 걱정하는 스스로가 가소로울 따름이다. 그러니 두려움을 잊은 사람들은 인증숏을 찍느라 여념이 없다. 그렇게 강은, 주상절리의 수려한 풍광은, 그 풍광에 점점이 박혀 있는 고드름이며 얼음들은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추억을 골고루 나눠주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 역시 그 1인 중 한 명이었다.
바위들의 훼방에도 강물은 낮은 틈을 찾아 제 나름의 물길을 내며 잰걸음으로 제 길을 간다.
승대소를 벗어난 길은 갈수기의 얕은 강을 따라 이어진다. 물의 흐름이 부지런해서인지 얕은 여울은 추위마저도 비껴가고, 그만큼 쌩쌩한 맨 얼굴이다. 강물이 바쁘게 흘러 닿은 곳은 마당바위. 그 이름처럼 너른 바위들이 강을 가득 메우고 있다. 바위들의 훼방에도 강물은 낮은 틈을 찾아 제 나름의 물길을 내며 잰걸음으로 제 갈 길을 간다.

강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사람들도 서둘러 길을 서두르고, 협곡에 갇힌 길도 강둑으로 이어져 조금은 너그러워진다. 그러다 길은 강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더러는 산을 가파르게 오르기도 한다.

<2편에 계속>
길은 강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더러는 산을 가파르게 오르기도 한다.
● 장흥 3리 직탕폭포 가는 길(대중교통)

① 동서울 버스터미널에서 신철원행 버스 승차 → 신철원 시외버스터미널 하차 → 동송행 농어촌 버스 승차 → 장흥 3리 직탕폭포 하차

② 지하철 4호선 수유역 4번 출구에서 동송읍행 시외버스 탑승 → 동송읍 터미널 하차 → 2번, 2-1번 버스 승차 → 장흥 3리 직탕폭포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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