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하루 10∼30마리 폐사"…도심 서식지가 백로들 무덤으로

"하루 10∼30마리 폐사"…도심 서식지가 백로들 무덤으로
"매일 저녁이면 새끼 백로 10여 마리가 죽은 채 발견돼요. 폐사한 백로를 치우다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청주시 서원구 모충동 바르게살기위원회 위원장인 이종남(59)씨는 올여름 서원대 여학생 기숙사 인근 숲에서 정화활동을 하며 백로 새끼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는 모습을 매일이다시피 목격했다.

백로떼는 올봄 서원대 기숙사 인근 숲에 둥지를 틀었다.

점차 불어나기 시작한 백로는 여름쯤에는 1천여 마리로 불어났다.

개체수가 급속히 늘어나면서 소음이나 배설물 악취로 학교 구성원들과 주민들이 민원이 고조되자 지난 7월 말부터 회원 7∼8명과 함께 정화활동을 시작했다.

자원봉사하는 마음으로 나섰기에 몸은 고됐지만 나름 보람이 있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해 오후 6시부터 약 2시간 동안 코를 찌르는 악취와 배설물과 싸워가며 백로 서식지를 청소하다보면 온몸에 역겨운 냄새가 배이기 일쑤였다.

육체적 피로보다 이 씨를 더 괴롭힌 건 매일 여기저기 죽어나자빠져 있는 백로 새끼들의 사체를 보는 일이었다.

나무 둥지에서 떨어진 뒤 제대로 된 먹이활동을 못해 아사한 백로 새끼 사체를 치우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었다.

이씨는 "매일 10∼15마리의 사체가 발생한다"며 "채 자라지도 못한 새끼 백로가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여름에는 하루에 30마리가 죽을 때도 있었다.

폐사한 백로는 한데 모아 정성스럽게 땅에 묻어줬다.

숨을 헐떡거리며 마지막까지 숲 주변을 걸어 다니는 백로 새끼들도 많았지만 이미 회생 불능의 상태라 지켜보는 수 밖에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둥지에서 떨어진 백로들은 전문치료기관에서 맡아도 기력을 회복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충북 야생동물센터 김하나 수의사는 "지난 7∼8월 구조돼 센터로 오는 백고가 예년보다 2배 정도 늘었다"며 "대부분은 먹이활동을 제대로 못해 아사 직전 상태여서 하루나 이틀 뒤 폐사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좁은 서식지에서 워낙 많은 백로가 공존하다보니 치열한 먹이 경쟁을 하는 바람에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힘 없고 약한 새끼들이 생존 경쟁에서 밀려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이다.

박진영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은 "어미 새들로부터 먹이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을 벌이다 밀려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들은 비행능력이 없다 보니 도태되는 것"며 "번식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냉혹한 야생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서원대 기숙사 인근 숲이 거대한 백로의 무덤이 된 사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이곳에서 1㎞가량 떨어진 청주남중 잠두봉 야산에 백로떼가 날아 들었다.

당시 도심에서 보기 흔치 않은 새인 데다 개체 수가 많지 않아 문제가 되지 않았고, 오히려 생태교육의 장으로 주목받았다.

시간이 갈수록 개체수가 불어나더니 급기야 700∼800마리가 소나무숲 일대를 뒤덮었으면서 악취와 소음 때문에 청주남중 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됐다.

결국 지난해 학부모들이 크게 반발하자 청주시는 그해 9월 백로가 떠난 뒤 소나무 120여 그루를 베어버렸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올봄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다시 돌아온 백로는 잠두봉 서식지가 훼손된 것을 알고는 환경이 비슷한 인근 서원대에 터를 잡은 것이다.

인간의 생활권이 확장하면서 백로가 의존하는 습지와 경작지가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결국 도심까지 진출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박시룡 한국교원대 교수는 "천적이 없고 먹이활동이 가능한 무심천과 미호천이 인접 지역의 소나무나 잣나무 숲을 서식지로 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미 도심 속 천덕꾸러기로 낙인찍힌 백로는 다시 서원대 숲에서도 쫓겨나게 될 처지다.

서원대는 올초까지만 해도 백로의 서식지를 보호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학생과 주민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백로 새끼들이 성체가 돼 둥지를 떠나는 내달 초에 나무를 간벌, 백로 서식을 막기로 결론냈다.

오경석 청주충북환경연합 사무처장은 "간벌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도심지에서 민원이 적은 지역을 서식지로 확보해 백로가 살 수 있는 안정적인 공간을 확보해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백로와 인간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