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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내 돈주고 한 결혼, 이혼도 내 멋대로'

-걸프 지역의 황당한 결혼 풍속도

[월드리포트] '내 돈주고 한 결혼, 이혼도 내 멋대로'
노래가사에도 나오듯이 사우디아라비아는 일부다처제 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결혼에 관련해 많은 이야기들이 언론매체를 장식합니다. 지난 주 제게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여기지만) 매우 황당한 이야기가 걸프뉴스라는 매체에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첫날 밤에 이혼’. 이 사건은 걸프지역이 안고 있는 결혼과 이혼의 관습. 사고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 '첫 날 밤에 이혼선언'

 사우디 메디나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신랑 신부가 화촉을 밝히는 날 식이 끝나갈 무렵 기념사진 촬영 순서가 왔습니다. 신부가 사진 촬영을 위해 줄곧 얼굴을 가린 베일을 들어올리는 순간 누구도 예상 못한 일이 터졌습니다.

(사우디에서 여성들은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를 입도록 돼 있습니다. 왜냐고 물으신다면 간단하게 이슬람에서는 여성을 보호하는 취지에서 머리카락과 얼굴 등 신체 일부를 가리도록 했는데 이것이 이슬람원리주의자들에게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게 된 것이라고 알고 계시면 편합니다.) 신랑이 대뜸 청천벽력 같은 말을 신부에게 던진 겁니다.

“당신은 제가 결혼하기 싶은 스타일이 아닙니다. 제가 상상하던 그 여자가 아니라고요. 미안하지만 이혼합니다.” 신부는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고 신랑신부 가족들과 하객들은 행복한 밤이 왜 비극의 어둠으로 변했는지 알아보느라 결혼식은 난장판이 됐습니다.

알고 봤더니 두 사람은 결혼하기 전에 단 한번도 얼굴조차 마주한 적이 없었던 겁니다. 결혼식날 이혼도 정말 황당한 일이지만 아무리 부모끼리 정한 결혼이라도 당사자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결혼하는 일이 가능한 걸까? 또 그렇다 해도 외모가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 맘대로 이혼하자는 신랑의 뻔뻔한 태도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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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굴도 안 보고 결혼하나?'

역시 이 황당사건의 발단은 얼굴조차 안 보고 결혼한 일입니다.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등이 모여있는 걸프 지역은 저렇게 석유가 펑펑 쏟아지기 전에는 부족끼리 낙타나 염소를 키우며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는 유목민족이었습니다. 친족 단위. 부족 단위의 그룹은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주변의 우호적이거나 동맹이 필요한 부족과 혼인을 통해 연대를 유지했습니다.

당시에 그 그룹의 족장 같은 어르신끼리 만나 혼사를 결정했습니다. 부족끼리 떠돌아 다니니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 전까지 쉽게 만날 수도 없었고 당연히 서로 얼굴조차 알지 못한 채 결혼을 하게 됐죠. 신랑은 신부 얼굴이 궁금해도 결혼식 전까지는 절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집안의 여성들이 대신 신부측 부족에 가서 신부가 참한지 아닌지 보고 말해 줄 수는 있었습니다. 이런 오랜 관습이 보수적인 걸프지역에 대대로 뿌리내려오면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더 한 일도 있습니다. 10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알 아라비야’라는 중동 언론매체에 따르면 사우디의 한 부족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 엄청나게 보수적이고 엄격한 관습을 유지하고 있는데 여성은 부르카를 ‘절대 벗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말 그대로 ‘절대로’…. 남편조차 부르카를 벗겨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둘이 사랑을 나눌 때도 안됐습니다. 아들조차도 자신을 낳아준 엄마의 얼굴을 부르카를 통해서만 볼 수 있도록 했습니다. 거짓말 같겠지만 당사자의 인터뷰까지 있는 사실입니다.

남녀의 접촉을 엄격을 금지하는 이슬람의 규율도 이런 관습에 한 몫 한 게 분명합니다. 그래도 일단 이슬람의 율법인 샤리아에서는 명목상이라도 적어도 예비신랑이 예비신부의 얼굴을 결혼 전에 한 번은 보는 것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자료를 좀 더 찾아보니 ‘얼굴도 안 보고’ 와 비슷한 결혼 사례가 있어 짧게 소개하고 넘어갑니다. 이 경우는 ‘사진만 봤더니’가 더 정확한 내용인데 아랍에미리트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이건 결혼식 날까지는 아니고 결혼 계약(중동에선 결혼을 위해 신랑측의 지참금을 확정하는 계약을 하는데 여기에 서로 서명을 하면 결혼과 동일한 효력을 가집니다. 자세한 건 뒤에 설명합니다.)을 하는 날 이혼요구를, 그것도 신부측이 한 경우입니다. 신부의 이혼 사유는 신랑이 대머리인 걸 속였다는 겁니다.

이 역시 전통적인 혼인 관습대로 집안 어른끼리 혼사를 결정했는데 결혼 전에 신랑신부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는 대신 사진만을 교환했습니다. 사진의 예비 신랑은 걸프지역 전통의 구트라(머리에 쓰는 천, 이 구트라를 고정시키는 끈을 이깔이라고 합니다.)를 쓰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결혼 계약서 서명을 위해 신랑신부가 만나는 날 알고 보니 이 신랑이 대머리였던 거죠. 신부는 신랑측이 자신을 속였다며 이혼신청을 한 겁니다.

또 하나는 이것보다 더 단수가 높은데, 결혼하고 보니 신랑이 농아(聾啞)인이었던 일입니다. 이 경우는 결혼 전에 예비 신랑신부가 서로 얼굴을 보긴 했지만 신랑측에선 예비신랑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말수가 적다며 신부 측을 감쪽같이 속인 경우입니다. 그런 줄 알고 결혼을 했더니 농아인인 게 드러난 거죠. 장애가 무슨 죄라고… 죄라는 식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기에 신랑측에서 그런 수를 썼겠죠.

‘도대체 얼굴도 안 보고 어찌 결혼을…’에 대해선 이해까지는 아니지만 저러니까 이런 일이..라고 수긍은 하셨을 테고 이제는 신부가 맘에 안 든다고 첫 날 밤에 이혼을 선언하는 신랑의 ‘똥 배짱’은 어디서 나오는 건지 알아보겠습니다.

● '가난하면 결혼은 먼 꿈'

중동과 아랍권은 일부다처제를 인정합니다. 대개 4명까지 아내를 둘 수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비율을 1대 1로 가정할 때 결혼은 최대 1대 4의 비율이니 산술적으로만 따지면 결혼한 남성보다 결혼 못한 남성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무분별한 편중 현상을 막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여유가 있는 자만이 아내를 들일 수 있다로 봐야할까요?)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결혼을 사랑만으로 이뤄지기 힘들게 만들어놨습니다. 신랑이 결혼하려면 신부 측에 ‘지참금’이라는 걸 줘야 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난 당신의 딸을 데려다 행복하게 살게 할 여유가 있소"라는 증명이고 나쁘게 생각하면 "당신이 애써 키운 소중한 딸을 데려가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겠소"라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가부장적이고 남성 차별적이죠) 액수는 천차만별입니다.

낙타 수십 마리를 주는 곳도 있고 1년치 번 돈을 요구하는 곳도 있습니다. 사우디에선 지참금이 우리 돈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을 호가해 결혼 못하는 남성이 늘고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합니다. 적은 돈이 아니다 보니 신랑과 신부 측은 결혼하기 전에(제 아무리 연애결혼이라 할 지라도) 이 지참금 액수를 놓고 질긴 줄다리기를 하곤 합니다. 이집트는 인건비가 걸프지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라 ‘나 결혼하려면 돈을 벌어야 해’라는 총각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가난해도 서로 사랑하면 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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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참금도 돈이고, 돈이 오가면 그에 대한 증명이 필요하겠죠? 그래서 결혼할 때 지참금을 주고 받았다는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이걸 결혼 계약이라고 부릅니다. 이 계약이 성사되면 사실상 결혼한 것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합니다.

중요한 건 이 계약서에는 다른 조건도 추가되는 데 지참금을 주고받은 뒤 결혼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위약금’을 어떻게 처리할지, 또 만약에 이혼할 경우 ‘위자료’는 누가 어떻게 지급할지에 대한 내용이 담깁니다.

우리나라도 결혼 계약이라는 말이 요즘 자주 나오는데 결혼할 때 벌써 헤어질 생각부터 한다는 게 요즘 세태의 씁쓸한 자화상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도 요즘 주례사에서 ‘백년가약’이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라는 말이 사라졌다고 하죠. 중동과 아랍권에선 원래부터 없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결혼 계약에서는 주로 이혼 시 남성이 여성에게 얼마를 지급한다는 투로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곧 이혼 요구를 남성이 주로 한다는 뜻입니다.

● '내 돈 주고 한 결혼, 이혼도 내 멋대로?'

이혼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아봅니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서는 이혼은 가장 피해야 할 것 중 하나라고 지적하지면서도 '알라가 허용한 일'이라고 명시돼 있습니다. 중요한 건 이혼의 주체가 남성으로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남성은 원하면 아내 의사와 상관없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습니다.

특히 이슬람 율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사우디는 더욱 그렇습니다. 물론 여성도 이혼을 요구할 자격이 있긴 합니다만…. 남편의 동의 또는 결혼 계약에 이혼할 자격을 명시했을 경우만 가능합니다. 완전 성차별이죠.

만약에 결혼 계약서에 이혼 시 위자료에 대한 명시가 없으면 이혼 당한 아내는 한 푼도 못 받는가? 이런 경우 결혼 지참금의 절반을 주는 게 관습입니다. 이슬람에선 ‘쿨라’하고 이혼 당한 여성을 구제하고 보상하는 지침이 있어서 해석하는 자에 따라 이혼 위자료의 액수가 달라지긴 합니다.  

어느 정도로 이혼이 멋대로 이뤄지는지 간단히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 전 일이지만 너무 황당해서 적습니다.

● '1점 차이로 깨진 27년 결혼'

아랍에미리트의 40대 남성이 어느 날 가정법원에 이혼을 신청했습니다. 27년간 아무 문제 없이 결혼생활을 해온 사람이었습니다. 이혼 사유는 17살 난 아들의 시험성적 때문입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고등학생인 아들을 공부시키지 않는다며 이번 시험에 평균 90점을 넘지 못하면 이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시험 성적이 나왔는데 평균 89점이었던 거죠. 잘 했다고 수고했다고 아내와 아들을 칭찬해주지 못할 망정 이 남성 ‘1점’이 모자란다며 정말 이혼을 신청한 겁니다. 더 가관인 건 아랍에리미트 가정 법원의 결정입니다. 판사는 이혼사유가 정당하고 결론내리고 이혼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다만 남성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혼한 아내를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는 조건으로요.

 이번 달에는 사우디의 한 남성이 아내가 자신이 보낸 SNS를 확인하고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고 이혼해버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평소 남성은 아내가 스마트 폰으로 친척, 친구들과 SNS에 너무 빠져 있는 게 못 마땅한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무실에서 아내에게 계속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더랍니다.

그래서 SNS를 보냈는데 이마저 답장이 없자 집으로 달려가 봤더니 아내는 여전히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SNS를 주고받고 있더라는 겁니다. 여기에 화가 난 거죠. 저도 화난 상황은 이해합니다. 그렇다고 이혼까지는 너무 했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 경웁니다.

앞서 설명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하고 결혼을 하고 남성 맘대로 이혼을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니 사우디를 비롯한 걸프국가에선 이혼율 증가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에선 한 해 10만 쌍 정도가 화촉을 밝히는 데 4쌍 중 한 쌍은 이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06년에는 2년 사이 이혼증가율이 두 배로 뛰기도 했습니다. 결혼 지참금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남녀간 교제에 대한 폭을 넓히자 남녀 차별적인 관습을 고쳐가자 여러 주장은 나오고 있지만 보수적인 중동과 아랍권의 틀을 쉽게 바꾸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얼굴도 못 본 채로’ ‘얼굴만 보고’ 식의 결혼이 낳은 중동과 아랍권의 성형 열풍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 번 다루겠습니다. 이 주제는 뉴스에도 보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물론 섭외가 쉽지 않아서 고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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