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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취업엔 유리한데, 수업은 빠져야 하고…'졸업예정자들의 이중고'

[취재파일] 취업엔 유리한데, 수업은 빠져야 하고…'졸업예정자들의 이중고'
 서울소재 4년제 대학에 다니는 아들을 둔 A씨의 목소리는 낮고 어두웠습니다. 아들이 이름 있는 기업에 어렵게 취직해 놓고 합격이 취소되게 생겼다는 겁니다.

"정말 어렵게 들어간 회사예요. 얼마나 좋아했는데..."

A씨의 아들은 3학점짜리 강의 하나를 남겨둔 채 졸업예정자 신분으로 유명 기업의 입사 시험을 보았습니다. 어렵사리 합격을 하고 나니 회사에선 ‘곧바로 시작되는 사내 연수를 들어야 한다’고 공지해 왔습니다. 학사 일정상 종강까지는 한 달 이상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교수에게 사정을 말하고 낮은 학점이라도 좋으니 이해해주십사 말을 했는데, 교수가 F를 주겠다는 입장을 밝혀왔습니다. 졸업을 위해 채워야 하는 기본 학점에 ‘구멍’이 생긴 겁니다. 기업 측은 애초 입사시험이 진행되는 전형 과정 중엔 ‘졸업예정자’ 신분이라 하더라도, 학사 일정이 끝나는 2015년 2월 졸업을 조건으로 내걸었습니다.

"합격자 중에 이번 학기 졸업예정자들이 65%정도 되더래요. 요즘은 졸업하기 전에 (사내) 연수 시작되고 막 그러니까, 다들요. 정말 다들 그렇게, 정말 힘들게 그렇게 왔더라고요. 교수한테 사정해야 하고, 막 진짜. 어떻게 어떻게 할 바를 모르겠어요."

"교수 입장에서는 수업을 참석 못하는데 어떻게 학점을 주냐고 얘기하는데 맞아요, 교수님 말씀이 맞는 거예요. 본인의 강의에 대한 책임감이 높으시니까 학생에게도 그만큼의 성실성을 기대하신 거예요. 그런데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사실 요즘 교수들 80~90%는 이런 경우에 그냥 수업 안 들어도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고요, 암묵적으로. "

“교수 말도 맞고 회사 말도 다 맞아요. 교수 입장에서는 졸업하기 전에 취직해서 연수 들어간 건 니 사정이라고 얘기를 하고.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애(졸업예정자 신분으로 합격한 응시생)들은 다 (졸업 처리가) 되는데, 왜 너는 안 되냐.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고.”

"지금 취업 못한 학생들이 워낙 많으니까, 이런 일로 힘들다고 말하는 게 사실 부모 된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에겐 미안하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 어렵게 들어갔거든요, 다른 회사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요."

A씨의 사연을 듣고 의견이 분분하실 겁니다.

‘요즘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데 교수가 융통성이 없다.’, ‘학생이 학기 초부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예상하고 수강신청을 해야 했다. 교수님이 지난 학기 비슷한 일을 겪은 학생들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사전조사라도 해야 했다.’, ‘아니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인재들이 지원하도록 유도해 선택의 폭을 넓히려는 기업의 이기주의다. 졸업예정자들도 응시할 수 있게 해놓고 정작 학사 일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수를 진행하거나 당장 출근하라고 지시하는 방침이 문제 있다.’

다양한 생각들, 모두 맞습니다. 그런데 다음 기사를 한번 봐 보실까요.

취업난에 ‘졸업유예’ 2년새 2배↑…대학은 “돈 더 내라” (해당 기사 보러 가기)

...‘청년백수’ 시대, 대학 졸업 자격을 갖추고도 학교에 남는 ‘졸업유예생’이 2년 새 두 배 가까이 폭증했다. 3일 교육부가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한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11년 이전 졸업유예제를 실시한 재학생 1만명 이상 대학 26곳의 졸업유예 신청자가 2011년 8270명에서 2013년 1만4975명으로 늘었다. 81% 증가다.

올해는 지난달까지 1만2169명이 졸업유예를 신청했다. 2학기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숫자를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올해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한 대학까지 포함하면 지금껏 33개 대학에서 1만5239명이 졸업을 유예했다.... - 2014.04.03 [한겨레]

취업 면접 캡쳐_5
취업난 속에 졸업요건을 갖추고도, 정작 졸업을 미루고, 또 미루고, 또 미루는 일을 반복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학생도, 사회인도 아닌 신분이 주는 심리적 불안 뿐 아니라 ‘졸업 이후 공백’의 시간이 취업하는데 불이익으로 작용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죠. 졸업하고 취업에만 매진하고 있는 상황이 인사 담당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취업을 위해선 졸업예정자 신분이 유리하다는 경험이 공유되고 있는 사회 분위기를 제쳐두고, 학생들에게 ‘학교 다닐 때 평소에 경력이든 학점이든 훌륭하게 완성해 놓았어야지. 졸업생이어도 입사엔 문제없다는 마음가짐 가질 생각은 안 하고 심약하게 졸업만 미루고 있어!’라고 탓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무한경쟁 체제에서 ‘다 같이 제 때 제 때 졸업하고 졸업생 신분으로 입사시험 치자!‘라며 동맹이라도 맺는다면 모를까, 우린 그저 스펙이라고 하면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이런 저런 입장들이 있다 보니 A씨가 말했듯,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이런 상황에 놓인 학생들의 편의를 봐 주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고학년 학생들이 주로 듣는 전공필수 강의의 경우, 10월, 11월 이맘 때 쯤이면 취업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며 수업에 들어오지 않는 선배들을 많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A씨의 사연에 대해서 생각만 많아졌을 뿐 ‘똑’ 떨어지게 잘잘못을 가리기 어려웠습니다. 교수 입장도, A씨의 안타까운 상황도 이해되고요, 애초 졸업예정자 응시조건에 해당 사항을 미리 고지한 기업에게만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앞서 언급했듯이 졸업예정자 신분의 학생들에게도 응시자격을 준 이상, 이들이 학사 일정 이후에 연수나 출근이 가능하도록 배려해야 하는 게 도리 상 맞겠죠.) 어느 한 쪽의 양해에 기댈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런 문제에 봉착한 졸업예정자 신분 합격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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