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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숭례문 단청 부실시공, 왜 그랬을까요?

[취재파일] 숭례문 단청 부실시공, 왜 그랬을까요?
 최근 경찰은 숭례문 단청 부실시공 수사를 마무리하고 수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복원된 숭례문의 단청에 화학안료와 화학 접착제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무형문화재 홍창원 단청장을 비롯해 시공기술자와 임무를 소홀히 한 문화재청 공무원, 감리사 등 13명이 줄줄이 입건됐습니다. 홍 단청장은 전통방법으로 시공하려 했지만 여러 문제가 생기자 몰래 화학안료와 접착제를 사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하지만 전통방식을 지키지 못한 단청 명장의 파렴치만이 부실시공의 원인은 아니었습니다.

● 아교와 화학접착제 함께 쓴 것이 원인

불량식품이 판을 치는 지라, 화학적인 것이 첨가됐다고 하니 괜히 나빠 보입니다. 하지만 사용된 화학 안료와 접착제는 문화재 복구 현장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재료였습니다.

단청은 색을 내는 가루를 접착제와 섞어 바르는 방식으로 채색합니다. 옛날에는 곱게 간 돌가루를 아교에 섞어 단청을 칠했습니다. 하지만 아교가 습기에 약하고 접착력이 떨어지다 보니, 화학안료에 아크릴 수지를 섞는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이미 1972년도에 정부가 표준으로 삼았고, 숭례문에 단청을 덧칠한 1973년, 1988년도에도 화학안료와 접착제가 사용됐습니다.

다만 문화재청의 연구에 따르면 전통 방식의 아교와 현대의 아크릴 접착제를 같이 쓰면 신축성이나 장력에 차이가 나, 칠이 떨어지고 벗겨질 가능성이 커진다고 합니다. 화학접착제를 쓴 것이 문제가 아니라, 처음에 전통 아교를 쓰다가 뒤에 화학 접착제를 쓰니까 문제가 생긴 거라는 말입니다.

홍 단청장에게 지도를 받은 단청기술자 임 모 씨는 “홍 단청장이 경복궁에 해 놓은 단청들은 아직도 멀쩡해요. 15년 넘게 지났는데... 이게 다 화학안료에 포리졸(아크릴 수지 접착제) 섞어서 한 것들이거든요.”라며 설명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차라리 처음에 우리가 하고 있던 방식으로 단청을 했다면...’하는 얘기가 흘러나온다고 합니다.

“현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래요. 전통방식이라고 해서 옛 방식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에, 아교 이상 되는 것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한 거지. 지금은 접착제든 기와든 더 좋은데 꼭 전통방식을 고수해야 하는 건지...”
숭례문

● 왜 전통방식으로 숭례문을 복원해야 하나?

문화재청은 전통방식의 단청을 재현하기 위해 새로 단청을 연구하고 전면 재시공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천연 단청안료에 대한 성능실험과 품질검사를 한 뒤 31억 원을 들여 재시공한다는 것입니다. 좀 늦더라도 전통 안료를 개발하고, 시공방법도 찾고, 그 방식대로 전통기능의 맥을 이어서 숭례문을 재복구하겠다며 강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한편 경찰은 부실 공사 때문에 연구와 재시공에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게 됐다며 홍 단청장에게 업무상 배임혐의를 적용했습니다.

그 많은 비용을 들여 전통방식을 복원하고 재시공하려는 이유를 문화재청에 물었습니다. 복구공사 담당 공무원은 처음 숭례문을 복구할 때의 고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요즘은 문화재에서도 무형의 가치가 중요해지는 추세입니다.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을 지정할 때도 유형의 문화재 속에 담긴 무형의 문화를 모두 살펴본다고 합니다.”

전통기법은 대개 더 비싸고 더 품이 많이 듭니다. 그러다보면 그 기술도 잃어버리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기술’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통적인 수리 기법 자체를 재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전통방식은 사라져가고 있고, 현대 방식은 늘어나고 있으니, 전통방식을 찾는 노력에 우리가 가중치를 두면 비로소 균형이 맞죠.”

문화재청 담당자는 “화재가 난 숭례문을 복구할 때만이라도 전통방식으로 복구하면 모범사례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공사 현장에서 한복을 입고 복구공사를 한다는 것은 복원 대상인 숭례문뿐만 아니라 기술과 정신, 문화까지 복원하겠다는 취지를 웅변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통 기술을 살리려는 노력도, 전통 문화재를 복원하는 노력도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전통을 되살리는 것은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기 마련인데, 정부는 그것보다 제한된 공사기간을 맞추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숭례문은 서울 한복판에서 온갖 대기오염과 직사광선, 비바람에 노출되어야 하는 특별한 환경을 고려해서 복원했어야 합니다. 특히 전통 아교는 대기오염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숭례문 복구단은 회의에서 단청 공사에 들어가기 전에 이런 환경을 고려한 검증과 실험이 필요하다고 두 차례나 요구했지만 문화재청 담당 공무원들은 이를 묵살했습니다. 연말까지 공사를 마쳐야 하는데 실험을 계속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여기 연루된 문화재청 공무원 5명은 직무유기로 입건됐습니다. 감리 책임을 맡았던 감리사들 2명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함께 입건됐습니다.

문화재청의 담당자는 이런 혐의에 대해 ‘정도의 차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습니다. 그해 봄부터 수차례 홍 단청장과 함께 전통 방식의 단청에 대해 내구성 실험, 폭로 실험도 충분히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자문위원들은 더 많은 실험을 요구했고, 심지어 나무가 마를 때까지 단청 공사를 아예 미루자는 얘기도 있었습니다. 담당자는 항변했습니다. “공사기간이 정해져있지 않습니까. 공기문제도 있고...” 하지만 정말 실험을 ‘충분히’ 했다면 공사 부실이 이렇게 빨리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 오롯한 전통 방식의 복원은 가능한가?

문화재 채색에 아크릴 수지를 사용하는 것은 80년대부터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통의 채색용 아교는 국내 생산이 중단돼, 수입한 일본산 아교로 '전통방식'의 단청을 그리는 웃지 못 할 상황도 벌어지게 됐습니다. 아교뿐만 아니라 색을 나타낼 안료도 일본에서 수입했습니다. 일본 수입재료를 썼다고 공사 부실이 일어난 것은 아니지만, 이래서야 ‘전통방식’으로 복원하는 취지가 이미 재료를 살 때부터 훼손됐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은 이런 상황을 두고 안일한 문화재 복원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냈습니다. 전통적인 재료가 없다고 하지만, 결국 수요가 없으니까 사라져 버린 것이고 최소한의 지원으로 수요를 이어나갔다면 지금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통 문화재의 복원과 보전을 위해서는 전통 기술과 공법에 대한 꾸준한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입니다.

이 회장은 장인으로서 도를 어긴 홍 단청장에 대해서 질타하면서도, 문화재 복원 정책의 안일함을 지적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원부자재가 구할 수 없고 바뀌죠. 처음부터 원형 보전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현시대에 맞게 옛날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방침을 세워서 장인들도 양심을 팔지 말고 일할 수 있게끔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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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례문 부실 시공, 충분한 준비 없이 전통 방식 밀어붙인 결과

숭례문 부실시공은 단순히 ‘시공자들이 전통 방식을 버리고 화학약품을 섞어 일어난 사건’은 아닙니다. 전통 방식의 복원을 하겠다는 고집에 기본적인 재료조차 부족한 국내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제한된 공사기간에 공사를 밀어붙인 탓이 큽니다. 문화재청의 입장대로 전통방식을 되살리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충분한 연구와 시간, 그리고 우리가 되돌리기 바라는 숭례문의 모습에 대한 합의가 앞서야 할 것입니다. 

 마치 아파트 공사처럼, 숭례문 복원 공사는 2012년 12월이라는 공사기한이 못 박혀 있었습니다. 대선으로 떠들썩하던 그해 겨울, 높은 장막 아래에서 숭례문은 빠른 속도로 상처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문화재청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전통방식대로 복원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때 화마에 쓰러진 숭례문을 그대로 두자는 논의가 있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는 벗겨지고 떨어지는 단청을 그대로 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함께 보고 반성하고 기억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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