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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상의 벗으세요" 알몸 신체검사에…뿔난 여고생들

갈 길 먼 중국의 여권신장

[월드리포트] "상의 벗으세요" 알몸 신체검사에…뿔난 여고생들
지난 주 중국 산시성(陝西) 난정현(南鄭縣)에 있는 가오타이(高臺)고등학교에서는 예정에 없던 신체검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했습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만 신체검사에 참가시킨 학교 측은 모인 학생들에게 상의를 모두 탈의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경악을 금치못하는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신체검사 담당자들은 바스트와 웨스트, 힙 등 미인대회에나 등장하는 이른바 ‘3종’ 사이즈와 체지방을 측정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남녀 분리 탈의실도 없었고 남녀 학생들이 이리저리 뒤섞인 가운데 상의를 벗어야 할 판이었습니다. 당혹스런 요구에 어쩔 줄 몰라하던 여학생들이 도대체 왜 상의까지 벗고 ‘3종’ 크기를 재야 하느냐고 항의하자 학교 측은 규정이 그렇다고 태연히 답했습니다.

수치스러움을 참다못한 여학생 몇 명이 언론사에 제보하면서 황당한 ‘알몸 신체검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여학생을 배려하지 않는 비인권적인 처사라는 지적에 대해 학교 측은 산시성 교육청과 위생계획위원회가 발송한 공문을 들이밀며 학생들의 체질과 건강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5년마다 한 차례씩 이런 신체검사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가오타이 고등학교가 시범학교로 지목됐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게다가 신체검사 요원들도 모두 병원에서 파견된 의료부문 종사자라고 해명했습니다. 산시성 교육청에서 보냈다는 공문을 살펴보니 일부 학생을 선발해 가슴둘레와 복부, 엉덩이 둘레를 측정해달라는 내용만 있을 뿐 남학생이나 남성 신검 요원이 보는 앞에서 상의를 모두 벗은 채 알몸 상태로 측정하라는 항목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학교 측이 여학생들의 인권에 대한 조금의 배려도 없이 행정 편의적, 남성 편의적(?)인 발상으로 알몸 신체검사를 강요했던 겁니다.

중국 인권변호사들은 학교 측의 알몸 신체검사 방침은 학생들의 최소한의 인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비판했습니다. 아울러 선발된 여학생일지라도 측정을 원치 않을 경우에는 거부할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기본적인 인신의 자유에 해당한다며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학교 내 성희롱 문제를 꼬집었습니다.
신체검사
지난 2010년에도 푸젠(福建)성의 한 병원에서 대학입학시험을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으러 온 이 지역 여학생들에게 남자 의사가 속옷 차림으로 격리된 방에서 침상에 올라 검사를 받도록 해 물의를 일으킨 바 있습니다. '수모'를 겪은 여학생들이 병원의 몰상식한 처사를 비판하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당국이 진상조사에 나서 해당 의사를 해고하고 병원 측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공개 사과하는 소동이 있었습니다.

사실 중국은 성희롱 문제에 너무도 관대한 그래서 양성평등에 있어서 상당히 후진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얼마전 영국 로이터 통신이 리서치 회사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세계에서 직장 내 성희롱이 가장 심각한 나라는 인도였고 그 다음이 중국이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중국에서는 결혼 전 예비신부가 신체검사 증명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는데 여기에는 여성의 성병 보유 여부 등 극히 사적인 내용들이 포함돼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적 약자인 여성 보호에 취약하다보니 간통(중국에서는 여타인통간(與他人通姦)이라고 표현)도 애매모호하게 ‘생활작풍문제’정도로 표현해 처벌 수위나 빈도가 아주 약한 게 사실입니다. 신 중국 설립과 함께 반포된 중국 형법에서는 애초부터 간통죄가 빠졌습니다. 고위층 비리 사정기관인 중국기율검사위 홈페이지에는 간통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도덕에 위배되는 행위이지 형법에 규정된 범죄행위는 아니다.’ 이 느슨함을 틈타 수많은 탐관오리들이 무차별 불륜을 저지르고 있지만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서로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는 듯 제대로 단죄하지 않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서슬퍼런 시진핑 주석의 반부패 캠페인 와중에도 성 관련 문제는 쉬쉬하며 입으로만 전해질 뿐 정식 기소나 재판 과정에서 좀처럼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성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충족의 대상으로 여기는, 축첩(蓄妾)과 전족(纏足)의 구태가 여전히 의식 속에 뿌리깊이 남아 있는 21세기 사회주의의 리더 중국의 일그러진 자화상입니다.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는 건 여성이다!” 공산 혁명만이 중국을, 또 중국 여성들을 자유롭고 행복하게 하리라 설파했던 마오쩌둥이 양성평등을 부르짖으며 남긴 말입니다. 무산계급 혁명을 이끌었던 중국의 이른바 10대 원수(十大元帥)의 평균 결혼 횟수는 4.9회였습니다. 당, 정, 군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예젠잉(葉劍英)은 공식적으로만 부인이 10명이나 됐습니다. 물론 비공식적인 동거여성들은 제외하고 말입니다.

일생동안 네 번 결혼했던 마오 역시도 적잖은 혼외정사와 화려한 여성편력을 자랑하며 염복(艶福)만큼은 왕조시대 여느 ‘황제’ 부럽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끝난 중국 공산당의 18기 4중 전회에서도 여성 보호, 여권 신장 등에 관한 획기적인 개혁 조치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14억 인구의 절반인 중국 여성들이 뿔나기 전에 중국 남성들 스스로 시대착오적인 구습을 깨려는 노력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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