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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달라진 서태지, 그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

[취재파일] 달라진 서태지, 그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
밤늦게 TV를 켜니 슈퍼스타K 시즌 6가 한창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주제가 '서태지'였습니다. 서태지 노래로 경연을 해야 하는 것인데, 어쩐지 참가자들이 참 고생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단 참가자들의 평균 연령대는 20대인데, 데뷔 20년이 넘은 서태지의 곡들을 즐겨 불렀을 것 같진 않아 보였습니다.

제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때 그 노래를 부르지 않는, 부를 수 없는 친구들은 없었습니다. 필승, 시대유감, 널 지우려해, 마지막 축제, 컴백홈...더 설명해봐야 입만 아플 정도. 저의 10대를 장악했던 서태지가 은퇴한 이후, 그런 음악은 한동안 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디션에서 '서태지'라는 주제는, 참가자들이 폭발적인 호응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걱정을 안겨줬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가자들의 무대가 끝나고 TV를 끄려는 순간, 갑자기 무대에 서태지가 등장했습니다. '저게 뭐지' 싶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말없이 무대 계단을 내려와 참가자들과 사회자 옆에 섰는데, 신기하게도 저를 포함해서 스튜디오에 있는 모두가 놀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카메라는 한동안 그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노래를 할까, 아님 그냥 인사를 할까, 혹시 참가자들과 무언가 준비했을까...그 침묵의 시간이 몇 초라고, 그의 입이 빨리 열리기를 기다렸습니다. 서태지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줄이야.

모든 걸 쏟아 부을 수 있을 정도로 서태지와 그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은퇴 이후 그는 거짓말처럼 잊혀 졌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정말 많은 음악을 듣고 지냈습니다. 그러는 사이 서태지는 은퇴를 번복하고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서태지'는 달랐습니다. 매번 듣도 보도 못한 음악으로 귀를 사로잡은 건 같았지만, 웬일인지 서태지의 솔로 음반에는 좋으면서도, 무관심해졌습니다. 그가 공개한건 오로지 음악 뿐이었기에, 좀처럼 모습을 볼 수 없는데다 그런 행적도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왜 팬들을 놔두고 은퇴를 선언했는지, 은퇴는 왜 번복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쓰고 보니 '팬심'을 가장한 '징징거림' 같습니다만, 그땐 정말 그랬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한 개인사가 드러났고, '서태지의 음악'은 더 잊혀진 듯 했습니다.

서태지가 9집 앨범으로 돌아와 활동을 시작한다고 할 무렵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10년 만에 예능에 나온다는데, 좀처럼 집 밖에도 안 나온다면서 과연 그가 예능에 어울릴까 싶었습니다. 그 방송에서 가족 이야기를 털어놨다는 얘기에 또한번 놀랐습니다. 물론 반응은 가지가지였습니다. 서태지가 정점을 찍었던 시절, 인터넷은 더뎠고 sns는 없었습니다. 서태지에 대한 악평은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들어도 못들은 척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서태지는 그냥 사람들의 얘깃거리가 돼 있었습니다. 그가 무슨 얘길 하면, '그 얘긴 왜 그랬을까, 배경이 뭘까' 하며 의심이 뒤따랐습니다. 
서태지 연합

서태지의 9집이 공개됐고, 전 나름대로 좋았습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예측 불가능한 '서태지의 음악'이라는게 반가웠습니다. 5년 동안 기다려준 팬들을 만나는 콘서트 장에선 좀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음향은 최고 수준으로 귀는 호강했지만, 좀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에선 할 말 다 했습니다. '딸아이가 새 음반의 뮤즈다', '아이유 덕을 많이 봤다',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 누가 빨리 가져갔으면 좋겠다', '음반이 나올 때마다 팬과 안티팬의 콜라보레이션이 이뤄진다', '악플이 많은데 대해선 내가 떡밥을 던져준 부분도 있다, 진수성찬을 차려줬다'... 

많은 사람들이 서태지가 등장할 때마다 이것저것 물었습니다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번 활동이 성공적이냐, 아니냐'였던 것 같습니다. 20여년 전부터 이번 활동까지, 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좋든 나쁘든 여전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40대 아버지가 된 그의 음악이 이전과 다르듯이, 그의 성공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론 얘기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음원 중심의 시장, 케이팝을 주도하는 아이돌, 해외 팬들의 영향력.. 어느 것도 서태지와 맞닿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태지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기자회견 때 많이 등장한 단어는 아마 '신비주의'였을 겁니다. 그는 지겹도록 답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데, 서태지가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는걸 젊은 세대들에게 알리고 싶다'고요. 그래서 공연과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을 만나고 싶다고요.

서태지는 웃으면서 생방송 무대에 등장했습니다. 참가자들의 노래가 감동적이었다는 인사도 남겼습니다. 함께 활동했던 가수 신해철이 아직도 의식이 없다며 응원해 달라고 말할 때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습니다. 시청자들이 눈을 뗄 수 없게끔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한참 동안 클로즈업 했습니다. 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참가자들이 아닌 서태지로 바뀐 것 같은, 기분이 묘한 시간이었습니다.

서태지를 왜 이렇게까지 밀어주나, 생방송 주제가 참가자나 평가자들에게 너무 어려웠다며 불편해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래도 서태지가 지금보다 더, 보다 편한 방식으로 대중 앞에 자주 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90년대 추억까지 되살려낸 그의 음악이 반갑기도 하고요. 오랜 시간 대중이 붙여준 수많은 수식어와 상관없이 '가수 서태지'로 그가 음악에 쏟아 부은 시간과 노력만큼 평가받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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