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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외야수는 감독이 될 수 없다?

[취재파일] 외야수는 감독이 될 수 없다?
프로야구인들에게 가을은 늘 명암이 교차하는 계절입니다. 4팀은 신나게 ‘가을야구’를 하지만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팀들은 감독 교체와 트레이드라는 처방을 통해 재기의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SK는 내야수 출신 김용희 감독을, 두산은 포수 출신 김태형 감독을 새 사령탑에 앉혔습니다. 롯데와 한화는 아직 새 감독을 발표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 10개 팀(KT 포함)에는 외야수 출신 감독이 한 명도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최근의 일만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상당히 드물었습니다. 프로야구 원년이었던 1982년 삼미의 박현식 감독, 1987년 삼성을 한국시리즈로 이끈 박영길 감독이 외야수 출신입니다. 그 뒤에 OB의 윤동균, 쌍방울의 김준환 감독이 외야수 출신 사령탑의 명맥을 이었습니다. LG 트윈스를 맡았던 이순철-김기태 두 감독은 내야수와 외야수를 모두 경험해 순수 외야수 지도자는 아닙니다. 정통 외야수로 가장 최근에 팀을 이끌었던 사람은 2009년 9월부터 2년 동안 LG 감독이었던 박종훈씨였습니다. 그 뒤로는 명맥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박종훈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야구의 본고장인 미국도 다른 포지션에 비해 외야수 출신 지도자가 많지 않습니다. 일본은 더 합니다. 외야수 출신이 팀을 맡으면 늘 화제가 될 정도입니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외야수 출신은 역시 어쩔 수 없어’라는 호된 비판을 받습니다. 그래도 일본에서는 1991년, 2001년, 2011년 등 10년 주기로 외야수 출신 감독이 팀을 일본 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습니다. 33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외야수 출신 지도자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적은 아직까지 단 한 차례로 없습니다.

그럼 외야수 출신은 왜 감독이 되기 어려울까요? 한마디로 ‘수비야구’에 대한 능력이 다른 포지션 출신 감독보다 떨어진다고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1급 내야수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고 수비를 합니다. 볼카운트에 따른 투수의 마음, 구질과 타자의 성향 등을 늘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야 합니다. 삼성은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수비의 힘을 확실히 보여주며 챔피언이 됐습니다. 특히 내야수들의 조직적이고 기민한 플레이가 돋보였습니다. SK는 삼성 수비에 눌려 번트, 더블 스틸 등의 작전을 제대로 펼치지 못해 우승을 내줬습니다. 삼성 류중일 감독은 명 유격수 출신으로 삼성 수비코치를 지냈습니다. 자신이 선수와 코치 시절 경험하고 고심하며 키웠던 능력을 감독이 된 후 유감없이 발휘한 것입니다.

내야수 못지않게 포수 출신 지도자도 이런 점에서 확실히 강점이 있습니다. 포수는 투수를 리드하고 내야진을 조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유일하게 같은 팀 선수 전체를 마주보는 포지션입니다. 상대 타자에 대해 사전에 철저히 분석을 하고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야수들의 수비 위치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투수 출신 감독도 나름 장점이 있습니다. 투수는 공 한 개 한 개를 던질 때마다 머리가 바쁘게 돌아갑니다. 상대 타자, 볼카운트, 주자의 유무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직구,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구종을 선택합니다. 같은 공을 던져도 상황에 따라 투구 속도와 방향을 달리합니다. 투수 출신 감독은 선수 시절 이런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감독이 된 뒤 누구보다 소속팀 투수의 심리 상태, 구위, 컨디션을 잘 파악합니다. 또 승부를 가를 적절한 ‘투수 교체’와 ‘선발 로테이션’ 결정에 대한 감각이 뛰어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외야수는 다른 포지션과 비교했을 때 상황에 따른 판단에 신경을 덜 써도 된다고 인식됩니다. 세밀한 플레이나 작전 등이 대부분 내야에서 펼쳐지기 때문에 외야수들은 복잡한 시프트나 시스템에서 내야수나 투수, 포수에 비해 약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외야수들은 심지어 ‘머리 보다는 몸을 쓰는 포지션’이란 비아냥까지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은 결국 고정관념과 편견에 불과합니다. 외야수 출신 지도자의 능력이 떨어진다는 객관적인 이론과 데이터는 없습니다. 외야수 출신 감독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다른 포지션 출신 지도자에 비해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아직 새 감독을 선임하지 않고 있는 롯데와 한화에서 외야수 출신 사령탑이 박종훈 전 LG감독 이후 3년 만에 나올지 자못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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