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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인천장애인아시아드 선수촌 앞에서 벌어진 선교 활동

휠체어를 탄 이란 선수의 어색한 웃음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취재파일] 인천장애인아시아드 선수촌 앞에서 벌어진 선교 활동
 장애인아시안게임 폐막을 하루 앞둔 지난 23일, 구월아시아드선수촌 앞에서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분주히 오가는 각국 선수단 및 임원들 사이로,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다가갔다. 두세 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은 휠체어를 타고 오가는 선수들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기념품 같은 물건을 건네기도 했다.

 언뜻 보면 시민들이 외국 선수들을 환대하는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했다. 먼저 다가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아주머니들을, 다른 나라 선수단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들이 주로 다가가 말을 건네는 건 중국이나 일본 선수가 아닌, 히잡을 두르고 휠체어를 탄 중동 선수이거나 피부색이 다른 이들이었다. 주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인도 선수단이었다.
강청완_1024취파
 '아주머니’들은 선수들과 함께 사진을 찍은 뒤 “God bless you" (신의 가호가 있기를)라는 인사를 한명 한명에게 건넸다. 행운을 빈다는 표현으로 널리 쓰이기도 하지만, ‘God bless you'는 종교적 배경을 지닌 인사말이다. 이들은 휠체어 탄 선수를 붙들고 국적과 나이를 묻기도 했다.

 나눠주는 기념품은 동영상이 담긴 DVD와 볼펜이었다. 무엇을 나눠주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아주머니들은 “선수들이 쇼핑을 갈 수 없어 선물을 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브라질의 축구스타 카카가 그려진 DVD는 “운동 선수들의 하이라이트를 편집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확인해보니 이는 한 기독교재단에서 제작한 유명 선수들의 간증 DVD였다. 'Under the pressure'라는 DVD제목을 검색하니 ‘브라질의 카카, 카메룬 에노, 잠비아 무렌가, 독일 카카우, 미국 구잔 등 축구 스타들이 인생에서 직면한 압박과 극복에 대한 신앙 간증이 담겨 있다’는 한글 설명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 브라질 월드컵 때 우리나라의 한 선교회가 이 DVD를 10만 장 이상 제작해 브라질 현지에서 선교활동을 펼치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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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아주머니’들의 태도는 조심스러웠다. ‘의도’는 엿보였으나 과하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아주머니들은 한 시간 조금 넘게 선수촌 앞에 머물렀다. 현장 관계자들의 통제나 제지는 없었다. (해당 구역인 선수촌 웰컴센터는 일반인들도 왕래할 수 있는 곳이다). 중요한 것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반응이다. 처음에는 활짝 웃던 외국인 선수들도, 일부는 표정이 어색해졌다. 시간이 지날수록 위화감이 역력해졌다. 한 인도 선수는 이들과 지나친 뒤 기자가 “How are you?"라고 묻자 입술을 찡그리며 두 손을 으쓱 들어 올려 보였다. 히잡을 쓴 한 관계자는 고개를 저어 보였다. 

  대한민국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존중받아야 할 자유를 가진 건 머나먼 이국에서 휠체어를 타고 온 다른 나라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이번 장애인아시안게임에 참가한 42개국 가운데 이슬람이나 힌두 문화권 나라는 중동 12개 나라를 포함해 절반을 넘는 23개 나라에 달한다. 히잡을 쓰고 휠체어를 탄 이란 선수의 어색한 웃음 앞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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