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월드리포트] "여성 승진 차별 더 못참아" 日 50대 女계장의 싸움

[월드리포트] "여성 승진 차별 더 못참아" 日 50대 女계장의 싸움
일본 후생노동성의 현역 계장이 21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일본 사회에 잔잔한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소송을 낸 사람은 후생노동성 통계정보부에 근무하고 있는 50대 여성 계장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승진에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을 더는 참을 수 없다는 게 소송의 이유입니다.

소송을 낸 50대 女 계장은, 1989년 국가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당시 노동성 공무원이 됐습니다. 통계정보 관련 업무를 담당하면서 7년 뒤인 1996년 계장에 진급합니다. 이후 남성 동기생들이 2004~06년 과장보좌역으로 승진했고, 지금은 10년 후배인 남성 공무원들이 과장보좌역이 되고 있지만, 그녀는 18년 동안 계속 계장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담당하는 일은 조금씩 변해도, 진급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도쿄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한 뒤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개인의 능력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여성 차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자신만 승진이 늦다면 능력이 없어서라고 할 수 있지만, 모든 부서에서 여성들의 승진이 늦다는 겁니다. 공무원 조직 안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상사에게 거듭 항의했지만, 변하는 것은 없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여성 공무원을 대표하는 듯한 '결의와 분노'가 느껴졌습니다.

요구한 손해배상금은 '670만 엔' 우리돈 6,500만 원 정도입니다. 동기 남성 공무원들과 마찬가지로 승진했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을 계산해 그 차액을 요구했습니다. 아울러 "여성차별을 해소해야 할 후생노동성에서 성차별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사죄문을 관보에 게재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보상금 산정 방식이나 내용을 보면,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긍심'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의 반응은 조심스럽습니다. "아직 소송내용을 몰라 언급할 수 없다. 내용을 확인한 뒤 적절히 대응하겠다" 입니다. 일본 언론들도 전례가 있는지 확인하느라 바쁜 모양샙니다. 현역 국가공무원이 여성 차별을 이유로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의 반응은 확연히 갈립니다. 야후 재팬의 댓글을 살펴보면 냉소적인 반응이 많아보입니다. 4천 건 넘게 추천을 받은 베스트 댓글이 "역시 요령 문제 아닌가? 지도력이나 인품의 문제가 있을거다" 입니다. 정치적인 성향 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보수화하는 '일본 인터넷 문화'를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리천장'으로 상징되는 여성에 대한 승진 차별은 사실 오래된 문제이죠. 국내외에서 유사한 소송이나 인권위 진정같은 '고단한 싸움'은 무수히 이어졌습니다.

미국에서는 지난 2011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던 월마트 여직원들의 집단소송이 있었죠. 2001년 6명의 여직원이 낸 소송이, 우여곡절 끝에 월마트 160만 여직원을 대표한 집단소송으로 발전했습니다. 월마트를 비롯한 산업계는 패소할 경우 유사소송이 잇따르면서 미국 경제 침체로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반발했습니다.

재판 10년 만에 나온 최종판결은 '원고(월마트 여직원들) 패소'였습니다. "160만 여직원들이 모두 똑같은 성차별을 받았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의 길이 막혔습니다. 개별 소송이라면, 변호사 비용도 못 건질 정도로 보상금이 낮아지기 때문에, 소송이 더 이상 지속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년 광주에 있는 대기업 자동차회사 여직원 39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냈습니다. 남성 직원들은 첫 승진까지 평균 7년이 걸리는데 여성들은 12년이 걸렸고, "후배 남자 직원을 상사로 모셔야 하는 일"이 빈발하고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낸 겁니다.

이런 일에 대해서 우리나라 인터넷 여론도 일본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성별과 연령에 따라 반응이 확연히 갈리면서 대체로 '냉소적인 반응'이 다수를 이루게 되죠. 특히 남성 네티즌들이 '병역 부담'을 들고 나오면, 여성 네티즌들은 '임신 출산' 부담을 제기하면서 논의는 필요이상 과열되고, 논쟁의 끝은 '여성부'에 대한 강한 비난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흑인 노동자와 백인 노동자들이 '연대'가 아닌 '갈등'을 빚게 되듯이,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혹은 예비 노동자-의 갈등 양상으로 번집니다.

인구감소와 출산율 저하에 시달리는 일본은 '여성이 활약하는 사회'를 내걸고 있습니다. 여성 취업과 육아 지원책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가 갈수록 줄어들고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만 늘어나는 상황에서, 여성에 대한 지원은 '남성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반발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50대 女 계장의 소송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논란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우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죠.  50대 여계장의 소송 자체보다 이 문제를 일본 사회가 어떻게 고민하고 결론내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