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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아시안게임 '돈 없는 아마추어'의 실패작

[취재파일]

인천 아시안게임 '돈 없는 아마추어'의 실패작

인천 아시안게임도 이제 종착역을 향해 치닫고 있습니다. 국제대회의 성공 여부는 크게 개최국의 성적과 대회 운영 능력, 그리고 관중의 열기 3가지 잣대로 평가됩니다. 개최국 성적과 관중의 열기는 차치하고라도 일단 대회 운영 능력 면에서 이번 아시안게임은 낙제점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게 중론입니다. 개회식이 열린 지난 9월 19일 저는 취재를 위해 인천시 서구 연희동에 건설된 아시아드 주경기장에 갔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지난 5월에 준공됐지만 경기장 곳곳은 ‘완공된 것이 맞느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허점투성이였습니다. 이번 대회는 주경기장뿐만 아니라 자원봉사, 선수 수송 대책, 통역 등 여러 방면에서 빈틈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가 확정된 날로부터 현재까지 7년 동안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을 쭉 지켜봐왔던 기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오늘의 사태는 이미 ‘예견된 실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은 처음부터 ‘반칙’으로 시작됐습니다. 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지난해 발간한 자서전에 따르면 인천시는 지난 2007년 4월 17일 쿠웨이트에서 열린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습니다. 당시 유치 희망국들은 프레젠테이션 마지막 부분에 대통령의 육성으로 ‘정부가 대회를 적극 지지한다’는 말을 넣는 게 관례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에 전념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천의 아시안게임 유치가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안상수 전 시장은 궁여지책으로 노 대통령이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해 ‘평창이 유치되면 정부와 국민이 적극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동영상을 입수해 ‘평창이’를 빼고, 나머지 대목을 프레젠테이션 동영상의 마지막에 끼워 넣었습니다.

당시 유치단에 동행했던 문화체육관광부 직원이 이를 보고해 청와대로부터 ‘삭제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유치총회에서 관련 동영상을 상영해 유치에 성공했습니다. 인천은 축제분위기였지만 김명곤 문체부 장관이 노 대통령의 진노를 사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억울하게 전격 경질됐습니다.

국가원수 동영상을 도용하면서까지 인천 아시안게임 유치에 성공했지만 안상수 전 시장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송영길 전 시장에게 패배했습니다. 송영길 전 시장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주경기장 신축 문제였습니다. 그는 처음엔 신축에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인천시 서구 주민과 정치인들의 반발이 극심해지자 결국 당초 입장을 바꿔 신축을 결정했습니다. 인천 아시아드 주경기장의 신축 비용은 4천9백억 원. 문학경기장을 리모델링하면 2천5백억 원이면 충분했는데 신축하느라 무려 2천4백억 원을 더 들인 것입니다.

가뜩이나 재정이 열악했던 인천시로서는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이번 아시안게임 개회식에 들어간 비용은 150억 원, 총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은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멋진 장면을 보여줄 수 있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개회식뿐만 아니라 2천4백억 원이면 이번 대회에서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를 거의 해결하고도 남았습니다.

한국선수단

인천시 서구 연희동에 웅장한 주경기장을 지은 송영길 전 시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낙선했습니다. 2010년 인천광역시장 선거에서 송영길 후보는 전체 52.69%의 득표율로 당선됐는데 서구에서는 53.71%를 얻었습니다. 올해 선거에는 전체적으로 48.20%를 얻었는데 서구에서도 48.57%에 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주경기장 건설이 서구 주민들에게조차도 정치적으로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는 것이 드러난 셈입니다.

인천시와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지난 7년 동안 “돈이 별로 없다”는 핑계성 말을 늘 입에 달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돈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에서도 함량 미달을 드러냈습니다. 개회식 하루 전에 철저하게 지켜져야 할 성화 최종 점화자가 배우 이영애씨로 탄로된 게 단적인 예입니다.

최종 점화자는 절대 미리 공개돼서는 안되는 게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한 대행사 직원이 <개회식 해설자료>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000씨, 다양한 활동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알리고 있는 000씨는 중국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는 등 나눔과 봉사를 통해 아시아의 화합에 기여함”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습니다.

대행사 직원이 설령 국제적인 관례를 잘 몰라 실수했다 하더라도 인천 조직위에서 누군가 한번만 제대로 읽어봤더라도 이 문건이 외부에 공개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성화 점화자 유출 사건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인천시와 조직위는 이번 아시안게임을 통해 국제종합대회에 대한 기본 인식과 경험 부족, 보안 의식 부재, 치밀한 준비와 교육 미흡 등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냈습니다. 구체적 사례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지만 한마디로 말하면 ‘돈 없는 아마추어’의 민낯을 여과 없이 보여준 셈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아시안게임 운영의 두 주체인 인천광역시와 조직위원회 사이에도 긴밀하고 유기적인 협조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조직위원회 내부에서도 각 파트별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개회식 총연출을 맡은 장진 감독이 “TV 중계 담당자들과 카메라 리허설을 한차례 밖에 하지 못해서 원하는 순간에 정교한 앵글을 잡지 못했다”고 밝힌 것이 극명한 예입니다. 실제 개회식의 완성도는 저예산을 감안하면 그런대로 수긍할 만 했는데 TV 카메라 샷이 현장의 감동을 담아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혹평을 면치 못했던 것입니다.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는 ‘돈’과 ‘능력’ 두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만약 돈이 부족하면 능력이라도 프로처럼 뛰어나야 합니다. 돈도 부족하고 능력도 아마추어 수준이라면 대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도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그런데 ‘인화’와 ‘협조’, ‘소통’마저 제대로 되지 않았으니 성공적인 개최를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무리였습니다. 인천 아시안게임은 유치와 준비, 그리고 실제 대회를 운영하는 과정까지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습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르는 평창 조직위원회가 반드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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