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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손주에게 교육비 1억 원을 줄 수 있는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법안, 깊게 생각하고 발의하세요

[취재파일] 손주에게 교육비 1억 원을 줄 수 있는 할아버지는 누구인가?
사흘 전이었습니다. 내일 새벽에 모닝와이드에 경제 뉴스 출연을 해야 하는데 밤 열 시가 되도록 괜찮은 소식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 때 한 기사가 눈에 띄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교육비로 1억 원을 주더라도 증여세를 내지 않아도 되도록 한 국회의원이 법안을 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우선 발의한 의원이 낸 보도자료를 봤습니다. 40대 가정의 교육비 부담이 크답니다. 좀 살만한 할아버지가 도와준다면 돈을 쓸 여력이 생기고 경제가 좋아질 거랍니다. 그래, 다들 참 교육비 때문에 힘들어하지, 노란 옷을 입은 야쿠르트 아주머니 중에 자식 교육비 때문에 일하는 분들이 적잖다고 하니까, 오죽하면 이런 법안을 만들었을까, 이렇게 소개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증여세

그런데 문득 든 생각, 이 법이 통과되면 할아버지는 세금을 얼마나 아끼게 되는 걸까, 인터넷에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어, 그런데 이상한 글들이 걸립니다.

“할아버지가 주신 유학비, 세금 내야 하나요?”

미국 한인 정보지들에 이런 기사들이 보입니다. 유학을 간 손주가 할아버지 돈을 받아서 생활하는데, 세금을 안 내는 방법은 없냐는 겁니다. 어, 싶었습니다. 보니 할아버지 생전엔 문제가 없지만, 돌아가신 이후에 국세청이 조사를 들어온다는군요. 국세청이 우리 모르게 일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는데

“사회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 수준의 교육비는 이미 증여세를 내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미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주는 교육비는 어지간한 수준이면 다 봐주고 있었습니다. 40대 가정이 한달 쓰는 평균 교육비가 50만 원입니다. 이 정도는 할아버지가 줘도 문제가 없다는 거죠. 그리고 이미 2천만 원까지는 세금 계산에서 빼줍니다. 이 정도면 보통의 할아버지에겐 충분한 돈입니다. 그러고 보니 법안에 나온 1억 원이면 한 달 50만 원 쓰는 40대 가족에겐 200개월, 16년 교육비입니다. 일반 가정 수준이 아닌 거지요. 저에게는 식스센스 급 반전이었습니다.

그러고 법안을 다시 보니 무려 4년 안에 1억 원을 다 써야만 면세를 해준다는 내용입니다. 1년에 2천 5백만 원입니다. 그것도 학원 같은 사교육은 안 됩니다. 공교육만 쳐준답니다. 공교육 중에 1년에 2천 5백만 원이 필요한 것이 뭐가 있을까요. 일반적인 대학교육 이상의 것입니다. 세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증여세

1. 해외 유학 
2. 의학 전문 대학원
3. 로스쿨


서민들이 고통받는 그런 교육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입니다. 아니, 일부 부의 대물림 수단으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교육 과정입니다. 이 사람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보게 될 겁니다.

해당 의원은 과연 이런 사실들을 알면서 법안을 냈을까. 대표 발의한 의원인 새누리당 류성걸 의원의 프로필을 찾아봤습니다. 전 기획재정부 2차관. 정부 예산을 책임지던 분이니, 세금에 대해서 상당한 지식이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는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냥 그렇게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고 법안을 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국민들 어깨는 이 법안으로 더 무거워지지 않을까요. 담뱃세가 오른답니다. 주민세도 오르고 자동차세도 오른답니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이런 법안이 나왔습니다. 대부분 1억 원을 교육비로 선뜻 주실, 그런 할아버지는 없습니다. 1억 원을 못 주는 대부분 노부모들도 마음은 마찬가지일 겁니다.

좋습니다. 그런 법안을 낼 수도 있죠. 하지만, 내고 싶다면 취지를 솔직하게 이야기하시는 게 어떨까요. 숨기지 말고 말이죠. 세법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기자도 단 두시간 만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국민들도 곧 알게 될 내용이었습니다. 법안을 내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했어야 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 1억 원을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손주가 내야하는 세금은 천 2백만 원입니다. 솔직히 그럴 능력 있는 분들, 손주에게 그 정도 세금까지 감안해서 더 주시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세금 대신 내 주는 것도 증여니까 조금만 더 여유있게 주시면 됩니다. 서민들도 한푼 두푼 세금을 더 걷어내는 이 때에, 그 정도는 지도층이 부담해야 할 조세정의라는 생각이 듭니다.  


▶ [친절한 경제] 손주 교육비 1억까지 상속세 면제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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