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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숭례문 복원에 '공장제' 기와?…논란의 전말

[취재파일] 숭례문 복원에 '공장제' 기와?…논란의 전말
최근 숭례문 기와에 대한 보도가 하나 나왔습니다. 기와를 부실 복원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기와를 전통 가마에서 만들지 않고, 22,000장 가운데 15,000장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냈다는 것입니다. ‘숭례문 부실’이라고 하면, 사실 별로 새로운 느낌도 들지 않습니다. 이골이 났습니다. 금강송과 단청을 비롯해 수많은 부실이, 이미 잔뜩 보도됐기 때문입니다. 신선한 뉴스라는 느낌이 덜 들죠. 그래도 부실 복원의 의혹을 뒤집어쓴 문화재가 국보 1호 숭례문이기 때문에 확인해볼 필요는 충분했습니다. 기와까지 부실 복원으로 드러나면, 숭례문은 우리 문화재 복원의 천박함, 그 치부를 다시 한 번 상징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전통식 기와가 아니라, 공장 기와라는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실부터 확인했습니다. 의원실 관계자는 공장 기와를 만든 곳으로 경기도 소재 A업체를 지목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가서, 업체 사장이 숭례문에 공장 기와 15,000장을 납품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게 공장에서 찍어낸 기와인지, 전통 가마에서 제작한 기와인지는 자신들도 확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공장 기와라는 말은 들었는데, 정말 맞는지 “아직 믿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현장 조사를 해서, 전통 기와인지 공장 기와인지 확인하면 되지 않느냐고 했더니, “솔직히 검증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가오는 국정감사에서 기와를 만든 사람을 증인으로 신청하려고 한다고, 의원실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공장 기와라는 의혹의 근거는 부실해 보였습니다. A업체 사장이 말했다는 것 말고 다른 증거가 없었습니다. 숭례문 복원에 공장 기와를 납품했으면, 뭐 기록이라도 남은 게 있을 텐데, 그런 건 요구하지 않았나요? 물었더니, 그런 건 의원실에서 요구할 수 없었다고 답했습니다. 그럼 원래 전통 기와를 납품하기로 돼 있던 사람은 뭐라고 해명했나요? 물었더니, 그 사람과 통화해본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숭례문 기와가 ‘공장’ 출신이라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건, 그 공장 기와를 납품했다고 하는 A업체 사장의 진술이 유일한 것 같았습니다. 그 진술도, 시간과 장소를 포함한 구체적인 진술은 아니고, 그냥 "내가 줬다"는 간단명료한 한 마디입니다.

숭례문 캡쳐_640
숭례문 복원에 실제로 전통 기와를 납품한 김 모 씨와 통화를 시도했습니다. 그는 언론 보도에서, 문화재청으로부터 전통 기와 예산을 받아놓고, 실제로는 값싼 공장 기와를 대량 납품해 차액을 챙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기와를 만드는 장인으로 중요무형문화재인 고 한형준 선생으로부터 제작 기술을 전수 받은 제자입니다. 숭례문 복원 공사에서 값비싼 금강송을 빼돌렸다가 재판에 넘겨진 신응수 대목장이 문화계에 대한 불신을 남긴 상황에서, 김 씨가 그 불신을 더욱 뿌리 깊게 만들게 되는 것인지 걱정이 됐습니다.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끊었고, 나중엔 받지 않았습니다. 일단 문자메시지를 남겨놓았습니다.

김 씨에게서 부탁을 받고 공장 기와를 납품했다는 의심을 받는 A업체 사장, 그는 통화가 됐습니다. 사장은 자잘한 질문에도 일일이 답했습니다. 요지는 이렇습니다. 최근 의원실 관계자가 찾아왔을 때, “숭례문 복원 공사에 공장 기와를 납품했다”,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의원실 주장과 맞지 않죠. 그럼 왜 그런 보도가 나간 거죠?

사장의 해명은, 의원실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가 건물을 올리는데 숭례문 복원에 쓴 것과 똑같은 기와를 쓰고 싶어 하신다고 말을 꺼내면서, 그걸 구해줄 수 있느냐고 물어봤다는 것입니다. 이어 숭례문 기와 15,000장도 사장님이 납품한 게 맞느냐고 여러 차례 묻기에, 기와를 한 장이라도 팔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냥 맞다고 대충 둘러댔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게 뉴스로 나가서, 이렇게 힘들게 될 줄은 몰랐다고, 사장은 말했습니다. 15,000장이라는 수량을 의원실 쪽에서 먼저 얘기했나요, 아니면 사장님이 먼저 말했나요? 이 질문엔 의원실에서 온 사람이 먼저 언급했다고 했습니다.

A업체는 공장 기와를 숭례문에 넘겼다는 의혹을 받았지만, 사실 A업체에 기와를 찍어내는 공장은 없다고 했습니다. 사장은 기와 유통업계에서 30여 년을 일한 베테랑이지만, 기와를 다른 공장에서 사들여 중간에서 유통만 하는 도소매업자일 뿐, 그걸 직접 만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에게 전통 기와 대신, 값싼 공장 기와를 달라고 부탁했다, 이런 의심을 받은 김 모 씨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황당해 했습니다.

또 이번 의혹이 불거진 뒤, 김 씨와는 처음 통화를 해봤다고 했습니다. 김 씨가 먼저 전화를 걸어와서, 사장님이 숭례문에 공장 기와 납품하셨어요? 이렇게 묻기에 당연히 아니라고 했다, 그게 전부라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기와장이’들은 숭례문에 가서 보면, 그게 공장에서 만든 건지, 전통 기와인지 금방 알 수 있는데, 직접 확인은 안 하고 이상한 보도만 나간다며 답답해했습니다.

그가 “한 번 보면 안다”고 말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전통 기와와 공장 기와의 제작 방식, 그리고 결과물이 완전히 다르고,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전통 기와는 흙 반죽을 손과 발로 만듭니다. 조선식 가마에서 등유에 불을 피워 기와를 굽습니다. 가마 앞에서 장작을 때우니까, 가마 앞에 있는 기와와 뒤쪽에 있는 기와가 받는 열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구워놓고 보면, 색깔이 저마다 다릅니다. 얼룩덜룩합니다. 반죽을 떼어낼 때도 손으로 하니까, 모서리가 매끄럽지 않고 거칩니다.

반면, 공장에서 만든 기와는 겉에 탄소를 코팅하고 가스불로 굽기 때문에, 완제품을 보면 겉이 시커멓습니다. 모서리도 기계로 싹둑 잘라 처리해 매끈매끈합니다. 그래서 기와장이들은, 그냥 한 번 보면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숭례문 가서, 크레인 타고 한 번 보면 해결되는 일이라고, A업체 사장이 답답해 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전통제냐 공장제냐, 이번 논란은 사실 지난 5월 감사원의 숭례문 복원 감사 결과와 맞닿아 있습니다. 감사원은 당시 숭례문의 단청과 돌공사, 목공사 분야 등을 꼼꼼하게 감사한 결과를 내놓았고, 언론은 이를 대거 보도했습니다. 감사원 감사에는 기와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감사 결과의 핵심은 숭례문 기와의 ‘크기’가 화재 전과 비교해 작아졌다는 것입니다. 감사원은 “화재 전 기와의 크기로 만들다가, 시공성 등을 이유로 ‘공장제’ KS기와 형태로 규격을 변경해 시공”했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화재 전 기와의 크기대로 6천 장을 만들어놓고, 크기를 중간에 갑자기 줄인 뒤 19,000장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기와가 작아진 이유에 대해 감사원은, KS기와를 생산하는 B업체 사장이 숭례문 복구단을 찾아가서, 기와 크기를 작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밝혔습니다. ‘공장제’라는 표현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감사원은 그때 이미, 기와를 어디서 만들었는지도 분명히 확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숭례문 감사를 주도한 담당자와 통화했습니다. 그는 숭례문 복원에 쓰인 기와는 “전통 가마에서 만든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적어도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기와는 아니라는 걸로 파악했다는 것입니다. 또 감사 결과에 나오는 B업체는 A업체와 다른 곳이고, 크기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 B업체도 숭례문 복원에 기와를 납품하려고 시도는 했지만, 실제로 납품하진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감사원 관계자는 설명했습니다.

당시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연구소에 의뢰해 기와를 시험한 결과, 품질에는 이상 없는 것을 확인했다고 했습니다. 기와를 구운 온도는 전통 가마 온도와 비슷하게 나왔는데, 실험 방법의 한계 때문에 정확한 온도 계산은 불가능했습니다. 감사 담당자는 다만, 전통 가마에서 만들긴 했지만, ‘전통 방식’은 아닌 부분이 있어서 그걸 감사 결과에 지적해놓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장소는 전통 가마가 맞는데, 제작 방식은 전통이 아닌 것, 그건 또 뭘까요.

전통 기와를 만드는 건 무척 복잡합니다. ①흙을 채취하고 ②거기다 괭이질을 해서 흙을 섞습니다. ③흙을 쌓아올리고, 사람이 거기 올라가 발로 다집니다. ④장차 기와가 될 흙 판을 크게 만들고, ⑤그걸 ‘와통’을 이용해서, 기와 모양을 만듭니다. ⑥한참 말려서 ⑦가마에 굽는 소성 작업을 거칩니다. 감사원이 전통 방식이 아니라고 밝힌 것은, ①번과 ②번 공정을 사람이 직접 하지 않고, 흙 공장에서 납품받아 ③번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흙 공장에서는 사람이 일일이 괭이질을 하지는 않습니다. ‘토련기’라는 기계를 이용해 흙을 섞고 반죽합니다. ①번과 ②번까지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르려고 한다면, 상당한 인력과 시간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감사원은 ③번 과정부터 전통가마에서 진행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니 숭례문 기와는 인력이 많이 드는 초기 공정을 현대식으로 제작한 뒤, 그걸 찍고 구워내는 건 전통 방식을 따른 기와가 되는 셈입니다.

숭례문 전통 기와를 만든 김 모 씨, 제가 남긴 문자메시지에 지난 주 답을 보내왔습니다. 기와를 유통하는 A업체 사장이 국회의원실 관계자와 언론사 기자를 농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A업체 사장을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전해왔습니다. 그는 전통 기와 전량을 직접 만들었다는 입장입니다.

김 씨는 공장제 기와라는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공장제 기와를 납품했다고 알려진 A업체 사장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하고, 감사원은 이미 5월 전통 가마에서 만든 기와는 맞지만, 괭이로 흙을 반죽하지 않았다는 것만 지적한 상황입니다. 또, 감사원 감사에 등장하는, 기와 규격 변경에 영향력을 행사한 B업체도 숭례문에 자신들의 기와는 들어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렇게 손에 잡히지 않는 구름 같은 의혹에, 문화재청 관계자는 숭례문 기와에 대해 당장 특별한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감사원에서는 기와를 화재 이전의 크기로 돌려놓으라고 문화재청에 통보했지만, 그러려면 성능에 문제없는 기와를 전부 걷어내고 다시 시공해야 하므로, 지금 기와가 못쓰게 되는 상황이 오면, 재시공을 검토하겠다는 게 문화재청의 계획입니다.

A업체 사장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끝까지 믿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고, 보내왔습니다. 기와가 전통제냐, 공장제냐, 어차피 숭례문에 가서 한 번 보면 될 걸, 의혹만 잔뜩 부풀었다가 사그라지고 있는 셈입니다. 사실과 무관하게, 숭례문에는 또 한 번 불신의 생채기가 남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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