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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매 맞는 노인' 방관하는 요양시설 평가제도

질 낮은 요양시설 퇴출 방안 마련해야 할 때

치매나 심한 노인성 질환으로 스스로 일상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 분들이 늘면서 우리나라에는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도입됐습니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노인 분들에 대한 돌봄 서비스 비용의 80%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대상 노인의 요양 등급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노인 한 명당 하루 43,870원~56,080원, 한 달이면 130만 원~170만 원의 요양급여가 책정되는데, 이 비용의 80%를 건강보험공단이 요양시설에 지급하는 겁니다. 

공단 입장에서는 한 해 1조 6천억 원(2013년 기준)이 투입되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으로, 제도 시행 이후 전국에는 요양원 등 노인요양시설이 우후죽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현재 전국에는 4,776개의 요양시설이 세워졌고, 그 곳에 12만 명의 노인들이 입소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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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이런 요양시설에서 입소 노인들에 대한 학대가 급증하고 있다는 내용의 정부 보고서가 공개됐습니다. 지난해에만 251건의 노인 학대 사례가 보고됐지만, 전문가들은 요양시설 내 노인 학대의 경우 학대 피해자가 대부분 치매를 앓거나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분들이고 가족의 방문도 잦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겉으로 드러난 학대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학대 피해자 가족의 이야기는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치매 노모를 집 근처 요양원에 맡기고 매일 찾아가 안부를 확인했다는 이 남성은 석 달 전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게 됐습니다. 노모가 갑자기 '밤에 누군가에게 맞았다'며 허리 통증을 호소한 겁니다. 치매기가 있는 노모이기에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통증을 호소하는 노모를 근처 정형외과에 모시고 갔다 '충격에 의한 척추 골절이 있으며, 서둘러 수술 받지 않으면 한 달 뒤에는 걸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난 뒤에는 의심이 커졌다고 합니다. 결국 다툼 끝에 요양원 내부 cctv 화면을 보게 된 이 남성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동영상 속에 남성 요양보호사가 노모의 따귀를 때리며 거칠게 폭행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양시설 내 노인 학대 사례는 생각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했습니다. 당국이 그 동안 요양시설의 양(숫자)을 늘리는 데만 급급했지 질 관리에 있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년 마다 한 번씩 하는 건보공단의 요양시설 평가도 현장에 나가 서류를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뿐 시설 입소자나 종사자를 상대로 한 제대로 된 면담은 시행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일하던 요양원의 노인 학대 사실을 내부 고발했던 한 사회복지사를 만났는데, 해당 요양원도 평가에서는 최우수 등급을 받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내부 고발로 문제가 불거진 뒤에도 학대 당사자였던 요양보호사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은 채 슬그머니 다른 요양원으로 자리만 옮겨 노인 돌보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 심각한 문제는 정기 평가에서 최하위 등급을 받아도 해당 시설에 아무런 불이익이나 제재가 없다는 겁니다. 복지부는 현행 평가제도가 입소자들의 요양시설 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애초에 수준 미달로 드러난 요양시설에 대한 제재를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노인 을 학대하는 요양시설조차 걸러내지 못한다면 이런 평가가 무슨 소용일까요? 노인 학대 경력자가 버젓이 일하도록 방관하는 평가제도가 어떻게 입소자들의 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다른 복지시설들처럼 노인요양시설도 입소자들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는 이들에 의해 운영되어서는 안 됩니다. 노인 분들과 그 가족을 위해서는 물론 성실하고 정직한 다른 요양시설 종사자들을 위해서라도 수준 미달의 비양심 요양시설은 반드시 걸러져야 합니다. 제대로 된 평가제도와 퇴출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P.S. 그제 저녁 8시 뉴스에서 관련 보도가 나간 뒤 보건복지부 담당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기사에서 드러난 학대 요양시설과 문제의 요양보호사들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합니다. 건보공단과 논의해 평가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제라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나오길 바라며, 지켜보겠습니다.       

[8월30일 8시뉴스] 요양원서 매맞는 노인들…당국 평가는 '최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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