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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군대야 경찰이야?'…동네로 온 전쟁무기들

점점 군대화되는 美경찰, 경악하는 미국인들

[월드리포트] '군대야 경찰이야?'…동네로 온 전쟁무기들
지난 5월 미국 조지아주 코닐리아의 주택가, 새벽 3시의 시간, 평온한 가정집 앞에 경찰특공대, SWAT 대원들이 들이닥쳤다. 폭발과 함께 현관문이 튀어나오며 쓰러졌고 한 대원은 집 안으로 거침없이 섬광수류탄을 던졌다. 이 섬광탄은 18개월 된 아기가 자고 있는 침대 안으로 떨어졌다. 얼굴을 다친 아기는 혼수상태에 빠졌다. 마약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아버지를 체포하는 작전이었다. 엄마인 알리샤씨는 분노했고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집 안 상황이 어떤지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섬광탄을 던졌습니다. 아기의 배게 옆에서 폭발했어요."  지역 경찰서의 해명은 가관이었다. "아기 옷이나 장남감 등 아기가 있다는 흔적이 없었어요. 아기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불행하게도 있었습니다."

미 인권단체 "SWAT 작전의 79%가 일반 가정집"

미국 인권단체인 시민자유연맹(ACLU)은 보고서에서 2010년 7월부터 3년 동안 경찰특공대의 작전을 분석한 결과, 경찰특공대 투입의 79%가 일반 가정집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인질극이나 무장범 등 위험한 상황에 대비한 경찰특공대가 가정집에서 마약을 찾아내는 일에 출동하는 빈도가 69%였으며, 본래 목적으로 출동한 건 7%에 불과했다. 미국 경찰은 최근 입구에서 폭발물을 터뜨려 문을 부수고 용의자의 주의를 흐트러뜨린 뒤 급습하는 용의자 검거 작전을 자주 펼치고 있다. 군대와 다름없다.

몇달 전부터 미국의 진보적 언론이 주목하기 시작한 이런 추세에 대한 반발은 결국 미주리에서 터졌다. 경찰 총격에 숨진 18살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죽음에 항의하는 흑인들의 시위행렬 앞에 지뢰방호용 MRAP 장갑차가 등장한 것이다. 장갑차 위의 경찰관이 겨누고 있는 7.62 밀리 중화기에는 망원조준경이 달려있었고, 다른 경관들은 유탄 발사기가 달린 소총과 군용 대검을 착용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의 미군이 쓰던 것과 같은 것들이다. 미국 경찰은 어디서 이런 무기들을 얻은 것일까? 미 국방부가 1990년대부터 군에서 쓰지않는 잉여 장비를 국내 사법기관에 넘길 수 있는 무기공급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퍼거슨시에서 등장한 무기는 분명 옛날의 것들이 아니었다.

미주리에 등장한 군용무기의 출처는?

미 국방부는 지난 1990년대부터 군에서 더 이상 쓰지않는 잉여장비와 화기를 경찰같은 사법기관에 넘길 수 있는 '1033'프로그램을 그 배경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장에서 사용되던 무기를 국내 치안에 일부 재활용해 연방정부와 지방정부 양측에서 예산을 크게 절약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장기간 진행돼왔던 자연스러운 정책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나타난 양상은 좀 다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미주리주 시위진압 경찰이 들고 나온 장비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그동안 미국 전역의 경찰이 공급받은 장비 가운데는 20만개의 자동소총 탄창과 장갑차, 야간투시장치에 심지어 중무장된 공격용 헬기와 무인기 드론까지 있다고 전했다. 헌 무기를 양도받는 것이 아니고 새 무기를 구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비즈니스위크는 이런 경찰 군대화는 아프간전과 이라크전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무기가 본국으로 반송되면서 경찰에 공급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미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3년 미국 전역의 8천여개 법 집행기관에 4억4천900만달러, 우리 돈으로 4천590억원의 군수품이 공급됐다. 미국 인권단체들은 최근 아프간과 이라크 등 분쟁지역에서 미군이 잇단 철수하면서 판로가 막히게 된 미국의 군수업체들이 잉여 생산된 무기의 국내 재판매를 위해 미 연방정부와 의회에 집요한 로비를 벌여왔다고 비난하고 있다.

여기가 전쟁터냐?…본격화된 시민 반발

최근 미 뉴저지주 버겐카운티에서는 군용 지뢰방호 장갑차 2대를 치안용으로 도입하겠다는 지자체의 결정에 시민들이 항의하고 나서면서 적지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한때 계획이 백지화되는 수순을 밟다가 다시 도입이 전격 결정됐다. 시민단체측은 "우리 동네에 왜 이런 무기가 필요한가?"라며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국 민주당 소속의 행크 존슨 의원은 국방부의 경찰에 대한 무기 판매를 제한하는 '무장제한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는 랜드 폴 상원의원도 "최근 퍼거슨시에서 목격한 장면은 전통적인 경찰의 치안활동보다는 전쟁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미국 시민자유연맹(ACLU)의 최근 분석은 더 본질적이다. "중무장한 경찰은 자연스럽게 전사의 사고방식을 가지게 돼 시민을 적으로 오판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치안 활동과 군사 작전을 점차 구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주도하는 분쟁지역 철군 정책으로 미국내 의회 로비의 최전선에 위치했던 군수업체들은 다른 출구를 찾아야했었고 그것은 미국 경찰이었다. 판매를 위해 때론 전쟁까지 부채질한다는 의혹을 받곤 했던 이들에게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최근 인터넷에는 미국 경찰특공대 SWAT 대원들이 애꿎은 집에 들이닥쳐 망신을 당하는 풍자영상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찰의 가정침공에 맞서 모든 아빠들이 람보가 돼야 할 판입니다"라는 조롱섞인 내레이션이 곁들여졌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6월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며 10여 년 만에 전쟁에서 벗어나는 미국에서 전쟁 전술이 조용히 확산하는 것은 역설적이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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