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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뜨거운 감자' 복합리조트 ① 개평으로 받은 페라리를 기부한 카지노 '큰 손'

[취재파일] '뜨거운 감자' 복합리조트 ① 개평으로 받은 페라리를 기부한 카지노 '큰 손'
마카오의 한 카지노 리조트. 구매담당 책임자 방의 전화벨이 울렸다. 리조트 회장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전자 제품과 객실 가구, 두루말이 휴지, 장식용 꽃까지 안 사본 것 없는 구매부 베테랑이었지만 이번에는 좀 당황스러웠다. "이틀 내로 스포츠카 페라리 한 대를 구매해서 해외로 배송할 준비를 마치라"는 지시였다. 자동차 딜러를 수배하고, 차종을 선택하고, 차값으로 수억원을 일시불로 지급했다. 준비를 마친 구매담당이 회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회장님, 갑자기 페라리는 어디다 쓰려고 그러시는지요?" 회장은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주말에 우리 호텔에 놀러온 중국 VIP 알지? 그 친구가 바카라 게임을 하면서 돈을 많이 잃었어. 다음 휴가 때 또 모시려면 섭섭하지 않게 해서 보내야지..." 대충 감이 잡혔다. 'VIP가 50억원을 잃었는지, 100억원을 잃었는지 모르지만 개평으로 최고급 페라리를 주는 거구나...' 카지노가 벌어들인 돈이 짭짤하니 몇억원 짜리 차 한대 사주는 것도 충분히 남는 장사였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 날 벌어졌다. 귀가 준비를 하던 VIP에게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여쭈었다. "회장님께서 저희 카지노를 이용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하다며 페라리를 선물로 준비하셨습니다." 돈 잃은 사람 놀리는 거냐는 호통이 날아 올 법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다 들은 VIP는 오히려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 페라리를 마카오의 불우한 어린이를 위한 자선단체에 기부해 주세요. 저는 며칠 동안 잘 놀다 가니까 신경쓰지 마시고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돈 잃고 속 좋은 놈 하나 없다고 했는데, 도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아니면 배포가 큰 진짜 사나이인가? 별의 별 생각이 다 들고, 상대적으로 왜소해진 자신이 더 쪼그라드는 묘한 열등감마저 밀려왔단다. 이 이야기는 실제상황이다. 호텔업계에서 20년 넘게을 일한 지인이 직접 겪었던 일화를 들려준 것이다. 해외여행 때 한두번 카지노를 구경한 적은 있지만 나는 도박에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인지 에피소드를 듣고 우선 그 카지노의 수입이 궁금했다. 얼마를 벌어들이고, 얼마를 세금으로 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까? 한발 더 나아가 저런 눈 먼 돈을 한국으로 끌어 오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즐거운 상상도 해 보았다.

조정 취파


싱가포르 중심에는 4년전 랜드마크가 하나 들어섰다. 마리나베이샌즈 리조트다. 세계최대 리조트회사인 샌즈그룹이 투자하고, 우리나라 쌍용건설이 시공했다. 호텔 타워 세개가 선박 모양의 구조물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 장관인데 57층에 있는 수영장에서는 싱가포르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족 여행으로 마리나베이를 다녀왔다면 이 리조트가 카지노가 딸린 복합리조트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일년 내내 국제회의와 전시,박람회가 열리는 컨벤션 센터의 규모가 코엑스의 3.5배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는 것도 꼼꼼히 들여다 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8조원을 들여 지은 마리나베이 리조트는 연면적이 축구장 54개와 맞먹는다. 호텔 객실만 2,500개가 넘고 54,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컨벤션 센터를 갖추고 있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출입이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카지노 시설이 전체의 3% 정도를 차지한다. 개장 1년 반만에 2천만 명이 다녀갈 정도로 대표적인 관광 명소가 되었다. 2000년대 들어 경기 침체를 겪던 싱가포르는 돌파구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 아버지 리콴유에 이어 총리직을 이어받은 리센룽은 건설산업과 고용, 관광산업을 일으키고 세수를 늘릴 수 있는 방안으로 복합 리조트에 주목한다. 대규모 국제회의와 전시, 박람회, 호텔과 쇼핑몰, 테마파크, 게임 시설이 한데 뭉친 복합 리조트를 건설해 경기를 살려보기로 마음 먹는다.

그러나 보수적인 싱가포르에 카지노를, 그것도 내국인 출입을 허용하는 시설을 들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아버지 리콴유는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지 카지노는 안된다'며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리센룽은 카지노도 관리만 잘 하면 부작용을 막으면서 따라오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국민을 설득했다.

1년 여에 걸친 노력 끝에 싱가포르에는 두 개의 복합리조트가 들어선다. 마리나베이와 센토사의 리조트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2009년 968만명이던 싱가포르 방문객 숫자는 4년만에 1,550만명으로 급증했고, 관광수입도 94억 달러에서 187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런 시설에 힘입어 지난해 싱가포르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994건의 국제회의를 유치했다. 해마다 이들 리조트에서 거둬 들이는 세금만 1조원이 넘는다. 서정하 주 싱가포르 대사는 이런 복합리조트가 만들어 낸 일자리가 간접고용까지 합치면 6~7만개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 취파


이렇게 세계 관광전쟁은 복합 리조트를 중심으로 새로운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역사적 기념물이나 빼어난 자연풍광이 없으면 오로지 쇼핑이나 게임에 기대 사람을 끌어 모으던 방식이 경쟁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마이스(MICE)산업을 일으킬 매개체인 복합 리조트를 관광산업의 키워드로 선택한 곳은 싱가포르 뿐만이 아니다.

20년 전 신혼여행 때 잠시 들렀던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당시로선 꽤 많은 볼거리를 갖췄음에도 도박 도시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었다. 호텔 로비에서부터 시작되는 슬럿머신 행렬과 자욱한 담배 연기... 그리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라스베이거스는 확 달라졌다. 카지노 이미지에서 탈피해 국제회의가 열리고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찾는 복합 리조트 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베네시안-팔라조, 윈 라스베이거스 앙코르, 시티 센터 등 대규모 컨벤션과 호텔, 카지노를 두루 갖춘 복합 리조트들이 속속 들어서면서 관련 산업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 인구 50만명의 라스베이거스를 찾는 방문객만 한해 3,900만명, 연간 19,000건에 이르는 각종 회의와 컨벤션 행사를 복합리조트 인프라가 뒷받침하고 있다. 베팅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놀이터이자 음습한 도박 도시 마카오도 변신하고 있다. 쇼핑과 컨벤션, 테마파크가 어울어진 가족, 비지니스 리조트로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도박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절대 다수 고객을 차지하고 있어서 싱가포르만큼 통제된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카지노를 하지 않는 방문객들을 위해 흡연을 하는 게임 테이블은 유리로 차단벽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는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데 애쓰고 있다. 게임은 고수익을 올리는 수단으로 남겨 놓고, 다른 관광산업들을 발전시키는데 집중하겠다는 포석이다. 그래야 더 많은 방문객이 온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사실이다. 세계인이 놀랄 만한 역사적 기념물도 많지 않고, 빼어난 자연경관도 갖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가 이런 산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모두에 소개했듯이 거대 경제권으로 성장하고 있는 중국과 동남아의 큰 손들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고, 그 힘을 빌려 일자리를 만들고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장애물을 넘어야 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좀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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