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모세의 기적은 꿈인가?


<서울00소방서 과태료 부과 사례> 

4-5년전쯤 유튜브를 통해 구급차에 길을 양보하는 독일 고속도로 운전자들의 모습이 공개됐습니다. 영상의 제목은 '독일판 모세의 기적'이었습니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자 차량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며 길을 터주는 모습에 "시민 의식이란 이런 것이구나" 경탄을 하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도로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기에 더 감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BS '심장이 뛴다'에 소개된 오스트리아 양보 운전

경찰청은 2011년 6월 도로교통법을 개정해 그 해 12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그 전까지는 소방차와 구급차, 경찰차 같은 긴급차량의 주행을 방해하는 차량을 경찰이 단속해 범칙금을 매겨왔습니다. 법을 고친 뒤부터는 해당 차량에 블랙박스를 통해 시군구가 과태료를 물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소방차 구급차 앞을 가로 막거나 주행을 방해하는 차량은 현장을 블랙박스로 찍히기 때문에 빼도 박도 못하고 과태료를 부과받게 됩니다.

소방방재청의 경우, 과태료 부과 대상을 구체적인 지침으로 정해 단속에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래 표 참조) 그런데 시행 3년 8개월이 다 돼 가는데 과태료 부과 실적이 이상합니다. 서울 130건, 전북 74건의 실적이 있었지만 다른 지역은 3년간 과태료 부과 실적이 '0'건이었습니다. 물론 서울에 차량이 많아 교통체증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도, 역시 체증이 만만치 않은 경기도와 인천 등 수도권, 부산 등 광역시조차 과태료가 없다니 수긍하기 어려웠습니다.
소방방재청 표
<서울00소방서 과태료 부과 지침>

확인 결과, 몇가지 요소들이 결합돼 들쭉날쭉 단속 현상을 낳고 있던 걸로 나타났습니다. 우선 지자체가 과태료를 부과하려면 세외수입을 기록하는 지자체 전산망에 '양보의무 위반' 항목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과태료를 부과할 때 해당 항목으로 기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기도를 비롯해 대다수의 지자체들이 이런 기본적인 조치 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과태료를 거둬들일 기본 조치를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던 겁니다.

또 지역마다 양보의무 위반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기준도 자의적으로 적용돼, 어떤 곳에서는 긴급차량 주행에 방해돼도 별도로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거나, 단속이 아닌 계도 활동 위주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경기도가 대표적인데, 주행 방해 차량이 있어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고 계도와 홍보활동을 위주로 진행해왔고, 블랙박스를 지자체에 넘긴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습니다.

또 전체 소방차량 가운데 약 37%는 아직도 차량에 블랙박스가 설치되지 않았고, 그마저도 화질이 선명하지 않아 차량번호 식별히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은 점, 과태료 부과 신청을 해도 해당 운전자의 반발과 민원제기가 빈발하는 점도 적극적인 과태료 부과를 막는 장애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니 서울 운전자들만 단속되는 '불공평한' 현상이 나타났던 겁니다.

'모세의 기적' 캠페인이 SBS 예능프로그램 '심장이 뛴다'를 통해 전개됐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임내현 의원이 모세의 기적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2만∼5만원에 불과했던 과태료를 20~30만원으로 크게 올리고, 긴급자동차를 긴급한 용도 외에 사적으로 이용하는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입니다. 법이 도입된다면 얌체운전자들에 대한 응징이 가능해질 수도 있습니다.

구급차의 골든타임(5분)내 현장 도착 시간은 2011년 63%에서 2012년 54.8%, 2013년 52%로 자꾸 떨어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교통체증이 심해지는 데 반해 시민들의 양보 운전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법도 자발적인 시민의식을 따라잡지는 못합니다. 내 뒤에서 달려오는 구급차에 우리 가족이 타고 있고, 비켜달라고 방송하는 소방차가 우리 집에 난 불을 끄러 간다고 한번만 생각해 볼 수 없을까요?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