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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짝퉁 얼음 '아이스 버킷'…자선도 짝퉁?

[월드리포트] 짝퉁 얼음 '아이스 버킷'…자선도 짝퉁?
중국 땅에 살며 느끼는 생소함 중에 하나는 중국인들이 냉수, 특히 얼음물을 멀리 한다는 사실입니다.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베이징의 한 여름 더위에 지쳐 카페고 음식점이고 닥치는 대로 찾아 들어가 ‘물’ 달라고 부탁하면 영락없이 미지근한 온수나 심지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찻물을 내놓는 게 이곳의 풍습입니다. 돌아서는 종업원을 다시 불러 세워 놓고 삥쉐이(빙수)!, 더워 죽겠으니 얼음물로 바꿔 달라고 애걸복걸하면 그제서야 마지못해 얼음 몇 덩어리를 띄운 빙수를 가져다 줍니다. 타는 듯한 목 갈증을 풀고자 허겁지겁 들이켜 보면 왠 걸요! 얼음만 띄웠을 뿐 물은 바로 전 그 미적지근한 온수라는...중국에 머물러 보신 분들이라면 아마 다들 공감하실 겁니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수시로 벌컥벌컥 냉수를 들이켜고, 특히 한 여름이면 얼음 가득한 아이스음료나 간 얼음 서걱대는 냉면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게 중국인들이 냉수나 빙수를 극도로 싫어합니다. 아니 낯설어한다는 게 옳은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산 좋고 물 맑아 예로부터 수량과 수질만큼은 어느 선진국 부럽지 않았던 우리나라와 달리 물이 너무 귀해 빗물도 감지덕지 아껴 써야 했던 중국인들은 항시 물을 팔팔 끓여 먹는 습관이 몸에 밴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오랜 차 문화까지 더해져 중국 땅에서 무릇 생수라 하면 차를 우려낼 수 있는 뜨거운 물을 떠올리는 게 당연했습니다. 자연스레 얼음에 대한 거부감도 생기게 됐을 겁니다. 

이런 중국 땅에도 아메리카에서 시작된 '아이스 버킷 챌린지' 바람이 불어 왔습니다. 얼음물을 달가워하지 않는 중국인들이지만 수많은 연예인들과 IT업계 CEO들 사이에서 경쟁적으로 얼음물샤워 인증샷 올리기가 유행처럼 번졌습니다. 튀는 행보로 말하자면 중국 땅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이 천광뱌오(陳光標)라는 백만장자입니다. 폐기물 재생사업으로 돈을 번 천광뱌오는 어느 때부턴가 자선사업가로 변신했습니다. 2008년 수 만 명이 희생된 쓰촨성 대지진 현장에서 몸을 내던진 인상 깊은 구조활동을 펼치면서 매스컴을 통해 영웅으로 칭송받게 된 천은 그 뒤로 몇 차례 언론이 좋아할 만한 자선과 공익 이벤트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켰고 특유의 쇼맨십까지 더해지며 확실한 이슈 메이커로 떠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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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천광뱌오는 기다렸다는 듯 대대적인 홍보와 함께 그만이 소화할 수 있는 ‘아이스 버킷’ 이벤트를 선보였습니다. 이벤트에 사용할 얼음은 자기 회사 근처 화장장의 시신보관용 냉장고에서 사왔고, 그냥 양동이에 담긴 얼음물 뒤집어 쓰는 건 시시했던지 대형 쓰레기통에 직접 들어가 제대로 된 얼음물 샤워를 보여주겠다며 기세등등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넉넉한 체구의 천이 쓰레기통 안에 자리를 잡자 대기하고 있던 회사 직원들이 얼음물 양동이를 연거푸 천의 머리 위에 부어 댔고 쓰레기 통에 얼음물이 철철 흘러 넘칠 때까지 미리 준비해 둔 얼음을 쏟아 넣었습니다. 천은 자신이 어릴 때 소림사에서 무공을 연마했었기 때문에 이 정도 얼음물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유쾌하게 인증샷을 찍어 댔습니다.

인증샷이 공개됐지만 안타깝게도 천을 기다리는 건 찬사와 환호가 아니었습니다. 네티즌들은 사진을 면밀히 분석해 천이 사용한 얼음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했던 겁니다. 얼음의 알갱이가 모두 같은 크기로 균일하고 물에 닿아도 녹거나 모양이 변하지 않았으며 또 물에 둥둥 뜨지 않고 모두 아래로 가라 앉았다는 걸 이유로 들었습니다. 얼음이 쌓여 있던 화물칸에서 피어오른 한기도 드라이아이스가 확실하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음식점 쇼윈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스플레이용 아크릴 가짜 얼음을 진짜 얼음인 것처럼 눈속임했다는 겁니다. 당연히 천광뱌오는 이벤트 당시 취재하러 모였던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며 펄쩍 뛰며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천은 모였던 기자들이 누구였는지 밝히라는 요구에는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잠시 궁지에 몰리는 가 싶더니 천은 곧 반격의 카드를 내놓았습니다. 진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도록 ‘아이스 버킷’ 재시도를 선언한 겁니다. 사흘 뒤인 25일 천광뱌오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면서 새로운 제안까지 내놨습니다. 얼음을 채운 쓰레기 통 속에서 30분을 버틸테니 자기보다 오래 버티는 사람이 나오면 100만 위안, 우리 돈 1억7천만 원을 기부금으로 쾌척하겠다며 순식간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시골 장터 차력 대결로 둔갑시켜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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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초시계까지 동원해가며 기록 달성에 성공했다며 의기양양해 했지만 네티즌들은 이번에도 천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당시 바다에서 동사했던 희생자들의 사례와 2차 대전 당시 나치가 행했던 생체 실험 기록까지 동원해 “사람이 얼음 속에서 30분을 버틴다는 게 가능하냐”, “그게 아니라면 이번에도 천이 뭔가 사기를 친 게 분명하다” 이런 냉소적인 반응이 대다수였습니다.

루게릭병 환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높이고 그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자선행사에 뭐 그리  도끼눈을 떠가며 사람을 쥐 잡 듯이 몰아가느냐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겁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천광뱌오 자신의 평소 행실로 인한 업보 때문이기도 합니다. 쓰촨성 지진 때도 자선가라는 이름을 앞세워 피해 현장에서 헐값에 각종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 관련 사업을 수주하며 자기 사업 확장의 발판으로 삼았고 구호 기금의 일부를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았습니다. 자선활동의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후로도 그의 활동과 관련해 잡음이 끊이지 않아 기부금 규모 부풀리기와 후속 조치 없는 일회성 이벤트에 대한 비난을 들어왔습니다. 지난 2011년 윈난성 지진 때 그는 사고 현장에 10만 위안어치 현금다발을 벽돌처럼 쌓아놓고 주민들에게 나눠줬는데 이재민들이 먼저 돈을 차지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옆에서 웃음띤 얼굴로 인증사진을 찍어 욕을 먹었습니다. 한창 중국 대도시의 스모그가 이슈화 되자 무료로 공기 캔을 만들어 대도시 주민들에게 나눠주겠다고 했다가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천광뱌오 회장은 지난 6월 뉴욕 한복판에서 노숙자들에게 무료 식사와 함께 300달러를 나눠주겠다고 신문광고까지 냈다가 취소하는 기행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소외받은 이들에게 허언을 일삼으면서 천은 자신의 명예만 추구하기에 바빴습니다. 유엔에서 자신에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자선가’라는 인증서를 발급해 줬다고 떠들어 댔는데 유엔 사무국에서 곧바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나서면서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천은 자신이 기부단체에게 3만 달러나 주고 속아 가짜 인증서를 받았던 가라면서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변명을 늘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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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자선가라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천광뱌오에 대해 중국 정부의 반응도 냉담합니다. 중국 국무원 민정부는 심각하게 오락화 경향을 띄고 있는 ‘아이스 버킷’에 우려를 표한다는 공식적인 입장까지 발표했습니다. 오랜 가뭄에 허덕이는 허난성 주민들이 양동이를 뒤집어 쓴 채 묵언의 항의를 했던 것처럼 중국에서도 점차 ‘아이스 버킷’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선의 방식과 의도의 순수성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중국 언론들의 문제제기도 잇따르면서 ‘아이스 버킷’은 이제 논란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괴짜 기부 천사’ 천광뱌오 선생의 정체에 대해 아직은 뭐라 단언할 수 없습니다만 분명한 것은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얼음물’로 불리던 ‘아이스 버킷’은 그로 인해 중국 땅에서는 더 이상 따뜻하게 느껴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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