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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의료 민영화, 의료 영리화, 영리병원, 그리고 투자 활성화 대책 ①

[취재파일] 의료 민영화, 의료 영리화, 영리병원, 그리고 투자 활성화 대책 ①
최근 정부의 투자활성화 대책을 두고 사회적 논란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쪽에서는 제주도 투자개방형 병원 허가나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허용 방침을 두고 의료 영리화의 신호탄이라고 주장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의료 민영화와 관계가 없다고 반박합니다. 그런데 영리화, 민영화라는 용어가 조금 아리송합니다. 의료 영리화와 의료 민영화가 내용상 겹치거나 유기적인 관련을 맺는 부분이 있어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용어가 모호해서 논의가 소모적으로 흐르는 경우도 종종 보입니다.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영리화가 맞다 아니다 논하기 전에 어찌 보면 상식적이지만 우리 나라 의료 체계와 이에 근거한 용어의 의미부터 간단히 정리해 둘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의료법 제 33조에 따라 우리 나라에서 요양기관 즉 병원 (또는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는 주체는 아래와 같이 한정됩니다.
1.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2.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3. 의료법인
4. 민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설립된 비영리법인

● 소유에 따른 분류

1번과 3번, 4번은 소유자가 정부가 아닌 민간 (개인 또는 의료법인 또는 비영리법인)으로서 모두 '민영 병원' 입니다. 우리 나라의 전체 의료기관은 약 6만5천개인데 전체의 약 95%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2번이 바로 정부가 소유자인 '공공 병원' 입니다. 국립의료원이나 얼마 전 폐쇄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진주의료원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공공 병원은 전체의 약 5% 안팎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소유'의 측면에서 보자면 우리 나라의 병원은 사실상 이미 민영화돼 있습니다.

● 법인의 성격에 따른 분류

위의 의료법 33조를 보면 '영리법인'은 의료기관 설립 주체에서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미국은 영리법인이 병원을 설립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영리병원입니다. 영리병원의 가장 큰 특징은 외부 자본 즉 주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아 병원을 설립하고 의료 행위를 통해 수익이 날 경우 주주 배당등의 방식으로 병원 외부로 수익을 배분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비영리법인 (즉 비영리병원)은 진료나 수술등을 통해 이익이 많이 남더라도 이를 밖으로 빼돌릴 수 없고 의료기관 내부에 재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삼성의료원이나 아산병원 처럼 대기업과 밀접히 관련된 대형 병원들이 있는데 이런 병원들은 어찌된 걸까요? 이런 대형병원들도 기업이 병원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삼성의료원은 기업이 따로 설립한 삼성생명공익재단, 아산병원은 아산사회복지재단 소유로 돼 있습니다. 삼성생명공익재단이나 아산사회복지재단은 모두 비영리법인입니다. 따라서 이를테면 삼성의료원이 올해 엄청나게 수익을 많이 냈더라도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의료원 외에 다른 삼성 계열사로 배당하거나 이익을 나눠줄 수 없습니다.

법인의 성격으로 봤을 때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병원입니다.

● 운영 방식에 있어서의 공공성

우리 나라의 병원들은 민영병원이건 공공병원이건 국민건강보험을 의무적으로 받아주도록 돼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건강보험 급여 대상인 진단/치료/수술인 경우에는 예외없이 건강보험 수가(즉 의료행위의 가격) 적용을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 의료보험 체계의 핵심인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입니다.

급여/비급여 선정부터 보험 수가 조정, 건강보험료 인상 여부 등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즉 언론에서 흔히 '건정심'이라고 줄여 쓰는 위원회의 통제를 받습니다. 건정심은 보건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건강보험 가입자 대표 8명, 의약계 대표 8명, 공익대표 8명등 25명의 민관 위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동일한 의료보험 체계의 적용과 규제를 받고 있으며, 이 의료보험 체계는 다시 민관, 전문가 그룹의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 조율되고 있습니다.

즉,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소유 주체와 상관없이 공공성을 매우 강하게 띠고 있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 나라의 모든 병원은 '비영리병원' 이며 95% 이상이 민영병원이지만 운영 방식은 공공성 원리에 따르고 있습니다. 공공성의 축은 모든 병원에 대한 건강보험 강제 적용 즉 건강보험 당연지정제에 의해 지탱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전 국민 건강보험 의무 가입을 떠받쳐주는 강력한 근거가 됩니다.

이런 체계 속에서 의료 영리화란 무엇일까요? 영리화란 매우 광범위하게 해석하자면 의료 행위를 통해 수익을 추구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러한 활동을 장려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앞서 설명드린 우리 상황에 적용해 보다 구체적으로 추려보면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풀어낼 수 있습니다.

1.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영리법인의 병원 설립을 허가하는 것. 즉 영리병원을 허가하는 것.
2. 기존 비영리법인이 의료행위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을 외부로 빼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즉 의료자법인등을 통해 병원의 수익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의료 민영화 역시 두 가지 차원에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1. 소유 차원의 민영화 즉 공공병원을 민영병원화 하는 것
2. 운영 차원에서의 민영화 즉 병원 운영 체계에서의 공공성을 축소 또는 폐지하는 것. 다시 말해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또는 전국민 건강보험 의무가입제도가 축소 또는 폐지되는 것.

이를 토대로 정부가 최근 추진하고 있는 정책들을 살펴보면 보다 이해가 쉬워집니다. 정부가 밝힌 최근 정책 방향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의료법인이 영리활동을 하는 영리 자법인을 둘 수 있도록 허용하고 (지난 해 12월 4차 투자활성화 대책)
2) 제주도를 비롯한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 즉 영리병원을 허가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 발표된 6차 투자활성화 대책)

자 이제 윤곽이 잡히시나요? 먼저 의료법인의 자법인 설립 문제의 논점은 바로 의료 행위를 통해 발생한 수익 즉 의료법인의 수익이 자법인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보건의료단체가 의료영리화라고 발끈했던 겁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의료법인이나 자법인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의료법인에만 재투자하도록 규제 장치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잠시 수그러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법인과 자법인 사이에 수익을 주고 받거나 빼돌리는 이른바 터널링이나 역터널링은 다양한 경영 기법(?)을 동원해서 비껴갈 수 있는 여지가 많아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제주도를 비롯한 경제자유구역에 투자개방형 병원 즉 영리병원이 허용된다면 이는 명백한 의료 영리화입니다. 투자개방형 병원이란 표현은 국내외 자본이 병원에 투자할 수 있다는 한 단면만을 부각한 용어일 뿐 영리법인이 세우는 영리병원과 같은 말입니다. 실제 제주도에 1호 영리병원이 허가된다면 우리 나라에 지금까지 없었던 영리병원이 최초로 등장하게 됩니다. 따라서 '제주도나 경제자유구역에만 제한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의료 영리화가 아니다'라는 복지부를 비롯한 정부의 주장은 군색하기 짝이 없습니다. 

간혹 공공병원을 민간에 내다 파는 것도 아닌데 영리병원 설립이 왜 의료 민영화냐 라고 항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는 용어의 의미를 의도적으로 한정 짓는 방식의 논점 흐리기에 불과합니다. 영리병원 설립이 앞서 설명드린 것처럼 기존의 공공병원을 민간에 내다 팔거나 폐쇄하는 것은 아니지만, (즉 소유 차원에서의 민영화) 운영차원에서의 공공성을 훼손할 여지가 매우 크기에 사실상 의료 민영화에 해당되거나 최소한 의료 민영화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훨씬 더 크고 심각한 문제는 바로 운영 원리에서의 공공성이 축소/훼손되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우리 나라 의료 체계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취재 파일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드리겠습니다.

▶[취재파일] 영리병원이 우려되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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