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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15전투비행단 '한 중위 사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지훈 일병 사망 사건의 전말

[취재파일] 15전투비행단 '한 중위 사건'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3년 7월 1일 새벽 경기도 성남에 있는 서울공항에서 사병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일병 김지훈이었습니다. 고려대 경제학과 재학 중 공군에 입대해 서울공항을 관할하는 15전투비행단의 지휘관인 전투비행단장의 부관실에 근무하던 병사였습니다.

[8월14일 8시뉴스] 병사는 숨졌는데…가혹행위 의혹 장교는 '영전'

15전투비행단 헌병대가 사망 원인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당시15전투비행단장이었던 허모 준장은 김 일병의 부모님을 찾아와 순직 처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2014년 1월  김 일병의 부모님은 공군으로부터 김 일병이 '일반 사망'으로 처리됐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김 일병과 관련해 가혹행위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사망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는 김 일병 부모님의 요청에 공군 관계자들은 규정상 안 된다는 답변만 되풀이 했습니다.

김 일병의 아버지 김경준 씨의 긴 싸움은 이 때부터 시작됐습니다.

"제가 지난 시간동안 그렇게 어리석게도 그 사람들 말 믿고 지금까지 가만히 아무 것도 모른 채 지내온 것이 너무나 한심스럽고 힘들어요."

김 일병의 아버지는 순직 처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믿고 기다렸던 게 후회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취재를 위해 찾아온 적도 있지만 거절했다고 합니다. 죽은 아들의 명예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순직 처분을 받는 것이기에,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순직 처분이 되지 않자 아버지는 행동에 나섰습니다. 최소한 아들이 왜 죽었는지라도 알아야겠다는게 아버지 김경준 씨의 생각이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김 일병의 아버지는 아들의 사망 사건을 수사한 15전투비행단 헌병대의 수사 기록을 손에 넣었습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손으로 눌러가며 아버지는 아들이 죽기 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 날, 15전투비행단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수사 기록에는 아들의 직속 상관이자 15전투비행단장의 부관이었던 한 모 중위와 부관실 병사들의 진술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김경준 씨는 한 중위의 진술서를 통해 비로소 아들이 죽기 전 날 한 중위의 지시로 군장구보(필자 주: 완전군장을 매고 뛰는 것)를 한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 중위와 부관실 병사들은 그 날의 일을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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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30일 일요일, 한 중위는 귀빈을 영접하는 행사에 15전투비행단장을 모시고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단장이 행사복장의 첫번째 단추가 느슨하다고 한 중위에게 말했습니다. 부관인 한 중위는 단추를 꿰매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귀빈이 예정보다 빨리 도착할 것이라는 문자 메시지가 한 중위의 휴대전화로 전송됐습니다. 한 중위는 바느질을 하느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행단장은 아주 중요한 인물을 영접하는 행사에 지각을 하게 됐습니다.

부관인 한 중위가 직속 상관이자 지휘관인 15전투비행단장에게 큰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행사를 마친 한 중위는 부관실 병사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한 중위는 그 자리에서 "공동체 의식과 서로의 단합을 강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대화를 하다 한 중위는 부관실에 근무하는 김모 상병과 일병 김지훈이 그날 면회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한 중위는 "당시 부관실은 행사가 있는 주말에는 병사들이 면회를 할 경우 서로에게 알려주고 출근하는 병사는 면회를 하지 않도록 약속돼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근무자였던 김지훈 일병이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하지 않고 부모님 면회를 했고, 또 김모 상병도 김지훈 일병에게 말하지 않고 면회를 나간 것이 잘못이라고 판단했다고 한 중위는 진술했습니다. 한 중위는 김모 상병 그리고 또 다른 정모 상병, 그리고 김지훈 일병에게 군장을 싸서 연병장에 모이라고 지시했습니다. 병사 3명이 군장 가방을 1개를 꾸려 내려왔고, 한 중위는 자신도 병사들과 함께 군장을 번갈아 들며 연병장을 돌았다고 주장했습니다. 헌병대 수사관은 한 중위에 대한 두번째 조사에서 왜 군장구보를 지시했느냐고 다시 한 번 묻습니다. 이 질문에 한 중위는 세 가지 이유를 댔습니다.

첫째, 부관실이 최근 단합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둘째 단장님 복장 준비 미흡, 그리고 세 번째로 김지훈 일병의 거짓말 때문이라고 한 중위는 진술했습니다. 앞의 두 가지는 부관실 전체의 잘못이거나, 한 중위 본인의 실수였지만, 마지막 이유는 부관실의 막내였던 김 일병 혼자의 잘못이었습니다. 한 중위가 주장한 거짓말이란 비슷한 시간에 면회를 나간 김모 상병을 보지 못한 김지훈 일병이 마치 김 상병을 본 것처럼 대답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중위는 군장구보를 지시하기 전 집합에서 "그날 오후 면회실에서 김모 상병을 보았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냐?"라고 김 일병에게 물었습니다.

김지훈 일병은 "죄송합니다.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한 중위가 화를 내며 복도에 나갔다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 때 김모 상병이 "지훈이는 저를 보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 중위는 이를 근거로 김지훈 일병이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지훈 일병의 거짓말 습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이유와 앞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함께 군장구보를 했다는 게 한 중위의 주장입니다.(한 중위는 뛰기 전에 "뛰는 것에 이의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다들 "뛰겠습니다. 이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중위는 먼저 김지훈 일병을 포함한 병사 3명과 연병장 6바퀴를 함께 뛰었다고 말합니다. 그 후 한 중위는 김지훈 일병에게 "우리가 왜 뛰는지 알고 있냐"고 물었지만 김 일병이 한 중위가 기대했던 답(공동체 의식이 없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생각이 나지 않아서.."라고 답하자 50미터 떨어져 있는 곳까지 뛰어갔다 오라고 지시합니다. 다시 물었는데도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다시 한 번 갔다 오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 뒤 다 같이 연병장을 2바퀴 더 돈 뒤, 다시 한 번 김지훈 일병에게 왜 뛰는지 아느냐고 물었지만 역시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자, 다른 선임병들과 함께 두 번 더 50미터 떨어진 곳까지 뛰어갔다 오라고 지시합니다.

이 후 한 중위는 병사들에게 "이번 주에 각자 잘한 것을 이야기해보라"고 지시합니다. 김지훈 일병이 "메모를 잘했다"라고 말하자 "그럼 실수가 없었냐"라고 물었고 김 일병은 "실수가 있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대해 함께 구보를 뛴 김 모 상병은 한 중위가 "메모 말고 다른 것은 없느냐?"라고 물어 김 일병이 "없다"고 대답했고, 그러자 한 중위가 자신과 김 일병 둘이 연병장을 더 뛰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습니다. 9시쯤 시작된 구보가 끝난 건 밤 10시가 거의 다 되어서였습니다. 이날 밤, 정확히는 다음 날인 7월 1일 새벽, 김지훈 일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한 중위가 김지훈 일병을 질책한 건 이날 하루 뿐이 아니었습니다. 부관실에 근무했던 김모 상병은 김지훈 일병이 한 중위에게 "거의 매일 혼나다시피 하였다."고 진술했습니다. "욕설이나 언성을 높여 질책을 하지는 않았으나 지적하는 과정에서 (한 중위의) 어투가 상대방을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진게 한다."고도 말했습니다. 또 다른 부관실 근무자 정모 상병은 "때로는 지훈이가 변명을 하다가 또는 거짓말을 하게 되면 (한 중위가) 그것을 또 집중적으로 추궁하는 방식"이었다며 "(김 일병이) 매일 같이 실수를 하다보니 (한 중위가) 매일 질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3일에 한번씩은 오랫동안 진지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김지훈 일병은 부관실에서 근무한 지 40일 정도 밖에 안 된 병사였습니다.)

또 한 중위와 정 상병의 진술에 따르면 김 일병의 사망 9일 전인 6월 22일 토요일 오전에도 김지훈 일병이 한 중위와 함께 군장구보를 했습니다. 그 날도 행사가 있어 김 일병이 오전 7시까지 출근을 했어야 하는데, 7시 30분에 출근하자 한 중위가 김 일병과 함께 군장구보를 한 겁니다. 한 중위는 '김 일병은 군장을 매고, 자신은 군장을 매지 않고 연병장 8바퀴를 함께 돌았다'고 진술했습니다. 그 후 자신이 김 일병에게 혼자 2바퀴를 더 돌고 피티체조 30회와 팔굽혀펴기 5회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 중위는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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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내용은 한 중위의 진술, 그리고 부관실에 근무했던 병사들의 진술을 근거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모두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김 일병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추궁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재구성한 상황은 이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죽은 김지훈 일병은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 상황을 확인할 수 있는 그 밖의 객관적 증거들은 김지훈 일병 아버지가 확보한 수사기록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 징계는커녕 관련자 영전, 징계 결정권자는 지휘관 본인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는 분노했습니다. 아버지 김경준 씨가 보기에 아들이 당했던 군장구보 등은 명백한 가혹행위였습니다. 김경준 씨는 특히 지휘관이 아닌 한 중위가 병사들에게 얼차려를 주기 위해서는 지휘관인 15전투비행단장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한 중위가 승인을 받았는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수사기록에는 한 중위의 보고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 있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 공군관계자는 한 중위가 얼차려를 사실을 당시 15전투비행단장에게 보고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15전투비행단장이었던 허모 소장은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 중위와 비행단장이었던 허모 소장(당시 준장)의 말이 이렇게 다른데도 관련 조사가 없었다고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는 주장합니다.

당시 이 사건관 관련된 징계권과 영장 청구, 그리고 기소 여부에 대한 결재권은 15전투비행단장인 허모 소장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조사 결과 한 중위에게 잘못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직속상관이자 지휘관이었던 당시 15전투비행단장은 징계를 받거나 지휘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한 중위가 징계를 받게 되면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징계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겁니다.

결국  한 모 중위, 그리고 허모 당시 15전투비행단장을 포함해 아무도 징계를 받지 않고 사건이 종결됐습니다. 사건 이후 단기 장교인 한 중위는 공군사관학교 출신 엘리트들도 가기 힘든 핵심 보직에 배치됐고, 지휘관인 15전투비행단장은 소장으로 진급했습니다.

"제가 한 번 (공군에) 물어봤어요. '15비행단에서는 누구 하나라도 영창 간 놈 있느냐? 도대체 한 놈도 벌 받은 놈이 없다고 하는데, 동네 개가 한 마리 죽어도 사람들이 뭔가 허전하고 할텐데 이건 개만도 못한 아이인 거냐?' "

"제가 이 자리에서 한 중위와 허 단장을 사형시키라는 게 아니에요. 그들이 응당 받아야 될 죄값은 자기들이 받아야 자기들도 마음이 편할 것 아니겠냐 이거예요. 그래야 우리도 그들을 용서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무런 벌을 받은 게 없어요. (우리 아이가 받은 게) '사랑의 벌'이랍니다. 우리 아이는 '죽음의 벌'을 받았어요. 그런데 어떤 누구도 죄값을 치른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이거는 정말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 김경준 씨의 말입니다.

● 뒤늦은 순직 결정…그러나 "가혹 행위 여부 결론 안 났다."

김지훈 일병 사건이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자 공군의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공군은 김지훈 일병 사망에 대한 순직 처리 여부를 재심의하겠다고 유족에게 통보했습니다. 공군이 국민권익위나 국가인권위의 권고도 없이 직권으로 순직 심사 재심의에 착수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그리고 지난 8월 12일, 공군 본부는 김지훈 일병의 죽음이 순직이라고 결정했습니다. 공군은 "당시 김 일병이 지속적인 질책성 업무지도와 부관실 무장구보 등으로 정신적 압박감과 심리적 부담이 상당 부분 있었다"고 순직 결정 사유를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김지훈 일병에게 가해진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공군이 인정한 것일까요? 순직에 대한 규정을 찾아보면 그렇게 판단하는 게 당연합니다. 2014년 3월 12일 발령된 국방부의 [전공사상자 처리 훈령] 중 자살자와 관련된 순직 요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공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2. 공무상의 사고나 재해로 치료중인 사람이 그 공무상의 사고나 재해로 인하여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3.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로 인하여 사망·상이하였다고 의학적으로 인정된 경우


김지훈 일병의 경우 공무상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던 중이 아니었고, 공무상의 사고나 재해로 인해 정상적인 판단 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도 아니었습니다. '순직'이라고 공군이 결정한 것은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과 관련한 구타·폭언 또는 가혹행위 등이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경우라고 판단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김지훈 일병에 대한 순직 결정은 공군이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인정한 셈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군 입장은 달랐습니다. 가혹행위가 확인된 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공군관계자는 저와 통화에서 "한 중위가 했던 질책성 업무지시가 김지훈 일병에게는 업무적 스트레스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수 있(는 행위)다는 부분은 인정을 했"지만 "한 중위의 행위가 얼마나 온당하지 못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안 났다"고 말했습니다. 수용자인 김지훈 일병 입장에서는 정신적 고통이 있었다고 판단되지만, 실행자인 한 중위가 가혹행위를 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는, 저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설명이었습니다.

● 한 중위는 수사, 허 소장은 조사…왜?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 김경준 씨는 지난 6월 한 중위와 당시 15전투비행단장이었던 허 소장을 공군 검찰에 고소했습니다. 모욕과 직무유기 혐의 등이 있으니 형사처벌해달라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겁니다. 아버지 김경준 씨는 처음엔 법조인의 조력을 받지 않고 진정서를 검찰에 냈는데, 진정인 조사를 하던 검찰관이 형사처벌을 원하면 고소장을 내라고 해서 두 사람에 대한 고소장을 제출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군은 한 중위에 대해서는 형사입건해 수사를 하고 있다면서도 허 소장에 대해서는 수사는 아니고 피진정인 신분으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실 '형사입건'이라는 것도 처벌을 전제로 한 절차는 아닙니다. 고소장이 각하되지 않고 접수돼서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 그 순간 대상자는 형사입건되는 것일 뿐입니다.) 허 소장에 대해선 형사처벌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해 진정 사건으로 처리하겠다는 겁니다. 그러나 김 일병의 아버지는 공군으로부터 그런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김지훈 일병의 아버지 말대로라면 공군이 고소인에게 아무 통보 없이 고소장을 각하 처리하고 임의로 진정 사건으로 전환했다는 건데, 이렇게 일 처리를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 끝나지 않은 한 중위 사건…김 일병 아버지의 두 가지 바람

15전투비행단 한 중위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김지훈 일병의 순직은 인정됐지만 징계를 받거나 처벌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공군이 앞으로 한 중위에 대한 수사를 어떻게 진행할지, 그리고 어떻게 결론을 내릴지 지켜봐야 합니다.

김지훈 일병이 아버지 김경준씨는 제게 보낸 메일에서 장례 절차와 관련해 두 가지 바람이 있다고 적었습니다.

"국립묘지 안장과 관련하여 저는 서울 국립묘지를 선택하면서, 지금 현재 공원묘지에 있는 아들 유골을 옮기는 행사 중에 15비행단에 들려 그 곳의 모든 장병들이 알 수있도록 간단한 추모식을 하고 국립묘지로 향할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습니다. (중략) 더 나아가, 떠난 그 곳에 "故 김지훈 일병이 세상 떠난 곳"이란 작은 명패를 설치해 달라고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아들이 죽은 이유도 모르고 6-7달을 보내고, 아직도 아들이 숨진 시간이 되면 잠에서 깬다는 김 일병의 부모님에게 공군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덧붙이는 말]

6월 22일 첫번째 군장구보가 있었던 날과, 6월 30일 마지막 군장구보가 있었던 날 사이인 6월 26일, 15전투비행단장과 지인 관계인 예비역 병장 A씨(민간인)가 단장 부관실에 있던 한 중위를 찾아옵니다. 한 중위는 A씨에게 김지훈 일병과 상담을 해보라고 권유합니다. 한 중위의 진술에 따르면 A씨는 당시 예비군 훈련 중이었고, 김지훈 일병과 1시간 정도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상담 후 A씨는 한 중위에게 '김 일병이 기억이 안 나는 증세가 있어서 정신과적인 치료 또는 내분비계통 치료를 받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고 조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A씨의 진술에 의하면 김 일병이 숨진 채 발견된 다음 날인 7월 2일 오전 10시 30분 경 당시 15전투비행단장 허 소장이 전화를 걸어와 김 일병의 사망을 알려 줬다고 합니다. 민간인이 예비군 훈련 중에 지휘관 부관실에 방문하게 된 경위, 그리고 단장이 사건 다음 날 예비역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부하의 죽음을 알려 준 경위에 대해서는 보다 분명한 사실이 밝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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