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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노크 귀순과 윤 일병 사건…곪아가는 '보고 누락' 고질병

[취재파일] 노크 귀순과 윤 일병 사건…곪아가는 '보고 누락' 고질병
윤 일병 사망 및 엽기적 가혹행위 사건이 군 내부에서 어떻게 보고됐는지를 살펴보는 국방부 감사가 끝나서 14일 감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발표의 핵심은 한마디로 <군 보고 체계의 완전 붕괴>였습니다. 사단이나 군단에서 시작해 장관 또는 참모총장을 향해 차곡차곡 올라가던 보고는 어느 순간 뚝 멈춥니다. 앞뒤 따지지 말고 밑에서 올라온 속보를 고스란히 기계적으로 상부에 보고하라고 만든 체계가 무너졌습니다. 군의 생명 같은 보고 체계가 장난처럼 으스러졌습니다.

이번이 처음도 아닙니다. 지난 2012년 10월 ‘노크 귀순’ 사건 때도 보고 체계는 엉망이었습니다. 당시 호되게 당했으니 정신 차린 줄 알았는데 2년이 흐른 지금은 더 이상 바닥이 없는 최악입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노크 귀순 보고 누락 때문에 징계 한다고 군이 발표했던 장성들은 오늘도 어깨에 멀쩡히 별 달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보나마나 그럴 겁니다. 윤 일병 사건 보고 누락으로 장성을 비롯한 고급 장교에게 내려진 중징계는 몇 달 지나 세상 관심이 멀어지면 은근슬쩍 강도가 낮춰집니다. '십중팔구'가 아니라 '십중십', 즉 100%일 입니다.

● 보고 계통 일제히 붕괴…“군 사전에 보고는 없다”

윤 일병 사건의 보고 누락 사태는 적이 볼까 창피한 수준입니다. 모든 보고 계통이 일제히 무너졌습니다. 윤 일병이 숨진 다음 날인 지난 4월 8일 헌병 계선, 지휘 계선, 참모 계선에서 엽기적 가혹행위, 지속적인 폭행에 의한 사망 보고가 국방장관 또는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헌병 계선은 6군단 헌병단이 3군 사령부 헌병대와 육군본부 헌병실로, 육군본부 헌병실이 국방부 조사본부 안전상황센터로 사고 속보를 전달했습니다. 오전 7시 10분에 출발한 사고 속보가 조사본부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9시 15분. 안전상황센터장은 그로부터 6시간 지난 뒤에야 사고 속보를 확인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냥 덮어버렸습니다. 조사본부장과 국방장관에게는 안 알렸지요.

지휘 계선에서는 6군단 헌병대장이 4월 8일 오전 9시 44분 6군단장에게 사건 전모를 보고했습니다. 다음날 6군단장은 3군 사령관에게 유선 보고했습니다. 이제 3군 사령관 차례인데 그대로 멈췄습니다. 육군 참모총장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3군 사령관은 권혁순 대장입니다. 보고 실태 감사 결과가 나오기 이틀 전에 예편했습니다.

3군 사령관이 제 임무를 다 못했지만 육군 참모총장은 4월 7일 오후 2시쯤 참모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에 의한 사망 사건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국방장관에게는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최고 지휘부가 이 정도입니다. 뭘 더 바라겠습니까.

참모 계선에서는 6군단 인사참모와 3군 사령부 인사처장이 4월 8일 밤 10시쯤 엽기적 가혹행위 사실을 인지했습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장은 폭행치사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국방부 인사복지실장에 대한 보고 의무를 저버리고 누락했습니다. 장관에게도 이미 보고 됐을 것 같아서 인사복지실장에게는 보고를 안 했다는 것이 인사참모부장의 해명입니다. 짐작으로 보고를 할지 말지 판단했다는 고백입니다. 육군 인사참모부장은 윤 일병 사태를 계기로 구성된 병영문화혁신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습니다. 개혁의 대상이 개혁을 주도하는 꼴입니다.



● 이번 보고 누락, 노크 귀순에서 한단계 진화

이들에 비하면 2012년 노크 귀순 때 보고 누락했던 군인들은 이른바 ‘FM’ 군인입니다. 노크 귀순 사건은 그해 10월 2일 북한군 병사가 강원도 고성 육군 22사단으로 귀순하는 과정에서 소초 생활관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알린 일입니다. 철책이 뻥 뚫린 대형 사건이었습니다.

22사단은 처음엔 단순 귀순이라고 보고했다가 며칠 뒤 이실직고하는 보고를 올립니다. 이 보고는 합참 지휘통제실까지 배달됐는데 책임자가 보고 내용을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국회에서 노크 귀순 의혹이 제기될 때까지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노크 귀순 사실에 깜깜이였습니다. 이번 보고 붕괴 사태에 비교하면 순박한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엔 장성 5명과 영관 장교 9명 등 14명 문책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징계 대상 최고 계급은 중장이었습니다. 윤 일병 사건 보고 누락 사태보다 혐의는 약소한데도 징계 대상 최고 계급이나 인원 모두 많습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징계 대상은 5명에 불과합니다. 7명 더 있는데 주의나 경고 조치입니다. 사고는 커지는데 책임은 약하게 묻고 있습니다. 다음은 어떤 모양새로 보고 누락이 벌어질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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