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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25년 만에 친딸 살해 누명 벗어 "정말 기적 같은 일"

* 대담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회 위원)

▷ 한수진/사회자: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한 재미교포가 친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되어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바로 이한탁 씨 이야기인데요. 이한탁 씨는 무기수로 복역하면서도 그동안 줄기차게 무죄를 주장해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법원은 당시 유죄판결을 무효화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평범한 이민자였던 이한탁 씨, 어쩌다 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25년 동안이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 걸까요? ‘이한탁 구명운동위원회’에서 구명운동에 앞장서 온 김영호 목사, 전화 연결 하겠습니다. 목사님, 나와 계십니까?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안녕하세요.

▷ 한수진/사회자:

목사님 지금 뉴욕이시죠?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뉴욕이고, 이한탁 씨가 살았던 그 집에서는 실제 한 10분 거리에 있고요. 그리고 지금 수감되어 있는 곳에서는 약 8시간 거리에 있는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교계를 비롯해서 교민사회에서 그동안 구명운동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 무죄판결, 감회가 어떠신지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정말 기적 같은 일이죠. 정말 25년간이나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살아온 이한탁 씨가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는 것, 정말 생각지도 못한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과정이 있습니다. 이한탁 씨를 기소한 몬로 카운티 검찰 측의 항소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또 항소가 안 받아 들여지면 재항소도 앞으로 남은 117일 내에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말해서 지금 이 기적 같은 기쁜 소식을 정말 샴페인을 터뜨리고 싶은데, 그걸 아직은 못 하고 있는 안타까운 그런 현실입니다.

▷ 한수진/사회자:

법원이 지금 117일 내에 재기소 하지 않으면 석방시키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여전히 117일은 기다려야 된다, 하는 말씀이시고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 한수진/사회자:

이한탁 씨의 억울한 사연이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방영된 적이 있었는데요. 그래도 이 사건을 좀 잘 모르시는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서 간략하게 되짚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25년 전이죠, 1989년인데요. 이한탁 씨가 당시 우울증을 앓던 큰 딸과 함께 수양관에 갔다가 그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한 거고요. 그래서 이한탁 씨가 방화범이자 살해범으로 몰리게 된 거죠?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그렇죠. 그게 굉장히 참 불행스럽게 된 일인데요. 그 과정에서 보면 굉장히 억울한 일이, 요점으로 이야기한다면 한 3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호사를 선택했는데, 그 변호사 선택이 조금 잘못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변호사는 이것을 어떤 사고사로 인한 화재로 보지 않고, 방화 쪽으로 몰고 갔습니다. 검찰 측은 “이한탁 씨가 방화를 했다”라고 했지만, 변호사는 “그게 아니고 우울증을 앓고 있는 딸 지연 씨가 자살을 하기 위해서 방화를 했다” 그런 식으로 끌고 가게 된 것이 이 사건을 굉장히 힘들게 만들고. 방화범으로 이한탁 씨가 지목된 그런 내용이 됐다는 게 참 안됐고요.

▷ 한수진/사회자:

처음부터 변호사가 잘못했군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그리고 두 번째로는 검찰 측에서 이한탁 씨가 64갤론의 발화성 물질을 건물 내부에 뿌려서 불을 질렀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요. 보통 승용차가 한 24~25갤론 밖에 휘발유를 채우지 못하거든요? 만약 64갤론을 뿌리려고 하면 한 밤중에 차를 3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고.

만일에 그렇게 했다면 그 지역에서 휘발유를 샀으니까, 그것을 확증 지을 수 있는 자료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런 자료를 내놓지 못한 채 됐다는 게 있고. 그것과 관련해서 중요한 게 뭐냐면, 만일 64갤론이라는, 차 3개 들어갈 수 있는 휘발유를 뿌렸다면, 조그마한 캐빈(cabin)이기 때문에 밑바닥이 완전히 타야 되는데 완전히 타지를 않았다는 것, 그것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 상당히 문제가 된다고 볼 수 있고요.

끝으로는 이 분이 방화했다는 내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 사람의 전문가가 있었어요. 그런데 첫째 변호사 로젠 블룸이라는 변호사는, 그걸 그렇게 하면 자기가 주장했던 방화와 관련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 한수진/사회자:

누전과 같은 사고의 가능성이 있다, 라고 하는 화재 전문가들의 현장 보고서가 있었는데. 이런 부분을 변호사가 전혀 주장하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그렇죠, 왜냐하면 이 변호사는 여자가 자살을 하기 위해서 방화를 했다는 주장으로 이걸 해결하려고 했던 거죠.

▷ 한수진/사회자:

재심 신청도 여러 번 했는데, 계속해서 기각이 되었다고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그것이 참 어떻게 보면 조그마한 백인사회 커뮤니티이고, 그리고 당시 배심원들도 다 백인이었고. 또 물론 판사나 검사, 경찰이 다 백인이었기 때문에 소수민족,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동양 사람이 변호사와 통역관을 통해서 겨우 몇 가지 말을 할 정도이기 때문에, 변호사 선정과 변호사의 판단이 조금 잘못된 것이 이렇게 억울한 인생을 살게 하는, 너무나 억울한 일이죠.

▷ 한수진/사회자:

검찰이나 경찰조차도 터무니없이 입증되지 않은 증거를 들이댔는데도 그런 것도 꼼꼼히 들여다보지 않았고요. 변호사도 열정적으로 사건에 임하지도 않았고. 더구나 이한탁 씨가 영어도 잘 못했고 또 한인이었기 때문에, 유색인종이었기 때문에 차별한 게 아닌가 그런 측면도 의심이 된다는 말씀이시고요. 여러 가지 참 안타까움이 많네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네, 그렇죠.

▷ 한수진/사회자:

큰 딸을 화재로 잃은 것만 해도 정말 기가 막힐 텐데, 오히려 그 딸의 살해범으로 몰리고 방화범으로 몰리고. 그런 상황에서 종신형까지 선고받고요. 이한탁 씨가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뭐, 말할 수 없죠. 그 충격이나 또 좌절감이나, 또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그런 것... 이 분이 한국에서는 철도고등학교를 나왔고 연세대학교 전기과를 나오신 수재에요. 또 학교 교사를 하신 분이고. 교양과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분인데, 미국에 오신지 얼마 안 되어서 이런 어려운 일을 당하면서, 지금 정말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 너무 어려운 일을 당하고 있는 건 사실이고, 참 안타깝죠.

▷ 한수진/사회자:

자책도 굉장히 심하셨을 거고요. 또 가족들도 어쨌든 이한탁 씨의 무죄는 믿지만 딸을 구하지 못한 데에 대한 원망도 있고 해서, 어떻게 보면 가정이 온전하게 유지되지는 못했던 걸로 그렇게 저희가 전해 듣고 있는데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지금 이혼한 상태이고 딸과도 또 어머니와 같은 그런 심정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대화나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 있습니다.

▷ 한수진/사회자:

지금이라도 진실이 밝혀져서 다행인데요. 어쨌든 잃어버린 25년의 세월은 보상 받을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개인적으로는 너무 아프죠.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정말 어떻게 보면 기적 같은 일이 생겨서. 화재 감식관 가운데 상당히 정확한 소스와 연구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하신 분이, ‘존 렌티니’라는 박사가 있는데요. 다시 심리가 열리면서 검찰 측의 검사가 나오고 경찰이 나오고. 존 렌티니 박사가 플로리다에서 올라와가지고 증언을 하는 과정에서 결론이 뭐냐면 “옛날에 화재감식 방법으로는 방화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적인 방법으로 보면 그것이 방화는 아니다. 예를 들면 이한탁 씨 바지에 묻어있었던 것은 발화물질로 보기 어렵다”라는 정확한 진단을 한 것이 어텐션(attention)을 받게 됐죠.

▷ 한수진/사회자:

목사님, 이한탁 씨 가장 최근에 만난 것이 언제인가요?

▶ 김영호 목사(뉴욕 거주, 이한탁 구명운동위원):

5월 29일 해리스버그 법정에서 만났죠. 너무 너무 인상이 이제 다시 희망 속에 있게 되고, 저를 향해서 몸짓으로 다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제 내가 견딜만하고, 내가 더 참고, 또 앞으로 정말 모든 것이 밝혀지게 될 때까지 건강하게 잘 있겠습니다’ 하는 표정을 저한테 보여주셨어요.

▷ 한수진/사회자:

정말 다시는 이런 이한탁 씨 같이 그런 억울한 일이 없었으면 좋겠고요. 한국에서도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한탁 구명위원회> 김영호 목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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