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폭력·은폐의 대가…무너지는 '사회적 신뢰'

<앵커>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충격이, 쉽게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면서 군 폭력 문제는 물론, 은폐 또는 거짓말 문화가 문제의 본질로 노출됐습니다. 폭력, 따돌림, 그리고 은폐. 비단 군대만의 문제일까요? 군대를 넘어 사회 곳곳, 우리 모두에게 암적 인자로 스며들어 있는 건 아닌지, 자기 고백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윤 일병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진 과제, 그 숨겨진 본질을 한승구 기자가 분석합니다.

<기자>

28사단 포대 건물 한 켠에 의무대가 있습니다.

3월 3일, 윤 일병이 이곳에 배치됐습니다.

선임의 첫 인사는 대답이 느리다는 욕설과 주먹질이었습니다.

[3월 4일~3월 7일 : 마대자루를 꺾어오라 하였고 허벅지를 2~3대 때리다 자루가 부러졌고.]

[3월 27일 : 다리를 절룩거리고 해서 허벅지를 4대 걷어찼습니다.]

[4월 초순 : 무시하는 태도를 보여 치약을 먹게 하였습니다.]

[4월 6일 : 대답을 잘못하여 가래침을 핥아 먹도록 2회 강요하였고.]

4명의 선임병은 돌아가며 윤 일병을 때리고 괴롭혔습니다.

주동자는 가장 선임이었던 이 모 병장이었습니다.

이 병장이 입대할 때 직접 쓴 '나의 성장기'입니다.

군 생활 적응이 어려워지면 동기와 선임에게 다 털어놓겠다, 그런 동기나 후임, 선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복무하겠다고 썼습니다.

대학을 휴학하고 운전기사로 3년 동안 일하다 입대한 이 병장은 또래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나이 어린 선임병들의 욕설에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이등병 시절, 비밀보장을 믿고 소원수리로 이런 부조리를 고발했습니다.

그날 이후 이 병장의 별명은 배신자였습니다.

[군 전역자 : (소원수리함) 자물쇠 열쇠를 저희 자대에서 보관하기 때문에 대대로 가기 전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누가 썼는지 다 알 수 있어요.]

이후 이 병장은 가해자로 변했습니다.

바로 아래 후임이던 하 병장은 간호사가 꿈인 휴학생이었습니다.

[하 병장 친구 : 성실하고 정말 착한 친구였거든요. 사교적이었고 주위 사람들 잘 챙겨주는 성격이었어요.]

윤 일병을 관리하라는 이 병장의 지시가 떨어진 뒤, 하 병장은 짝다리를 짚는단 이유로 윤 일병의 뺨을 때리고 가슴을 걷어찼습니다.

지 상병은 윤 일병이 잠을 못 자도록 감시하고, 아프다는 곳만 골라 손가락으로 찔러댔습니다.

남을 괴롭히고 못살게 구는 사람이 가장 싫다고 했던,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맞는 게 무섭고, 따돌림을 두려워하며, 스스로 폭력에 물들어갔습니다.

[이나영/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 폐쇄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어떤 폭력이 일어났을 때 폭력이 대물림되거나 반복되거나 혹은 심화될 확률이 높고.]

활기차고 의욕에 넘치던 신병이 한 달 만에 결국 숨졌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윤 일병이 맞는 걸 본 병사는 44명이나 있었지만, 이들은 웬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습니다.

[이상열/28사단 헌병대장 : 남의 부대 일에 간섭하기도 싫고, 괜히 또 보고했다가 자기 몸도 안 좋은데 더 피곤해질 수 있다, 이런 생각에.]

사고 당일 가해 병사들은, 윤 일병이 만두를 먹다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고 입을 맞췄습니다.

사고 전부터 사고 직후까지 모른 척하고 숨기는 분위기 속에 폭력은 점점 심해졌습니다.

병사들만 쉬쉬한 건 아니었습니다.

상관인 유 하사도, 제보를 들은 장교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예비역 장교 : '분대장 한 명만 그런거다' 하고 자체징계하고 끝낼 수 있는데, 사단이나 군단이나 군 사령부에서 내려오게 되면 연루자들도 일단 늘어나고 징계수위도 훨씬 세지고.]

소원수리가 나오면 나쁜 근무 평점을 받고 진급에 누락되는 구조가 문제를 알고도 입 다무는 군의 관행을 만들었습니다.

[박진우/지난해 전역 : 소원수리를 받으러 오긴 했었는데 간부들도 직접 나서서, 사실대로 이야기 하지 말아라.]

[한찬희/올해 초 전역 : 소원수리 해도 위에서 누가 했는지 찾을려고만 하고, 문제해결 의지가 없기 때문에.]

윤 일병 죽음의 직접 원인은 따돌림과 구타였습니다.

하지만 이후 벌어진 군의 관행적, 조직적 은폐는 윤 일병을 두 번 죽였고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했습니다.

옴부즈맨 같은 외부 감시제도에 조사권을 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김희수/변호사(전 국방부 병영문화개선대책위원) : 군대 방문권이라던가 조사권이 지극히 제한돼 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것이예요. 진실에 다가갈 수가 없어요. 아무리 의지를 갖더라도요. 그래서 조사권을 줘야 된다.]

폭력과 은폐는 군대 안에 머물지 않습니다.

전역 후 사회에 나온 젊은이의 정서적 인자로 자리 잡기 때문입니다.

폭력도 범죄지만 은폐는 더 큰 죄악이라는 평범한 진리가 군대에서 고쳐지지 않으면 사회 구성원 간 신뢰가 형성되고 유지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영상편집 : 장현기, VJ : 김종갑)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