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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나크리’ 침몰시킨 서해의 찬 바닷물…‘할롱’은?

[취재파일] ‘나크리’ 침몰시킨 서해의 찬 바닷물…‘할롱’은?
참 알다가도 모를 것이 날씨 같습니다. 30년 넘게 일기도를 보고 있지만 여전히 알쏭달쏭합니다. 생길 때부터 그 힘이 크지 않아 주목받지 못하던 12호 태풍 ‘나크리’였지만 주변의 견제를 받지 않아 그 세력을 유지하더니 서해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제주도의 한라산 꼭대기에 자리 잡은 윗세오름에는 무려 1600mm가 넘는 비가 기록됐습니다. 2003년 6월 관측을 시작한 뒤 최고기록인데요. 그렇지 않아도 많은 비를 가진 구름이 정상부근에서 강제로 상승하면서 폭발적으로 힘을 키운 결과입니다.

사실 ‘나크리’만큼 진로 예측이 어려웠던 태풍도 흔치 않습니다. 태풍의 움직임은 주변의 힘이 어떻게 작용하는 지에 따라 달라지는데 ‘나크리’ 주변에는 이렇다 할 힘이 없었거든요. 산처럼 거대한 고기압의 틈새에서 미끄러지듯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태풍인데 주변에 산이 없으니 그냥 조각배마냥 떠갈 수밖에요.

‘나크리’의 이동속도가 느린 점, 그리고 곧장 서해로 북상한 점 등이 바로 이런 힘의 공백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일본 쪽에서 북태평양 고기압이 힘을 키우면서 개입을 시도했지만 이미 서해로 방향을 잡은 뒤여서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처음에는 사흘이나 서해에 머물면서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됐던 ‘나크리’가 하루만에 열대저압부로 힘이 약해져 태풍으로서의 일생을 마감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원인은 호남 앞바다에 자리 잡고 있는 찬 바닷물입니다. 올 여름 가뭄과도 밀접하게 연관된 것처럼 보이는 이 찬 수온대는 태풍 ‘나크리’를 침몰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태풍이 발달하는데 꼭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을 차단한 것입니다. 보급로가 끊기면 전쟁은 그 것으로 끝이죠.

태풍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태풍은 그 에너지를 더운 바다에서 얻는데요. 더운 바다에서 방출되는 잠열이 태풍의 에너지원입니다.

잠열이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 피부의 열을 식혀주는 땀의 증발과정을 떠 올려 보겠습니다. 더운 날 우리는 땀을 흘리는데 그 이유는 땀이 증발되면서 피부의 열을 공기로 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피부는 시원해지겠죠. 그런데 열을 받은 공기는 더 더워집니다. 이 열이 바로 증발할 때 나오는 잠열입니다.

어마어마한 규모로 태풍에 전달되는 잠열은 바다가 어느 정도 더워야 방출됩니다. 덥지도 않은데 땀을 흘릴 리는 없으니 바닷물이 뜨겁지 않으면 잠열이 방출될 기회도 사라지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서해에 평소보다도 차가운 바닷물이 자리 잡고 있으니 잠열이 방출될 여지가 없었고 결국 태풍은 가지고 있던 에너지를 다 써 버리고 침몰하고 만 것입니다.

12호 태풍 ‘나크리’는 물러갔지만 이번에는 11호 태풍 ‘할롱’이 북상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우리나라에 영향을 줄지 정확하지 않은데요. 현재로서는 일본 규슈에 상륙하거나 아니면 큐슈 서쪽해상으로 북상할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할롱’은 ‘나크리’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힘이 막강한 태풍인데요. 아직도 우리나라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찬 수온대가 이번에는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됩니다.

일단 제주도는 금요일부터 태풍의 간접영향권에 들 것으로 보입니다. 강원영동과 남부지방에는 토요일과 일요일 사이에 비 예보가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예보가 바뀔 가능성도 있으니까 너무 걱정만 할 일은 아니고 조금 더 지켜봤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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