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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2시간 만에 끝난 평화…그 안에 숨겨진 두 가지 수수께끼

[월드리포트] 2시간 만에 끝난 평화…그 안에 숨겨진 두 가지 수수께끼
가자지구 사태가 공식적으로는 25일 째인 지난 1일 새벽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72시간 휴전에 합의했다는 겁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양측은 이집트 카이로에 대표단을 보내 장기 휴전 협상을 논의하기로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변경 보호 작전’이란 이름으로 가자지구에 대대적인 공습을 시작한 게 7월 8일이지만 실제로는 6월 28일부터 가자지구를 폭격하기 시작한 것을 따지면 한 달 넘은 교전이 드디어 해결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저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72시간 인도적 휴전’이란 제목의 리포트를 일찌감치 제작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늘 켜놓고 지켜보는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에서 불안한 속보 자막이 뜨는 겁니다. "가자지구 접경 이스라엘 지역에 대피 사이렌이 울렸다", "가자지구 라파에 탱크 공격으로 5명이 숨졌다", "휴전 중에도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고 있다." 알자지라방송이 보여준 가자지구 라이브 화면에는 폭발로 인한 연기가 여기저기 피어오르더군요. 새로운 속보자막이 뜰 때마다 기사 수정에 들어가길 몇 차례, 서울도 카이로도 바빠졌고 기사를 몇 번이나 다시 읽어 서울에 송출했는지 모를 때쯤 가자지구 사망자는 70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야, 이거 휴전이 깨지겠는데..."라는 생각이 스쳐갈 때 아니나다를까 이스라엘이 휴전 파기를 선언했습니다. 일장춘몽이란 말처럼 사흘 휴전이 2시간 만에 깨진 순간이었습니다.



양측이 휴전 파기에 대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 건 당연하겠죠. 허탈한 마음으로 무엇이 잘못됐나 휴전 이후 상황을 되짚어봤습니다.

휴전 후 첫 교전이 어디서 시작됐을까? 이스라엘은 휴전 개시 90분 만에 땅굴탐색 도중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72시간 휴전에 합의하면서도 가지지구 장벽 밖에 일정한 군사분계선을 정해놓고 그 후방에서 하마스가 파놓은 지하터널 파괴작업을 계속 수행하겠다고 했습니다. )

이스라엘 군 대변인의 말을 빌어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스라엘 군이 땅굴을 탐색하는 도중 테러리스트가 몸에 폭탄띠를 두른 채 땅굴에서 나오더니 자살테러를 감행했고 그 자리에서 이스라엘 병사 2명이 숨졌다. 이어 또 한 명이 땅굴에서 나와 총을 난사했고 교전이 치러진 뒤 보니 ‘하다르 골딘’ 이라는 장교 한 명이 납치됐다’로 되어 있습니다.

하마스는 해당 교전이 휴전 시작 전인 오전 상황이라면서도 이스라엘 병사 1명을 납치한 건 맞다고 시인했습니다. 

1. 준비된 기습공격, 주체는 과연 누구?

편의상 휴전 파기의 불씨를 제공한 첫 교전을 ‘땅굴 습격’으로 부르겠습니다. 이 땅굴 습격을 좀 더 세심히 들여다 보면 공격하는 측에서 만반의 준비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자살폭탄테러에 이어 납치까지 감행한 것으로 보면 누군가 치밀하게 시나리오를 짰을 겁니다. 각오했고 (즉흥적으로 자살테러를 저지르는 경우는 못 들어봤습니다. 설사 즉흥적이라도 겨우 2명 죽이려고 길이 몇 킬로미터의 땅굴을 홧김에 달려 나와 자폭한다는 게 설득력이 떨어지죠. 당시 가자지구엔 이스라엘 군이 아직 주둔한 상태라 그 쪽이 더 수월했을테니...)  이스라엘이 어디서 땅굴 탐색 작업을 할지도 알고 기다리고 있었겠죠. 그럼 누가 한 짓일까요?



이스라엘과 유엔, 미국은 하마스 짓이라고 단정하고 납치 장교를 석방하라고 강도높게 하마스를 비난했죠. 하지만, 땅굴 기습 직후 이스라엘의 주장을 보면 기습을 감행한 주체에 ‘하마스’란 단어는 없습니다. 테러리스트( a terrorist)라고만 되어있죠. 정확한 주체를 알 수 없다는 겁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다고 칩시다. 하마스가 했다고 치면 하마스가 왜 했을까요? 하마스가 분명 자기 입으로 72시간 휴전을 합의해 놓고 장기휴전협상까지 하기로 하고선, 장기휴전협상이 불리하게 돌아간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이 선제공격을 편 것도 아닌데 왜 90분 만에 득보다 실이 클 기습공격을 감행했을까요?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할 텐데 이스라엘의 자작극?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일단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를 생포해 휴전협상을 유리하게 끌어가기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겠죠. 하마스에겐 이스라엘 포로 1명의 가치가 특별할 테니까요. ( 2011년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병사 1명을 팔레스타인 수감자 1,027명과 맞바꾼 전례가 있습니다. ) 그렇다고 해도, 하마스가 이스라엘 병사 1명을 생포하려고 국제사회에서 그 많은 비난을 뒤집어쓰고 유엔과 미국의 중재를 받아들여 72시간 휴전까지 하고 또 휴전협상에 보낼 대표단까지 꾸려놓는 거대한 속임수를 꾸밀 필요가 있었을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는 하마스 내에 서로 손발이 맞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한 쪽은 휴전을, 다른 한 쪽은 휴전을 바라지 않는 온건파와 강경파의 대립이 있지 않나 하는 거죠. 하마스의 경우 보통 윙(wing) 이라고 표현하는데 정치적 윙과 군사적 윙으로 분리가 되어 있습니다. 정치적 부분은 질긴 생명력을 가진(1997년 독극물 미수사건) 칼레드 마샬이, 군사 부분(그 유명한 알카삼 여단을 포함)은 얼굴 없는 사령관 무함마드 데이프가 맡고 있습니다.

대체로 정치적 윙에서 지시를 내리면 군사적 윙에서 시행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 군사적 윙이 정치적 윙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7월 15일 이집트의 중재안에 대해 거부의사를 하마스 군사적 윙이 정치적 윙보다 먼저 밝혔고, 7월 29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 PLO가 하마스의 동의 아래 팔레스타인 모든 정파가 24시간 휴전과 함께 장기 휴전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는데 가장 먼저 반대를 표시한 게 하마스 군사적 윙 쪽입니다

칼레드 마샬이 1997년 이후 이스라엘의 암살 위협을 피해 카타르에 머물면서 사실 가자지구 지도부에 힘이 많이 실리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이번 가자사태에서 목숨을 바치며 이스라엘에 항전하는 것도 군사적 윙이 도맡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추정을 바탕으로 하마스 지도부의 휴전 합의와 장기 휴전 협상에 나서는 것에 불만을 품은 하마스 내 일부 세력이 (군사적 윙일 수도 있고 하마스 산하 소규모 무장조직일 수도 있습니다 – 하마스는 원래 여러 조직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휴전 발표가 나자 휴전 무산을 야기시킬 작전에 나섰고 그 결과가 ‘땅굴 기습’이라는 게 제 가정입니다. 제 가정이 틀렸더라도 ‘땅굴 습격’은 절대 우연히 발생한 일이 아니라는 건 분명한 사실 같습니다.

2. 납치 건은 오보? 해당 장교는 어디서 누가 죽인 걸까?

휴전이 무산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 장교 납치로 국제사회의 비난이 들을 만큼 들었을 때인 8월 3일, 돌연 이스라엘이 ‘조사 결과 납치 장교가 ‘땅굴 습격’ 때 숨졌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이게 뭐야? 그럼 이스라엘 지휘관은 ‘땅굴 기습’이 끝나고 시신을 수습할 생각도 못하고 그냥 납치됐다고 보고한 거야? 징계감인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정말 교전 중에 숨진 걸까'라는 의심이 들더군요.

<하마스에 납치된다고 알려졌다가 교전 중 숨진 것으로 바뀐 골딘 소위>

당시 상황을 되짚어보면 이스라엘은 장교 납치를 기정사실화했고 앞서 말했지만 하마스도 시간차만 있지 생포 사실을 인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각계의 비난이 이어지던 중 하마스는 생포한 장교가 자신들의 대원들과 이동 중에 이스라엘 공격을 받아 숨졌다고 밝혔습니다.

제 추론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이 납치된 장교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게 어렵다고 판단하자 이동 중인 하마스부대를 폭격해 함께 죽음으로 몰아넣은 게 아니냐는 겁니다.

무슨 미친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설득력은 충분합니다. 앞서 간략히 언급했지만 하마스에게 이스라엘 병사 1명은 단순한 포로 1명의 의미를 넘어서는 상징적 가치를 지녔습니다. 2006년 길라드 샬리트라는 상병이 하마스에 피납됐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 석방에 별 관심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 총리는 베냐민 네탸냐후였죠.) 그런데 샬리트의 아버지가 정말 열성이었습니다. 총리관저 앞에서 나홀로 시위를 벌였고 아들의 석방을 위한 관심을 모으기 위해 국토순례까지 나섰습니다. 세계의 관심이 이 문제에 쏠렸고 이스라엘은 질질 끝다 결국엔 피랍 발생 5년 뒤인 2011년에 팔레스타인 수감자 1천여 명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샬리트를 데려왔습니다.

더구나 하마스에겐 생포한 장교 1명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예정된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는 히든 카드가 될 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다면 이스라엘으로선 납치 장교를 곧바로 구조하지 못할 경우 뒤에 따라올 부담과 불리함이 감당하기 싫었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구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이는 게 나을 것이란 판단 아래 결단을 내렸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나라지만 그 나라는 세운 건 ‘시오니스트’들입니다. 그들은 나치가 동포인 유대인을 학살할 때도 그저 침묵했습니다. 그래야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나라를 세우는 데 대한 국제 사회의 동정 여론이 더 강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입니다. 실제로 이들 시오니스트들은 나치의 친위대와 유대인을 80만 명까지는 학살해도 된다는 비밀협정을 맺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오니스트들과 그들을 따르던 청년들이 지금의 이스라엘 수뇌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제가 페이스북에 ‘같은 팔레스타인을 놓고 어떤 사람은 그들을 죽이려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들을 살리려고 한다’ 글과 함께 숨진 팔레스타인 어린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는 파란 눈의 노르웨이 의사의 사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카이로 특파원이었던 동기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큰 적은 전쟁 그 자체이다” – 클라우제비츠

‘2시간의 평화로 끝난 휴전이 남긴 두 가지 수수께끼’의 답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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