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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LTE로 '골든타임' 지킨다는 재난망…졸속 추진 논란

[취재파일] LTE로 '골든타임' 지킨다는 재난망…졸속 추진 논란
정부가 국가재난안전통신망 구축 기술을 이동통신에 쓰는 LTE로 선정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후속조치로는 첫 대형 국책사업의 첫 발을 뗀 셈입니다. 재난망은 현재 경찰, 소방, 지자체가 쓰는 무선통신을 하나로 묶는 사업입니다.기존 무선망은 음성위주여서 동영상 전송 등이 가능한 LTE 망으로 바꾸겠다는 취지입니다.

사실 이 사업은 이번에 세번째 추진하는 것입니다. 지난 2003년 대구지하철 폭발사고가 일어난 뒤 추진됐지만 1조원이 훌쩍 넘는 대형 사업인데 사업타당성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감사원 감사와 KDI의 예비타당성 조사결과가 나오면서 보류됐습니다. 2011년 당시 행안부가 다시 추진하려 했지만 역시 타당성과 경제성이 문제가 돼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국회입법조사처나 국회 상임위로부터 '국가가 대규모 자가망을 구축하기 보다는, 기존망을 연동해 쓰거나 이동통신사들이 이미 구축한 상용망을 활용하는게 보다 합리적이다'라는 평가에 부딪혔던 겁니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이 사업은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재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습니다.

지난 5월 27일 미래부와 안행부, 기재부가 합동으로 '재난안전통신망 구축사업 조기 추진 방침'을 발표합니다. 2017년까지 구축을 완료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7월말까지 기술방식 선정, 내년에 시범사업 추진, 2016년에는 8개 시·도를 대상으로 사업을 확산, 2017년 서울 경기 및 5대 광역시까지 확대라는 조금 숨 가쁜 로드맵을 내놨습니다. 이를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는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5월말에 조기추진 방침을 발표하고 7월말까지 기술방식을 선정해야한다는 과제를 부여받은 정부 TF는 두달에 걸친 검토결과를 토대로 7월 29일 공개토론회를 가졌고, 이틀 뒤인 31일(오늘) LTE 자가망 중심 구축안을 발표했습니다.

올 하반기까지 세부계획을 수립하는 절차가 남아 있긴 하지만 11년 동안 여러 논란을 거쳐왔던 사업의 얼개가 두달만에 나온 겁니다. 세월호 참사 후속조치라는 시급성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빠른 의사결정 과정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추진 방식에 대해 몇가지 세부적인 논란도 있습니다.

먼저 LTE 상용망 활용 가능성입니다. 정부 TF는 예산으로 직접 구축하는 자가망을 기본으로 하고 상용망을 일부 활용하는 방식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과거 재난망 추진과정에서도 국회와 학계 등에서는 국내 이통3사가 이미 구축한 상용망을 중심으로 활용해야 사업 비용과 구축 속도면에서 효율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습니다.이번에 정부 TF에 제출한 이통사와 장비 제조사 등 4개 기업의 제안서를 보면 자가망 기지국 숫자는 최소 2천 5백개에서 최대 4만 6천개 수준입니다 .하지만 SKT와 KT, LGU+ 등 국내 이통3사가 이미 구축한 국내 LTE 상용망은 44만개의 기지국을 갖추고 있습니다. 서로 더 '잘 터진다'고 주장하는 이통3사의 경쟁으로 세계최고 수준의 촘촘한 3중망이 전국에 갖춰져 있는 겁니다. 또 현재 이동통신 기술인 4G는 2020년께는 5G로 상용화되고 이어서 6G 등으로 계속 발전하게 됩니다. 재난망도 상용망을 중심으로 구축할 경우 4G->5G->6G로 이어지는 기술 진화를 수용하기가 쉽지만, 자가망으로 할 경우 이런 진화를 수용하기 어렵거나 한다고 하더라도 조단위의 많은 비용이 들거라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습니다.

두번째는 새로 구축할 재난망 단말기, 즉 무전기입니다. 재난망에 LTE를 적용하는 기술이 이제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단말기 국제 표준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룹통화 기능이 가능한 기술표준은 올 연말 완료될 예정이고, 재난용 핵심기술인 단말기간 통화와 단말기 중계나 단독기지국 운용 표준은 2016년 상반기에 만들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표준이 제정되더라도 테스트와 안정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제 완전한 단말기 공급은 길게는 1-2년이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국내 재난망이 구축되더라도 사용자는 소방과 경찰, 지자체 공무원 등 20만명 수준이기 때문에 단말기와 칩 제조사들이 이 정도 규모의 시장을 위해 과연 제조속도를 끌어올릴지도 미지숩니다. 결국 내년에 강원도에서 실시하는 시범사업에는 재난망용 단말기 모델1이, 2016년 지방 8개 시도 구축에는 모델2가, 2017년 서울 수도권 구축에는 모델3가 적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것은 제조사들이 속도를 냈을 경우고, 그렇지 않다면 최종 표준이 적용된 완전한 단말기는 재난망 구축 이후인 2018년에야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결국 앞서 공급한 단말기 모델 1과 2는 1-2년 후에 모델 3으로 업그레이드하거나 아예 기기를 교체해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재난용 단말기는 방수, 방진, 방염 등 상용단말과는 다른 고성능을 요구하고 있어 단말당 가격이 상업용과는 달리 비싸기 때문에 잦은 단말 교체는 국고낭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음은 비용산정입니다. 국내 이통사와 장비 제조사 등 4개 기업이 내놓은 LTE 재난망 사업비는 각각 1조 9천억원, 2조 2천억원, 2조 7천억원, , 5조 5천억원으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기업 제안서에는 단말기 투자비와 지하구간 투자비가 포함돼 있지 않아 정부 TF가 이를 포함시켰더니 2조 2천억원, 2조 4천억원, 2조 8천억원, 5조 7천억원으로 필요한 예산이 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액수는 TF가 사업타당성을 고려해 마지노선으로 정한 액수인 2조 1천억원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결국 TF는 기업 제안서보다 기지국 수량을 30%-60% 줄이는 방식으로 2조 1천억원에 맞출 수 있게 됐다는 방안을 내놨습니다. 그러나 29일 공개토론회에서 이런 액수가 나오자 '현실성 없는 예산'이라는 지적이 제기됐고 결국 31일 발표에서는 예산 추산 부분이 완전히 빠지게 됐습니다.

경찰, 소방, 지자체가 쓰는 기존 무선망을 통합해, 보다 발전된 LTE 망으로 국가 재난통신망을 구축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왜 정책 입안단계부터 2017년 구축완료라는 목표를 세워둔 것인지, 왜 목표시점을 2017년으로 딱 정해 놓고 여기에 맞춰서 숨가쁜 일정을 쫓아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의문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돈은 돈대로 들면서, 빨리 구축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닌데 말이죠.  좀 더 예산이 들더라도, 조금 더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 사회적 토론을 거치더라도 좀 더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일까요. 무엇보다 재난통신망은 대구지하철 폭발사고를 계기로 처음 추진됐고 세월호 참사로 재추진 되는 사업인데 정작 정부 TF 방안에는 지하나 해상에서 일어나는 대재난에 대한 뾰족한 답이 안 보인다는 점이 가장 아쉬운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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