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기적의 아기' 끝내 숨지다

숨진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기 닷새만에 사망

[취재파일] '기적의 아기' 끝내 숨지다
저는 아기 엄마입니다. 제 아들은 태어난 지 만 19개월이 지난 개구쟁이입니다. 아이를 제가 직접 낳고 기르다보니 세상 모든 엄마들이 존경스럽습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눈물이 많아졌다는 겁니다. 드라마를 보다가도, 다큐멘터리를 보다가도, 심지어 그냥 신문기사만 읽다가도 별 일 아닌 것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힙니다. 특히 아이들과 관련한 일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 글을 읽는 아기 엄마들은 제 말에 공감하실 겁니다.

저는 지금 국제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야근하면서 새로 들어온 외신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갓난아기의 모습이 담긴 영상 하나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인공호흡장치에 의지한 채 인큐베이터 안에서 쌔근쌔근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너무 귀엽고 예쁜 아기였습니다. 그런데 외신 원문을 살펴보다가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게 됐습니다. 아기의 엄마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살고 있었는데, 지난 25일 집 안에 있다가 갑자기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은 겁니다. 폭격으로 집이 무너지면서 아기의 엄마는 건물 잔해에 깔리게 됐고, 병원으로 옮기던 도중 사망했습니다. 의료진은 서둘러 제왕절개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숨진 엄마의 뱃속에서 한 시간가량을 힘겹게 버텨낸 아기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됐습니다.

아기의 외할머니이자, 숨진 산모의 엄마인 43살 미르파트 카난은 “나의 딸은 죽었지만 새로운 딸을 얻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딸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힘겹게 태어난 새 생명을 바라보며 다시 삶의 의지를 다잡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먹먹하면서도 뜨거워졌습니다. 사람들은 이 아이를 ‘미러클 베이비(miracle baby)’, 기적의 아기라고 불렀습니다.

이 아이가 절망밖에 남지 않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희망의 빛이 된 겁니다. 의료진은 아기가 산모가 사망한 이후 한 시간 동안 산소 결핍에 시달렸기 때문에 아직은 위중한 상태라고 말했습니다. 적어도 3주 이상은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한다고 말이죠. 저를 포함해, 아마 이 소식을 알고 있었던 모두가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외신을 통해 들어왔습니다. 아기가 결국 닷새 만에 숨졌다는 겁니다. 영상을 통해 먼저 접한 아기의 모습은 싸늘하게 변해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차갑게 굳은 아기를 부여안고 눈물로 탄식했습니다. 할머니의 희망이었던, 팔레스타인의 희망이었던, 모두의 희망이었던 기적의 아기는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하고 다시 엄마 곁으로 떠났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소식은 “장기전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한 이스라일이 공교롭게도 아기가 죽은 29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 전력을 공급하는 유일한 발전소를 폭격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일각에서는 아기가 치료를 받고 있던 병원도 전기 공급이 중단돼 산소 공급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아기가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아기 엄마인 저로서는 정말 듣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솟는 이야기입니다.

냉철함을 유지해야 하는 직업, 객관성을 견지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눈물이 나고 화가 치밀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은 오늘로 24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망자는 1,400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인권단체의 집계에 따르면 희생자의 85%가량이 민간인입니다. 이 가운데 328명은 어린이, 177명은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민간인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이스라엘 정부 대변인의 발언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수치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오랜 역사적 관계, 이번 사건의 발단을 다 떠나서 전쟁은 어느 순간에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눈앞에서 자식이 죽고, 부모가 죽는 것을 보고 겪은 사람들은 또 다시 복수의 칼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세대에도 전쟁이, 광기어린 살육이 지속될 수밖에 없단 뜻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인 기자의 눈에는 아직도 꿈틀거리며, 어떻게든 살아보려 했던 팔레스타인 아기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아기의 존재 자체만으로 남겨진 사람들은 위안을 얻었을 겁니다. 아이를 통해 한 줄기 희망을 기대했을 겁니다. 이제 그들은 어떤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할까요. 남은 사람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는 제 자신이 무력하기만 할 뿐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