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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더미'가 비싼 이유

[취재파일] '더미'가 비싼 이유
자동차 충돌 실험에 쓰이는 사람 모형을 더미라고 부르죠. 이 더미 가격이 비싼 건 10억원이나 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얼핏 보면 그냥 마네킹 같지만 그냥 마네킹이 아닙니다. 더미는 사고시 인체 각 부위에 가해지는 충격을 측정해야하기 때문에 사람과 흡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머리와 목, 가슴, 복부, 치골, 대퇴부, 정강이, 발 등 전신에 첨단 센서를 갖추고 있습니다. 나름 인체 과학의 결정체인 거죠. 그러다보니 더미 한대 개발하는 데 10년, 길게는 20년 가까이 걸린다고 합니다. 개발비도 많이 들어서 자동차 신차 한대 개발하는 데 보통 5천억원 정도 드는 반면 더미의 경우 비용이 그 두세배가 들어간답니다. 웬만한 자본과 연구기술이 없으면 만들지 못하는 거죠.

이 때문에 더미는 현재 사실상 미국에서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단 한 업체, 휴머네틱스라는 곳의 독점입니다. 일본에도 더미 회사가 하나 있긴한데 휴머네틱스 퇴직자들이 만든 회사로, 시장점유율이 1%에 불과합니다.

결국 미국만 더미를 만들고 있다는 얘기인데, 좀 이상하긴 합니다. 아무리 비용이 많이 들고 개발기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왜 다른 나라들은 못만들까요? 일본이나 독일 같은 자동차 강국들이 버젓이 있는데 더미를 자체개발해 만들지 않는 게 납득이 안갑니다.

이유를 알고보니 좀 섬뜩한 부분이 있습니다. 더미를 개발하는 데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인체와 시신 관련 연구자료가 필요합니다. 이 때문에 시신을 활용한 실험이 필수인데, 보통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나라도 그렇고 다른 나라들도 그렇고 시신 실험을 충분히 진행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반면 미국의 경우 시신 기증 문화가 다른 나라들보다 많이 확산돼 시신 실험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에 더미 개발이 가능했던 겁니다.

이 부분에서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더미에 윤리적인 문제가 있을 게 뭐냐" 예전에 이 더미 관련 소식을 뉴스로 보도해드렸을 때 많은 분들이 온라인상 댓글을 달아주셨던 의문인데, 제가 게을러 뒤늦게 이제서야 답변드리는 것 양해 부탁드립니다. 방송뉴스에서는 너무 잔인한 것 같아 그냥 '윤리적 문제'가 있다고 하고 넘어갔던 부분입니다.

더미를 개발하기 위해 더미 개발업체는 기증받은 인간의 시신에서 피를 모두 뽑아냅니다. 이후 인간 시신속 곳곳에 센서를 장착하고 이 시신을 갖고 마치 더미처럼 갖가지 충돌 실험을 하는 겁니다. 끔찍하죠? 이 정도면 제가 대충 윤리적 문제라고 뭉뚱그린 이유 납득이 가실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니 다른 나라에서라도 유족이 이런 실험에 과연 동의하기 쉬울까요? 그럴리 만무합니다.

더미를 미국에서만 개발하는 이유로는 다른 설도 있습니다. 더미의 역사와 관련이 있는데요, 더미가 처음 개발된 게 1940년대입니다. 더미는 처음엔 항공 우주개발 분야에서 시작됐다가 1970년대가 되어서야 자동차 산업으로 확장됐는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더미 개발이 시작된 1940년대가 2차 세계대전 직후라는 겁니다. 당시 승전국이었던 미국은 독일과 일본의 군사 연구자료를 모두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여기 상당한 양의 시신과 인체 관련 연구자료가 있었다는 설입니다. 사실 믿거나 말거나긴 한데, 전혀 신빙성 없는 얘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더미를 취재하다보니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 요즘은 더미가 다시 보입니다. 더미 충돌 실험 영상을 보면 예전에는 마네킹으로만 보였던 더미가 이제 거의 사람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런 변화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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