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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역겨운 '청렴 쇼'! 중국엔 청백리 없다!

[월드리포트] 역겨운 '청렴 쇼'! 중국엔 청백리 없다!
1996년 어느 날 베이징 중난하이 총리 관저. 해외 출장을 앞두고 짐을 꾸리던 총리는 코트 소매에 난 구멍을 발견하고는 그 길로 실과 바늘을 꺼내들어 손수 바느질을 합니다. 때 마침 곁에 있던 비서가 몰래(?) 카메라 셔터를 눌렀고 ‘낡은 코트를 바느질로 기워 입는 청렴한 리펑(李鵬)총리’의 사진은 며칠 뒤 중국 관영지에 큼지막하게 실립니다.

2006년 춘제를 앞둔 산둥성의 한 농촌 마을. 민정시찰 나와 시골 촌부들의 손을 살갑게 잡아주던 총리가 걸친 수수한 점퍼는 익명의 네티즌이 자발적으로(?) 추적한 끝에 10년도 넘게 입어온 단벌 옷임을 밝혀냅니다. 이튿날부터 인터넷을 도배하다시피 한 ‘단벌 신사 총리’사진 한 장으로 원자바오(溫家寶)는 청렴한 서민 총리의 이미지를 굳히게 됩니다.

현대판 청백리의 표상으로 여겨지던 두 전직 총리의 실체는 머지않아 낱낱이 드러났습니다.

원자바오 전 총리 일가의 재산이 우리 돈으로 3조 원이 넘는 다는 폭로 기사가 미국 뉴욕타임스에 실렸습니다. 원 전 총리의 부인은 중국 보석업계의 큰 손이었고 아들과 사위는 조세회피지역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유령회사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리펑 전 총리의 자식들은 중국의 전력 산업을 쥐락펴락하는 실력자들이었습니다. 대표적인 국영기업인 중국전력공사의 CEO인 딸은 이권 사업에 관여해 뇌물을 수수한 혐의까지 받았고 민간 전력회사 회장을 역임한 아들은 그 자리를 발판으로 정계에 진출했습니다.

알고 보니 두 청백리 일가가 부와 권력을 독점한 이른바 ‘홍색 귀족’이었음이 드러나자 많은 중국인들은 허탈해했고 위선적인 ‘청렴 쇼’에 속았다며 깊은 배신감마저 느꼈습니다. 

중국의 고대 역사서나 경전에서는 오래 전부터 청백리를 숭상해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진정한 청백리가 드물기 때문이라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자고로 중국에는 청백리가 없다”는 자조적인 혀 차는 소리를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청렴 쇼

부패 척결과 공직 기강을 강조하고 있는 시진핑 지도부는 중앙기율검사위를 앞세워 벌써 2년 가까이 탐관오리 색출과 단죄 작업을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이틀이 멀다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한 탐관들의 낙마 기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와 동시에 중국 정부는 청렴하고 친서민적인 관리들의 미담 사례를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일반 대중들과의 유대 강화를 노리고 있습니다. 매일 아침 딸을 자전거에 태워 등교시키는 안후이성 부시장이나 정기적으로 농민공을 집으로 초대해 함께 식사해 온 산시성 공안부장의 사연이 언론에 오르내렸습니다. 여기에 더해 중앙기율검사위가 직접 나서 대중 세뇌 작업까지 시작했습니다. 기율위는 이미 2000년에 제작되어 인기를 모았던 청백리 드라마를 다시금 홈페이지에 링크해 놓고 관료사회의 이미지 개선 작업에 여념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의 라오바이싱들은 그런 정치적인 쇼맨십이나 언론플레이에 휘둘릴 정도로 어리석지 않습니다. 작위적이기 짝이 없는 ‘청렴 쇼’, ‘서민 쇼’는 역겨우니 자기 본분인 업무 처리나 똑바로 잘하라는 거죠. 아무리 청렴한 척 해봐야 뒤로 무슨 꿍꿍이를 갖고 있을 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대중과 눈높이를 맞춰보겠다고 나섰지만 공직 사회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해소하기엔 갈 길이 한참 멀었다는 얘기입니다.      

또 하나의 ‘청렴 쇼’로 드러난 얼마 전 ‘달력 원고지’ 사건은 아직도 관료들이 라오바이싱들을 언제든 쉽게 속이고 입맛대로 조종할 수 있는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청렴 쇼

안후이성 안칭시의 당서기인 위아이화(虞愛華)가 오래된 달력의 이면지를 원고지로 활용해 강연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웨이보에 실리며 위 서기는 절약의 표상으로 잠시 칭송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사진은 시의 말단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제보하는 형식으로 언론에 제공됐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같은 사진에 실린 연단 위 생수병이 일반 생수보다 15배나 비싼 고가 제품임이 드러나면서 이중적인 쇼맨십에 대한 질타와 함께 톡톡히 망신을 당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판관 포청천'같은 청백리를 일컬어 '냉면한철(冷面寒鐵)'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원칙을 지키는 추상같은 관리의 얼굴 빛이 마치 한 겨울 쇠붙이처럼 싸늘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이고 우리나라고 공직사회에서 '냉면한철(冷面寒鐵)'은 찾아보기 어렵고 권력욕과 금욕에 사로잡힌 채 얄팍한 수로 대중들 우롱하기에만 능한 '철면피(鐵面皮)'만 가득한 것 같아 가슴이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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