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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베끼기'냐, '트렌드'냐…소비자는 안다!

[취재파일] '베끼기'냐, '트렌드'냐…소비자는 안다!
요즘 인터넷에는 심심치않게 베끼기에 대한 글이 올라옵니다. 주로 음식점 얘기가 많습니다. "평소 즐겨찾던 음식점인데 알고보니 다른 곳을 베낀 거 였더라"라거나, "내가 좋아하던 브랜드를 어디어디서 베꼈더라" 같은 글 들입니다. 어떤 소비자들은 아예 '베끼기 논란'에 서 있는 음식점들을 직접 찍어 비교해 올리는 글들도 있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해서인지, 아니면 프랜차이즈가 대세인 시대가 되다보니 비슷한 음식점들이 전보다 눈에 더 잘 띄어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소비자들이 '베끼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겁니다.

- 요식업계, 줄 잇는 소송전

취재를 하다 보니, 베끼기는 그저 소비자들의 불만으로 끝나는 사안은 아니었습니다. 실제 요식업계에는 이른바 ‘원조 논쟁’으로 소송이 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밥버거 분쟁'이 대표적입니다. '밥버거'는 빵 모양으로 꾹꾹 뭉친 밥 사이에 반찬을 넣어 햄버거 형태로 만든 일종의 주먹밥입니다. 가격이 싸고 양이 많고 빨리 먹을 수가 있어서 학생들이 많이 찾습니다. 원조와 후발주자의 이야기이니, 일단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를 알아봤습니다. 밥으로 만든 햄버거를 처음 판매한 곳은 우리나라에서는 롯데리아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라이스 버거'라는 이름으로 팔렸는데, 크기가 다소 조그맣고 가격이 그리 싸지는 않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요즘 유행하며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밥버거'라는 이름과 형태가 본격적으로 등장을 한 것은 20대 젊은 사장에 의해서입니다. 거리에서 처음 장사를 시작했는데, 양 많고 가격 저렴하고, 밥 사이에 들어가는 반찬도 햄부터 제육볶음까지 다양해 인기를 누렸다고 합니다. 이때 '밥버거'라는 명칭도 처음 사용을 했고, 3년 전에는 길거리 장사를 'ㅂ밥버거'라는 이름의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확대를 했습니다. 이게 특히 중고등학생과 대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가맹점을 늘려나가기 시작했는데, 1년쯤 지나 후발주자들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문제가 생겼습니다. ㅂ밥버거 가맹점을 운영하던 가맹점주의 가족이 새로운 밥버거 프랜차이즈 'ㅅ밥버거'를 세운 겁니다. ㅂ밥버거 사장은 “가맹점 회원이었기 때문에 밥버거 메뉴와 제작방법, 심지어 손님 접대 방법과 영업 방법까지 모든 사업 노하우를 전수해 주었는데, 그걸 그대로 가져다 새로운 밥버거 프랜차이즈를 만드는 것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일이다”라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ㅅ밥버거는 가맹점을 모집하면서 ㅂ밥버거 가맹점 역시 포기하지 않고 동시에 운영했다고 합니다. 이러다보니 ㅂ밥버거 사장은 신메뉴와 식재료 등의 정보가 경쟁사가 된 ㅅ밥버거 측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 걱정이었다고 얘기합니다. 하지만 가맹본사가 일방적으로 가맹점 계약을 취소시킬 수 없도록 금지가 돼 있기 때문에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이 문제는 해결이 돼 가맹 계약은 해지가 됐고, ㅅ밥버거는 ㅅ밥버거대로 ㅂ밥버거는 ㅂ밥버거대로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벌집 아이스크림’은 하얀 아이스크림 위에 벌집이 올라간 이색적인 모양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벌집 아이스크림을 처음 시작한 ㅅ업체는 현재 대규모 프랜차이즈 ㅁ업체와 법정다툼을 준비중입니다. 자신들의 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이유입니다. ㅅ업체 대표는 자신들의 사업이 성공하자 6개월 만에 유사 상표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중 대규모 프랜차이즈 업체인 ㅁ업체가 끼어들면서 타격을 많이 입었다고 합니다. 취재진이 살펴보니, 비슷하긴 정말 많이 비슷했습니다. 메뉴는 물론, 가게 인테리어, 마스코트, 간판모양, 글씨체, 아이스크림을 담아주는 컵, 심지어 직원 복장까지.. 정말 모르는 사람이 얼핏보면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ㅁ업체는 자본력이 있는 기업이다 보니 매장도 한번에 많은 곳에 생겼을 뿐 아니라, 연예인을 이용한 광고까지 하면서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원조인 것처럼 인식이 됐다고 ㅅ업체 대표는 하소연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가장 심각한 건, 원조인 우리 메뉴를 그대로 베껴 영업하는 ㅁ업체가 되려 여러 매체를 이용해 우리를 공격한다는 거예요. 그건 정말 못참겠더라고요."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보니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ㅅ업체 대표는 결국 법정 다툼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아이스크림 하나가 전부인 작은 회사와, 100가지 메뉴 가운데 아이스크림이 하나인 큰 회사가 자본력으로 맞붙을 때, 아이디어로 소규모 창업을 한 창업자들은 살아남을 수가 없다"고 하소연 합니다.

‘딸기 음료 갈등’도 있습니다. 홍대에 본점을 두고 있는 ㄱ커피숍은 소규모 프랜차이즈입니다. 별로 크지는 않지만, 이 ㄱ커피숍이 개발한 ‘딸기 음료’ 덕에 꽤 유명해 졌습니다. 생딸기 쥬스 위에 빙수 얼음을 올려주는 것인데, 간단하지만 시원한 맛과 모양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이 음료가 개발이 돼 인기를 끌었고, 정확히 6개월 뒤 유사품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비슷한 모양과 비슷한 맛의 음료가 팔리기 시작을 했는데, 그 중에도 가장 큰 문제는 전국에 프랜차이즈 망을 가지고 있는 덩치 큰 카페에서 이 메뉴를 따라했다는 겁니다. 순식간에 똑같은 ‘딸기 음료’가 퍼졌는데, ㄱ커피숍은 고심 끝에 매장마다 자신들이 원조라는 내용의 안내문을 붙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곳의 음료를 베낀 것 아니냐’라고 반대로 알고 있는 손님들도 있고, 매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어 현재는 몇몇 업체를 상대로 소송도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사실 이런 사례는 이 곳에 일일이 늘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소송도 한두 건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마찰이 끊이지 않는 걸까요?

- 음식은 저작권이 없다?

음악이나 미술처럼 저작권이 분명하다면, 요식업계의 해묵은 '원조 논란'은 애시당초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으로 저작권을 인정받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벌집 아이스크림을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 ㅅ업체 대표도 그런 경우입니다. 벌집 아이스크림을 특허를 내려고 했지만, 벌집도 자신이 개발한 것이 아니고, 아이스크림도 자신이 개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특허가 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특별한 요리법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재료의 조합 방법 만으로는 특허가 나지 않는 겁니다. 아무리 그 모양이 특이하고 새로운 것이어도, 재료 자체가 새로운 것이 아니기에 특허가 나지 않는다는 겁니다.

밥버거도 이런 이유로 특허가 없습니다. 밥도 기존에 있던 것이고, 사이에 들어가는 햄이나 참치, 제육볶음 같은 재료도 기존에 있던 겁니다. 다만 밥버거를 뭉치는 제조 방법만 특허가 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그란 밥버거를 육각형으로 만들거나 삼각형으로 만들면 어떻게 할 방도가 없다고 합니다.

가게 인테리어 역시 마찬가집니다. 취재를 하다보니 의외로 메뉴 뿐 아니라 가게 인테리어까지 남의 것을 그대로 베낀 업체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인테리어라는 것은 결국 가게의 분위기인데, 이 분위기에는 특허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인테리어 역시 특허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매장 자체를 똑같은 인테리어로 베끼는 가짜들이 나와도 원조들은 손놓고 구경해야 하는 사례가 벌어지곤 합니다.

아이디어로 창업을 했다가 이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 특허법이 개정돼야 기발한 아이디어가 지속해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 '선량한 경쟁'과 '베끼기' 사이

사실 유행을 따르는 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그 시대별 트렌드라는 것이 있으니까요. 이 트렌드를 정확히 읽어 낸 사례로 '스몰비어'를 들수 있습니다. '스몰 비어'란 가게 이름이 아닌 새로 생긴 술집의 형태입니다. 커피 한잔 마시듯 아주 간단하게 맥주 한 잔 즐기고 싶은 사람들을 겨냥한 호프집인데, 맥주 딱 한잔에 감자튀김 한 줌 정도 시켜놓고 싸고 가볍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 스몰비어의 시초는 부산의 한 대학교 앞에 있는 조그마한 호프집입니다. 감자튀김 메뉴 하나로 승부하는 이 작은 호프집이 인기를 누리자, ㅂ비어라는 브랜드가 메뉴와 영업방식을 따다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는데, 이 역시 인기를 누리며 지금은 가맹점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그런데 이 프랜차이즈를 다른 프랜차이즈들이 또 그대로 따라하면서 이제 정말 어디를 가도 스몰 비어 호프집 하나 없는 곳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1인 가구가 늘어가는 요즘, 혼자서도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이런 형태의 술집이 요즘 트렌드와 정확히 맞아 떨어지면서 성공사례가 됐다고 얘기합니다. 요식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트렌드 따라가기'는 필수입니다. 그러니까 술 조금, 안주 조금 파는 스몰 비어 형태의 술집은 누가 누굴 따라하는 문제가 아닌, 말 그대로 유행을 따르는 생존의 문제가 된 겁니다.

그럼에도 스몰비어 업계에 베끼기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말 그대로 '도를 넘었기 때문'입니다. 일단 가게 이름들이 다 비슷합니다. "00비어" 형태로 돼 있는 이름들은 서로 한 글자씩만 바꿔가며 서로가 서로를 복제해 나갑니다. 가게 마스코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바보를 연상하는 캐릭터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메뉴도 다 비슷비슷 합니다.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메뉴가 감자튀김만은 아닐진대, 모두가 감자튀김을 대표 메뉴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 상대방을 벤치마킹 한 수준을 넘어 베끼기 논쟁이 일고 있습니다.
김종원취재파일
이 말을 반대로 하면, 벤치마킹을 잘만 활용하면 선의의 경쟁을 할 수도 있다는 소리가 됩니다. 트렌드를 따르는 비슷한 업종이 한개에서 두개, 세개 늘어갈수록 서로 더 좋은 서비스와 더 좋은 제품을 내놓게 되겠지요. 네모가 인기면 그 옆에 똑같이 네모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세모, 육각형을 만든다는 겁니다. 서로 비슷한 듯 다른 업체가 늘어가면 결국 그 혜택은 소비자가 누리게 될 겁니다.

보도가 나간 뒤 ㄸ밥버거라는 밥버거 프랜차이즈 대표에게 연락을 받았습니다. ㄸ밥버거 대표는 밥버거를 판다는 점에서는 이 사업을 처음 시작한 ㅂ밥버거와 같지만, 세부적인 운영 방식 등은 많이 다르다고 얘기했습니다. 특히 가맹점주들에게 로열티를 받지 않는다거나, 식재료를 본사에서 직접 제조해 조달하는 방식은 밥버거 업체에서 최초로 시행하는 방침이라면서, 이게 결국 가맹점주들로 하여금 더 질좋은 음식을 제공할수 있게 해 준다고 믿는다고 얘기했습니다. 또 신메뉴도 계속 독자적으로 개발을 하고 있는데, 다른 밥버거 업체에서 오히려 이 신메뉴를 베치마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밥버거 업체가 이제는 20곳 넘게 생기다보니 그만큼 밥버거라는 음식도 유명해져서 동반 성장을 할 수 있게됐다는 점도 강조를 하더군요. 마치 옷가게가 한 군데 홀로 있는 것보다, 옷가게 여러 곳이 뭉쳐있어야 매출이 더 오르는 이치와 같다는 겁니다. 취재 도중 만난 원조격의 ㅂ밥버거 가맹점주 한 분은 경쟁이란 불가피 하기 때문에 경쟁 업체가 생기는 것에 그리 신경을 쓰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하려 노력한다는 멋진 말씀 하시더군요. 실제로 원조 ㅂ밥버거는 앞서 얘기한 ㅅ밥버거와의 분쟁 사례 이후 매장수를 2배 가까이 늘리며 사세를 더욱 확장시키기도 했습니다.

도 넘은, 대놓고 베끼는, 그래서 오히려 원조를 망하게 하는 양심불량 업체도 분명 있습니다. 이 경우 소비자가 먼저 압니다. 그래서 우후죽순 생겨나던 비슷비슷한 업체들이 어느날 갑자기 동반 폐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유행을 따르되 자신만의 운영노하우와 아이디어를 가미해 선의의 경쟁으로 가는 사례도 많습니다. 이 역시 소비자가 알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유행을 넘어 하나의 산업이 되기도 합니다. 진정한 생존의 길이 무엇인지 이제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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