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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펑리위안이여! 붉은 십자가를 짊어져라!

- 중국 홍십자회의 개혁을 바라며

[월드리포트] 펑리위안이여! 붉은 십자가를 짊어져라!
중국의 골치덩어리 ‘홍십자회(Red Cross Society of China)’가 또 사고를 쳤습니다. 우리나라의 적십자사에 해당하는 구호, 봉사단체인 홍십자회는 이름과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 비리와 의혹들로 인해 정부 조직이나 단체 활동에 꽤나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중국인들에게 수 차례 뭇매를 맞아왔습니다.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쫓겨나가면서 중화민국 적십자사를 대신해 1949년 설립한 중화인민공화국 홍십자회의 역사는 순탄치 못했습니다. 조직을 채 갖추지도 못한 1966년, 문화혁명의 광풍이 불어 닥치면서 홍십자회 간부들은 서슬 퍼런 홍위병들의 먹이감으로 전락했고 조직은 와해됐습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함께 가까스로 조직을 추스렀지만 홍십자회는 경제발전 우선 정책 기조 밀려 뚜렷한 활동을 못해 오다 21세기를 맞았습니다. 개도국 수준에 도달한 1인당 GDP 규모와  신흥 부자들의 출현과 함께 중국 대륙에 기부금 문화가 조금씩 태동하면서 홍십자회의 활동 폭도 커져갔습니다. 하지만 홍십자회는 조직이 도약할 수 있는 이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홍십자회
2008년 5월 쓰촨 대지진으로 8만 명이 숨지고 수십 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자 중국 전역은 물론 세계에서 수많은 구호성금과 구호물자가 홍십자회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수십억 위안이 모금됐지만 이 엄청난 돈의 상당부분이 공중에서 증발돼 버렸습니다. 홍십자회는 모금된 기부금의 사용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고 용처에 대한 의문과 간부들의 유용 의혹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한 편에서는 이재민들을 위한 식료품과 생필품 등 구호품 가운데 일부가 창고 안에 곰팡이가 필 정도로 썩은 채 방치된 사진들이 인터넷에 오르면서 홍십자회에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2011년에는 홍십자회에 대한 신뢰를 밑바닥까지 곤두박질치게 만든 '홍십자 된장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자신을 홍십자회 상업 총경리(대표)라고 소개한 20대 여성이 웨이보에 자신의 고급 스포츠카와 명품 가방, 고가의 별장 등 호화로운 생활을 담은 사진을 올린 겁니다. 여론이 들끓자 홍십자회는 이 여성은 홍십자회와 전혀 연관이 없다며 이 사건을 조사하겠다고 밝혔지만 '홍십자 된장녀'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일이 커졌습니다. "내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홍십자회 부패 내막을 폭로할 것"이라는 협박에 홍십자회는 "사건을 조사한다고 한 적이 없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인터넷에는 된장녀가 홍십자회 간부들과의 섹스 동영상을 쥐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습니다. 연이어 홍십자회 간부가 1인당 1만 위안짜리 '황제식사'를 한 영수증이 공개되는가 하면, 헌혈받은 피를 돈을 받고 파는 이른바 '피 장사'를 한 사례까지 밝혀지면서 홍십자회는 '흑십자회'라는 비아냥 속에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았습니다.

잇따른 추문으로 홍십자회에 대한 시선이 싸늘해지면서 모집 기부금이 전년대비 10% 수준으로 급락하자 마지못해 홍십자회는 기부금 운영을 투명하게 하겠다며 외부 인사들이 참여하는 관리감독위원회 설립을 공약하고 기부금 내역을 인터넷에 공개했습니다. 사이트 개설 직후 수 천만 명의 네티즌들이 구름처럼 접속했을 정도로 홍십자회에 대한 불신은 컸습니다. 하지만 공개된 기부금 사용내역은 10만 위안 이상 고액 기부자나 50만 위안 이상 단체에 한정되면서 "수많은 소액 기부자들의 기부금은 홍십자회의 쌈짓돈이냐"는 반발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믿음을 잃은 홍십자회의 날개 잃은 추락은 계속됐습니다. 지난해 5월 쓰촨에서 다시금 지진이 일어나자 많은 중국인들이 지진 피해자 돕기 성금 모금에 동참했지만 홍십자회는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그러자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가 홍십자회 수호천사를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지진 구호 기금으로 모금한 5억 7천만 위안 가운데 절반, 우리 돈 1천 억원 정도가 홍십자회를 통해 모았다고며 홍십자회가 여전히 인민들의 신뢰를 받고 있다고 옹호 주장을 펴자 곧바로 중국인들의 질타가 이어졌습니다. NGO 등 민간 단체에 대한 기부를 금지하는 중국에서 기업이나 정부 부처의 기부금을 독점하고 있는 반 관영 단체인 홍십자회가 그 정도 밖에 돈을 모으지 못한 것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겁니다. 복마전인 홍십자회의 추잡한 실상을 정부 기관지가 덮어주려 한다는 비난이 인민일보에 쏟아졌습니다.

몇 달 뒤 필리핀이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입자 홍십자회는 10만 달러의 현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1억 원 남짓...미국의 지원금 213억 원이나 일본의 107억 원에 비해 턱없이 적은 액수에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의 위상에 맞지 않는 인색한 지원이라며 중국인들조차 혀를 찼습니다. 특히나 남중국해 영토 분쟁으로 사이가 틀어졌기 때문에 중국이 필리핀에 이처럼 형식적인 지원만 했다는 서방과 일본 언론들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홍십자회는 도대체 인도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인지 정부의 관변 단체인지 분명히 역할을 밝히라는 공격까지 받았습니다. 

홍십자회

급기야 40년 만에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불리는 람다순으로 남부 지방이 초토화 된 올해도 홍십자회는 어김없이 헛발질을 해댔습니다. 태풍이 지나가고 뒤이어 엄습한 40도가 넘는 삼복 더위로 힘겨워하고 있는 이재민들에게 홍십자회가 한 겨울에나 쓸 만한 두꺼운 솜이불 수 천 채를 구호 물품이랍시고 뿌려댄 겁니다. "수해지역에는 예전부터 이불을 보내는 게 관례"라는 황당한 해명을 들으며 이재민들은 홍십자회의로부터 우롱당했다는 입 맛 쓴 불쾌감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혼도 배려도 없는 홍십자회의 탁상행정에 뭔가 또 악취 풍기는 뒷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며 흰자위를 치켜 뜬 수많은 중국인들은 억지스럽기 짝이 없는 '한여름 솜이불'의 제공 경위와 물품 구매 과정을 낱낱이 밝히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홍십자회
뭘 해도 욕을 먹는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홍십자회의 개혁을 위해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불신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홍십자회를 살릴 구원 투수는 전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명망가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그런 이유로 수많은 이들로부터 위기의 붉은 십자가를 짊어질 적임자로 천거되고 있는 인물이 다름 아닌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입니다. 현재 중국에서 그녀만큼 대중적인 인기가 높고 참신한 이미지에 신뢰도까지 갖춘 인물은 없습니다. 게다가 조용한 내조의 이전 퍼스트레이디들과 달리 적극적인 대외 활동을 하고 있는 펑 여사가 자선단체를 제대로 운영한다면 남편인 시진핑 주석은 물론 중국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도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연간 1인당 기부액이 25위안, 우리 돈 4천 원도 안되는 기부 후진국 중국의 기부 문화 발전을 위해서라도 붉은 십자가를 짊어질 시대의 선인에 대한 요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을 위해 붉은 깃발을 치켜든 시 주석을 도와 도탄에 빠진 홍십자회 재건을 위해 기꺼이 붉은 십자가를 짊어진 펑리위안의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될 수 있을 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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